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One
- 깨어있는 '한 사람'을 통한 은총
로마 5,12-21; 루카 12,35-38 /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 2023.10.24.
평온한 상황보다 엄중한 상황에서 신앙은 더 빛을 발합니다. 본능적인 반응보다 더, 이성적인 판단보다 더한, 그래서 가장 근본적인 안목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공생활 내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견지해 온 자세와 영성을 한 자락 열어서 보여주셨습니다. 마치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혼인 잔치에 참석했던 주인이 언제 도착할지 모르지만 언제라도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는 종처럼, 예수님께서는 언제 도움을 청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요청에 늘 대기 상태로 살아가셨고, 더 중요하게는, 언제 회개하고 믿음을 갖출지 모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늘 노심초사하며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 지방 안에서도 가장 자주 찾아가셔서 복음을 전하시며 기적도 많이 베푸셨던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주민들이 회개하고 믿기는 커녕 냉랭한 반응을 보였을 때 분노하시어 저주를 퍼부으셨는가 하면, 가나안 여인이나 로마인 백인대장 같은 이방인들이 유다인보다 더 나은 믿음을 고백했을 때 매우 놀라며 반가워하셨습니다. 열두 명과 일흔두 명의 제자들을 전국에 보내시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을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스스로 슬기롭다고 자처했던 당대 엘리트란 작자들은 회개하기를 거부했고 보잘것없고 소외되었던 가난한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크게 기뻐하시며 성령께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이스카리옷 유다가 당신을 배신할 마음을 굳힌 것을 아시고도 끝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시고 기다려주셨음은 물론 그 배신의 결과로 초래된 당신의 비극을 감내하셨던 이유는 그 배신자 제자도 당신이 기도하며 뽑으신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수제자로 임명한 베드로가 당신을 부인할 때, 베드로는 대사제 관저 바깥에, 당신은 관저 안에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인 사실을 아셨는데, 십자가 위에서 그를 포함한 모든 가해자들을 깨끗이 용서하시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일부러 찾아오셔서 세 번의 신앙 고백을 받아내심으로써 베드로의 마음에 남아 있을 앙금을 털어 주시고 해방감을 주셨습니다. 이만큼 사람들의 마음과 그 변화에 민감하셨던 예수님이셨고, 마치 갑질당하는 을처럼, 즉 주인을 대하는 종처럼 선교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갈수록 엄중해 져만 가는 로마의 상황에 대한 소식을 들으며,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있는 의식으로 이 엄중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아담과 예수님을 극명하게 대비시켜가며 설득하였습니다. 로마의 권세가들과 재력가들이 저지르는 죄가 많아진 것은 상황을 엄중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믿는 이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깨어 있으면서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을 깨어 있게 만들고자 먼저 깨어 있다면, 은총도 충만히 내릴 것이라는 논리로 설득한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 자신이 깨어 있게 된 그 ‘한 사람’이었습니다. 기성사도단에서 따돌림을 받았어도 개의치 않았고, 옛 동지들이었던 바리사이들이 그의 선교활동 여정 내내 쫓아다니면서 방해했고 끝내 예루살렘 방문 때 체포를 했을 때에도 그들을 맞서지는 않고 대신에 자신의 로마시민권을 발동해서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사회문제로 비화시켰습니다. 유다인들 가운데 이렇게 로마 황제의 재판까지 청구한 사람은 딱 한 사람, 바오로뿐이었습니다.
이 은총의 가시적 효과는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안목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기운을 받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날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그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그 엄중한 상황을 복된 상황으로 만드는, 다시 말하면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것이요 그 과정에서 당사자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는 부활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그저 자기 자신을 태우는 희생의 고통이 너무도 커서 온 신경이 그 고통을 감내하는 데에로 모일 뿐, 자기 자신이 태워 비치는 빛이 과연 얼마마한 면적으로 밝게 하는지 또는 그래서 얼마마한 어둠이 사라졌는지는 알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는 법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우리 자신들의 믿음과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의 은총은 우리보다 먼저 살아가신 이들의 십자가 희생 덕분에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밀알의 비유가 말해주듯이, 우리가 썩으면 싹이 트고 꽃도 피며 열매도 맺을 것입니다. 단,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러할 것입니다. 깨어 있는 '한 사람'을 통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이것이 선교의 은총인 동시에 신비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