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이타현 구조산,소보산
탁 트인 조망과 울창한 숲 ,모두 즐기는 ‘이종세트’ 글·사진 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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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홋쇼산 능선 오름길. 오른쪽 멀리 웅장하게 솟구친 구주산의 모습이 보인다. |
이른 새벽, 지인의 부음을 들었다.
두터운 친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죽음은 믿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서로 닮은 삶을 살아서였을까. 문득 ‘제망매가’의 구절이 떠올랐다.
삶과 죽음의 길 여기 있음에 두려워 /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가느냐 / 어느 이른 가을바람에 /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 모르겠구나 / 아아 극락에서 만날 것이니 / 나는 도 닦으며 기다리련다 같은 날 오전, 일본 규슈(九州) 북동단 오이타(大分)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오이타현 기획진흥부 소속 가와시마 에이치로(川島榮一郞)씨와 쿠니요시 신지(國吉信次)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일행은 서둘러 구주산(久住山·1786.8m)으로 향했다.
산행기점인 마키노토(牧の戶·1303m) 고개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께.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휴게소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구츠가케산(沓掛山·1503m)으로 향하는 700m 구간은 시멘트 계단으로 이어져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츠가케산에 오르니 능선으로 이어진 장쾌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산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화산지역이어서인지 구츠가케를 내려서는 길 곳곳엔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바위들이 나타나 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이 산행이 태어나 두 번째로 하는 것이라며 힘든 걸음을 이어가는 이송이씨(29세), 가와시마씨는 “이곳만 내려서면 정상 직전까지 3㎞ 정도는 완만한 능선”이라며 안심시킨다.
구주산-철쭉과 단풍 그리고 조망이 으뜸
가와시마씨의 말대로 길은 편했다.
길옆으로는 키 작은 산죽과 철지난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쿠니요시는 “구주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매년 5월 중순부터 한 달간 철쭉꽃으로 뒤덮여 천상화원을 이루는 곳이다.
특히 오른쪽으로 보이는 오우기가하나(扇ヶ鼻·1698m) 주변 능선이 가장 아름답다”고 소개했다.
오우기가하나 갈림길을 지나 홋쇼산(星生山·1762m)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반기고 있었다.
해발 1600m 고도에 위치한 거대한 평원 니시센리하마(西千里浜)였다.
정면엔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는 홋쇼산 자락이 마치 치마주름처럼 늘어져 있었고, 오른쪽 평원 끝에는 웅장하게 솟구친 구주산의 모습이 보였다.
지도에 표기된 구주산(久住山)과 구중산(九重山), 어떤 이름이 맞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와시마는 “모두 ‘구주’로 읽기 때문에 이름이 헷갈리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구중산과 아소산은 함께 아소-구주(阿蘇-九重) 국립공원지역을 이루고 있다.
구마모토(熊本)현과 오이타(大分)현에 걸쳐있는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군이 구중산, 구주산은 구중산의 한 봉우리”라고 설명했다.
구주산은 오랜 세월 동안 아소-구주 국립공원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알려져 있었지만 몇 년 전 측정한 결과 나카다케(中岳·1791m)가 4m 더 높은 것으로 밝혀져 최고봉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하지만 가와시마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등산객들은 나카다케보다 구주산을 더 많이 찾는다고 한다.
대다수 등산객들은 홋쇼산을 거치지 않고 오른편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구주산 바로 아래의 구주와카레(구주 분기점)로 향하지만 우리 일행은 홋쇼산을 거쳐 가기로 했다.
급경사 바위지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옆으로 고만고만한 산죽이 양탄자처럼 죽 펼쳐진 풍경이 아름다웠다.
10분 정도 올라 부드러운 능선에 이르러 아래쪽으로 눈을 돌리니 발 아래로 거대한 분화구가 펼쳐졌다.
널따란 평원으로만 보였던 니시센리하마는 한라산 백록담보다 훨씬 큰 규모의 분화구였던 것이다.
부드러운 구릉을 오르다 보니 경남 창녕 화왕산을 걷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시큼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유황냄새라 했다.
홋쇼산 정상에 올라서니 멀리 이오우산(硫黃山)이 뭉게구름 같은 새하얀 김을 뿜어 올리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홋쇼산을 내려섰다.
어느덧 구주산대피소가 자리하고 있는 구주와카레. 이제 정상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상의 정점이 가까워지면서 길은 너덜지대로 바뀌고, 연신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구주산 정상에 오른 건 산행에 나선 지 3시간 30분이 지나서였다.
구주산이 조망 명소라는 입소문답게 정상은 사방으로 트여 있었지만 희뿌연 날씨로 인해 서쪽 멀리 아소산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잠시 땀을 식힌 후 하산을 서둘렀다.
아카가와(赤川)로 내려서는 길은 매우 가팔랐고 뿌연 대기로 인해 끝을 알 수 없었다.
지루한 하산 길. 계곡 물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태양이 서서히 밝기를 다할 무렵 우리는 아카가와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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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보산 정상. |
소보산-울창하고 깊은 숲의 넉넉함
이튿날 일행은 구마모토(熊本)·미야자키(宮崎)·오이타(大分)현에 걸쳐 있는 소보산(祖母山·1756m)으로 향했다.
일행을 태운 승합차가 임도를 따라 산으로 접어들자 주변은 온통 삼나무들로 가득하다.
수십 년 동안 인공조림 한 것이라고 했다.
한 치 흐트러진 모습 없이 잘 정돈된 모습으로 빽빽하게 서 있는 숲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미하라(神原)주차장에 차를 세우로 산행을 시작했다.
나무와 풀들이 온통 진한 푸르름 속에 한데 어우러져 있었고 산은 고요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숲이 뿜어대는 푸른 향기가 상쾌한 바람에 실려 후각을 자극했다.
맑은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졌다.
길은 무인대피소인 5합목산장을 지나면서 경사를 높였다.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숲길은 지루해지고 코를 자극했던 싱그러운 숲의 향기도 무감각해졌다.
지나가는 등산객조차 찾아볼 수 없다.
조망이라도 열린다면 좋을 텐데…. 무감각한 걸음을 내딛는 사이,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시선을 끈다.
국내에서는 가뭄으로 인해 예년 같은 단풍을 볼 수 없었던 터라 이름모를 나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단풍이 더욱 풍요롭게 느껴졌다.
주차장을 출발한 지 4시간이 지나서야 소보산 정상이 보이는 구니미(國觀) 고개에 도착했다.
소보산 정상부는 부드럽고 펑퍼짐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야 삼삼오오 짝을 이룬 등산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배낭에 넣어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길은 올라왔던 것보다 훨씬 완만했다.
산죽과 단풍이 어우러진 모습이 자연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
드디어 9합목(대다수 일본산에는 등산객들이 산행 거리를 가늠할 수 있도록 출발지부터 정상까지의 거리를 10등분해 1~9합목으로 나누고 표지판을 설치해놓았다)을 알리는 팻말을 지나고 10여 분 정도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토요일이어서인지 정상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소보산 정상도 조망이 좋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주변에 둘러쳐진 나무가 시야를 가린다.
정상엔 석조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제단 위에 동전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돌탑 위에 돌을 올리는 우리네 산행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다.
산행 내내 “빨리 빨리”를 외치던 한진관광 우재붕 차장의 재촉에 못 이겨 하산을 서두른다.
소보산 유일의 유인대피소인 소보산 9합목산장을 거쳐 다시 구니미 고개에 다다랐다.
구니미 고개에서 기타타니(北谷)로 내려서는 길은 올라올 때와는 달리 완만했다.
함께 걷던 이송이씨가 한마디 던진다.
“이제야 사람들이 산에 왜 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 ….”
난 아직도 그 해답을 알지 못한다.
그때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온 한 가닥 노랫소리가 들렸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일행 중 누군가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를 건너오면서 잊고 있었던 지인의 죽음이 다시 떠올랐다.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어쩌면 그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산으로 돌아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일는지도….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슬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뭐랄까, 물이 흐르듯이, 날이 저물면 어두워지듯이, 해가 뜨면 밝아지듯이, 그렇게 되어져가는 일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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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시센리하마에서 본 홋쇼산 능선. 아주 오래 전 이곳이 분화구였음을 말하려는 듯 평원 곳곳에 물이 고여 있다. |
[인포메이션]
일본 오이타현 구주산·소보산
구주산은 활화산을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매력적인 산행지다.
아소-구주 국립공원 허리를 가로지르는 고갯마루인 해발 1303m의 마키노토를 기점으로 할 경우 정상까지 표고차가 500m도 채 되지 않아 어렵지 않은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 마키노토까지는 벳부에서 버스로 1시간가량, 오이타 공항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산행 코스로는 마키노토를 출발 구츠가케~오우기가하나갈림길~대피소를 거쳐 구주산을 오르는 원점회귀 코스가 가장 대표적이다.
왕복 8.2km, 4~5시간 정도 걸린다.
마키노토를 출발해 구주산 정상을 오른 후 남쪽등산로 입구로 하산하는 코스도 인기 있다.
약 11km,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구주산이 조망의 산이라면 소보산은 울창하고 깊은 숲의 산이다.
가까이 위치한 구주산의 아름다움에 가려 구주산 만큼 널리 알려진 산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등산객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 대표적인 산행코스는 오비라(尾平)를 출발해 미야노하루(宮原)~정상~구로가네(黑鐵)능선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10.2km, 6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벳부
오이타현에 위치한 벳부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유명한 온천관광지. 작은 도시 곳곳에서 새하얀 온천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풍경은 벳부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구주산 산행이 매력적인 것도 이곳 벳부에서 하루 머물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한몫을 하고 있다.
홋카이도의 노보리베츠, 혼슈의 아타미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온천의 하나인 벳부는 원천수가 2848개소, 용출량은 1일 약 13만7천톤. 미국 옐로스톤국립공원에 이어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용출양이다.
벳부 내에는 크고 작은 온천 업소가 약 3000개에 이른다.
벳부 온천은 벳부8탕이라 불리는 벳부, 묘반, 시바세키, 간나와, 간카이지, 호리타, 가메가와, 하마와키 등 8개 온천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온천들마다 온천수의 성분이 각기 다른 것이 특징이다.
이곳 온천의 명물은 단연 지옥온천 순례. 용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으로 간헐천이 뿜어져 나온다고 하는 다쓰마키지옥(용지옥), 온천물이 바다와 같이 맑은 파란색을 띤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우미지옥(바다지옥), 보오즈지옥(스님지옥), 야마지옥(산지옥), 가마도지옥(화덕지옥), 시라이케지옥(하얀 연못지옥), 긴류우지옥(금용지옥), 오니야마지옥(귀신산지옥) 등 특색 있는 8개의 온천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각 온천 입장료는 400엔, 8개의 온천을 모두 이용할 경우 2000엔.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벳부의 대표적 음식은 지옥찜. 신선한 어패류와 야채 등을 온천수의 열기로 쪄낸 음식이다.
온천수의 미네랄 성분이 요리에 흡수되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