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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벳의 아들사랑
출 2: 1-10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날이 제정되던 당시만 해도 어린아이들이 너무나 학대를 받으며 천대를 받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를 사랑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그 한 가지가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어린이를 즐겁게 하자는 운동이었습니다. 요즈음은 과잉보호라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자기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분간하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봉독해드린 본문에는 한 민족의 지도자요 하나님의 대언자로 살던 모세를 낳은 요게벳의 아들사랑에 대한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중심해서 요게벳의 아들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1. 최선을 다한 사랑입니다.
요게벳이 모세를 낳을 때는 아들을 낳아서는 안 될 때입니다. 애굽의 정책이 히브리인의 인종을 말살하려는 정책으로 히브리인은 아들을 낳으면 하수에 버리라는 명령이 있던 때입니다. 만약 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즉시 사형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요게벳은 석 달을 숨겨서 키웠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한 모험입니다. 이것을 모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아이를 버려야 했는데 그 버리는 방법도 어머니로서의 최선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갈대상자를 만들어 역청으로 칠하고 그 안에 아기를 넣고 하수가 갈밭 사이에 조심스럽게 떠내려 보내고 그 누이 미리암을 시켜서 결국을 보게 하는 모습에서 최선을 다하는 요게벳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요게벳으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자기 자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에 대한 모습은 환경과 형편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처한 여러 가지 악한 조건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주님께서는 마27:37-40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한 사랑이라고 하십니다.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실한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서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방종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최선을 다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 하면서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사랑의 열매가 맺게 됩니다. 요게벳의 아들사랑은 억지가 아니고 최선을 다 했습니다. 우리도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이 억지가 아닌 최선을 다하는 진실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자녀를 그렇게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2. 유모의 사랑입니다.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만족을 포기하는 사랑)
미리암이 갈대 상자에 담긴 아기의 최후를 보기 위해서 몰래 따라가다가 애굽의 공주가 주어다가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고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추천했습니다. 그 유모가 요게벳입니다.
공주 앞에 나온 요게벳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데도 내 아들이라는 말을 못하고 공주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젖을 먹여서 키워야 했습니다. 아들이면서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아들을 위해서 그것을 억제하여야 했습니다.
젖을 먹일 때마다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그 아기의 장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그것도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속으로만 기도해야 하였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 마음을 하나님께 통하는 그런 기도입니다.
아들을 통한 자신의 만족과 기쁨은 전혀 찾을 수가 없고 오직 아들이 살아있고 그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였습니다. 생모의 권리와 사랑은 다 포기하고 그 아들을 바로의 공주에게 보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위대하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어머니 하나나가 자기의 아들이면서도 젖을 떼자 하나님께 드리고 아들을 자신의 만족이나 기쁨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생모로서의 권리를 하나님께 드리던 한나의 사랑은 그 사무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고 한 시대에 백성의 횃불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생모로서의 그 특권과 생모로서의 사랑을 포기하고 유모로서의 사랑을 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그것은 모세로 하여금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게 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이였습니다.
내가 난 자녀이기에 내가 내 방법대로 사랑하겠다는 생각 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기를 원하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때 입니다. 내 방법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사랑이 되어야하고 내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기의 미래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알맞게 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알게 하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아기가 가장 무사히 성장할 수 있는 길은 그가 히브리인이 아니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인 이라는 사실은 알게 되는 그 순간에 그의 인생은 파멸이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그의 근본을 알려주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게벳은 그 모세가 아기 때 그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히브리인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알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장성한 다음에 자기백성을 알게 됐습니다. 본문의 다음절에 보면 모세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히브리백성을 압박하는 애굽사람을 죽여서 모래밭에 묻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히브리서 11:24에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 모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머니 요게벳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그것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알게 하면 죽게 되는 환경에서도 요게벳은 모세에게 하나님을 알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세를 호렙산에서 부르시고 그에게 능력의 지팡이를 들려 주셨고 하나님의 집 맡은 충성된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꿈이나 이상으로 받았지만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말했고 다른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만 들을 수가 있었지만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요게벳이 그가 어릴 때 아기에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앞날이 예견되지만 그가 하나님의 백서백성인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고 지금도 살아 계시고 사람을 높게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시고 나라를 이 사람에게 주시기도 하시고 저 사람에게 주시기도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서 고난과 괴로움이 있어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지의해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크고 위대한 사랑입니다.
결론
요게벳의 아들사랑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랑 이였습니다. 아들을 위해서 생모의 권리를 포기하고 유모의 사랑을 베풀어야했습니다. 그리고 평생에 기억되도록 하나님의 백성일 것을 알려주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것이 모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민족의 지도자로 만들었고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사랑을 베풀어서 우리들의 자녀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으로 결단하면 하나님이 이루신다
(출 2: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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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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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오늘은 100일 기도회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현수막에 붙어 있는 것처럼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출애굽기 2장 1절로 10절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 결단하면 하나님이 이루신다’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
이스라엘의 구원자 중에는 모세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모세는 너무나도 존귀하게 쓰임받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인류역사 가운데 가장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기적을 일으켰던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세는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 레위기, 신명기 등 다섯 권을 기록한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인물입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사람이 되었을까요? 이는 놀라운 가문과 사람은 언제나 믿음을 가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이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여기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이름도 기록될만한 가치가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통하여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위대하고 존귀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출신과 모든 환경을 떠나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헌신하면 그 믿음을 보시고 놀랍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그렇게 이렇게 이름도 없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였으나 이 부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레위인이기 때문에 땅도 없고 집도 없고 아무 것도 없었지만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부는 자식을 낳았지만 애굽나라의 법 때문에 아기를 죽여야 될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애굽 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까, 애굽 왕은 위협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전쟁 날 때에 적과 함께 반역할까봐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 남자를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태어나면 죽이거나 나일강에 빠뜨려서 죽였던 것이다. 자기 자식이라서 죽이고 싶지 않지만 법이 그렇기에 어쩔 수 없어서 많은 남자아이들이 죽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았던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기를 죽일 수 없다고 하고 숨기게 된 것입니다. 보편적인 상황에서는 가족이 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죽음을 택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석달 동안 아이를 숨기며 양육을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3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모세의 부모는 바로 왕의 명령도 무서워 아니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겠다는 부모의 결심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항상 모험과 위험이 따릅니다. 동반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려고 하다가도 위험 에 처하게 되면 대부분이 환경을 탓하게 됩니다.
“안되면 어떻게 할꺼야. 주일을 지킨다고 직장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할꺼야?, 먹고 살기도 힘든데 십일조를 어떻게 떼어서 드릴 수 있느냐?” 그래서 믿음에는 모험이 따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으로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믿음으로 따르고 행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믿음은 인간이 볼 때에는 위험스럽고 모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믿음의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험과 모험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 계신데 두려울 것이 무엇입니까? 정말로 우리가 바른 믿음을 소유했더라면 두려울 것이 뭐가 있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믿음의 길로 가다가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절망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독수리처럼 살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모이나 쪼아먹는 닭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믿음의 길로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모세의 부모는 위험에 처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자기에게 전심을 향한 이들을 택하시고 사용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에게 홀딱 반하십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다윗은 어린 나이에 보잘것없는 목동이었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살리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살리라” 라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의 다윗을 보시고 이후에 전무후무한 훌륭한 왕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도 결단을 내리고 믿음으로 사니까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사람이 되고 비범한 가문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에서 존귀하게 쓰임받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여 주십니다. 눈으로 보이는 환경 때문에 절망하고 신앙을 팔아먹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실망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의뢰하는 사람들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여 주시고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늘 일상생활에서 겪듯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갑자기 상황이 달라집니까? 기도한다고 해서 갑자기 순식간에 상황이 달라집니까? 아닙니다.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실제 상황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부모 역시도 날마다 기도하고 살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한 달 해보고 두 달해보고 시도는 해봅니다. 그러다 안되면은 “이제는 할 수 없습니다. 안됩니다. 못합니다” 하며 포기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절대로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모세부모는 아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 아이를 이 땅에 보내셨다면 살 길이 있을텐데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라며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세의 부모는 이렇게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에 법에 따라서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양자로 삼으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바로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다 죽이라고 하는 판국에 어느 누구가 감히 이스라엘 사람을 양자로 삼겠습니까? 그렇게 했다간 그 가족이 다 죽을 판국인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법은 거의 희박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불가능하게 보여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절대로 포기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0.00001%의 확률 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은 절대로 낙심하지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남들이 듣는다면 어떨까요? 배꼽을 잡고 웃고 가당치 않게 생각하고 말고 안되는 이야기를 한다면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갈대를 가져다가 상자를 만들고,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역청을 칠해서 나일 강에 띄웁니다. 그 안에 강보를 깔아서 갈대 사이에 띄웁니다. 그리고 모세의 누나를 보내 멀리서도 지켜보게 하였습니다. 이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너무 어리석은 짓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띄운다고 이 아이를 누가 건져내어 양자로 삼겠습니까? 아니 물에 빠지지만 않아도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야말로 전혀 확률이 없는 로또복권 1등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누가 보더라도 허황된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된다. 못한다. 죽었다” 이런 말들은 입 밖에 나오면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이 역사하실 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에 대한 기대를 갖습니다.
오늘 먹을거리가 없어도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 확률이 너무 희박해보여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새벽에 나와 기도할 때에도 “주여 우리를 인도하시고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저의 모든 상황도 달라질 줄 믿습니다. 저는 이름도 없는 가문과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의 가문과 가정도 달라질 줄로 믿습니다.” 라고 이렇게 기대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에는 “정신차려 이놈아”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주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실 줄을 믿습니다” 라고 기대를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방법을 물어보면 기대가 무너지게 될 때가 너무 많습니다. “기도한다고 되나? 나도 작정기도해 보았는데 되는 것이 없더라” 이런 말들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사라지면 기대도 사라지게 됩니다. “믿음만 있으면 내가 언제나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라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항상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 믿음으로 갖고 기대하면서 하나님께서 다 맡기고 기도하며 준비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두 다 이루어주십니다.
‘내가 못하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능력이 없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다 맡기고 나는 그냥 기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해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했더니 어느 날 바로의 공주가 나일 강에 목욕하러 나왔다가 갈대상자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하여 가져오게 했다가 모세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아이를 보는 순간에 이 공주는 “우리 아버지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하니까 이 집의 부모는 애기를 죽일 수가 없어서 이 갈대 상자에 담아서 이 강가에 띄었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공주는 모세를 보는 순간에 너무 불쌍한 마음이 강렬하게 생긴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그리고 이 아이를 보는 순간 너무너무 아릅답게 보여졌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공주의 마음에 “내가 이 아이를 나의 양아들로 삼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 목욕하러 나올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것도 그 시간에 절묘하게 타이밍까지 맞아가며 정확하게 모세를 발견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처럼 모세의 부모는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병하게 하실 수 있음을 믿고 기도하고 기대하니까 기적같이 모세가 살아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평범한 애굽 사람의 가정이 아니라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던 바로 왕의 왕궁에서 자라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로의 공주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남의 불행도 선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공주가 아이를 낳은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히브리 아이를 그것도 아버지가 죽이라는 그런 민족의 아이를 양아들로 삼았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불행도 남의 불행도 나의 불행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악어의 밥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기적적으로 공주의 아들로 바뀔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적같이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공주의 마음을 바꾸시니까 공주의 마음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몇 번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다고 절망하며 “이제는 죽었다고, 이제는 끝났다고 이제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그렇게 낙심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을 모르시기 때문에 하는 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귀에 들리는데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14장 28절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그러므로 기도응답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고 응답을 주실 때까지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대하면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부터 100일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주 후엔 부활주일인 4월 24일에 새생명 100명을 목표로 기도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냥 막연하게 생각한다고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모세의 부모처럼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태신자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간절하게 기도해야 하고 더 나아가 그 집에 방문하여 그 분들을 만나야 합니다.
집에 없을 때에는 그 집의 현관문이라도 붙들고 구원이 임할 수 있도록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하나님이 역사를 일으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앞에 보이는 현수막 보이시죠? 맨 위에 있는 성경말씀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입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을 두고 이루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행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룩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면 반드시 그 소원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마음에 두시고 100일 기도와 새생명 100명을 놓고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만남이 인생입니다
출 2: 1-10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 보지 마라. 후회하지 말라. 아 바보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유행가 가사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택시 기사는 하루 종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집니다. 만남이 인생입니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향기를 진하게 발산하는 진흙 한 덩어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진흙 한 덩어리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온 몸에 향기가 진동하였습니다. 나그네와 진흙과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네가 그 유명한 바그다드의 진주냐?><아닙니다.><그러면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아닙니다.><그럼 너는 무엇이냐?><나는 한 덩이 진흙일 뿐입니다.><그러면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그 비결은 내가 백합화를 만나 함께 오래 살았기 때문입니다.>냄새나는 진흙이 백합화를 만나 오래 살고 나니 향기를 발하는 바그다드의 진주같이, 인도의 사향같이 아름다운 물건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사람을 만나 망하기도 하고, 저 사람을 만나 흥하기도 합니다.그 사람을 만나 살 사람이 죽기도 하고, 그 사람을 만나 죽을 사람이 살기도 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그 사람의 일생이 됩니다. 모세를 중심으로 살펴 보려고 합니다. 모세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잘 만나서 이스라엘 최고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1. 부모를 잘 만났습니다.
모세 아버지는 아므람, 어머니는 요게벳입니다. 두 분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가 기하급수로 늘어 나는 것을 보고 불안을 느꼈습니다. 저들이 자기 나라를 지배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온통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명령을 내렸습니다.<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이어든 살리라>(출1;22)
모세는 이스라엘 여자들이 아이를 잉태하게 되면 <하나님! 딸 낳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던 때에 태어났습니다. 그 때 태어난 남자 아이는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태어난 남자 아이중에 유독 모세만 살았습니다.사실은 그 상황에서 모세만 살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기적입니다.
모세 부모가 모세를 살린 것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모세에게 바른 교육을 시킨 것은 더욱 위대한 부모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아마도 모세 어머니는 젖을 빨리면서 이렇게 교육을 시켰을 것입니다.
<모세야! 너는 궁중으로 갈 것이란다. 그러나 너는 애급 백성이 아니라 이스라엘 뿌리란다. 너는 궁중의 행복보다 노예의 아픔을 선택하여야 한다. 너는 특별히 죽었다가 살아난 몸이다. 제2의 생을 살고 있단다. 하나님이 너를 살리신 것은 엄청난 뜻이 있다.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400년간 노예생활이 끝나면 다시 해방시켜 주신다고 하셨단다. 지금이 약속의 때란다. 하나님은 너를 지도자로 쓰시려고 예정하고 계시단다. 모세야!
하나님은 너에게 기대하고 계시고 우리는 너를 바라보고 있고 민족의 운명은 네게 달렸단다. 가더라도 하나님을 잊지 말고, 가더라도 민족을 버리지 말고, 가더라도 사명을 뼈에다 기록하여라.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단다.>
드디어 모세가 젖이 떨어지자 공주는 모세를 궁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외경에 보면 모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낮에 걸어가면 해가 떠가는 것같았고 밤에 가면 달이 떠가는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모세가 애급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7;20)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이 있습니다. 정말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철저한 궁중의 40년의 교육과 어머니 품안에서의 짧은 가정 교육중에 어떤 교육이 승리하였을가요? 판결이 났습니다.
<나이 40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 볼 생각이 나더니>(행7;23)
가정 교육은 궁중교육을 보기좋게 패배시키고 말았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어머니의 교육이 40년 가량의 교육을 이겼습니다. 조직적인 교육이 대강하는 것같은 교육에 졌습니다. 교재를 가진 교육이 교재가 없는 대강하는 교육에 지고 말았습니다. 혼자 하는 교육이 여럿이 하는 교육을 이겼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믿음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3-25)
모세는 부모님을 잘 만났습니다.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나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부모를 잘 못 만나 고생만하는 비참한 사람도 있습니다.
아간 아들들은 부모를 잘못 만나 공연히 아골골짜기에 끌려가 돌로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 자녀는 부모를 잘 만나서 죽을 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부모를 잘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부모를 얼마나 잘 만났는 지 모르지만 여러분은 여러분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배우자를 잘 만났습니다.
성공적인 인생, 그리고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을 잘 살려면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 곳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였습니다. 십보라는 대단히 지혜로운 여자였습니다.
모세는 부모가 아니었으면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내 십보라가 아니었어도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급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아내 십보라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미디안 광야를 떠나 애급으로 향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 지라>(출4;24)
모세는 왜 하나님이 자기에게 사명을 주시고 죽이려고 하는 지 몰랐습니다. 그 때 아내 십보라가 하나님의 뜻을 빨리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차돌을 주웠습니다. 그것으로 아들 게르솜의 양피를 베어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벤 양피를 모세 앞으로 던지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남편입니다.>
하나님이 지혜로운 십보라의 행동을 보시고 모세를 살려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엄한 명령인 자녀를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법밖에 있어도 되지만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니까 하나님의 율법안에 있어야 했습니다. 모세는 몰랐는 데 십보라는 알았습니다. 모세는 지혜롭고 좋은 아내 덕분에 살았습니다. 모세는 죽을 고비고비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의 사람들이 살려 두었습니다.
한 마디로 모세는 사람을 잘 만난 사람입니다.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 두 여자가 무더운 여름에 산꼭대기에서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내려오더니 물가에 가서 온 몸을 물에 담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옷입은 채로 들어 갔습니다. 무더위를 참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다. 알고 보니 옆에 자루가 있는 데 그 자루안에는 암에 좋다는 상황 버섯, 싸리 버섯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따오면 얼마나 버느냐고 물었습니다.<팔려고 이 고생하나요?> 이렇게 대답하기에 이상하여 캐 물었습니다.
남편이 10년 전에 위암 말기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치료를 포기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이 아내는 계룡산을 삿삿이 뒤지면서 암에 좋다는 약초란 약초는 다 캐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끓여 남편을 주었습니다. 나앗습니다. 고침받았습니다. 지금은 계룡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칭찬하였습니다.
<그 분은 아내 잘 만나서 살았군요.>그 여자가 겸손하게 대답하였습니다.
<다 자기 복이지요.> 아름다움 부부였습니다.
내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어느 집이 헐어서 벽을 헐고 다시 지으려고 하다가 인부들이 깜짝 놀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벽속에 10년 전 그 벽을 쌓을 때 다리를 못에 찔린 채 매달려 있는 도마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는가 보았더니 암컷이 못에 찔린 남편 숫컷을 10년간 먹을 것을 물어다 주어서 살린 것이었습니다.도마뱀의 순애보입니다. 동물의 사랑도 이 정도입니다.서로 잘 만나야 합니다. 서로 좋은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좋은 부부도 많고, 그럴 수 없이 나쁜 남편, 그럴 수 없는 나쁜 아내도 많습니다. 사람같지 않은 남편 때문에 속상해 하는 아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내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남편도 많이 만났습니다.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지금 만나 사는 상대방과 조화를 잘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만난 상대방과 서로 좋은 배우자가 되어 주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3. 동역자를 잘 만났습니다.
모세는 좋은 옆 사람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말에 둔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가시떨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4;10) 하나님이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시며 노를 발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 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이 기뻐할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출4;14-16)
이후 아론은 모세를 끝까지 보필하였습니다. 아론이 형입니다. 모세가 동생입니다. 형이 동생을 끝까지 보필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세는 옆에서 같이 일할 옆 사람 동역자를 잘 만났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훌을 만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멜렉과 전투할 때 모세는 산위에서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 들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팔이 아파서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졌습니다. 다시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이 때 아론과 훌이 와서 모세의 두 팔을 각각 쳐들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같은 목사님의 동역자가 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훌은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훌이라는 이름이 39년 동안 광야에서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책을 보면 훌은 금송아지 우상 만드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우상 만드는 이들은 훌을 돌로 때려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모세는 산위에서 죽었으니 우상을 만들어 우리를 인도하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훌은 죽기까지 모세 편에서 서서 반드시 모세는 내려 올 것이라고 믿고 모세 편을 들었습니다.훌은 죽기까지 모세에게 충성하는 옆 사람 동역자였습니다.
친구따라 강남갑니다. 친구따라 천국갈 수도 있고, 친구따라 지옥갈 수도 있습니다. 동역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이것이 만남의 축복입니다. 좋은 옆 사람을 만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내가 옆 사람에게 좋은 이웃이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4. 하나님을 잘 만났습니다.
모세는 세 종류의 사람을 다 잘 만났습니다. 모세는 부모를 최고로 잘 만났습니다. 아내도 잘 만났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잘 만났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모세다워진 것은 가시떨기에서 하나님을 만난 다음이었습니다.
사람도 잘 만나야 하지만 하나님을 확실히 만나야 합니다.비록 부모를 잘 못 만났다 할지라도, 비록 결혼에 실패하였다 할 지라도, 비록 옆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자기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악인을 만났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만 잘 만나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이 사람을 만나 이리로 갈 수 있고, 저 사람을 만나 저리로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를 만나느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치료하여 보려고 아무리 용하다는 의사를 다 찾아 다녔습니다. 좋다는 약 다 먹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허사였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약이었습니다. 말씀이 보약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의사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됩니다.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어린 모세와 어머니 요게벳
출애굽기 2: 1-10
1. 레위 족속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었더니
2.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
3.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 누이가 어떻게 되는 것을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하숫가에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이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
7.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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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가장인 아버지의 직업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도둑질을 전문적으로 잘 하였기에 온 가족이 부요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 둘은 장성하여서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중간쯤 되는 한 아들이 아버지가 점점 나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도둑질하는 것이 옛날 같지 않은 것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어린 동생들이 있습니다. 이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 받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께 자기의 바람을 말하자 아버지는 무척 기뻐합니다. 드디어 자기의 직업을 물려줄 아들이 생긴 것입니다.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한 건을 할 계획을 세웁니다. 아버지는 그 날 밤 찾아갈 집에 대해 아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그 집을 털 계획을 같이 짭니다.
드디어 깜깜한 밤중에 그 집에 침입해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큰 옷장에 들어가서 가장 비싼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명령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합니다. 아들이 옷장에 들어가자마자 아버지는 옷장 문을 밖에서 잠갔습니다. 아들을 옷장에 가두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슬며시 빠져 나오더니 창문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도둑이요. 도둑이요.”
모든 가족이 깨어나서 도둑을 잡으러 온 집을 뒤집니다. 옷장 안에는 불쌍한 아들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분통해 하고 있습니다. 식은 땀이 이마에서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아버지의 무자비한 행위에 이를 갑니다.
그런데 그 집 가족들은 도둑이 도망간 것을 느낍니다. 사실 아무 것도 훔쳐간 것이 없음을 발견합니다. 한편 옷장 안에서 아들은 어떻게 도망갈까 궁리합니다. 조용히 생각하다가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쥐가 벽을 갈아먹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여주인이 이 쥐 소리를 듣더니 옷장 문을 엽니다. 순간 아들 도둑은 옷장 문을 열고 줄행랑을 칩니다. 그런데 바깥은 달이 환하게 비취고 있었습니다. 도둑의 뒤를 따라 하인들이 쫓아 달려옵니다. 도둑은 그 근처에 큰 우물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는 우물에다가 큰 돌을 풍덩 던져 넣었습니다. 하인들은 우물물 소리를 듣고 도둑이 우물에 숨을 줄로 알고 우물 주위에 모입니다.
도둑은 열심히 달려서 집에까지 갔습니다. 순간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활짝 웃으면서 팔을 크게 벌리며 아들을 환영합니다.
”Congratulations! 너는 나의 뒤를 따르는 명 도둑이 되었구나.”
오늘은 어린이 주일로 지킵니다. 어린이 주일 설교라면 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엉뚱한 이야기를 먼저 소개한 기분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오늘 어른들의 모습이 바로 이 아버지 도둑의 모습이고 어린이들이 아들 도둑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 도둑은 아니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이 계실 줄 압니다.
스티브 파라 (Steve Farrar)라는 분이 문제아 자녀를 만드는 9가지 길을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소개했습니다.
1. 어릴 때부터 자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라. 자녀는 세상이 자기에게 무엇인가 빚져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2. 자녀가 나쁜 말을 할 때 재미있다고 웃어라. 스스로 멋진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3. 영적인 훈련을 전혀 시키지 말아라. 21살까지 기다려라.
4. ”잘못됐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언젠가 자녀가 커서 자동차를 훔치다가 잡히면, 세상이 자기를 박해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5. 자녀가 흘린 것을 쫓아다니면서 주어라. 그는 모든 책임을 이웃에게 전가시킬 것이다.
6. 손에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읽도록 내버려두어라. 그의 두뇌에는 쓰레기가 가득 찰 것이다.
7.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자주 하여라. 후에 가정에 문제가 생겨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8. 친구와 이웃, 선생님과 문제가 생겼을 때 언제나 자녀 편을 들어라.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에게 편견을 갖고 있음을 자녀는 느끼게 될 것이다.
9. 언젠가 올 슬픔의 때를 준비하여라. 기어코 슬픔의 때가 올 것이다.
이 아홉 가지대로 우리가 산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자녀를 도둑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우리 주변의 어린이들을 어떠한 마음으로 길러야 할까요?
모세와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삶을 통해 오늘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II. 본론
1.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자 모세
모세가 태어날 즈음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땅에서 크게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번성하는 것을 보고 위협을 느낀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이 자녀를 낳을 때 아들을 낳으면 강에 버리고 딸을 낳으면 살려 두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제 어느 레위 지파 청년이 장가를 들었습니다. 곧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마도 부모의 마음은 이 아이가 딸이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딸이어야지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낳고 보니 아들이었습니다. 이 아들은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악어들의 밥이 될 운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너무도 잘 생겼습니다. 욕심이 생겨서 석 달 동안 숨겨서 길렀습니다. 약 백일이 지났습니다. 한국식으로 하면 백일 상을 치렀을 텐데 백일상은커녕 백일이 지난 후 어쩔 수 없이 상자를 가져다가 잘 손질해서 그 안에 아이를 넣어서 갈대숲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누나가 멀찍이서 어떻게 될까 지켜보았습니다.
이 때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러 강에 나왔다가 상자를 발견하고 열어 보았습니다. 공주는 이 아이를 보자 불쌍한 생각이 들어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아이의 누나가 공주에게 가서 유모를 구해 주겠다고 제의합니다. 공주는 이 아이 누나의 말대로 유모에게 맡기게 합니다. 아이 모세는 다행히도 건짐을 받고 어머니 품에서 자라게 됩니다.
모세는 더없이 귀한 시간을 어머니와 보내게 됩니다. 꽤 성장한 후 아이 모세를 공주에게 다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공주는 ‘모세’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모세는 ‘건지다’라는 뜻인데 바로 ‘물에서 건지다’라는 의미로 모세라고 이름을 지어줍니다. 이 물에서 건지어진 모세가 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지는 놀라운 민족의 지도자가 됩니다.
모세가 그처럼 위대한 지도자가 된 이유 중 제일 으뜸가는 이유는 모세가 어린 시절을 어머니와 아름답게 보냈기 때문인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줄 압니다.
로버트 풀검 (Robert Fulghum)이란 분은 “나는 유치원 시절까지 가장 귀한 지식을 다 배웠습니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den)”란 책을 썼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를 우리 되게 한 한 장소(place)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는 위험하게도 우리의 이 소중한 곳을 멸시합니다. 가볍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로 이 소중한 곳에 등을 돌립니다. 그 결과는 자기 경멸만 남게 되는지도 모르면서......
사실 우리는 이곳으로 곧 우리의 집으로 늘 찾아가야 합니다. 또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이곳을 찾아감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깊은 곳을 성화시키는 것입니다.”
로버트 풀검은 우리의 어릴 때에 추억이 바로 우리의 ’깊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이 ’깊은 곳’이 바로 우리가 우리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깊은 곳’을 찾아갈수록 세상에서 더욱 멋진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토록 위대한 지도자가 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깊은 곳’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와의 아름다운 삶이 그의 깊은 곳이었습니다. 모세를 모세 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울 때마다 그 곳을 찾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힘을 얻고 주어진 사명을 늘 감당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로버트 풀검은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자기의 ’깊은 곳’을 철없이 경멸합니다. 이 ’깊은 곳’에서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의영광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은 사실 ’깊은 곳’을 철없이 경멸합니다.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깊은 곳’ 없이는 그들은 참 자신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이 ’깊은 곳’을 선물로 줄 자는 바로 우리 부모들이 아니겠습니까?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에게 준 선물은 바로 이 ’깊은 곳’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깊은 곳’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장성하면서 세상에서 살아갈 때 늘 이 ’깊은 곳’을 방문하고 또 방문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주님의 영광교회 성도 여러분,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처럼 우리도 자녀들에게 ’깊은 곳’을 마련해 주십시다.
그러면 자녀들에게 깊은 곳을 마련해 주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생각해 보십시다.
2. 모세를 믿음의 용장으로 키운 어머니 요게벳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어떠한 눈으로 보았을까요? 모세의 어머니는 건짐을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놀라운 아이라 생각하면서 아들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어린 모세의 ’깊은 곳’은 바로 ’어머니의 눈’이었습니다. 아들을 건짐을 받은 아들이라 생각하면서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도 잘 생겼을 뿐 아니라 강물에 띄웠을 때 때마침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바로의 딸이 나와서 목욕을 했고, 이 바로의 딸이 모세를 건져내어서 모세의 어머니에게 맡겼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며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바라봅니다. 모세 또한 어머니의 눈을 바라봅니다. 깊은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Honeymoon baby, accident baby, 가족계획 baby 등 우리의 자녀들은 이상한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받은 별명이야 어떻든 오늘날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의 자녀들 모두가 ‘Moses(건져냄)’이라는 별명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봅니다.
1974년 이후 현재까지 미국에서는 2천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낙태(abortion)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150만 명의 어린이가 낙태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의 이혼율은 60%에 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녀들의 반 이상이 결손 가정(broken family)의 아픔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눈을 세계로 돌리면 지난 10년간 전쟁에서 군인들이 죽은 것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전쟁의 희생양으로 죽어 갔습니다. 수백만의 아이들이 전쟁과 에이즈(AIDS), 매춘(Prostitution), 강제노역 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눈을 조금만 밖으로 돌려도 우리는 오늘날의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 좋은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들은 건짐을 받은 자녀들이 아닐까요? 그러면 우리는 모세의 어머니의 눈길을 가지고 우리의 자녀들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3. 광야의 믿음의 지도자로 자란 모세
모세가 요게벳이 제공한 그 ’깊은 곳’에서 자라나 광야의 믿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지녀들을 위하여 신앙의 ’깊은 곳’을 제공한다면 여러분의 자녀들도 모세와 같은 지도자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도 기대하지 않다가 태어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6.25가 막 끝나기 4개월 전에 부산 피난민촌에서 쌍둥이 중에서도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피난 시절 태어나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도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났으니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임에는 틀림 없었지만, 그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로 태어난 자가 지금은 큰 교회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가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의 따스한 눈길이었다고 그는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꿀꿀이죽도 못 얻어 먹는 가장 어려운 그 때에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태어났는데 그 때 부모님이 믿음으로 그를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그가 과연 오늘날 아름다운 주님의 귀한 강단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을까요? 그를 오늘 그곳까지 오게 한 것은 그의 부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깊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도 모두 태어난 경위는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자녀들은 모두 모세의 어머니와 같은 따스한 눈길을 받기에 전혀 부족한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세의 어머니의 눈길을 받지 못할 때 우리의 자녀들은 ’깊은 곳’을 상실케 됩니다. 그 결과 도둑의 인생길을 가게 될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의영광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은 모두 모세와 같이 건짐을 받은 자들입니다. 모세의 어머니의 눈길로 자녀들을 바라보십시다. 이 때 우리 자녀들은 삶의 ’깊은 곳’을 체험할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건짐을 받은 모세를 바라보다가 언젠가 갑자기 모세 안에 주어진 놀라운 사명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바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건지신 이유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을 사명을 받은 자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에게도 건짐 받은 자의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1995년 서울에서 GCOWE (세계복음화를 위한 지구촌 대회)가 열렸었습니다. 4,500명의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였고 38명의 소년소녀들이 모였습니다. 38명의 어린이들은 전세계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마침 이 때가 아프리카에서 공포의 바이러스인 Ebola Virus가 기승을 부릴 때입니다. 걸리면 거의 다 죽는 공포의 Virus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이 Ebola Virus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을 듣고 38명의 어린 용사들은 8시간 이상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며칠 후 TV와 신문에서 Ebola Virus가 갑자기 힘을 잃었다고 보도를 하였습니다.
질 존스턴 (Jill Johnstone)이라는 기독교 저술가가 Children’s Prayer Club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질(Jill)은 어린이들에게 Albania 사람들은 공산권 나라라서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도 없고 책을 읽을 수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몹시 슬퍼하더니 그 후로 아이들은 모일 때마다 Albania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Albania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공산권이 무너지고 종교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Jill Johnstone은 그의 책에서 어린이들의 기도가 Albania를 뒤바꾸어 놓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두 이야기는 “Why Children Pray”라는 책에서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그 책에서 오늘날 어린 아이들의 기도로 세계가 변화되고 있음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금도 온 세계는 어른들의 기도보다 어린이들의 기도로 더욱 변화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이들의 기도로 세계 역사를 새롭게 창조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 자녀들의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영광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녀를 건짐을 받은 자로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 자녀들을 사명자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귀한 사명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큰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온 세계는 그들의 기도가 필요한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기도의 능력이 큰 것을 그들에게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자녀들은 ’깊은 곳’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과감하게 어린 자녀들에게 기도를 부탁해야 합니다. 그들의 기도의 능력이 우리보다 큰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영광교회는 어린이 사역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우리 어린이들은 모두 건짐을 받은 자녀들입니다. 이들의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깊은 곳’을 마련해 주십시다.
우리가 우리 교회 어린이들을 모세와 같이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자로 바라볼 때 어린이들은 자기의 ’깊은 곳’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어린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십시다. 그들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온 세계를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온 세계를 새롭게 창조해 나갈 것입니다.
뉴욕, 커네티컷과 펜실베니아에는 Bruderhof라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 꼭 방문하고 싶은 곳입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려는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에서는 좋은 책들을 많이 발간하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의 대표자로서 조안 크리스토퍼 아놀드(Johann Christopher Arnold)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family life를 무척 강조하는 분입니다. 이 분은 자신의 ’깊은 곳’을 소유한 분입니다. 그는 자신의 ’깊은 곳’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나의 어린 시절 가장 아름다운 추억은 저녁 시간 온 가족이 함께 밖에 나와 앉아서 아버지가 들려주는 예수님 이야기, 순교자 이야기, 지나간 훌륭한 신앙의 위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남아메리카 파라과이의 어느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거기에는 전기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깜깜해지면 우리는 촛불을 켜고 계속 앉아 있습니다. 우리 집은 삼림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들의 소리도 듣곤 했습니다. 우리는 무서워질 때면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부모님들은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 안에서 생기는 용기에 대해 말해주곤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용기, 노래, 이야기,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참 모습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깊은 곳’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영광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은 위험 가운데서 건짐을 받은 귀한 사명인들입니다. 그들에게 깊은 곳을 제공하십시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세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에게 여러분들의 깊은 곳을 제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들이 그곳에서 모세와 같이 위대한 지도자로 자라날 것입니다.
III. 결론
우리 주님의영광교회 성도님들은 어린 모세를 믿음의 지도자로 길러낸 어머니 요게벳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우리의 귀한 자녀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길러 주어서 모세와 같은 민족의 지도자로 세계의 지도자로 키워내서 주님께 잘했다고 칭찬 받는 종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