제가 대리운전을 시작한 때가 2013년 9월 초였으니 5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습니다.
직장에서 월급 받고 다니다가 회사가 어려워져 사표를 내던지고
나와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 가진 돈이 없다 보니 마땅히 할 만한 일이 없더군요. 물론 건축 현장으로
가면 잡역부 노릇은 할 수 있을 테고, 여기저기 찾아보면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일거리가 없지야 않을
것입니다만, 한창 젊은 시절 한동안 실제로 그런 종류의 일에 종사하기도 했으나, 오랜 기간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 자판이나 두들기며 먹고 살아온 탓에 힘이 필요한 일은 체력이 달려 자신이
없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는 아침에 여전히 직장에 나가는 것처럼 도시락(당시는 생식하고 있었음)을 싸 들고 나서서 무작정 거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하루는 오래전 같은 직장에 다니던 친구와 한잔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에게 저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의
근황을 물어보니 약 2년 전부터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볼까?’ 하니 친구가 의외로
‘그럼 해봐라’ 하고 선선히 대답하면서 방법까지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대리운전 요금에 소위 말하는
똥콜이란 것이 있는 줄 모르고 콜이 뜨면 가리지 않고 무조건 잡아 수행하다 보니 형편없는 가격으로 한밤중에 오지에 떨어져 대중교통도 끊어지고 택시
한 대 다니지 않는 깜깜한 밤길을 눈보라를 맞으며 몇 킬로씩 걸어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술에 만취해
제정신을 잃고 주정을 하는 진상을 만나기라도 하면 옥신각신하다가 할 수 없이 112로 신고하여 경찰에게
넘기고, 일도 못 하고 다투며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요금도 못 받은 채 자리를 떠난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중간에 네 차례나 경유하고도 가는 길에 내린 것이라 절대 한 푼도 더 줄 수 없다고 생떼를 쓰는 못된 인간을
만나 승강이하다 끝내 빈손으로 돌아서서 한숨을 쉬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고 나면 직업에
회의가 들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런 부류의 몹쓸 인간은 0.1%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무시하고 잊어버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경험이 있는 친구보다
오히려 수입은 더 높았으며,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받던 월급 못지않은 소득으로 생계유지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차츰 경험이 쌓이면서 지리를 익히고 적정요금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니 그때부터는 꾀가 나기 시작하여 이것저것 따져가며 가리다 보니 몸은 편해졌으나 수입은 초보 시절보다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살아가는 데 큰 불편 없는 정도의 벌이는 되는 일이기에 현실에 안주하며 그럭저럭 지내다 보니
어느새 5년여 세월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대리운전은 마음 자세에 따라 소득이 크게 달라지는 직업입니다. 돈이 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든 가겠다는 마음 자세로 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소득은 대체로 투자하는 시간에 정비례하게 마련입니다. 물론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열심히 뛰고 연구하는
사람이 더 많이 벌 수밖에 없겠고요.
대리운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기 일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으로 나타납니다. 평생직업으로 여기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당당히 밝히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의 직업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와 견주어 부끄럽다는 생각에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떳떳이 밝히기를 꺼리게 되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 ‘요즘 무엇을 하며 지내냐’고 물어볼 때면 흔쾌히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가려는 사람도 있고, 갈
데까지 간 사람이 막바지에 몰려 마지못해서 하게 되는 밑바닥의 막장 직업이라는 생각에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짐작하건대 대부분 사람이 가운데 부류에 속하리라고 보는데 저 역시 그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치고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고, 내가 종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였습니다.
대리운전은 관례로 정착되어 통용되는 요금이 있고 수요가
몰리는 피크시간이 짧아 아무리 열심히 뛴다고 해도 하루에 벌어들일 수 있는 수입에 한계가 있으므로 큰마음을 먹기 전에는 좀처럼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우선 매월 일정한 목표 금액을 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하루 매출 목표 금액과 종사할 시간이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활을 계속하다가 작년 6월쯤
되어서야 퍼뜩 정신이 들어 비로소 적금을 붓기 시작했습니다. 일한 대가의 돈이 들어오는 카카오뱅크 통장에서
매일 일정한 금액이 자동으로 적금통장으로 이체되게 하였더니 이내 그런 상황에 적응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니 6개월 만에 상당한 금액의 목돈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각오로 임하고 있을 때 저에게 특별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여동생이
자신과 함께 요식업을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여동생은 한때 음식점 운영으로 크게 성공한 유명인이었습니다. 1992년 이천시 부발읍 신원리 42번 국도변에 있던 허름한 주택을
거의 무상으로 임대하여 쌍둥이 아이들 과잣값이라도 보탤 요량으로 ‘쌍용해장국’(1988년 용띠
해에 쌍둥이 아들을 낳은 것에 착안하여 그리 지은 것임)이라는 이름으로 해장국집을 열었는데 6개월쯤 지나니 소문을 듣고 찾은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하여 점심시간에는 길게 줄을 설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좌석이 모자라 바로 옆에 있는 넓은 상가로 옮기게 되었는데 장사가 너무 잘되니 상가 주인이
직접 해볼 욕심에 비워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상가에서 길 건너편에 매물로 나온 토지가
있어 그것을 사들여 식당을 큰 규모로 짓고 이전하였는데 더욱 발전하여 한
그릇에 6천 원씩 받는 해장국으로 하루 매출 최고 기록이 2,500만
원이었을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천에
사는 사람이 ‘쌍용해장국’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하였을 만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식당이었습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잘나가던 무렵인 2002년 돌연 여동생의 남편이 암으로 사망하는 변고가 생겼습니다. 그곳은
매제의 고향이었는데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 여동생이 2006년 식당을 처분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는바 그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여동생은 몇 군데 옮겨 다니면서 기껏 고생하여 벌어놓은 돈을
전부 털어먹고 만 것입니다. 그랬다가 몇 년 전 이천시 부발읍 응암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넣은 ‘안성순해장국’이라는 상호로 개업하여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성에 차지 않아 다시 광주시 곤지암으로 이전한 것이 두
번째 실수였습니다. 원래 곤지암은 소머리국밥으로 유명한 지역인데 장소를 잘못 선정하여 소문을 듣고 찾은
손님이 입구를 못 찾아 헤매다가 바로 옆에 있는 소머리국밥의 원조 격인 ‘최미자소머리국밥’으로 들어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음식 장사는 맛과 서비스가 우선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장소가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여동생은 부득이 일억 원이 넘게 들어간 권리금을 포기하고 작년
10월 말 눈물을 머금고 식당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하루라도 이르게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 싶은 욕심에 냉정함을 잃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그 후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던 중 마침 부발읍 신하리 OB맥주 이천공장 맞은편에 신축하는 건물이 있기에 배후 잠재고객과 접근성 등 다각도의 변수를 두고 입지를 분석한
결과 해장국집으로 최적의 장소라는 판단이 들어 임대계약을 체결하고 건물 준공과 식당 설비 과정을 거쳐 2월 1일 새로운 이름을 걸고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식당의 실제 CEO는 여동생이고 저는 옆에서 참모 겸 지배인 역할을 맡아 재무를 주관하고 경영 부문의 중요한 결정에 관여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홀에서 서빙도 하고 여차하면 청소와 설거지도 하는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으므로
머슴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쨌든 저는 능력 있는 동생 덕분에 상당한 기간 종사하던
대리운전을 완전히 접고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리운전은 제가 실업자로 전락하여 생계유지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을 때 구명줄이 되어준 고마운 직업이었습니다. 결코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제 인생 후반기를 기름지게 하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직업에 귀함과
천함이 따로 없으니 신분이나 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아니 되며 주어진 모든 것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대리운전하는 사람 치고 한때 한가락 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아무개는 수백억 원의 재산가였고, 아무개는
대기업의 임원이었으며, 아무개는 특별한 분야의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었습니다. 그들은 기회가 오면 반드시 다시 일어날 잠재력을 갖춘 사람들이므로 늘 희망을 품고 긍정적인 사고로 열심히 살아간다면
언젠가 재기하여 대성할 것입니다.
제가 일하는 식당은 이천에서 오래 산 사람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니 식사 시간에 근처에 오거나 지날 일이 있으면 들려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주메뉴는 세 가지 입니다.
양, 내장, 선지, 콩나물, 시래기를
푸짐하게 담고 한우 잡뼈와 사골로 우려낸 진한 육수를 가득 넣어 보글보글 끓이는 임금님해장국이 대표 메뉴입니다.
또한, 진하게
우려낸 한우 사골 육수와 양지를 넣고 끓여 쇠뼈의 시원한 맛과 한우 고기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동시에 지닌 한우곰탕도 먹을 만합니다.
그리고, 한우
사골 육수에 시래기와 양지를 넉넉히 넣고 끓여 구수하면서도 개운한 감칠맛이 일품으로 누구나 즐겨 먹는 한우사골시래깃국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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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Daum)이나
네이버(NAVER) 지도 또는 내비게이션에서 상호로 검색하면 나옵니다.
상호: 임금님해장국
주소: 경기 이천시 부발읍 가좌로 109 (부발읍 신하리)
전화번호: 031-634-4447, 010-5955-0989
저는 주로 홀에 있으며 모자 쓴 사람으로 이름은 안효선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 큰 목표를 세우고 심기일전하여 올해
안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를 소망합니다. ^^
ㅎㅎ 정확한 날짜는 약속할 수 있지만, 몇 년 안에 강남 직영점을 반드시 내겠습니다.. ^^
진짜 달맞이꽃님께서도 승승장구하시길 빌겠습니다..
글을 아주아주 잘 쓰시네요....^^
사업 번성하시길 빕니다...!
라페라리님의 응원 덕분에 성공하는 날이 훨씬 가까워진 거 같습니다.. ^^
님께서도 하시는 일마다 성공하기를 빌겠습니다..
기분 좋은 글이네요ᆢ건승하시길~~
졸필을 좋게 평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
항상 행복하시길...
진짜. 3년이상 경력분들은 님 생각 많이 했음.
진짜 사업 번창하시고요. 한번쯤 이천가면 먹으려갈께요.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벌써부터 잘될 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날이 매출액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거든요...
오늘 날짜로 손익분기점을 넘었습니다.. ^^
님께서도 행운이 함께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전부터 대리운전하면서 알게된 노하우를 계속 성의껏쓴 글로 알려온 심성이 고은 분 입니다. 이번글 맥락을 볼때 정말로 좋은일만 일어나겠군요. 축하합니다
어떤 일이든 정직하게 정성을 다하면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님께서도 늘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
저도 예전에 고향인 이천에 살때는 단골은 아니었어도 부발 쌍용해장국을 다녔었는데..
참 사연도 많으셨군요..
암튼 새출발 축하드리고 건승 하세요..
고향에 가게되면 꼭 한번 들러야 겠네요..^^
아... 이천이 고향이시군요...
이천에 사는 분들은 그 식당을 많이 알고 계시지요...
함 뵙고 싶습니다.. ^^
@생명의빛 와이프는 신원리에서 잠깐이지만 살기도 했죠..ㅎㅎ
“직업에 귀함과 천함이 따로 없으니 신분이나 일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아니 되며 주어진 모든 것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귀한 교훈 공감합니다. ‘임금님해장국’ 사업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해장국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도 무척 감사한 일이지요..
카페에서 오랫만에 보는 진솔하고 도움되는 글 잘 보았습니다 대리기사의 마음가짐과 일반적인 패턴방식 정말 많이 공감하고 느끼게 해주는 글이군요 장문의 글 지루함 없이 끝까지 다 읽었네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부디 사업 번창하시고 건강하세요^^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님께서도 뜻하시는 모든 일 잘 되기를 빌겠습니다.. ^^
부발 가면 함 들리 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저희가 만든 음식이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환상적인 맛을 자랑하는 해장국입니다..
저도 오늘 점심 때 한 그릇 비웠습니다.. ^^
꼭 대박나세요
감사합니다..
님께서도 추진하시는 일 크게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필 력이 정말좋으십니다. 장문의 글을 재밌게 읽게 하시고 멋진글
멋진내용 . 성공을 기원합니다
멋진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
님께서도 이젠 정말 비상하여 훨훨 날아가시길 빌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내용이 진솔하게 가다가 마지막엔 살짝 해장국집 홍보하는 느낌도 드는군요^^
저는 한창때인 40대초반에 2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에서 짤리고 전업은 아니고 투잡으로
대리운전 일을 4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저랑 비슷한 부분이 많아 공감이 가네요..
일단 대리 졸업하게 된거 축하드리고 꼭 잘 됐으면 좋겠네요..
저도 이 일을 부업으로 하면서 대리비가 누군가에게는 푼돈으로 느껴질수 있는 돈이지만..
저에게는 천원 한장도 너무 소중하게 느껴질정도로 너무 소중한 돈벌이 수단이었습니다,.
아무튼 축하드리고 성공 기원합니다.
ㅎㅎ 쓰는 김에 살짝 홍보성 내용이 들어가긴 했는데요..
널리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음식이라서 모두에게 알리고픈 마음에 그만... ^^
하여튼 고맙습니다..
드셔보시면 제 마음을 이해하실 겁니다... ^^
식당은 맛도 좋아야 하지만 풍수를 모르면 벌어봐야 남의 돈이 되지요.
ㅎ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언제 함 오셔서 보아주시면 어떨는지요... ^^
굿 ^^ 새해 복 많이 받이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올드보이님도 좋은 일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러셨군요.. ^^
여기서 개업하고 나서 처음보다 더 맛있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더 좋은 재료를 발견하여 사용하고 있거든요..
원가는 좀 늘어나지만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최고의 맛을 추구하니까요.. ^^
선지는 얼마든지 리필 가능합니다... ^^
선배님 새로운 항해 축하 드립니다
임금님 해장국의 출산 과정을 보고 들었던
저로서는 더불어 행복해집니다.
전업을 저보다 1달 먼저 하시는군요
저도 교육일정이 마무리되고 전업 확정시
곧바로 전직의 변을 올릴 생각입니다 ㅎ
이제사 알게되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
이 우매한 백성은 이 격언의
진면목을 깨우치고서야
부와 행복의 추월차선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배님!!!
행복한 항해
즐거운 인생
본궤도 재진입을
진심으로 감축 드립니다!
행복제작소님도 전직을 하실 계획이시군요..
부디 뜻하시는 일 모두 형통하기를 빌겠습니다...
식당이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잘되는 통에 즐거운 비명을 지를 지경입니다... ㅎ
축하합니다 이천가게되면 한번 들려봐야하겠네요
네..... 고맙습니다...님께서도 올해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