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양동 솔샘터널로 가는 길, 아담한 가게 하나가 자리 잡았다. 이름은 ‘수상한 가게’
수상한 가게는 천주교 빈민사목 삼양동 선교본당(주임 이계호 신부)에서 운영하는 지역사회센터인 ‘강북 평화의 집’에서 2010년 3월부터 시작한 지역 자활 공동체로 환경상품 개발과 판매를 위해 연 매장의 이름이다.
‘강북 평화의 집’은 1998년 IMF를 거치면서 강북구 지역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기 위해 자활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엿이 봉제 협동조합으로 자리잡은 ‘솔샘일터’와 재활용품 센터 ‘살림’의 꾸준함을 지난 2010년 3월 환경상품 개발과 판매를 위한 매장 ‘수상한 가게’가 이어받았다.
일할 수 있는 자리와 기회를 갖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지만 이 자활 공동체를 통해서 참여자들은 스스로 가치있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사회와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올해 9월에는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하는 ‘마을기업’에도 선정된 ‘수상한 가게’는 저소득 중장년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사회 내 환경에 대한 인식 확산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모자가정 여성과 장애인 여성 등 3명이 ‘수상한 가게’를 통해 자활을 꿈꾸고 있다.
가게에 들어섰을 때,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여성 두 명이 마침 비누를 만들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알록달록하고 향기로운 비누들이 이미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매장에 전시된 친환경 비누에 대해 물어보니, 냉장고 문까지 열면서 재료 설명을 해준다. 단순 참여자가 아니라 매장의 운영자로서 가게를 꾸려간다는 자부심도 대단했지만, 새로운 기술을 익힌다는 성취감과 기쁨도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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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한 가게 자활 활동 참여자가 비누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작년 3월 수상한 가게의 시작을 함께 한 이 참여자는 매장 운영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 이 가게의 주요 생산품은 친환경 비누와 EM으로 특히 친환경 비누는 모두 유기농 재료로 생산된다. 약초, 허브, 함초, 쌀겨, 어성초, 귤피 등은 인맥을 통한 협조체계가 잘 이뤄져서 유기농 산지에서 직접 공급받기도 하고, 어성초나 약초 등은 직접 산지를 찾아가 캐오기도 한다. 재료의 가치를 생각하면 가격이 더 비싸야 하지만, 가격 경쟁이 있으니 무작정 올릴 수도 없는 것이 고민이다.
워낙 자본이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마을기업을 통한 지원금은 홈페이지 제작, 상품 포장재와 전단지 마련 등 주로 홍보 활동에 도움이 되고 있다. 내년까지는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일정한 매출이 있어야 지원이 지속되는 탓에 아직 매장 유지 수준인 현재로서는 걱정이 크다. 그래도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좋은 연결 고리를 만들어줘서 6지구 내 인근 본당 위주로 연계하고, 판매 매장을 섭외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매출은 한달 150만원 정도로 이 중에서 30-40%는 재료비와 유지비로 지출되고 있다. 현재로서 가장 큰 과제는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운영면에서 가장 큰 힘을 쏟고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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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한 가게에서는 일반 친환경 비누와 함게 숙성비누도 만든다. 재료도 엄선해야 하고 2달 정도 숙성 시간도 걸리지만, 품질은 훨씬 좋다. 폐유나 물 대신 EM으로 만드는 것도 장점이다. | 자활과 지역 기여의 순환고리 이루는 협동조합 지향 오랜 동료들이 만나서 빚는 찰떡궁합. 참여하는 모든 이가 운영자
이 ‘수상한 가게’를 시작하고 운영하는 이들은 김영실 씨와 김세정 씨다. 김영실 씨는 ‘강북 평화의 집’ 실무자로 이 매장의 산파 역할을 했고, 오랜 지기였던 김세정 씨가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인연 또한 특별하다. 이들은 25년 전 천주교도시빈민운동을 함께 하던 동료였다. 86년 상계동 철거지역 공부방에서 만나 함께 활동했지만 오랜 시간 각자의 삶을 살다가 어느날 우연히 한 동네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세정 씨가 하던 일을 접고 잠시 쉬고 있을 즈음, 급작스럽게 수상한 가게가 마을기업에 선정됐고, 김영실 씨가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해, 짜맞춘 듯 의기투합이 이뤄졌다. 이 둘은 오랜 인연과 공동체, 자활 사업 등에 대한 인식도 함께 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한 파트너쉽을 발휘하고 있다.
이 수상한 가게는 앞으로 소수라도 꾸준히 자활을 이뤄내면서 궁극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활과 지역 공동체 기여의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생각도 했었지만, 아직은 재정이 탄탄하지 않기 때문에, 협동조합법을 통해 어느 정도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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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한 가게를 기획한 김영실 씨(왼쪽)와 운영을 맡고 있는 김세정 씨. 둘은 25년 전 천주교도시빈민운동 활동가로 만났다가 최근 다시 만나 의기투합했다. | 매장의 수익구조도 중요하지만 참여자들에 대한 교육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평화의 집을 기반으로 이루는 세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1년에 두 번 교육, 소풍, 피정 프로그램으로 개인에서 지역사회로 삶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도록 유도하며, 그 과정에서 여의치 않지만 지역에서 하고 있는 반찬나눔, 아이들 멘토 프로그램 등 타 단체에서 하고 있는 복지 프로그램에 다만 몇 만원이라도 지원하고 동참하기 위해 애쓴다.
요즘 ‘수상한 가게’는 점점 이름의 의미처럼 모여서 수선하고 상상하는 작은 사랑방의 모습을 갖춰가는 중이다. 김영실 씨와 김세정 씨가 가진 지역에 대한 애정과 유쾌한 입담은 흡사 ‘동네 언니’의 그 모습이고 인근 본당 신자들 중심으로 심심찮게 찾는 단골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
다만, 재개발 열풍을 피해갈 수는 없어 불안한 분위기가 감돌고, 2월이 되면 인근 임대 아파트 임대료 인상으로 인해 상황을 짐작할 수 없다고 걱정이다. 물품 판매 외에도 매장에서 비누와 EM 만드는 법에 대한 강좌 등을 열고, 회원제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의 상황이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될 것 같아 안타깝다.
매장에서 한참 비누를 만들던 한 참여자는 “비누 만드는 법을 배우고, 만드는 작업이 즐겁다. 최근에는 1월 중 있을 매장 관련 전시회 준비로 무척 바쁘지만,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나를 위해서도 모두를 위해서도 이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재활용 공동체 살림, 솔샘일터 그리고 수상한 가게는 삼양동 지역 공동체 운동의 역사를 이뤄가고 있다. 아직은 ‘맨땅에 헤딩한다’는 김세정 씨의 말처럼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주민들의 삶과 지역사회 재건을 위한 작은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역과 세상의 헤진 곳을 수선하고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 수상한 가게, 계속 수상하길 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