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그 가지 줄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 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19:14
이것은 애가인데 사람들이 부르고 또 불렀다. (쉬운 성경)
첫번째 젊은 사자는 자기 백성들을 학살한 왕 여호아하스를 의미하고,
두 번째 젊은 사자는 자기 백성들을 잡아먹은 포악한 왕 여호야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열매는 마르고 가지는 꺾이고 말라 불에 타버린 포도나무처럼 되어버린 이스라엘의 모습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정도의 멸망을 겪으면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인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원망과 저주를 퍼부어야 할 것 같은데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마음은 다름을 봅니다.
애가를 부르고 또 부르라고 하시네요….
이것이 예수님 믿는 사람의 모습인데 제가 그렇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가르쳐준데로 제 마음을 내버려 두어서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미워하며 비판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마음은 정말 다르네요.
슬픔의 노래를 부르고 불러라!
다름!
세상과 다름!
이 구별이 있어야 복음이 전해질텐데!
이 모습이 제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자와 포도나무의 비유로 남유다 지도자들의 불순종의 결과로 남유다가 멸망할 것을 말씀하시며, 회개와 순종의 필요성을 상기시킬 애가를 부르라 말씀하십니다.
어릴 적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부르며 고무줄 했던 기억, 6.25. 전쟁 후 쏟아져 나온 슬픈 노래들을 들으며 전쟁의 무서운 참상을 겪지도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민으로 많은 특권을 누렸지만, 교만함과 범죄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 모습이 될 수도 있음을 묵상합니다.
똑같은 죄를 반복하며 짓는 우둔함을 회개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깨달아 순종하며 살아가는 제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위해 슬픈 노래를 불러라 (1절)
지도자들을 위해 슬픈노래를 부른 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애잔함과 안타까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나와 상관 없지않은 상대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욕설만이 난무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비판과 욕이 아닌 기도해야 할 대상이라 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에 앞서 기도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비판할 대상이 있어도 먼저 기도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마음과 몸이 먼저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0-12 네 피의 어머니는 물 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우리의 믿음 처음보다 나중이 더 중요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믿음의 가정에서 나서 믿음안에 살았을지라도 나의 믿음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세상에 물들며 악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게 되면 좋은 포도나무가 분노 중에 뽑혀 땅에 던져지고 불에 탄 것과 같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이하며 더 아름답고 튼튼하며 열매와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와 같은 믿음의 자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