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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가득한 사회
글쓴이 박태균 / 등록일 2026-07-14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를 전후하여 남북 간의 스포츠 교류에서 역사적 순간이 적지 않았다. 도쿄올림픽(1964)부터 서울올림픽(1988)에 이르기까지 남북 단일팀을 위한 논의가 성사되지 못했지만, 1990년 아시안게임(베이징)에서 응원 과정에서 처음으로 한반도기를 공동으로 사용했고,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일본)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포르투갈)에서 남북 단일팀이 참가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한반도기를 단일팀 공식 단기로 사용).
1991년의 남북 단일 탁구팀은 영화화되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후 북핵 문제로 인해 남북 간의 스포츠 교류가 끊겼다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 간 스포츠 교류가 확산되었다. 스포츠 교류는 남북이 한반도를 대표하는 하나의 팀을 구성할 수 있다는 의미와 평화체제 형성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다.
통일이라는 대의, 공정이라는 선
2000년(시드니)·2004년(아테네)·2006년(토리노)의 하계 및 동계올림픽, 2002년(부산)·2003년(아오모리)·2006~7년(도하·창춘)의 하계 및 동계 아시안게임, 2005년(마카오) 동아시안게임 등에서 남북한 팀이 한반도 깃발 아래 공동으로 입장했다. 정치적 갈등과 북핵 문제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있던 2011년 남북 단일팀이 국제 탁구경기에 참여했었고, 2014년 아시안게임(인천) 때는 북한 대표단이 남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다시 악화되면서 남북 간의 스포츠 교류가 중단되었다지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게임에서 남북한 공동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그리고 북한 대표단의 남한 방문이 있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 불사 발언이 계속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평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고, 실제로 이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남북 단일팀으로 구성하는 과정에 대한 여론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북한 선수들이 합류하게 되면 그동안 대표팀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남한 선수의 일부가 대표팀에서 탈락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북한 선수가 대표팀에 합류한다면, 남한 선수와의 경쟁을 통해 실력을 증명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회의 통념을 깨는 사건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불러왔던 한국 사회에서 통일은 대의였고, 헌법에 있는 한국 정부의 가장 주요한 목표 중 하나였다. 그런데 ‘공정’이라는 전제가 헌법상에 명시되어 있는 ‘대의’를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런 조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의 북풍이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2010년 천안함 사건은 예상했던 것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남북 간의 안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기도 했다. 2018년의 사건은 어떠한 대의도 ‘공정’이라는 목적을 넘어서 합리화될 수 없다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담론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다른 의견도 존재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과 극단화가 이러한 차이로부터 출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기저에는 최근 출간된 『특권 중산층』(구해근, 창비, 2022)에서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변화, 즉 중산층의 축소와 새로운 기득권의 출현이라는 현상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밀려나지 않으려는 걱정, 올라서려는 걱정
사실 최근 한국 사회를 보면서 이런 측면보다 더 염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특권 중산층』의 원제는 ‘Privilege and Anxiety(특권과 근심)’이다. 한국 사회의 모든 계층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걱정과 염려가 있다. 한쪽에서는 특권 중산층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특권 중산층이 되기 위해 걱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정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정치는 이런 시민들의 걱정과 염려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을까? 지난 지방선거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그들의 모습에서 걱정으로 가득 찬 한국 사회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 글쓴이 : 박 태 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저서]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2015)
《베트남 전쟁》(2023)
《한국전쟁》(2005) 등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