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
▷ 타비라성당
▷ 사세보 미우라 마치 성당
(미사 예배)
▷ 히라도 프란치스코하비에르 기념성당
중식
▷ 복자 카밀로콘스탄치오 신부 처형터
▷ 타비라성당
▷ 오후라성당
사세보 미우라 마치 성당
1930년에 세워진 하얀 첨탑이 인상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제 2 차 세계 대전 중에는 군에 의해 감시되어 공습을 피하기 위해
흰색 외벽을 콜타르로 칠하고 검은 모습이되었습니다.
종전 후 외벽은 원래의 흰색 모습으로 복원되었지만,
교회 바로 아래를 달리는 35호선의 확장에 따라 앞의 산이 깎여나가
반쯤 뒤쪽의 가파른 계단으로 옹벽을 올라갑니다.
1549년 예수회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 신부가 복음을 전하면서
일본의 가톨릭 역사는 시작되었다.
일본 큐슈(九州) 남부 가고시마에서 복음을 전하던 하비에르 신부는
지방 영주인 다이묘(大名)와 불승들이 박해하자
1550년 9월 나가사키현 남서해 지역에 있는 히라도(平戶)로 옮겨 복음을 전했다.
당시 히라도는 국제 교류 도시로 16세기부터 유럽 문물을 많이 받아들여
아시아와 유럽이 섞인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또 히라도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많은 병사를 파견했고,
이곳 다이묘 마츠우라는 귀국 할때 조선 도공 100여 명을 끌고와
'히라도야키'라는 도자기 문화가 시작되기도 했다.
하비에르 신부는 히라도에서 머문 약 한달 동안
다이묘 마츠우라 타카노부(1529~1599)의 가신인
키무라 집안 사람 100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들 후손들 중 키무라 세바스티아노는 일본인 최초의 예수회 신부가 되었고
임진왜란 때 끌려와 세례를 받은 조선인 코라이 안토니오는 히라도에서 순교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잇따른 가톨릭 금교령으로
300여년 동안 박해를 당하면서
순교자들과 신분을 감춘 채 숨어 살았던
가톨릭 신자들의 수많은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일본 전역에서 불교사원과 가톨릭교회가 같이 공존하는 보기힘든 지역이라고.
히라도 성당으로 가는 길은 일본의 한 동네를 지나 절을 끼고 있는 돌담길을 올라야 한다.
언덕 위로 고딕식 성당이 보이고 그 아래로 3개의 절이 앉아 있는 재미있는 풍경.
코우묘우지(光明寺)와 즈이운지(瑞雲寺)의 사찰 건물과
연한 올리브색 고딕식 성당이 어우러진 모습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 성당
히라도의 상징인 히라도 성당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히라도 선교를 기념해 1971년에 건립한 성당이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당은 주첨탑을 작은 첨탑들이 둘러싸고 있는
독일식 고딕양식 건축물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보이는 방향으로 오른쪽 중간 첨탑이 하나 없이 완공된 성당.
건축비가 모자라 첨탑을 못올렸다는데 오히려 그것이 성당을 더 아름답게 해 찾는이들이 많다는~
그분은 이렇듯 '나쁨=모자람......'을 '좋음=넘침......'으로 바꾸어주시는 임마누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4.7-1552.11.2.)
스페인 바스크 출생,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예수회 공동창설.
아시아의 예루살렘이라는 인도 고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말라카에서 일본인 야지로를 만나고 이는 일본 선교의 계기가 된다.
1549년 8월 15일 일본에 도착, 1550년 히라도, 나가사키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선교중 광동성 앞 섬에서 열병으로 선종,
1622년 3월 22일 시성, 포교사업의 수호자로 축일은 12월 3일.
田平天主堂 타비라성당
공식적으로는 가톨릭 다히라 교회(가톨릭 다히라 교카이)라고 불리며,
그 위치를 따서 세토야마 천주당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히라도시시 다히라초 서쪽의 탁 트인 언덕에 세워진 붉은 벽돌 교회에서는
히라도 세토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히라도 다리가 내려다보이며
사진과 그림의 소재로 자주 사용됩니다.
타비라 성당(田平天主堂)은 1886년 이후 라게 신부와 드로 신부가 사들인 땅에
나카타 토키치(中田藤吉) 신부가 프랑스 독지가의 후원과 신자들의 노력을 발판삼아
1915년 테츠카와 요스케(鉄川与助1879-1976 ) 설계로 착공, 1917년에 준공하였으며
1918년 벽돌 건축 양식의 교회를 완성해 봉헌하였다.
나가사키현 안의 벽돌식 성당으로는 가장 늦게 세워진 성당.
성당 정면에 팔각형 돔의 종탑을 세웠으며 외벽은 벽돌과 목조를 사용,
특히 벽돌의 색이나 쌓는 방법에 적절한 변화를 주어 다채롭게 마무리하였다.
내부는 나무에 페인트칠로 마감했는데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높은 아치창문, 동백꽃 부조,
제대와 난간을 칠한 금색이 화려하다.
교회는 히라도(平戸)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대에 있으며
사제관과 문기둥, 돌계단, 돌담, 조개소각장 등이 남아 있고
주위에는 묘지와 밭이 펼쳐지는 등 역사적인 환경이 잘 보존되어
2003년에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벽돌, 기와 시멘트, 목재 같은 건축자재는 배로 옮겨졌고,
벽돌을 붙일 아마카와(석회와 적토를 섞어서 만든 접합제)의
재료인 석회는 신자들이 히라도 바닷가의 조개껍질을 모아
태워 만들었다니 당시 신자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이 성당은 "일본의 26명의 거룩한 순교자"에게 봉헌하기 위해 봉헌했습니다.
야이자 사적 공원焼罪史跡公園
‘죄를 불태운 유적공원’이라 씌어있습니다. ‘燒罪史跡公園(소죄사적공원)’입니다.
순례자들의 기분을 씁쓸하게 하는 명칭입니다.
국법을 거슬러 범한 죄를 불태워 없앤 기념공원이라는 뜻입니다.
국사범을 처형한 자리입니다. 그 징벌을 기억하라는 경고의 자리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카밀료 콘스탄시오 신부가 1622년에 화형 당한 곳입니다.
콘스탄시오 신부는 1591년에 일본에 들어와 선교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1614년에 마카오로 추방당했는데, 1621년에 비밀리 다시 돌아와
선교를 계속하던 중 다시 체포되어 1622년에 50세의 나이로 화형 당하여 순교합니다.
복자로 시복 된 카밀료 콘스탄시오 신부의 순교 장면을 형상화하여 조형물이 탑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 둥둥 떠서 태워지는 순교자의 모습이 형상화 되어있습니다.
그 형상의 탑 너머 물결 위에 솟은 히라도 성(平戶城)은
지금도 우리 순례자들을 향하여 경고를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통치권을 거스르면 이렇게 불태워진다고!
그러나 우리의 신앙증거란 그렇게 불같은 열정으로 타올라
세상을 비추는 것이어야 한다는 감흥으로 순례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오우라 천주당
오우라 천주당(일본어: 大浦天主堂、おおうらてんしゅどう 오우라 텐슈도)은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당이다.
일본 26위 성인 성당(日本二十六聖殉教者堂)이라고도 불리며,
1853년 일본 정부의 쇄국주의가 끝난 후에 곧바로 건립되었다.
일본의 국보 가운데 유일한 서양식 건물이면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기도 하다.
성 필립보 성당(26 성인 기념성당)
26성인 기념성당인 성 필립보 성당은 순교자 26명이 성인품에 오른 100주년을 기념해
1962년 26성인 기념관과 함께 니시자카 언덕(서판공원)에 세워졌다.
원래 기념관과 사제관만을 짓기로 했으나
26성인 중 하나인 멕시코 수도자 성 필립보 데 헤스스를 위해 멕시코 정부가 보낸 기금으로
26성인 기념성당 성 필립보 교회도 설립됐다.
이 성당은 지붕에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26성인이 걸어온 길의 도자기 가마에서 모은
도자기 조각들로 마감한 탑을 세웠으며, 제대에는 26개의 십자가가 조각돼 있다.
설계자 이마이 겐지로는
성가족성당을 설계한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일본에 소개하였으며
그래서인지 두 개의 첨탑이 가우디의 작품들이랑 묘하게 닮아있었다.
멕시코의 기부로 1962년 6월 완공되었다.
성 필립보 성당은 도자기 조각으로 마감한 두개의 첨탑이 뿔처럼 높이 솟아있었다.
왼쪽탑은 기도와 찬미를 뜻하며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해주는 성모님을,
오른쪽 탑은 천상 은총의 통로로 성령의 은혜를, 피뢰침은 지상승리의 왕관을 상징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