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백부장을 칭찬하신 예수님/ 누가복음 7:1-10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9QLvkIWivQo
유대인의 격언에 ‟평판은 최고의 소개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는 것은 명예로운 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들었습니다. 로마의 군인 백부장은 그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장로 몇 명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유대 장로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라며 간절하게 구하였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유대인들이 얼마나 배타적인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백부장을 칭찬하며 백부장의 종을 위하여 예수님께 나아올 정도로 백부장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대인들에게만 좋은 평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놀라운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사역하실 때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이 예수님께 백부장의 종의치료를 부탁하였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그 종은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예수님은 장로들의 요청을 들으시고는 백부장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주님이 백부장의 집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주님에게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9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그의 믿음을 칭찬 하셨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을 대신해서 예수님께 나아왔던 장로들이 백부장의 집으로 돌아가 보니 종이 이미 나아 있었습니다.
오늘 설교는 “백부장을 칭찬하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주님은 차별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 기적은 구원의 개방성을 보여줍니다. 먼저 이 기적은 이방인 백부장에게 베푸신 기적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지옥의 땔감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원을 자신들만 받을 수 있는 전유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이방인 백부장의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이 기적은 하찮은 종이고 중풍병에 걸린 사람에게 베푸신 기적입니다. 그는 그 당시 시대상으로 볼 때 쓸모없는 도구였습니다. 여기 종은 노예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노예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노예는 살아 있는 도구에 불과했고 물건처럼 취급 되었습니다. 노예는 법적 권리를 하나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자기가 좋은 대로 노예를 얼마든지 자유롭게 하든지 학대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저술가 바로(Varro)는 농업에 사용되는 농기구를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언어를 가진 도구, 언어가 없는 도구, 소리 없는 도구 등인데, ‘언어를 가진 도구’는 노예입니다. ‘언어가 없는 도구’는 가축이고요. ‘소리 없는 도구’는 운반수레입니다. 노예는 짐승이나 마차처럼 취급 되었습니다. 그것들과의 유일한 차이란 노예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낡아서 못 쓰는 농기구를 내다 버리는 것처럼, 노예가 늙거나 병들면 주인의 뜻대로 얼마든지 내다 버려 죽게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그러한 상황에서 주님은 그 하찮은 사람에게도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구원의 개방성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주님께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후에 천국의 자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8:11,12입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예수님은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상황을 접촉점으로 삼아서 구원의 개방성을 말씀하셨습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했는데 그들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방인들입니다. 주님은 이방인들이 천국에 자리에 앉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유대인들은 구원은 선민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원은 온 인류에게 적용된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구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셔서 삭개오를 만나셨습니다. 그 당시 창기들과 함께 죄인의 대명사가 세리였는데 그는 세리장이며 부자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니 사람이 수군거렸습니다.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그런데 주님은 놀라운 선포를 하셨습니다. 눅 19:9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구원의 개방성입니다. 구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롬 10:11-13을 보겠습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주님의 구원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시인하면 차별없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의 구원과 기도응답과 치유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2. 주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친절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백부장이 원하는 대로 해주셨습니다. 3절을 보면 백부장은 사람들을 보내서 예수님에게 자기의 집으로 오셔서 그 종을 치료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6절에 보면 주님이 백부장의 간구를 들으시고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6절과 7절에 보니 백부장이 주님에게 다시 벗들을 보내서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가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종은 즉시 치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사람들의 뜻에 휘둘리시는 모습이 아니라 주님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그 기도에 그대로 응답해주시는 분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아내의 결혼을 위한 기도를 좀 나누겠습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제 아내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모시고 독신으로 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제 아내에게 결혼 기도를 시키시더랍니다. 보통 하루에 3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결혼을 위한 기도제목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대로 다 이루어졌답니다. 제가 기억나는 몇 가지 기도제목은 첫째, 자기만 사랑해주는 남편입니다. 저는 제 아내를 만난 이후에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았으니 그대로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설교 잘하는 남편입니다. 자기가 교회생활을 해보니 설교 못하는 사역자들은 무시를 당하더랍니다. 또 하나는 어머니를 같이 모실 수 있는 남편이었는데, 그 기도대로 저는 결혼하면서부터 장모님을 모셨습니다. 그 외에 몇 가지 기도제목이 있었는데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가 기도를 잘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는 꼭 마무리 부분에서 “돈이 없어도 좋사오니”라고 했답니다. 그 당시에 제 아내가 외국인 회사에 다녔는데 월급이 많았기 때문에 돈은 자기가 벌면 된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제 아내의 기도를 다 응답해주셨고 마침표처럼 한 “돈이 없어도 좋사오니”라는 부분까지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가 가난했던 것은 순전히 제 아내가 기도를 잘못한 때문이다”라고 농담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 돈도 많아야 합니다.”라고 기도했다면 저희 집이 부자였을 텐데 말입니다. 기도는 잘해야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는데, 저와 아내가 큰 아들 모세를 가졌을 때, 그 아이를 하나님의 종으로 드린다는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아들의 인생을 가지고 제가 서원기도를 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모세도 6살 때 하나님의 종이 되기로 서원했습니다. 하루는 예배당에 장의자 방석을 깔아놓고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는데, 6살짜리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는 저를 흔들더니 “아빠! 하나님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하시는데요”라고 하더군요. 제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모세가 다시 저를 흔들더니 “아빠! 하나님이 ‘그것뿐이냐?”라고 하시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라“라고 말해주었는데요 잠시 후에 모세가 다시 저에게 하는 말이 ”아빠! 하나님이 ’내가 기쁘다.‘라고 하셨어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의도치 않았지만 하나님의 종이 되기로 서원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군대를 다녀온 후에 마음이 바뀌어서 음악을 하고 싶어서 드럼을 전공했습니다. 결과는 드럼을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깨가 파열 되어서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은 한 달이면 칠 수 있다고 했는데 드럼을 칠만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신 거죠. 그 이후에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했고, 미국 농림부 건물에서 서브웨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교포들에게 로또와 같은 자리가 난 것입니다. 그런데 준비를 하는 중에 코로나가 터져서 길이 막혔습니다. 또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그 후에 미국 버지니아 수도인 리치몬드에 있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 빌딩의 구내식당을 맡아서 하기로 했습니다. 조건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준비 중에 계약 조건이 바뀌며 그 길도 막혔습니다. 역시 하나님이 막으신 거죠. 그러는 사이에 위례신도시에 카페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일을 하고 보니 모세가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장사도 잘 되지 않았고요. 역시 하나님이 막으신 거죠. 심한 갈등으로 마음이 괴롭던 모세는 40일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33일 간은 카페에서 일하면서 금식하였고, 나머지 7일은 교회에서 금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카페를 문을 닫고 신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신학을 시작하고도 목회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어느새 목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가 전도사 사역을 나아가라고 했더니 전도사로 절대 안 나가단고 하더니 이제 내년부터 전도사 사역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좋은 사역지를 찾고 있습니니다. 모세가 이제 자기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더니 마음도 많이 편안해졌고 잃어버린 웃음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응답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약속했으면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신 23:21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서원을 했으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갚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잠시 박종순목사님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서원’이란 이행을 전제로 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해주세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간구와 약속을 ‘서원’이라 합니다. 사람끼리의 약속도 지키는 것이 건강한 인격인의 자세입니다. 약속을 무시하고 파기하고 없었던 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믿고 사귀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못할 서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럴 경우는 그냥 기도해도 됩니다. 그러나 서원 후 응답을 받았다면 지켜야 합니다. 나는 서원을 잊고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서원을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서원을 이행할 수 없거나 중간에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레위기 27장에 보면 서원한 사람이 서원을 지키지 못할 때에는 돈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대가마져도 지불할 수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레 27:8입니다.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네가 정한 값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 서원을 했으나 갚을 수 없을 때에는 제사장을 만나고 제사장은 그 사람의 형편에 맞게 값을 정해주라고 합니다. 서원한 사람은 반드시 서원을 지키든지 서원을 지킬 수 없을 때에는 그 서원한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과 세상 말로 쇼부를 봐야 합니다. 하나님과 단판을 짓는데 자기 혼자 하기 힘들면 주의 종을 통해서라도 하라는 말씀입니다.
잠간 곁길로 나간 것 같은데요. 지금 제가 하는 말은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를 잘해야 합니다. 여기서 서원기도 이야기를 잠간 한 것입니다.
3. 주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6절에 보면 백부장은 주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자기가 주님 앞에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장로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주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 됨을 알았기 때문에 감히 주님 앞에 나설 자격도 없다고 겸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의 겸손은 그가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모습니다. 주님의 위대하심을 보니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운 존재로 보였던 것입니다.
이때는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약 2년 정도 지난 때였습니다. 그동안 주님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눅 4:37입니다.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들을 치료해셨습니다. 주님은 열병으로 누워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해 질 무렵에 주님은 온갖 병자들에게 일일이 안수하셔서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소문을 백부장은 들었고 그는 주님이 위대한 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깊이 알지는 못했으나 주님의 빛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 두 가지 지식이 생깁니다. 하나는 주님에 관한 지식이고 또 하나는 자신에 관한 지식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지 알게 되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부정한지 알게 됩니다.
몇 년 전에 38명의 기도의 용사들과 유럽기도여행을 갔다가 독일 비텐베르크에 있는 루터 하우스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1546년 2월 18일 63세로 소천한 루터가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한 말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거지다. 이것은 사실이다!” 거지는 가난하고 더럽습니다. 거지는 체면 불구하고 구걸합니다. 빌어먹는 거지는 결코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이런 고백은 주님의 영광을 봐야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아는 사람은 겸손하지만 주님의 영광을 보지 못한 사람은 교만합니다.
미국의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케네디(Robert Kennedy)의 인기가 한창 높았을 때, 그의 기사가 라이프지에 실렸습니다. 잡지에는 그가 자신의 건강한 모습을 자랑하기 위해서 스키장 눈 위에 웃통을 벗고 누워 찍은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자녀가 몇 명입니까?”, “열하나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가지셨습니까?”, “나같이 우수한 종자는 후손을 많이 퍼뜨려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주님을 몰라서 교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따위 자랑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그의 최후를 보십시오. 그런 기사가 실린 지 얼마 후 그는 유언 한마디 못 남기고 비명횡사했습니다.
주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사 7:14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독생자이십니다. 요 1:18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주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위대하십니다. 주님의 위대하심은 측량하지 못합니다.
저는 설교자의 사명은 성경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설교자의 사명은 다른 말로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요 5:39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제가 설교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잘 전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기도응답의 비결이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 그리고 영적 싸움의 승리 등을 잘 전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다면 저는 실패한 설교자가 됩니다. 제가 비록 다른 것들은 잘 못 전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면 저는 성공적인 설교자인 것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1861~1947) 교수가 어느 날 폭설이 내려 길을 분간할 수 없는 런던의 언덕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할머니가 눈길에 미끄러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그가 도와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고맙기도 해라. 예수님을 믿는 분인가 보죠?”라고 했습니다. “나는 예수를 안 믿습니다.” 할머니는 다짜고짜로 “여보시오. 어쩌려고 다 늙은 사람이 예수님을 안 믿소. 나는 아까 죽으면 주님 만날 것을 생각하고 눈 속에서 찬송을 불렀는데…” 그 교수의 아버지와 삼촌과 형은 영국국교회 목사였는데도 그는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가 그 할머니의 말을 듣자 숙연해졌습니다. 자기 지식뿐 아니라 영국의 학문을 다 뒤져봐도 그 할머니가 가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에 나갔습니다. 교회에 출석한지 4주일동안 내내 목사님은 철학적 설교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그 교수를 위해 준비한 설교였습니다. 그 교수는 결국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철학은 제가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할머니의 예수님입니다.” 주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고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위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위대하심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4. 주님은 말씀의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이 시대는 말이 너무 앞서는 시대입니다. 말은 많은데 실천이 적고 신뢰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가짜가 많고 불신이 많습니다. 선거 때마다 많은 공약이 쏟아집니다. 선거가 끝나면 지켜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백부장이 보낸 사람들과 함께 가실 때에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주님에게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7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하인이 낫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겠으나 핵심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로 믿는 것이고, 말씀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줄로 믿는 것입니다. 말씀이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이고 말씀이 서라고 하면 서는 것입니다.
눅 1:37,38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만났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남자와 자본 일도 없는데 어떻게 임신을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이 없다고 말하자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천사가 마리아를 떠났습니다.
저는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를 보면서 우리의 믿음을 생각해 봤습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아이를 가진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그대로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주님의 역사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주님에게 보일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9절을 보시죠.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그의 믿음이 얼마나 큰지 예수님도 놀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주님이 백부장의 종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등산을 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해가 떨어지고 주변이 어두워져서 앞을 잘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등산객은 이리저리 헤매며 산을 내려오다가 그만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간신히 절벽에 있는 나뭇가지를 잡았습니다. 팔에 힘은 빠져오고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절벽 위를 향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 살려, 위에 아무도 없습니까?” 그렇게 한참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응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염려하지 말아라.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 그 사람은 반가워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구해 주십시오. 만약 저를 구해주신다면 하나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다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너를 구해줄 것을 믿는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나님 물론입니다.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그래 그렇다면, 네가 잡고 있는 그 나뭇가지를 놓아라” 그러자 그 사람이 절벽 위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세요,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사람 없나요?” 그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진짜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가 진짜 믿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나뭇가지를 놓았어야 했습니다.
부산에서 가장 큰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고 정필도목사님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7년이 되었을 때, 장로님들이 목사님에게 안식년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사례비를 넉넉히 주시고 미국에 보내주었습니다. 그래서 박사과정 공부도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몇 달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느 성도가 정목사님이 미국 어느 교회에 부임을 해서 설교하는 것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정 목사도 미국에 가더니 변했다면서 실망하고 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목사님은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순박하고 순수한 성도들이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정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7년 동안 충성한 목사님을 믿지 않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은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프시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성도들이 믿을 수 없는 목사가 되었으니 저는 실패자입니다.”라고 울면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주님께서 “너는 나를 믿어주었느냐!”라고 책망하시더랍니다. 그때 정목사님은 나 같이 부족한 죄인도 성도들이 믿어 주지 않을 때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완전하신 우리 주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해서 눈물 흘리며 회개 기도를 하셨답니다.
주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으며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말씀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 믿음이 확실해야 백부장의 기도처럼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됩니다. 이 믿음이 확실해야 백부장의 종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말씀의 능력이 있으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으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말씀의 능력을 가지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은 “백부장을 칭찬 하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주님은 차별이 없으신 분입니다.
2. 주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3. 주님은 위대하신 분입니다.
4. 주님은 말씀의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