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내린눈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만
생각되는 그런 일들.
양 선생님의 주변에서는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물만 마시고도 살아가시는 것이나
손만 한 번 대는 것으로도
불치의 병이 낫는다든가 하는 일도
따지자면 그런 범주에
속하는 경우입니다.
양 선생님을 자주
뵈러 오신다는 분을 통해
신비한 일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는 말씀을 듣고
나는 양 선생님을 졸랐습니다.
양 선생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하신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삶 자체도 세상 사람들은
불가사의한 일로 받아들이는데
거기에 또 다른
의혹과 분별을 덧붙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 동안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잠깐잠깐 그런 일화들이 거론될 때면
양 선생님은 부러
말끝을 흐리곤 하셨습니다.
하도 끈질기게 요청하자
양 선생님은 난색을 표하며
내게 먼저 물으셨습니다.
''불경에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를
묘사한 장면들이 있지요.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강 기자는 어떻게 생각해요?"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부정하지는 않아요.
깨달음을 이룬 성인들께는
자연뿐 아니라 우주 전체가
그 분들의 뜻에 따라
그대로 감응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때의 상황을
아름답고 성스럽게 묘사하기 위해서
표현을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이해하는데,
그건 실제로 있는 일이에요.''
양 선생님은 구례 농가에서의
사십 구일 기도를 끝내고
특별한 능력을 나타내 보이기 전에도
그런 일들을 많이 겪었다며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양 선생님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잊지 못해
자살을 기도했던 그해 구정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차례 음식을 싣고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하여
안양에 있는 별장에 도착했습니다.
별장에 모신 부친의 묘소 앞에
차례상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막 제를 지내려 던 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잊으신 듯
손뼉을 소리나게 치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구야. 쌈김치를 안 가지고 왔구나.
너희들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시던 건데.''
선생님의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쌈김치를 즐겨 제사 때마다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쌈김치를 준비하곤 하셨습니다.
아버지 가 그토록 좋아하시던
쌈김치를 두고온 안타까움에
가족들이 모두 젯상을
다시 한 번 둘러보는데,
상의 한쪽에 보시기에 담긴 쌈김치가
턱 하니 놓여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절을 올린 후,
음식을 드시라고 잠깐 돌아서
있다가 다시 돌아보았을 때는
보시기 안에
수북하게 담겨 있던 쌈김치는
온데간데 없고 김칫국물만
조금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
설에 있었던 일입니다.
양 선생님께서 가족들과 떨어져
장위동으로 분가하여 살 때입니다.
자살 소동 이후
가정부 아주머니도
남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버리고
양 선생님
혼자 지낼 때였습니다.
양 선생님은 연탄 한 장을
들어올릴 힘도 없어
제때 불을 못 붙이고
싸늘한 맨바닥에서 그냥 쓰러져
누워 지내 일쑤였습니다.
양 선생님은
아버지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살아 생전의 아버지는
매년 설날 아침이면
여섯 남매를 불러 앉혀 놓고
봉투에 오천 원 짜리 지폐 한 장씩을
넣어서 세뱃돈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던
그 손길을 떠올리며,
'이제 다시는 그렇게 세뱃돈을
주실 분이 없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그만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어 보니
머리맡에는
하얀 봉투가 놓여 있었습니다.
잠들 때만 해도 없던 것이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옛날 아버지가 주시던 그대로
오천 원짜리 빳빳한한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려서부터
그런 일들을 참 많이 겪었어요.
생활 속에서
그런 일들을 수시로 겪었는데,
어렸을 때는
그것이 무섭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지요.
한참 육체의 고통을 겪던 시기에는
나 역시도 어떤 무속적인 행위를
해야 살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어머니도 주위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거든요.
너무 고통스럽고 힘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일들이 두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니까
무작정 매달리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그런 현상은 더 생기게 되구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현상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누가 일러주어서도 아닌데
그것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자각이 생겼어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거죠
가장 올바른 것은
내 이웃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고통받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안 거지요.
불교에서는 그런 현상들을
마구니의 장난이라 고합니다.
신기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대단하게 여기고
경험해 본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빠져들기도 하는데 바른 길이 아닙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한여름에 몇 명의 사람들과함께
설악산 등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더운 탓이었던지
양 선생님은 그 날 아침부터
눈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은 호텔에 투숙했습니다.
건물 뒤쪽에 있는 정원에는
객실에서 바로 마주보이는 위치에
소나무 세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밤을 지낸 새벽,
양 선생님은 유난히 눈부신 빛이
창문을 통해 비쳐들어 잠을 깼습니다.
아직도 어두워야 할 시간인데
창문 너머가 훤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진
양 선생님은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양 선생님의
창문과 나란히 서 있던
가운데 소나무에만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하얀 눈의 반짝임이
창문을 밝혔던 것입니다.
양 선생님은 옆방에 있는
사람들을 깨웠습니다.
"일어나 보세요.
창 밖을 좀 내다보세요''
"아이, 무슨 일인데
이 새벽녘부터 야단이세요?"
잠을 깨 사람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다가 기겁을 했습니다.
"이게, 이게, 무슨 이런 일이 있어?
한여름에 웬 눈?"
일행 중에는
여행사에서 홍보용 사진을 찍는
전문 사진 작가가있었습니다.
그이는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며
서둘러 카메라를 들이됐습니다.
그러나그 필름을 인화했을 때는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린 사진이 나왔습니다.
촬영하던 순간,
흥분한 나머지 셔터를
누르는 손이
흔들렸을지도 모르지만,
전문 작가가 찍은 사진이 그 정도로
엉망으로 나온 사실에 대해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선 산 정상 벼랑에서
양 선생님께서 타고 있던 자동차가
사고 직전의 위기에서
공중으로 떠서 날았던 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은행의 컴퓨터를 작동시킨 일 등.
그러나 양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들을
굳이 하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늘 걱정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분별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 분의 삶 속에
포함되었던 일이기에
나는 양선생님과 주위 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들을 수 있었던
내용들만이라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