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유럽지도를 펴놓고 이미 상상 여행을 하고 있었다. 파리의 세느강가를 거닐었고 에펠탑에 오르며, 런던의 하이드 파크 잔디밭에 자유롭게 누웠다. 스위스 넓은 초원에서 "도레미 송"을 불러도 보았고,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교황님과 엄숙한 미사도..... 콜롯세움에서 검투사들에게 보내는 로마인들의 함성도 들리는 듯 했다. 여행 안내 책자를 통해 여행 시 유의사항과 간단한 현지인사말을 입 속으로 되 뇌이며 떠날 그 날을 맞이했다.
22명의 일행에는 중학생, 대학생, 직장인, 교사, 설계사 등 다양한 캐릭터로 구성되었고 일명 '버스 호텔 투어' 형태의 반 관광, 반 배낭 여행의 패키지였다.
첫날 일정은 China Airline으로 1시간만에 「북경」에 도착하여 내일 에어 프랑스(Air France)를 타기 위해 하룻밤을 보냈는데, 아뿔싸, 북경 공항에서 한 일행이 짐을 분실하였고, 그로 인해 다음날 아침 비행기에 탑승(Boarding)할 때 그 일행을 놓치고 마는 커다란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무도 없는 「북경」에 한 명을 남겨둔 채, 17여 시간의 비행을 하여 「파리」에 도착했고 다시 「로마」로 가는 작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드디어 현지 시간 오후 5시 반에 「로마」에 도착했다.
긴 장화를 신은 사람의 다리가 돌(시칠리아 섬)을 차는 듯한 모습의 「이탈리아」!
로마공항에서 우리를 픽업(pickup)한 대형 버스가 우리를 싣고 어둑어둑할 무렵 「로마」 근교에 있는 '캠핑 티버(Camping Tiber)' 라는 캠핑장에 우리를 쏟아놓았다. 그 곳은 대형 캠핑장으로 공동 샤워실, 빨래터(세탁기 및 건조기 구비됨), 및 설거지 시설이 되어 있으며 트레일러(침식 가능한 여행용 차)를 가지고 오거나, 캐빈(통나무 집) 또는 방갈로가 구비되어 있어 각 국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이 흥겹게 밤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 비행으로 힘든 가운데서도 미리 정한 식사당번은 밥을 하고 김치와 햄에 고추장을 풀어 넣은 얼큰한 김치찌개로 어딜 가나 음식 싸 가지고 다닌다는 한국인들의 명성에 일조했다. 그 동안 느끼한 기내식으로 거북했던 속이 다 풀리는 듯하였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서 「로마」에서 남쪽으로 약 4시간 이동하여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A.D.29년)로 하루 아침에 화려한 도시 전체가 화산재에 묻혀졌던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Pompei)」에 도착했다. 1748년에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우연히 대리석상을 발견한 것이 동기가 되어 1860년에 발굴 작업으로 고스란히 옛 도시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는데, 유물 중에 급작스럽게 대피하면서 용암으로 뒤덮혀 도망가는 모습 그대로 굳어버린 사람, 아이를 안은 채 굳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그 당시 처참함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특히 창녀였던 「베티의 집」과, 「원형극장」, 대형 목욕탕인 「스티비아네 욕장」 등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타락했던 당시 생활과 납으로 된 수도관 때문에 (납중독) 「로마」를 파멸에 이르게 하였다고 한다. 「폼페이」에서 다시 「로마」로 오는 「나폴리」 해변 길은 우리의 피로를 확 풀어 주기에 충분했다.
세계 3대 미항(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 호주의 시드니) 중의 하나인 「나폴리」의 해변도로로 구불구불 오를 때마다 저 가슴 깊은 곳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을 누를 수가 없었다. "산타루치아(창공에 빛난 별♬♪♩물위에 어리어....)"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곳, 해변 백사장마다 색색의 파라솔과 썬탠하는 사람들, 멀리서 유유히 바람을 즐기는 요트들, 청명하고 푸른 하늘과 구름......... 버스에서 뛰어 내려 발이라도 담그고 싶건만.... 어제 중국에서 놓쳐버린 일행을 픽업하러 시간에 쫓겨 로마 공항에 다시 갔다. 그 일행을 다행히 만나 중국에서 헤매었던 그이의 이야기로 밤을 지샜다.
다음 날, 역사적 전통의 도시 「로마」로 향했다. 「로마」는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유적지였다. 함부로 집을 증·개축할 수 없으며, 건축할 때도 유적지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다.
우선, 세계 최소 초미니 도시국가인 「바티칸 시국(市國)」으로 들어섰다. 여기서는 현지 가이드의 자세한 안내를 받았는데,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책에서만 봤던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걸작『최후의 심판』(제단 뒤 그림)과 『천지창조』(천장 벽화)를 감상하면서 우리들은 고개를 내릴 수가 없었다.
「바티칸」의 상징, 『성 베드로(산 피에트로)성당』은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성 베드로의 무덤위에 세워졌는데 후에 1506년 율리우스 2세 때 120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성당 중앙의 제대 밑에는 베드로의 무덤이 있고 이 제대에는 교황님 만이 서실 수 있다고 한다. 과연 이 성당이 하느님께서 반석(=베드로)위에 세우신 교회임을 실감했다. 성당 정면에는 5개의 육중한 철문이 있는 데 그 중 가장 좁은 문 하나가 바로 '천국의 문(Holy Door)'이라고 한다. 이 문은 매 25년마다 한 번씩 교황님에 의해 열리는데, 마침 올해가 '대희년(2000년)'이어서 우리는 좁은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성 피에타 상(성모마리아가 죽어 가는 예수를 끌어안고 고통스런 모습을 표현)』과 열쇠를 들고있는 『성 베드로 청동상』, 중앙의 거대한 돔 등을 보고 그저 입이 벌어질 뿐이었다.
「바티칸」을 나와 우리는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로마에서는 꼬마집시들의 소매치기가 들끓는다고 하여 관광객들은 뱃속에 전대를 차고 다니며 지하철(메트로;Metro)을 탈 때는 특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 우리는 안내 지도를 들고 읽기도 어려운 이태리 지명을 짚어가며 몇 번을 환승하여 목적지까지 가곤 했다.
우리가 영어로 하면 현지인들이 영어를 못 알아들어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면 할수록 더 의사 소통이 안되어 결국은 body language로 통하기 일쑤였다.
처음 걸어 간 곳은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 광장의 『트리니티니 교회』아래 넓은 계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주변에는 괴테, 안데르센, 바이런, 스탕달 등 예술가들이 모였던 카페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다음에 한참을 걸어『트레비(삼거리) 분수』에 갔는데 여기서는 트리톤 신(神)과 바다의 신(神)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었고, 정말 맛있는 다양한 열대과일 아이스크림은 「로마」의 따가운 햇볕을 시원하게 식혀 주었다. 여기에 동전을 한 개를 뒤로하여 던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온다는데..... 그리고 유명한 검투사들의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에 오니 그 당시 관중들의 환호와 함성이 귓전에 맴도는 듯 했다.
「이태리」 하면 '피자' 이니 우리는 본 고장의 맛을 즐겨보기로 하고 피자전문점에 갔다. 종류도 엄청 많아 아무거나 시켰다. 해물피자, 버섯피자, 야채피자 등... 역시 우리 입맛과는 아주 달랐다.
기차를 타기 위해 정거장에 왔는데 역무원은 다 퇴근했고, 차표 자동판매기만 있어, 설명서를 읽어가며 버튼을 눌렀건만 돈만 먹고 표가 나오질 않아.... 절절 매는 동안 막차시간이 다 되어 우리 일행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무임승차를 하고 말았다. 다행히 표검사를 하지 않아 종점에서 무사히 내렸으나 깜깜한 밤, 숙소를 향한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다. 발가락마다 물집이 몇 개가 터졌느니 하며 간 곳은 우리 숙소와 정 반대길.... 방향을 돌려 겨우겨우 숙소를 찾았을 땐 거의 12시였다. 그러니까 오늘 약 16시간 가량을 계속 걸은 셈!
다음 날에는 가죽으로 유명한 「피렌체(플로렌스)」지방으로 가서 조각이 정교하고 색채가 화려한 『두오모 성당』과 막강한 부자 메디치 가문의『베키오 궁』을 들러서 유럽 3대 미술관(루브르, 프라도와 함께)중의 하나인 『우피치 미술관』에 갔는데, 여기에 그 유명한 '보티첼리『비너스의 탄생』, 지오토의 『마돈나』와 여러 화가들의『수태고지(=성령으로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임신했다는 내용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었다. 작품이 워낙 많아서 우리는 뛰다시피 훑어보는데 그쳤다. 재미있는 것은, 박물관 광장에서 거리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하고, 은빛 또는 금빛 옷과 분장을 하여 마치 금동 조각처럼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한쪽에서는 판도마임을 하고, 거리악사들의 공연도 하며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게 했다.
「피렌체」에서의 숙소는 산 아래가 시원하게 보이는 캠핑장으로 작은 캐빈(통나무집)과 텐트를 잡았다. 텐트라 해도 그 속에는 냉장고, 침대3개, 싱크대까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몇몇이서 여러 종류의 맥주 맛을 평하며, 각기 다른 생활이야기, 여행의 감동들을 나누었다. 모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신 홍선생님의 이야기는 기발하게 모두를 웃음과 진지함의 도가니로 이끌어 새벽까지 우리를 잡아놓았다. 모처럼 편안한 숙소여서 오붓한 잠을 청하게 되어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이제 스위스로 긴 버스 여행을 해야 했다. 뉴질랜드인 운전기사의 무뚝뚝한 매너 때문에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안전 운행으로 차안에서 우리는 자다.. 깨다.. 먹다.. 또.. 가고 하였다. 구불구불 산길 돌아 절벽아래 도착한 곳, 작은 산골 마을 「라우터부르넨」의 「융프라우 캠핑장」! 한국 사람들을 꽤 만날 수 있었다. 침대 6개로 되어있는 방갈로에서 긴 폭포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다음 날 해발 3970M의 「융프라우」 봉에 오르기로 되어있었지만, 몇몇이 모여 우리는 좀 더 아기자기 하고 볼거리가 많다는 「쉴트호른(Schilthorn:2970M)」으로 발길을 돌렸다. 「뮈렌」까지 급경사를 오르는 등산 열차를 타고, 산 정상까지는 케이블 카를 타면서 올라가며 보이는 산아래 작고 예쁜 마을은 정말 그림엽서 같았다. 눈 속 렌즈에, 가슴 깊은 곳에 이곳 정취를 한껏 담아보았다. 산 정상에 오르니 저 쪽 봉우리에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발아래 구름이 스치고 있었다. 기류를 타고 구름이 빠르게 지나치기도 하고 산봉우리에 걸쳐 있기도 했다.
산 정상에 「Piz Gloria」라고 하는 회전식 레스토랑 전망대에서 식사를 하며 한 눈에 사방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007영화」[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의 무대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산 정상에서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일부 케이블 카를 타고 내려와 한시간 가량은 걸었다. 구불구불 좁은 오솔길에 산 속이지만 넓은 초지, 어느 집이나 창가에 걸어둔 알록달록 예쁜 꽃들과 짙은 밤색의 나무 집은 정말 잘 어우러져 어딜 가나 한 폭의 그림이었다. 우리는 걸으며 행복했다. 다리는 아팠지만 입에서는 요들송이 나올 것 같았다. 어느 덧 『동굴폭포』에 이르렀는데 우람한 폭포의 물보라와 햇빛이 만나 일곱 빛깔 무지개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까지는 버스를 탔다. 숙소 가는 길에는 공동 묘지가 있는데 무덤은 없고 비석마다 정성스럽게 예쁜 꽃들로 미니정원을 꾸며 놓아, 한국의 으시시한 공동묘지 분위기가 아니라 동네 정원같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가는 곳마다 통화(이태리 리라, 스위스 프랑, 프랑스 프랑, 영국 파운드)에 따라 환율이 계속 바뀌는 바람에 돈에 대한 감각이 없어져, 작은 돈에도 벌벌 떨다가, 큰돈은 모르고 써버리는 일이 생기곤 하였다.
아름다운 스위스를 뒤로 한 채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외곽에 있는 호텔(Formule One)에 투숙하였는데, 마당에서 한국인의 저력으로 일행들이 모두 모여 순식간에 물을 끓여 마지막 남은 한국 컵라면으로 속을 달래고 다음 날을 준비했다. 조식으로는 바게트 빵! 어딜 가나 그것 천지였다.
우선 세계 3대 박물관(런던의 대영 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중에 하나인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 한국에서 미리 CD로 제작된 박물관 소개를 보고 와서 인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노예(Slave) 조각, 밀로의 『비너스』외 유명작품들을 찾아다니며 설명을 하기도 했다.
우리 나라의 여의도 같은 『시테섬』, 거기에 노틀담의 종지기 곱추로 유명한 『노틀담 사원』이 있었고, 메트로(지하철)를 타고 물어물어 찾아간 『몽마르뜨 언덕』, 그 위에 우뚝 서있는 『씨크레 쾨른 성당』의 계단에 앉으니 파리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길거리에 줄지어 있는 먹거리 가게들(유럽 쪽 음식점들은 식당 밖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도 자리를 마련해 놓았는데, 실외에서 먹으면 서비스료가 실내보다 더 비싸다나?), 언덕에 오르니 「떼르뜨르 광장」에는 거리의 화가들이 자유롭게 자리잡고 앉아 맑은 수채 풍경화나 콩테나 색연필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파리의 「명동」 같은 「샹제리제」 거리를 지나, 나폴레옹과 빅토르 위고의 유해가 이곳을 통과했다는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에 이르면 곧 현재 대통령 궁으로 사용되고 있는 『엘리제 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맥도널드 햄버거로 점심을 때웠는데 그 뻣뻣한 바게트 빵 보다는 훨씬 먹기가 편했다. 「세느강」 유람선을 타고 강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니, 드라마『물위를 걷는 여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강변에 즐비한 유서 깊은 유적지들과 고딕 풍의 건물들에 연실 카메라 셔터를 이쪽 저쪽 눌러대었다. 문득 한강변에 줄지은 아파트 숲이 생각나는 건 왠지..... 프랑스 파리!, 하면 역시 『에펠타워』였던가? 파리 시내 어디를 가나 우뚝 솟아 우리들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에펠탑은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1889년 귀스타프 에펠에 의해 세워졌는데, 전통과 역사에 빛나는 아름다운 도시에 흉칙한 철골 구조물을 세운다는 반대여론으로 철거하기로 하였지만 의외로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오늘날의 파리의 대표적 명소가 되었다. 우리는 탑의 중반까지 걸어서 올랐다. 마치 하늘로 오르는 계단같았다. 탑의 2층에 오르니 사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파리의 모두를 볼수 있었다.
밤 9시가 되자 탑의 가장자리의 작은 전구들이 일제히 점등되면서 반짝이며 중앙 조명이 켜지니 마치 '불타는 에펠' 같았다.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니 왠지 가슴이 흥분되며 축제의 분위기였다.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고는 아쉬움과 함께 파리여 안녕......
다음 날 런던행 「유로스타」를 타기위해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약 1 시간 머물렀다. 마침 「그랑플라스(Grand Place)」에는 꽃 축제가 열려 광장 전체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주변은 중세의 아름다운 건물들로 둘러 싸여 있는데 특히 시청건물을 정말 크고 화려했다. 브뤼셀의 명물 「오줌누는 동상」을 뒤로 하고 촉박한 시간으로 뛰다시피하여 역에 도착했는데 국경을 통과하기 때문에 약간은 복잡한 통관절차를 거쳐 유레일 패스로 「유로스타」에 탑승하였다. 해저터널을 지난다고 하여 약간은 흥분하였지만 어느새 런던이었다.
런던의 야경을 구경하고자 우선 「템즈강」가에 이르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고딕양식의 국회의사당『빅벤』(벤자민 홀이 공사를 했고 대형시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 강변의 「County Hall 갤러리」에서는 마침 달리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다. 긴 다리의 코끼리와 치즈처럼 녹아내린 청동 시계의 조각이 눈길을 끌었다. 「런던 브릿지」를 지나 「하이드 파크」잔디밭에서 잠시 여유를 누리다가 현지 유학생가이드로 시내를 통과하여 한 차이나 타운의 중국집으로 안내되었다. 힘도 들고 배도 고파 무조건 밥이 포함된 메뉴를 시켰다. 새우볶음밥 또는 버섯잡탕밥 종류였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 했지만 그냥 열심히 먹었다. 런던 시내에서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빨간 이층버스이다. 도로가 좁고 운전석이 오른쪽이어서 통행시 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밤의 템즈강은 아름다웠다. 가을 날씨처럼 쌀쌀했다. 멀리서 마침 「타워브릿지」의 다리가 유람선의 통과로 웅장하게 열리는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오늘을 접기위해 마지막 숙소인 한국 민박집으로 향했다. 민박집의 앞뜰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런던의 마지막 밤 파티를 계획하였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들의 실망에 찬 탄성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왓다. 창고같은 건물의 방 2개에 남자, 여자가 들어가 마치 수학여행에서 다리 사이사이로 뻗고 자야할 정도로 비좁고 열악했다. 가지가지 불만들을 토로하며,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도 별로 친절하지 않은 주인 아줌마이지만 밥을 해줘서 아침은 든든했다.
다음 날, 지하철(Underground) 일일권을 끊어 지도한장을 들고 런던 탐색을 시작했다.
우리는 우선 근위병 교대식을 구경하기위해 시간 맞추어서 『버킹검 궁』(현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살고 있음) 광장에 자리잡고 앉았다. 기마경찰들이 자리를 정돈하며 지루하게 1시간 가량 기다렸다. 궁전 안뜰에서 근위병들이 사열을 하고 스코틀랜드 전통복장차림의 백파이프 군악대를 선두로 기마병과 교대할 근위병이 행진해 들어오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찰칵!"
다음은 『트라팔가 광장』에서 중앙에 우뚝 솟은 넬슨제독의 동상을 보고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과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 순례에 들어갔다. 역시 박물과 순례는 힘이 들었지만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기웃거렸다. 이집트의 미이라,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등 과거 제국시절의 약탈(?) 유물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과학 박물관(Science Museum)」에서도 여러 가지 우주체험을 했다.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박물관에서 우리는 특히 항공우주분야에 관심을 갖고 비행기의 원리 (양력, 베르누이의 정리 등)에 대해 체험을 했다.
돌아오는 길 「하이드 파크」 잔디밭에 잠시 누웠다. 하늘은 파랗고 잔디는 푸르고, 살갗을 스치는 싸늘한 바람, 긴팔 니트를 목에 두르고 금발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는 젊은 연인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눈에 들어왔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무니 어느 새 눈이 사르르르....
다시 우중충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유럽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기 위해 캔 맥주를 한 아름 샀다. 다른 일행들도 주섬주섬 안주거리를 챙기는 것 같았다.
별이 지도록 우리는 그 동안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이렇게 저렇게 사는 얘기가 무르익었다.
런던과 아쉬운 이별을 하며 처음으로 택시를 탔다.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택시기사는 친절했다. 가족들은 아프리카에 있고 돈 벌러 왔다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긴 기다림 끝에 프랑스를 거쳐 북경공항에 내려 서울로 가는 길은 매우 지루했다.
한국에 도착하니 날씨가 찌는 듯 무더웠다. 아! 우리가 진정 피서를 다녀온 것인가?
13일간의 해외 나들이를 통해 여러 사람과의 만남, 아이들과의 자유로운 대화, 새로운 문화 체험으로 나에게 또하나의 풍요로움을 더해준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