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명동 / 정해종
취기 탓일까, 명동이 작은 바다로 보이는 것은
소주 댓잔에 내가 취할 리 없고
명동은 그냥 인해(人海)의 명동일 뿐인데,
봐라 소금기 절인 불빛 속을 유영하는
등이 푸른 생선들과 출렁이는 해초 무리
충무로와 한려수도가 함께 흘렀단 말인가
암초와 건물 사이, 건물과 쇼윈도 사이
시류의 비늘을 달고 미끄러져나오는 저 물고기들
꼬리지느러미 흔들며 스쳐지날 때
먼 이국의 해류를 타고 범람하는 샴푸 냄새
어지럽다, 누군가 다가와 옆구리 쿡쿡 찌르며
아늑하지 않으시냐고, 플랑크톤 무성한
이 난류의 흐름이 즐겁지 않으시냐고,
이곳에 살기 위해 일찍이 꼬리뼈 감추고
쉬쉬하며 속삭여오지 않았더냐고
아니다, 이게 아닌데 분명
사보이 호텔 쪽에서 제일백화점 쪽으로
미끈한 산란기의 어족들 사이를 내가 흐른다
직진하지 못하고 자꾸 흔들리는 지느러미
그러니까, 지금, 내가 물고기란 말이지?
튀어나온 눈으로 전후좌우를 살피며
작은 일에도 쉽게 피로해지는 우리들,
남산 저 오색 등대의 불이 꺼지면
유선형의 꿈속으로
누군가 그물을 들고 걸어들어온다
-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문학동네, 2023.12)
* 정해종 시인
1965년 경기 양평 출생,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중앙대 예술대학원 졸업
1991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산문집 『거품』 『터치 아프리카』 『디스 이즈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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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오래간만에 명동에 다녀왔습니다. 명동의 한 음식점에서 송년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시기 명동은 직격탄을 맞았다고 했는데, 2023년 12월 명동거리의 저녁은 생각보다
사람도 많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중앙 통로만 그러했고요, 뒷골목은 한산했고, 빈 점포도 꽤 있었습니다.
인파를 헤치고 명동을 걷다 보면, ‘물길’에 휩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의 속성 중 하나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에 있습니다.
호수와 같이 고여 있는 물도 있지만, 물은 흐르며 그 생명력을 이어 갑니다.
사람도 고여 있으면 썩는다고 하죠.
물론 사람 그 자체가 썩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의지나 생각’이 썩는 것이겠죠.
사람도 물처럼 계속 흘러야만 하고, 저 흐름을 가장 잘 알아챌 수 있는 곳이
명동과 같이 사람이 많은 곳일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다고 해서, 나는 잘 흐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가득 찬 지하철을 타면, ‘휩쓸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가고 싶은데 사람들에게 휩쓸리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대쪽으로 밀릴 수도 있습니다.
강물에 휩쓸린 나뭇잎이 흐르고 싶어서 흐르겠습니까. 그냥 물길에 떠밀려 가는 것이지요.
자체 동력원이 없는 나뭇잎은 자기 몸이 가라앉거나 또는 뭍으로 밀려날 때까지
흐르고 또 흘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쩔 수 없는 휩쓸림, 우리 인생과도 닮았습니다.
저는 삼십에 지금 다니는 직장에 입사했습니다. 그때가 2001년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대학원을 다니다가 가장이라는 무거움을 느끼며 다니기 시작한 직장입니다.
올해가 2024년이니 직장생활이 횟수로는 24년, 만으로는 23년을 향해 달려갑니다.
정년이 예순이니 이제 정년이 채 십 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 꼭 명예퇴직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20년도 지긋지긋했는데, 30년을 넘게 한 직장에 다닌다니, 솔직히 좀 싫습니다.
명예퇴직 얘기를 하면, 다수는 말립니다. 연금을 받을 때까지 몇 년의 공백기가 있는데 어떻게 버틸 것이냐고,
또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맞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요, 저는 정년퇴직이 도리어 ‘억지로 떠밀려 나간다’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 유통기한이 다 되었으니, 밖으로 내던져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물론 명예퇴직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얼마간의 명퇴금과 ‘내 끝만큼은 스스로 선택한다’ 딱 그 정도이겠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일찍 째는 모양새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정답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세월이리라는 조류에 휩쓸리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삶 속에서 내 자존심만큼은 아주 조금이라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끝까지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연어처럼 강을 거슬러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쓰러진 나무의 힘을 빌려서라도 잠시 버텨보고 싶습니다.
말로는 이렇게 얘기하지만, 물길을 따라 흘러 흘러가는 것이 더 아늑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 시 쓰는 주영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