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 & 추수감사주일
신명 8:1-10 / 시편 65 / 묵시 1:4-8 / 요한 18:33-37
종말의 두 얼굴: 파괴와 완성, 두려움과 감사
2023년 대림 절기부터 매 주일예배 때 마다 마르코 복음을 주로 읽는 나(B)해 교회력이 오늘 왕이신 그리스도 주일로서 1년 간의 여정을 마칩니다. 이처럼 매년 교회 절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인생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이 처음과 끝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지막이라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현재를 더 지속하고 싶어 합니다. ‘더~’라는 ‘sur-‘라는 말과 ‘살다’라는 ‘vival’이 결합된 ‘서바이벌(survival)’이란 영어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더 살고 싶어하는 바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내 생명이 어떻게 하면 서바이벌할 수 있는지, 내가 이룩한 부와 권력이 어떻게 하면 서바이벌할 수 있는지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서바이벌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과 마지막은 자연의 질서이자, 우리 신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하느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책 제목은 이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 첫번째 책인 ‘창세기’를 영어로 ‘제네시스(Genesis)’라고 하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 ‘게네시스(γένεσις)’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은 ‘태어나다’, ‘생기다’라는 뜻인 ‘기그노마이(γίγνομαι)’의 명사형으로, 어떤 사건과 사물의 시작이나 기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서의 마지막 책인 ‘요한의 묵시록(The Apocalypse of John)’에서 ‘묵시(默示)’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아포칼룹시스(ἀποκάλυψις)’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무언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다’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제네시스’라는 첫 단어를 통해 이 세상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선언하고, 마지막 책인 ‘아포칼룹시스’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섭리를 가리고 있는 세상의 악을 폭로함과 동시에 하느님의 원래 뜻으로 복원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다시 출발할 것이라는 것을 계시합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묵시록으로 마치는 성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통찰을 줍니다.
먼저,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어디서 기원했고,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다시 한번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신명기는 이집트의 노예살이로부터 탈출한 히브리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시나이산에서 모세로부터 들은 마지막 유언과 같은 설교입니다. 오늘 들은 1독서를 보면, 모세는 그들이 광야에서 40년간 고생한 것은 “사람이 자기 자식을 잘 되라고 고생시키듯이(신명8:5)” 단련시킨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친히 만나를 내려 먹여 히브리 백성들에게 주심으로써 그들이 극한 상황에까지 빠지지 않게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그들이 단지 인간적인 방식에만 매달리지 말고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은 히브리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그 땅으로 들어가 행복하게 살라고 축복합니다. 이와 같이 신명기를 통하여 히브리 백성들은 자신들이 겪은 어려운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단련의 시간을 함께 보내시면서 그들을 성숙하게 하셨고,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역량을 길러 주심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다음으로, 다가올 미래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할 지 생각하게 합니다. 특별히 성서의 맨 마지막에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교회력으로 한 해를 마감할 때마다 듣는 묵시록은 이런 의미에서 종말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기원 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철저히 파괴당하고, 대략 74년경 예루살렘 남쪽 맛사다(Masada)에서 끝까지 항전했던 유대인들이 완전히 전멸되는 비극적 사건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박해로 고난 받던 때, 환시 중에 본 주님의 계시를 요한이 주변에 있는 7개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서 요한은 폭력이 난무하는 환난과 임박한 하느님의 심판을 묘사하면서 이것은 현 세상이 절멸하면서 끝날 것이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하느님께 충실하게 순종하라고 신자들에게 권고합니다. 당시 요한은 주님을 증거하다 유배를 당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환시를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묵시록은 성서의 다른 책들과 달리 우리에게 결코 편안함을 주거나 안정감을 주는 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묵시록을 읽을 때, 그 책에 등장하는 많은 상징들이 우리의 이성과 상상력을 자극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여러 가지 불안하고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역사 심지어 세속의 역사에서도 묵시록에 대하여 여러가지 해석이 난무했으며 종말에 대한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렇지만 묵시록은 이 세상의 멸망에 대한 환상 혹은 예측을 담은 책이라기 보다는 두 세상 사이의 경계를 드러내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묵시록이 계시하는 바는 한 세상의 끝이자 또 다른 세상의 시작이며, 압도하는 폭력으로 이루어져 온 이 세상의 종말인 동시에 압도하는 영광으로 가득 찬, 즉 죽음도 고통도 더는 없는 새로운 세상의 출발인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묵시 1:7)”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태도가 신앙인과 세속인과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세속의 가치와 질서를 추구하던 자에게 종말은 재앙과도 같지만, 주님의 나라를 갈망하는 신앙인들에게 주님의 재림은 “아멘, 오서서, 주 예수여! (묵시 22:20)”라는 기다림의 순간이자 완성에 대한 환호의 순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말하는 종말은 하느님 창조가 완성되는 마침표의 시간이자,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하는 환희의 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선 그러한 힘의 정점을 왕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빌라도는 예수께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 아무튼 네가 왕이냐? (요한 18:33, 37)”라고 캐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듣는다 (요한 18:37)”라고 대답하십니다. 여기서 빌라도로 대표되는 현세의 왕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전자는 그것이 선하건 선하지 않건 상관없이 백성들을 복종케 하는 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라면, 후자는 인간의 양심을 비롯해서 세상만물이 움직이게 하는 진정한 법칙에 기반합니다. 그리고 그 근원적 법칙은 창조주 하느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은 그리스도야말로 참된 왕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한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인생의 작은 종말을 기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40년 광야생활을 회고한 히브리 백성들처럼 한 해를 뒤돌아보며 힘들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해 주신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다가올 새해를 기다리며 그 미래가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선물이기에 희망을 가지고 맞이합니다. 이처럼 감사와 희망을 갖기 위해선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님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내 인생의 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님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진리 편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인생의 수확이 적더라도 위축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인생의 수확이 많아서 기분이 좋은 나머지 자칫 우월감에 빠질 위험도 막아 줍니다. 이처럼 진리 편에 선 우리는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주님이 태초에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묵묵히 걸어갑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종말이란 단어는 ‘모든 것이 끝났다’, ‘내가 이룩한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이제 심판 받아 벌받을 것이다’ 등과 같은 파괴와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으로 온전히 회복되는 은혜의 시간이자 감사의 시간입니다.
우리 인생을 수확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