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한다는 것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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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퇴임을 앞둔 어느 부인이 조만간 사회생활의 굴곡을 다 내려놓게 된다며 후련해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인은 내게 와 한숨을 쉬었다. 남편의 출중한 능력 덕분인지 어느 정치인이 출마를 앞두고 러닝메이트로 함께 뛰어보자는 제안을 해왔단다. 이런 제안에 남편의 잠자던 욕망이 꿈틀거렸는지 동요하기 시작했단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남자들이 갖는 욕망을 무슨 수로 막겠느냐며 그 부인에게 그냥 각오하는 편이 낫겠다고 하였다. 그동안 상담을 통해 남자는 대체로 기회가 닿으면 뻗어나가려 한다는 것을 익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부인 역시 남자의 그런 경향을 인정하면서도 내켜 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쳐 고생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올라온다고 했다.
이런 부인을 향하여 나는 이번 상담 회기에서 남편이 무엇을 하든 본인은 꼿꼿하게 자신의 직분에 열중하라고 분명하게 일러주었다. 여기에서 자신의 직분이라고 하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하던 대로 충실히 살라는 의미였다. 하던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지속하고, 주부로 지냈다면 그냥 그 자리를 지키는 게 남편을 성가시게 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돕는 태도가 아니겠느냐고 한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나는 그녀의 좀 더 확실한 이해를 돕기 위해 며칠 전 집단상담에서 있었던 예화를 간략히 들려주었다.
집단상담에 참석한 어느 부인은 얼굴이 많이 상해있었다. 야망이 큰 남편이 정치를 하겠다는 바람에 20년 이상 고생을 한 결과였다. 단란한 가정을 꿈꾸었던 부인이 초반에는 죽기 살기로 말렸으나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이혼을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부인은 남편과 뜻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비장감을 내보이는 그 부인을 바라보며 나는 착잡했다. 남편을 사랑하는 연유로 함께하겠다는 말이 무척 감동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성공 확률이 낮은 선거전에 뛰어들었다가 또다시 실패하면 어찌 견디겠나 하여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입 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그녀의 사안에 대해 내가 머뭇거리자, 그런 방면에 눈이 밝은 철쭉 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치란 돈과 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그녀의 남편이 포기하지 않는 것은 중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그 부인이 잘 모르겠다고 말하자, 철쭉 님은 부부지간 일지라도 그렇게 서로 모르는 게 있게 마련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럴 때 아내가 크게 도움을 줄 정도로 막강하지 않다면 남편과 함께 죽겠다며 뛰어들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는 게 낫다고 하였다. 그래야 남편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으니 그것이 더 진정한 내조가 되는 거란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그 부인은 자기가 잘 모르더라도 남편이 어딘가 믿는 데가 있다는 말에 위로가 되었는지, 아니면 막막하던 차에 그나마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지 가까스로 얼굴을 펴기 시작했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나 역시 철쭉 님의 말씀에 수긍하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었다. 남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선거 결과를 함부로 예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도 안 되고, 그 남편이 막대한 돈이 드는 정치에 미련을 두는 이유는 믿는 구석이 있다는 증거일 수 있고, 이미 고갈된 아내로서는 남편과 함께 뛰어봤자 그 영향력이 아주 미미한 것에 불과할 테고, 그런 상태에서는 실패를 대비해 별도의 작업을 하는 것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방어선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자, 러닝메이트로 뛰게 될 남편을 둔 그 부인은 자신이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이해를 하는 듯했다. 그래서였는지 그렇게 해야겠다고 대답하며 밝은 얼굴을 하였다.
나는 이러한 두 부인의 사연을 접하며 많은 것을 알았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도 서로 포부를 달리 하는 존재라는 것, 다 아는 것 같아도 서로 모르는 영역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돕는다는 게 꼭 함께 하는 것만이 아니라 만약을 대비해 달리 노선을 잡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특히, 상대가 아무리 소중하거나 가까워도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따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은 삶에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다다랐을 때 과도하게 고민할 게 아니라 그냥 단순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살펴 그것에 충실한 게 상책이라고 여겼다. 나아가 피를 나눈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관심과 걱정을 나누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본래의 상태로 돌아와 열심히 살기나 할 따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살다가는 이 세상살이에서 너무 애 터지게 고민하다가는 정말이지 서로 상하기나 할 뿐이지 싶다.
첫댓글 네. 장선생님!
구구 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각자가 자기 본연의 삶을 지키며 사는것이
가장 옳은 삶이라고 생각 합니다.
각자가 타고난 대로 열심히 사는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객체로서 하두 번 말해도 듣지 않으면 그러려니 하고, 자기는 그저 자기 본분에 열중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봅니다. 결국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고 사는 것이지 배우자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닌 듯합니다.
@장성숙 아주 꼭 맞는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과거 자유당 시절에 시골 부자가 망하려면 자식을 서울로 유학을 보내고 서울 부자가 망하려면 출마를 한다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재산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나마 자식들 앞으로 미리 상속을 시켜놓으라고 하십시오.
그렇지요?
그들은 이미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가 아는 여자도 남편 교수 그만두고 국회의원 출마..
한번은 됐는데 2번째 낙선..
잠시 좋았다가 낙심 좌절,,
살벌하데요.
결국 카이스트 명예교수로..
잠시 화려했다가 ..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