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성전 청결의 날’. 예수님은 성전을 더럽힌 자들을 추방하시면서 ‘만민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셨음을 꾸짖으셨다(막11:15∼17). 우리의 몸은 성령님이 계시는 성전(고전 6:19)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채찍을 들지 않으실지 성찰하는 날이다.
화요일은 ‘변론의 날’. 희생 제물이 되기 전 주님의 가르침은 화요일에 집중됐다(마21:21). 예수께서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이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셨다. 이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를 외치시며 멸망하게 될 조국의 운명을 염려하셨다.
수요일은 ‘침묵의 날’. 이날 예수님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베다니에서 조용히 지내신 것으로 보인다. 이때 예수님은 침묵속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너희를 사랑하기에…너희를 살리는 길은 이길 뿐이기에…너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이기에…이 길이 아니면 너희가 죽게 되기에…” 주님은 이날 자신과 가장 많은 대화를 하시면서 가정 어려웠던 고뇌의 하루를 보내셨다.
목요일은 ‘번민의 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세족일’로도 불린다. 제자들에 의해 초라하게 준비된 유월절 만찬. 예수께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눴다. 주님을 팔아 넘길 가룟 유다의 발도 씻어주시면서 섬김의 도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긴 고별사를 남기셨다(요14∼16장). 만찬 후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시다 체포되셨다.
금요일은 ‘수난의 날’. 예수께서 심문을 받으시고 오전 9시 십자가에 달리셨다.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기도를 드리셨고 오후 3시에 눈을 감으셨다. 이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는 나약함을 보였다. 그러나 칠흑같은 어둠이 내리는 삶속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 하나.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성금요일 갈보리 산정에서 외치신 그 말씀은 지금도 가슴속의 검은 안개를 걷어낸다.
토요일은 ‘비애의 날’로 고난주간이 끝나는 날이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힌 이 날은 그리스도의 장사됨과 같이 우리도 죽고 장사되었다는 뜻에서 교회에서 세례를 베풀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이날을 ‘대토요일’이라고 부르며 단식하고 주님이 당하신 수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고 부활의 아침을 기다렸다.
성 경① 마태복음 21:18-22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② 마태복음 21:12-17
③ 마가복음 11:15-17
④ 누가복음 19:45-460
말씀묵상 승리의 예루살렘입성을 하신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하루를 지내셨습니다.
이른 아침 성으로 다시 들어오실 때 시장 끼를 느끼신 주님은 옆에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나무를 보신 예수님은 이 나무를 저주하신 후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면서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이용해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에게 잎만 무성한 나무처럼 저주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찾아 나와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을 높이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기도하는 곳입니다.
기도처럼 힘든 것이 또 있을까요? 그러기에 나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 하는 기도는 희생이며 헌신입니다. 교회를 통해 주시는 은혜는 돈으로 사지 못합니다. 나를 낮추는 기도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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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변론하신 날
성 경① 마태복음 22:15-22 세금에 대한 바리새인의 질문과 주님의 대답
② 마태복음 22:23-33 부화에 대한 사두개인의 질문과 주님의 대답
③ 마태복음 22:34-40 계명에 대한 율법사의 질문과 주님의 대답
말씀묵상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당원들은 교리 적인 차이로 인해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해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멀리 지내던 감정을 버리고 힘을 모아 예수님께 질문 공세를 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자기의 공을 내세우기 위해 선한 일 조차 남과 같이 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악을 위해서는 서로가 힘을 합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선을 이루는데 함께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나만을 내세우기 위한 선행은 교만이며 위선입니다. 또한 성도는 죄악을 이기기 위해서도 서로 힘을 모아야 합니다. 누가 시험에 빠졌을 때 서로 돌아보아 격려하여 시험을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저들을 입을 다시 열지 못할 대답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웃으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여기에 대답할 말씀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그 대답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대적으로부터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을 몇 번이나 읽으셨습니까?
말씀묵상화요일에 많은 사람들과 변론을 하신 주님은 피곤하셨습니다. 오늘은 쉬시는 날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쉬시는 동안에도 예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쉬지도 않고 예수님을 체포할 흉계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것도 제자인 가롯유다까지 합세하여서 말입니다.
악은 이렇게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밤도 없이 열심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안고 사는 우리는 어느 정도의 열심이 있습니까? 악의 세력보다 더 열심이 없다면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나의 신앙을 되돌아 볼 시간조차 갖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쁜 시간이 거의 육신을 위한 것이지 영혼을 위한 분주함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제 조용하게 하나님과 단 둘이서 만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거기서 주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조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에도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릴 계획을 밤새워가며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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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발을 씻기시고 마지막 만찬을 나누심
성 경① 최후의 만찬 (마태복음 26:26-29, 마가복음 14:22-25, 누가복음 22:15-20)
② 섬기는 제자가 될 것 (누가복음 22:24-30)
③ 사랑의 새계명 (요한복음 13:31-35)
말씀묵상죽음을 앞둔 하루 전날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하루 앞둔 사람은 떨림과 괴로움에 잡혀 안절부절 못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으로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죽으심은 발의 때를 씻듯이 우리 영혼의 죄를 씻기 위함이였습니다. 거룩한 곳이기에 모세에게 발의 신을 벗으라고 하신 하나님은 거룩하고 영원한 곳인 천국에 서기 위하여서는 죄악을 씻고 벗어야 함을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의미를 몰랐습니다. 아니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주님께서 흘리신 피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조차도 주님의 피의 은혜를 잊어 버린지 오래되어서 그 감격을 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말씀묵상숨이 끊긴 예수님은 고요히 무덤 속에 누워 계십니다. 오히려 죽인 자들은 밤새 잠도 못 자며 지키고 섰습니다. 승리자로 자처했던 저들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이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들에게는 피흘리신 예수님을 현장에서 보았지만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에게는 평안이 없습니다. 평안하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기에 평안히 누워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평안합니다. 일시적인 걱정은 있어도 곧 이길 수 있고 다시금 평안이 있게 됩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릅니다. (요 14:27)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거기서 영원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자들은 오히려 불안해 밤새 무덤을 지킵니다. 살아나신 주님과 함께 평안함을 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