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페달질이 자꾸만 느려지는 밀양강변길
김종성2024. 11. 18. 09:57
[한국의 강둑길 여행-4] 밀양강변 따라 고택과 마을을 만나는, 밀양 자전거여행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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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는 밀양강변길 |
ⓒ 김종성 |
낙엽이 지고 해가 일찍 저무는 쓸쓸하고 쌀쌀한 늦가을이지만, 빽빽하고 촘촘한 햇볕의 도시인 밀양(密陽, 경남)은 11월에 가을여행하기 좋은 고장이다. 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11월에 찾아가도 가을이 한창이다. 게다가 밀양에는 자전거 타고 가을을 느끼기 좋은 밀양강이 나있어 좋다.
밀양강의 최고 명소이자 랜드마크이기도 한 영남루에서 출발해 밀양강이 흐르며 만든 하중도(河中島) 암새들, 머물고 싶은 강변 고택 금시당과 월연정, 정다운 강변마을을 만나는 길이다.
이건 자전거여행 카페나 유튜브에도 나오지 않은 로컬여행코스로, 밀양시에서 진행한 밀양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가해 일주일을 머물면서 알게 되었다.
* 자전거 여행길 : 영남루 - 밀양관아 - 용평교 - 암새들 - 금시당 - 월연정 - 용평터널 - 모례마을 (1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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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현판이 걸려있는 고색창연한 누각 영남루 |
ⓒ 김종성 |
국보로 승격된 밀양강의 랜드마크, 영남루
밀양강의 최고 명소이자 전망대이기도 한 누각 영남루(밀양시 내일동)는 조선시대 3대 누각 가운데 하나로 보물이었다가 지난해 12월 국보로 승격되었다. 누각의 넉넉한 마루에 주민들과 관광객이 어울려 앉아 밀양강 풍경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 풍경이 정답다.
밀양 최고의 명소답게 밀양루 곁에는 무봉사라는 사찰과 밀양읍성, 아동산 둘레길 등이 나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누각 건너편에는 수십 년 업력의 뷔페식 보리밥집이 여럿 있는 밀양아리랑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영남루는 '시문(詩文) 현판 전시장'이라 불렸다더니, 누각 곳곳에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선생 등이 명필가들이 찾아와 기행문처럼 쓴 시문 현판이 즐비하다.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와 '영남루(嶺南樓)' 현판은 나이 지긋한 문화해설사가 특별히 자랑스러워하며 설명을 했다.
1843년 밀양 부사 이인재가 아닌 그의 아들 이중석(11세)과 이현석(7세) 형제가 썼다고 한다. 터져 나오는 관광객들의 감탄 속에서 문득 떠오른 건, 의대 입시반에 들어가 미적분을 배우고 있다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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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새들(오른쪽 아래)과 밀양강 그리고 용두산 |
ⓒ 김종성 |
밀양강이 휘돌아 흐르다 생겨난 섬, 암새들
영남루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리면 밀양 관아가 나온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다시 지은 곳이다. 곳곳에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고 관아 한편에서 한복을 무료로 대여해 주어 기념사진 찍기 좋다. 수요일에서 일요일까지 한복을 빌려준다.
밀양관아를 지나 용평로를 10여분 직진해 달리면 암새들(밀양시 용평동)로 건너가는 용평교가 나온다. 암새들은 밀양강이 곡선 구간을 휘돌아 흐르면서 흙과 돌이 쌓여 생겨난 작은 하중도(河中島)이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영주 무섬마을도 그렇게 생겨난 곳이다. 밀양엔 강이 만든 하중도가 또 있는데 시가지가 된 삼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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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드나무가 이어지는 암새들 강변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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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새들에서 보이는 산성산과 금시당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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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새들은 옛날에는 '암소(巖沼)들'이라고 하였단다. 용두산 용두암의 '암(巖)' 자를 따고 들 가운데 크고 작은 소가 많아서 '소(沼)' 자를 따서 '암소들'이라고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암새들'로 변했다고.
물놀이하기 좋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용두산·산성상 등 주변 산세가 좋다 보니 캠핑장과 가든, 카페 등이 생겨나 밀양시민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암새들 강둑길을 따라 밀양강과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는 용두산, 산성산을 바라보며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 좋다.
강가에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가로수처럼 이어져 살면서 강변풍경을 풍성하게 해 준다. 다른 나무라면 금세 뿌리가 썩어서 죽었을 텐데 새삼 놀라운 나무다. 밀양 아니 전국에서 가장 길다고 여겨질 만한 징검다리를 만나 건너보게 된다. 징검다리 너머로 보이는 쇠오리와 원앙새 등 철새들 모습이 반갑다.
밀양아리랑길(3코스)이 생길만하구나 싶을 정도로 암새들 강변은 자전거 페달질이 자꾸만 느려지게 되는 길이다.
밀양 최고의 강변고택, 금시당과 월연정
암새들을 한 바퀴 돌다 보면 강변고택 금시당(今是堂)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실은 고택을 지을 때 심은 장대한 은행나무가 먼저 보여 이 나무를 향해 가기만 하면 된다.
금시당(밀양시 활성동)은 조선시대 관직에서 물러난 이광진 선생이 고향에 머물며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조선 성종 때인 1566년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후손들이 1744년에 복원했다.
산성산 자락 밀양강이 굽이치는 언덕 위에 지어진 건물로 주변 자연과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서 있다. 배롱나무, 매화나무, 흰 소나무 백송 등이 사는 고택 안뜰을 거닐다 보면 휘돌아 흐르는 밀양강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고택 후문 옆에는 이광진 선생이 직접 심은 400살이 넘었다는 장대한 은행나무가 밀양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암새들에서도 눈에 띄었던 그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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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시당 마당에서 보이는 밀양강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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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에 들어섰는데도 나뭇잎이 아직 푸릇푸릇하고 노란 잎이 새치처럼 생겨나고 있다. 노란 은행잎이 나무에 가득해지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고택 바깥까지 줄을 선다고 한다.
만약 열매가 나는 은행나무였다면 이즈음 특유의 냄새로 인해 선비들은 공부하기가 힘들어지고, 고택을 찾는 관광객들이 오히려 줄어들었을 텐데···. 얼마 전 찾아갔던 서울 성균관 문묘에 있는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들도 숫나무인걸 보면, 옛 선인들은 은행나무의 암수를 구별해 심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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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시당 초입에 있는 밀양시 국궁장 |
ⓒ 김종성 |
금시당 초입에는 고택과 왠지 어울리는 밀양시 국궁장이 있는데, 나 같은 여행자들을 위한 주말·휴일 국궁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배워볼만하다.
체험비는 4천원으로 문의는 055-359-4625, 4637. 밀양강변의 또 다른 명소 고택 월연정은 금시당에서 자전거로 10여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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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 어울림이 돋보이는 월연정 일원 |
ⓒ 김종성 |
자연과 어울림이 돋보이는 고택 월연정
추화산 기슭 밀양강과 단장천에 만나는 곳에 자리한 월연정은 단순히 정자가 아닌 월연대, 쌍경당 등 여러 고택들이 함께 모여 있는 정사(亭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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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한 선비를 떠올리게 하는 밀양강 백로 |
ⓒ 김종성 |
조선 중종 때 한림학사를 지낸 월연 이태 선생이 기묘사화가 벌어지자 벼슬을 버리고 밀양에 내려와 1520년에 지었다.
월연(月淵)은 '달빛이 고요히 내려앉은 연못'이라는 뜻으로 이름처럼 주변 자연과의 조화로움이 돋보이는 곳이다. 전망대격인 월연대에서 바라보이는 밀양강 풍경이 한껏 고즈넉하다.
홀로 강 위를 거니는 중대백로 한 마리가 흡사 흰옷 입은 선비처럼 고고해 보이고, 강물 위로 펄쩍 뛰어 올라다가 떨어지는 물고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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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라마의 배경이 된 용평터널 |
ⓒ 김종성 |
월연정 곁에는 포토존 명소가 된 옛 철도터널 '용평터널'이 있다. 1905년 1월 1일 개통된 경부선 단선철도 터널이었는데 폐선 되면서 차들이 오가는 터널길이 되었다.
차 한 대만 다닐 수 있는 좁은 터널에 일정 간격으로 비치된 조명이 있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 몽환적인 기분이 든다.
용평터널을 지나면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는 듯, 쉬어가기 좋은 강변마을 모례마을(밀양시 교동)이 나온다. 철 따라 꽃들이 피어나는 너른 들판을 품은 둔치에 마을 방풍림으로 쓰였을 소나무들이 강변을 따라 서 있다.
아름드리 나무 아래 벤치가 있어 밀양강을 바라보며 자전거여행을 마무리 하기 좋다. 강가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는 아재 한 분이 밀양시 인증 동네 맛집이라는 '할매메기탕'을 알려줬다. 메기 매운탕 외에 평소 맛보기 힘든 메기구이도 맛볼 수 있다. 참고로 밀양강에서 잡은 메기는 아니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지난 11월 9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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