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민들레 '이름 되찾은 사연' 외 6
올해 마지막 ‘김민철의 꽃이야기’는 제가 올 한해 쓴 꽃이야기 25편 중 7편을 골랐습니다.
제가 괜찮게 썼다고 생각하는 형태, 그러니까 제가 쓰고 싶은 형태에 가까운 꽃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더 재미있는 꽃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1. [김민철의 꽃이야기] 토종 민들레가 식물목록에서 사라졌다
토종 ‘민들레’가 우리나라 대표 식물목록에서 사라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20년 자생식물목록을 만들 때 토종 민들레를 삭제해 토종 민들레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려면
‘털민들레’로 불러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식물에 대한 종 분류 변경이 불가피하면, 학명을 바꿀 때
국명(한 국가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용어. 국어의 표준어에 해당)도 조정해주어야하는데
이런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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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국립수목원은 지난 22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기존 털민들레 국명을 민들레로 변경했습니다.
이제 민들레를 민들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21일 목록심의회를 열어 의결한 다음 다음날 즉시 반영했다고 합니다.
토종 민들레 이름을 되찾는데 저도 조금 손을 보탠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토종 민들레. 총포 조각이 꽃을 잘 감싸고 있다.
© 제공: 조선일보
2. [김민철의 꽃이야기] ‘빅 피쉬’ 1만송이 수선화 vs 거문도 금잔옥대 수선화
가장 유명한 프러포즈 중 하나는 영화 ‘빅 피쉬(Big Fish)’에 나오는 프러포즈일 것입니다.
이 영화(2004년 개봉)는 허풍쟁이 아버지 에드워드와 그런 아버지 이야기의 진실을 찾는 아들 윌의 모습을 그렸는데,
영화에 에드워드가 수선화로 가득한 노란 꽃밭에서 산드라에게 포러포즈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면서 서산 유기방가옥 등 우리나라 수선화 명소를 알아보고,
거문도 금잔옥대 수선화 등 수선화 종류를 거칠게나마 알아보는 내용이었습니다.
영화 '빅 피쉬'에서 주인공 에드워드가 수선화밭에서 포로포즈하는 장면.
네이버 영화© 제공: 조선일보
3. [김민철의 꽃이야기] 천명관은 잡초의 작가, ‘고래’는 개망초 노래
지난 5월 천명관의 장편 ‘고래’가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제가 읽은 소설 중에서 잡초를 가장 실감 나게 묘사한 소설은 ‘고래’,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등 천명관 소설이었습니다.
‘고래’엔 주인공 춘희가 움직일 때마다 흔한 잡초인 개망초가 등장하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엔 ‘뽑아내도 뽑아내도 질기게 다시 뿌리를 내리는 쇠비름처럼…’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아쉽게도 ‘고래’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최종 수상하지는 못했습니다.
개망초.
© 제공: 조선일보
4. [김민철의 꽃이야기] 퇴계 이황도 감탄한 소백산 철쭉 보러 가다
지난 5월말 소백산 철쭉이 근래 몇 년 사이 가장 상태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가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5월말~6월초는 소백산을 낀 두 도시, 단양·영주가 소백산 철쭉제를 여는 시기입니다.
소백산 철쭉제는 거의 유일하게 진짜 철쭉으로 하는 철쭉제입니다.
다른 곳 철쭉제는 산철쭉이 필 때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아예 철쭉은 물론 산철쭉도 없이
영산홍만 심어놓고 철쭉제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퇴계 이황은 풍기군수 시절 소백산에 올라
‘(철쭉)꽃이 한창 무르익어 화사하게 흐드러져 마치 비단 장막 사이를 거니는 듯하다'(‘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소백산 철쭉.
© 제공: 조선일보
5. [김민철의 꽃이야기] 작가 박경리가 편애한 ‘옥잠화 여인’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에서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 임명희는 조연급입니다.
그런데도 토지 3~5부에 자주 등장하고 좋게 묘사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소설에서 서희, 유인실, 양현 등과 함께 작가가 빼어난 미인으로 묘사한 여성이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역할이 그리 크지 않지만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인 임명희에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음을
여러 대목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임명희를 옥잠화에 비유하는 대목,
“옛날의 임명희가 저 옥잠화 같았지”라는 대사가 나오는 것도 그중 하나의 예입니다.
옥잠화.
여름에 순백의 꽃을 피운다.
향기도 좋다.
© 제공: 조선일보
6. [김민철의 꽃이야기] 이길여 총장의 단 한번의 ‘플라타너스 로맨스’
가천대 이길여 총장이 대담 형식으로 삶을 회고한 책, ‘길을 묻다’를 읽다보니 본인의 로맨스를 다룬 챕터도 있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사는 이 총장이 겪은 ‘단 한번의 로맨스’라고 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1960년대 미국 유학 시절 청혼을 받고 고민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좋아했던 남자 얼굴이 ‘플라타너스 잎 사이로 비친 달빛 때문인지’
갑자기 섬뜩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거절하고 기숙사로 돌아와 밤새도록 울었다고 합니다.
2022년 5월 22일 서울 중랑구 중랑천을 찾은 시민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이른 더위를 피해 쉬고 있다.
뉴스1©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7. [김민철의 꽃이야기] 103세 김형석 교수 “사과나무 열매 맺는 인생 시기는 바로···”
103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강의할 때나 책을 쓸 때 인생을 사과나무에 비유합니다.
김 교수는 책 ‘김형석의 인생문답’에서
“내가 사과나무면 이제 사과나무 하나를 심어놓고 그 나무를 키워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열매 없는 사과나무는 의미가 없다”며
“그렇게 본다면 인생의 열매를 맺는 3단계가 가장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시기”라고 했습니다.
사과꽃 향기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사과농장 주인아줌마에게서 “잘 익은 사과 박스를 열 때 나는 향기”라는 말을 듣고 무릎을 친 기억이 있습니다.
사과나무꽃.
남강호 기자© 제공: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