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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체 게바라님의 플래닛입니다. 글쓴이: 체 게바라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을 '유물론'으로 보는 것은 대단히 큰 오류이다. 그의 사상의 기초는
바로 실천에 있었다. 그는 사물이나 사태에 대한 합리적 인식 또는 이성적 인식 자체를
'진리의 토대'로 삼지 않았다. 그는 포이에르 바하가 '감성'을 '실천적인 활동'으로, '혁명적인
활동'으로 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에게 진리를 인식하는 방식은 언제나 사회와 역사라는
공간과 시간의 한계 안에 놓여져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토대이며 대지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유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의 토대로부터 행하는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가 보기에 순수하게 자연적이거나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것은 없다. 오히려 '창조'는
주어진 삶의 모순으로부터 나오는 '의지와 행동을 창출하는 힘'인 감성이다. 이에 비해 이성은 이런
힘들과 실천들을 의식적으로 조직하고 보편화하는 체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성은 현실을
'재단'한다. 이성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이성 이전에 생명과 삶을 연결해주는 보다 근원적인 토양이
필요하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실천을 생산하는 이성 이전의 토양, 즉 감성적 활동에 주목했다.
그에게 '푸른 것은 오직 상업에만 해당되며, 어떠한 이론이든 회색'에 불과하다. 이론은 항상 완전,
순수, 고정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만, 현실은 다양한 형태들의 표출을 보여주며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투영하는 '실천', 계급투쟁이라고 그는 믿었다. 따라서 그에게 이론은 계급투쟁에 접목되어
있어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의 적대자들은 그가 인간을 물질과 동일시함으로써 인간의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말살한 천박한 유물론을 주장했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인간을 이기적인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힌 죄수로,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본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비난하는 자들, 즉 부루주아 고전경제학과 홉스를 비롯한 근대민주주의의 이론적 선구자였던
사회계약론자들이다. '시장'이 최대의 부를 낳는다고 믿는 '시장만능주의자들'에서부터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까지 그들은 인간을 이기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로 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를 철저하게 비판하고 자본주의에서의 '자유로운 시장경쟁체제가 어떻게
인간을 상품화와 사물화시키는지'를 폭로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재산이나 권력과 같은
물질적인 욕망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정신적 가치' 이전에 '좀 더 나은 조건의 회사에 좀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기 위해, 즉 '돈'을 더 잘 버는 쪽으로 살아간다. 왜일까? 마르크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기계와 같은 생산수단과 원료, 공장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와 아무런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노동자들의 계약에 의해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생산수단과 자본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자본가와 임금을 받고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다수의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생산체계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공장에 취직을 해서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전체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편한 일자리와 좋은 보수의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 부족한 일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자신의
몸값이 높지 않은 이상,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모든
인간은 상품일 수밖에 없으며 그 스스로 상품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자유민주주의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시장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가치 창조와 능력 발휘를
극대화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야기시킨다. 즉 현실에서 살아남고 경쟁력이 있는 사람은
'정직하고 깊이 있는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편법과 교묘한 속임수, 상업적
책략을 쓰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도덕'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부르주아 도덕에서는 물질적인 풍요에 비해 파헤져진 정신을 개탄하면서 개인의 정신과
양심, 교양을 스스로 개발하고 지켜야 한다는 도덕 교과서적인 설교를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이러한 덕목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신적 가치와 도덕을 설파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부와 권력을 가진 지배층이며, 그들이 오히려
정반대의 행동을 일삼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도덕이 아니라 '임기응변'과
'유연성', '관행'이다. 정치인이 돈을 받으면 정치자금이 되고, 사업가가 돈을 주면 '관행'이 되며,
관료가 돈을 받으면 '떡값'이 된다. 자신이 하면 '관행'이 되고, '임시변통'이 되지만 남이 하면
'불법'이고 '부당한 편법'이 된다. 바로 이것이 '부르주아 도덕의 이중성'인 것이다.
이에 비해 마르크스는 오늘날의 물질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 이기주의 그리고 '생존경쟁의
아비규환'을 '개인의 도덕성'이나 '품성', '인격적 결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도덕이나 윤리, 정신적 교양이라는 덕목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지를 '물질적 조건과
관련하여' 간파한 최초의 인물이다. 삶에 지치고 힘들면 우리는 여유를 가질 수 없으며, 주위를
돌아볼 수 없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삶이 우리를 그러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몸짱 아줌마'로 표현되는 상징 안에서 우리는 여성을 하나의 잘 만들어진 인형같은 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여성, 나무 하나, 풀포기 하나, 심지어 마시는 물까지 상품이 아닌 것이 없다. 능력있는
사람은 그가 어떤 가치와 인격을 가진 사람인가와 무관하게 이 사회에서는 대우받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살피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사람도 그가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으면 '가치있는'사람'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인간 자신의 가치가 그가 행동하고 추구해
가는 가치에 의해 판단된다. 인간적인 관계보다는 수단적이고 도구적인 관계만이 존재한다. 물건들의
가치를 효용성으로 평가하듯이 타인들도 우리는 동일하게 유용성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인간은
'상품'이며 '사물'이 된다는 마르크스의 160년 전의 예언은 현재도 유효한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
자신이 물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돈'을 숭상하고 '권력'을 추구하며 경쟁의 승리자를
자기 삶의 최대 목표로 추구한다. 이런 측면에서 마르크스는 무엇보다도 경쟁과 생존의 덪으로
몰아넣는 사회에서 인간 개개인의 자유, 가치와 소질이 발휘될 수 있는 사회적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르크스가 이와 같은 자본주의 제도와 체제가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또는 권력자들의
자의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자본주의 자체도 자본가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체제는 아니다. 삶의 조건과 환경은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인간 자신의 역사적
산물일 뿐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인간 소외론이 생산의 사회체제로까지 확장된 논의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미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노동의 소외를 가장 먼저 다루고 정식화하고 있다. 마르크스 생전에 이 글이 출판된 적은 없으며,
미출판된 글중에서도 가장 늦게 발견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주로 <자본론>을 통해서 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 <경제학 철학 수고>가 발견되자, 소외론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새로운
접근이 나왔고, 이는 프랑크푸르트학파와 대표적 학자인 마르쿠제에 의해 제기 되기도 하였다.
마르크스는 그의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은 인간의 자기 가치를 실현하는
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이 노동의 소외를 낳는 노동이 된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4가지 형태로
노동의 소외를 설명하는데 첫째,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은 자본가에 의해 고용된 상태로 행해지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물건을 자신이 가질 수 없다. 예를 들어 벤츠를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는 벤츠를
타지 못한다(노동 산물로부터의 소외). 둘째, 노동활동이 이루어지는 전 과정이 자신의 기획과 의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경영자의 일방적인 지휘와 통제 하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자신의
가치나 목적이 노동 대상물 속에 구현될 수 없다(노동 행위로부터의 소외). 셋째,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면 할수록 회사는 성장하고 기업주의 권력이 확장되는 반면, 노동자들은 더욱더 약해지고 가난해
진다(유적 본질로부터의 소외). 넷째, 노동을 통해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과 갈등은 점차 증폭되고
확대된다(인간으로부터의 인간의 소외). 이렇게 형성된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자본주의의
생산관계를 혁파하는 길뿐이라고 마르크스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 혁파가 단순히 의지와 자의적인
폭력에 의해 가능한 것은 아니며, 그에 비해 어떤 사회적 조건과 배경들 속에서 어떠한 행위나
실천으로 나타나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홉스를 비롯한 근대 초의 사회계약론자들과 아담 스미스와 리카르도를 포함하는 고전 경제학자들은
이미 근대 사회가 '개인들 간의 이기적인 전쟁 상태'와 '계급 간의 투쟁'을 낳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인간의 이기적인 전쟁 상태를 어쩔 수 없는 인간 자신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의 안전과 보존을 위해서는 각 개인들이 서로의 이해를 조금씩 양보하는 '계약'의
형태로서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담 스미스와 리카르도는
'이기적인 인간'들에 의한 경쟁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가장 큰 '부'를 낳을 요인이라는 긍정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것은 허구적인 지배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시장'에서의 계약이란 다름 아닌 권력과 부를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계약이기 때문이다. 즉, 상호 동등한 힘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공평한 계약이 체결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일단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그가 맺고있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 선하거나 본래 악한 것은 없다. 아울러 마르크스는 평등한 '상호계약'이란
공상적인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현실적으로 공장과 기계를 가지고 있는 자본가와 고용된 노동자
사이에서 공정한 게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빈부 격차가 있는 사회에서 각 개인들
사이에서의 경쟁은 사실상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건희의 아들인 이재용과 빈민의 집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소년소녀 가장과 같은 사람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유경쟁적 시장질서는 형식적인 기회 균등으로 실질적인 불평등을 은폐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건희와 그의 아들 이재용의 관계를 마르크스는 우연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것은 다름아닌 특정한 계급적인 관계로 생산활동을 전개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생산관계'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자본과 임노동 관계로, 사람들의 생산 행위를 묶어 세운다. 자본가는
자본을 가진 자로서 단순히 '돈'만 많이 가진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그만큼의 권력과 지위를
소유한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다. 즉, 돈이 권력이며 지위인
것이다. 자본을 가진 자는 '생산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권력도 장악한다. 국가권력 또한
이런 자본가들의 권력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이해를
대변하고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중립적인 중재 기관처럼 자신을 내보이지만 결국 자본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아닌 국가 권력을 정점으로 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의 주장은 그의 사후 123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따라서 123년 전의
마르크스는 과연 21세기 신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예측했을까?
나의 대답은 단호히 "그렇다!!" 이다.
모든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그 시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다. - 칼 마르크스 -
첫댓글 예측할 필요가 있을까요? 19세기 당시의 자본이 깽판치는 언필칭 '자유주의'가 정치적으로 러시아혁명과 경제적으로 대공황이후 케인즈의 계급타협의 가면을 썼다가, 사회주의붕괴와 금융자본의 전횡인 세계화시대에 이제 가면을 벗고서 '신자유주의'라 설쳐대는...
잘 읽었습니다. 그 노동 소외를 실감하고 있는 저로서는, 소박하게 자신의 것을 가꾸어서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원시경제가 그립네요. ^^ / 그나마 한가지 위안이 되는 건 '인간은 모두 죽는다'라는 절대명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살아 있는 사람은 - 자본가든 노동자든 - 모두 저마다의 지옥을 갖고 있다고 하죠.
매번 이렇게 좋은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체게바라님 글이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몇번을 읽어야 하는데.. 답글을 쓸라 치면 게시판에서 아래로 뚝 떨어져 있더군요....
분야별로 목차를 사용해서 구분하심 더 좋은 글이 나오겟습니다. ㅎ
저도 어려워서 다섯번 이상 읽는듯.. -_-;..
마르크스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범하는 오류가 있듯이 마르크스의 이론도 마찬가지로 오류는 존재합니다. 범인인 우리가 범하기 쉬운 오류로는 우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는 것을 두고 혹자들은 공산주의의 무신론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실은 마르크스의 이 주장은 러시아 혁명이후 러시아는 물론 동구와
중국, 북한 등 공산화된 국가들은 한결같이 공산주의 정체성의 확립의 수단으로 종교를 탄압합니다만 이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기계적으로 프로레타리아 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활용한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한 저의는 종교가 인간의 자의식과 자유를 억압해 왔음을 폭로한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운명과 목적을 결정하고, 신에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예속한 것에 대한 저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발언과 그 의미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의 이름을 대행하는 자들이 지배자로서 다수의 대중을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과 헌신을 강요해 왔음을 비난하며 그는
제우스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인간을 위해 천상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 주었던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스러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비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종교비판이야말로
모든 비판의 전제로 봅니다. 다음으로 마르크스가 계급투쟁을 이야기한 최초의 인물, 그래서 계급투쟁을 선전하는 것은 곧 마르크스같은 악마적 선동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폭동'을 선전하는 것이고 따라서 혁명이란 '유혈이 낭자한' 사회 전체의 전쟁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는
비인간적인 냉혈한으로서의 마르크스', '혁명을 위해 도구화하는 혁명가들의 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미지는 그야말로 사회의 변혁을 바라지 않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조작된 이미지입니다. 또한 마르크스의 오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자본가-노동자라는 양대 계급만이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며 그 사회를 견지하는 대중이라는 중산층의 중간계급의 존재를 철저히 외면하였고, 특히 이 중산계급을 '부띠 부르주아'라고 하여 자본가 계급으로 분류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또한 혁명 필연성의 오류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는 그 모순상 필연적으로 프로레타리아 혁명을
유발한다고 믿었습니다만 그러나 일반 대중은 '유혈이 낭자한' 극단적인 혁명보다는 보다 안전한 개혁이라는 테제를 선호했습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혁명의 대안인 '개혁'을 철저히 무시합니다. 그리고 출신성분의 오류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그는 프로레타리아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었지만 정작 본인은 부르주아적 삶
을 영위하고자 했고, 귀족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글로는 무산자에 대한 사상을 펼쳤지만 자신의 삶은 무산자에 대한 헌신과는 거리가 있는 삶이었습니다. 즉, 책상물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측면에서는 그의 사상적 동지이자 인간적인 친구였던 엥겔스가 더욱 돋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더라도 실천하는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는 여전히 사회주의 혁명가들에게는 선명한 존재였습니다. 파리코뮨의 창설과 활동, 독일공산당(현재의 사회민주당의 전신인)의 창립에 그가 기여한 공, 바쿠닌 등 사회주의 혁명가들에 대한 사랑과 금전적인 지원, 그가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조직화에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고, 사회의 무산자 계급인 프로레타리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그 진정성과 자본주의 사회체제에 대한 모순의 폭로와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대안에 대한 그의 사상의 이력은 서구 사회에 기독교 이후의 가장 큰 영향과 반향을 던집니다. 그는 서구철학의 프로메테우스였으며, 이단아, 그리고 독특한 천재였습니다.
프로레타리아의 독재를 거쳐 인민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오류를 지적합니다. 그가 예언한 것처럼 프로레타리아 혁명이후 집권한 프로레타리아 독재가 자연스럽게 인민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독재는 자체적으로 강고한 지배 기득권을 형성하여 스스로 취득한 권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마르크스의 이론과 주장이 한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평생을 자유로운 인간을 꿈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인간을 억압하거나 통제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데 평생을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일반인이 개념적으로 알고있는 마르크스주의=공산당의 일당독재라는 등식은 마르크스의
세기적인 이론과 자유에의 투쟁을 폄하하는 제국주의자들이 마르크스를 매도하는 일방적인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체게바라의 순수성이 카스트로와 소련과의 묵인에 의해 버림받은 것처럼, 꼭히 폄하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