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생명은 충성과 명예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나라에 대한 충성이지만 때로는 상관이나 지도자에 대한 충성이 덧붙여집니다. 결국 소속 장군에 대한 충성이 나아가 나라에 대한 충성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 지휘관이나 부대를 통솔하는 장수로서는 명예가 곧 생명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자존심이기도 하고 부대 전체의 상징이요 소속 병사들을 이끄는 힘이기도 합니다. 사실 군인에게 명예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것을 지키려 기꺼이 목숨도 거는 것입니다. 불명예를 안고 사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결심도 합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 수 있는 가치입니다. 흔히 말하는 ‘가문의 영광’도 바로 명예와 관련되는 이야기입니다.
병사는 어떤 지휘관을 만나느냐에 생명이 달려있기도 합니다. 병역의무로 입대하고 나서도 어느 부대에 배치되는가, 그리고 어떤 상관을 만나는가, 매우 중요합니다. 근무기간 동안의 삶이 결정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똑같은 날 입대해도, 함께 훈련을 받아도 나중에 근무지가 결정되어 흩어집니다. 배치되는 부대 결정이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지는지는 모릅니다. 아무튼 이 때 부대근무가 쉬운 곳일지 보다 어려운 곳인지 모르고 지시대로 갑니다. 그 다음에는 근무지에 가서 어떤 지휘관을 만나고 어떤 상관과 상급자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근무성격을 결정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장병으로서 훌륭한 지휘관을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물론 상급자에게도 충성스러운 부하장병을 만나는 것이 복입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어느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생명이 걸려있는 군대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부대장이 새로 부임해오면 부대 장병들에게 신임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문제를 잘 통과해야 장병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전장에서 아무리 조흔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승리를 얻기가 어려워집니다. 좀 모자라도, 즉 병력이나 물자나 지원이나 적진보다 좀 부족하여도 적보다 충성심과 단결력이 뛰어나다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소위 정신력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최전선의 병사들이 나라와 민족을 염두에 두고 싸울 수도 있지만 너무 큰 이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명령을 내리는 장군을 신뢰한다면 목숨 걸고 싸웁니다.
부대 내 장병들이 이미 새로 부임하는 사령관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어떤 배경의 사람인지 말입니다. 그 지도력과 전투 능력이나 실력은 잘 모르지만 배경이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합니다. 이 변방까지 온 것도 잘 되라고 보낸 것이기보다는 쫓겨서 온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지요. 미덥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저 상관이고 지휘관이니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그런데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병사들을 독려하여 잘 대비하였다가 야간 기습한 적군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수색을 보낸 병사들이 포로가 되어 인질로 잡혀 모두 보는데서 처형을 당하고 있음에 앞장서 나가 구해냅니다. 그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고 후송됩니다.
‘말커스’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유명한 로마 제9군단을 이끌던 사령관이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20년 전 부대 전체가 사라졌습니다. 부대의 상징인 독수리 휘장도 사라졌습니다. 소문이 돌았습니다. 부대장이 적에게 패퇴를 당했고 전멸하고 휘장도 빼앗겨 없어졌다고 말입니다. 패장이란 불명예를 남겼습니다. 로마의 자랑인 휘장까지 없어지다니 치욕입니다. 그런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군인이 되어 나름 성실하게 근무하지만 그 불명예는 꼬리표로 따라다닙니다. 아버지가 그럴 분이 아니다, 믿고 싶지만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명예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찾아야겠다, 결심합니다.
부상에서 회복한 말커스는 아버지가 갔던 그 길을 떠납니다. 상부에서 군대를 맡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단독으로 나섭니다. 삼촌이 전쟁포로로 노예가 된 ‘에스카’를 붙여줍니다. 둘이서 원정을 떠납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입니다. 사실 검투장에서 죽으려는 에스카를 말커스가 살려주었습니다. 에스카는 생명의 은인으로 말커스를 섬깁니다. 원정을 가는 길에 서로를 알게 됩니다. 따지고 보니 원수지간이라는 것이지요. 에스카는 족장의 아들인데 아버지가 마을을 지키려 로마군과 대적하는 가운데 가족을 모두 잃었습니다. 잔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말커스도 역시 아버지가 브리타니아 북벌에 나섰다가 적들에게 포위되어 잔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원수지간이더라도 부딪친 상황에 따라 서로 도와야 살 수 있습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그 여건에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브리타니아 변방 넘어 북쪽에는 로마인에 대하여 매우 적대적인 부족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정복전쟁에서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 가자니 에스카는 중요한 조력자입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을 만나면 말커스가 에스카를 지켜줍니다. 주인과 노예의 입장이 서로 바뀌기도 하지요. 둘 사이에 신뢰가 힘입니다. 서로 목숨을 신세졌기에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아남고 잃었던 아버지 부대의 황금 독수리 군기도 찾습니다. 명예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평화와 자유가 주어집니다. 영화 ‘더 이글’(The Eagle)을 보았습니다. 2011년 작입니다. 로마군대의 ‘거북대형’이 매우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