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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과 제사장 사가랴
눅 1:1-7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눅 1:1-7 / [머리말] 존경하는 데오빌로님, 우리들 가운데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사람은 이미 여럿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의 제자들과 또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그대로를 써놓았습니다. 3) 그런데 나도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히 조사해 둔 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순서대로 엮어서 당신에게 써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당신이 이미 듣고 계신 모든 사실이 참되다는 것을 다시 확증시켜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5) [침례 요한이 태어날 것을 알리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사가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전 제사장단 중에 아비야 분단에 속하는 제사장이었다. 그의 아내 엘리사벳 역시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 가문 사람이었다. 6) 신앙심이 깊은 이들 부부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어김없이 성실하게 지켰다. 7)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임신을 하지 못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의 나이는 이미 노년에 접어들어 있었다.
누가복음 1장의 내용은 복음서 중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사이자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나란히 소개하는 것으로 그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이 구약 예언의 이루어짐(말 3-4장)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구약의 계시와 신약의 계시를 연결하여 웅장하게 진행하는 구속사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1-2) 누가는 예수님의 삶을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진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다룹니다. 예수님의 삶과 행적은 인간이 창작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 목격되어 말과 글로 남겨진 실제 사건입니다.
확실하게 하려 함이라(3-4) 비록 열두 사도나 칠십 인의 전도단처럼 예수님의 활동을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누가는 그들이 남긴 사실의 기록을 면밀하게 살펴 복음서를 썼습니다. 그가 복음서를 쓴 이유는 복음의 기초를 듣고 거듭난 이방인 데오빌로 각하를 향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 역시 복음선포의 대상이요, 복음은 세계적이라는 누가의 사상이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5-6) 세례 요한의 출생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누가는 구약의 의인 개념이 담긴 관용구를 가지고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을 소개합니다. 이 관용구는 그들이 완전한 사람이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하고 평가한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자식이 없고 나이가 많더라(7) 유대인들은 자식이 없는 것을 대단한 수치와 형벌로 여겼습니다(시 127:3). 자식이 없고 나이가 많다는 것은 매우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절망의 상황이 말라기 이후 끊어졌던 구약의 계시가 신약의 계시로 이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시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묵묵히 경건한 삶을 살아간 자들을 통하여 메시야의 오심이 준비 된 것을 봅니다.
적용: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자신의 기질과 인격만큼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의인들에 의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구원 역사와 관련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살고 있습니까? 나는 연약한 지체들이 복음을 확실하게 알도록 어떻게 도와 주고 있는지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 축복의 말씀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어려움과 고통을 만나면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낙심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늙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가랴 부부를 보면서 의로운 가정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환경에 구애됨이 없는 한결같은 믿음을 소유하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 설 교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누가복음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 즉 예수님에 대한 일들을 세례 요한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탄생(1:57), 주변 사람들의 반응(1:58), 할례 후 이름을 짓는 장면(1:59~66), 그의 아버지 사가랴의 예언적 찬양(1:67~79), 그리고 세례 요한의 성장기(1:80)에 대한 설명이 차례대로 기록되었고(총 24절), 예수님 역시 탄생(2:1~7)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2:8~20), 8일째에 할례를 받으시고 이름을 짓는 장면(2:21), 시므온과 안나의 예언(2:22~39), 예수님의 성장에 대한 기록(2:40~52)이 있습니다(총 52절). 예수님 기록의 첫째 장면인 ‘탄생’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이제 누가는 더 중요하고 더 확실한 메시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나심, 탄생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아기보다 위대하신 분의 탄생을 누가는 겨우 일곱 구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4개의 복음서가 있는데, 4명의 기자들마다 이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마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기자들마다 이 중요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저자마다 특징이 다릅니다. 마태는 요셉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나심을 서술합니다(마 1:18~25). 마가는 예수님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채 그분의 사역으로 시작됩니다(막 1:1). 요한은 보다 신학적으로 접근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셨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합니다(요 1:1, 14). 오늘 살펴볼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기를 낳으면 그 기쁨을 매우 감동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누가는 만왕의 왕이신 메시아의 탄생을 기록하면서 그런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반응도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는 왜 그렇게 했을까요? 거기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누가는 예수의 탄생이 역사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할 때 객관적으로 서술하지 그것에 대한 느낌과 깨달음을 적지는 않습니다. 누가의 기록이 그러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누가가 의도한대로, 그가 기록한 말씀 그대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첫 째,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 둘 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신실하게 이루신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겸손한 분이시라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1. 언제(시간)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2:1).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3개월 정도 머물다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옵니다. 그쯤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았고, 마리아는 배가 점점 불러왔을 것입니다. 주의 사자의 명령에 따라 요셉이 마리아를 집에 데려오고 6개월쯤 흘렀을 때입니다. 그 시점(“그 때에”)에서 누가는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시작합니다.
누가는 그 때에 요셉과 마리아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가이사 아구스도’를 언급합니다. 그는 로마의 초대황제입니다. 그 전까지 로마는 공화정이었는데, 귀족들이 권력을 나눠가지고 있던 구조였습니다. 그 이후 삼두정치 기간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들 중 아구스도가 군사적 정치적으로 나머지를 제압한 뒤 로마 전체의 권력을 장악하고 최초로 전제국가를 시작합니다. 그의 양 아버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로마는 엄청난 나라였습니다. 당시 제국들로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를 이어 세계의 패권을 잡은 로마였습니다. 로마 전체 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된 것입니다. 로마가 차지한 땅은 남북한 합친 영토의 25배이고 고대 국가 중 2번째로 거대했던 대국이었습니다. 그 영토는 아프리카 대륙의 이집트, 서남아시아 대륙의 이스라엘,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로마,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 등 3 대륙을 감싸고 있어,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에는 세계 역사의 중심지였습니다. 바로 그 대륙의 권력자가 가이사 아구스도였습니다. 그는 죽은 양아버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신이 되었다고 말하고,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구스도를 세상의 ‘왕’, ‘주인’이라고 여기며 숭배했습니다(8월을 가리키는 August는 아구스도를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데럴벅은 “당시에 가이사 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대답은 ‘아니오’였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주전 27년부터 주후 14년까지 통치하였고, 그를 이어서 디베료(티베리우스)가 황제(눅 3:1)가 되었는데, 예수님은 가이사 아구스도때 태어나셔서 디베료 때 죽으신 것입니다.
아구스도 황제의 호적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호적(인구조사)은 세금 징수나 군대 징집을 위해 시행되곤 했는데 이 경우는 아마도 세금 징수를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일이 역사적인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며 성경의 신뢰성을 의심합니다. 우리도 정말 그러한지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전 지역에 일시적으로 시행되었던 인구조사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로마 전 지역이 아닌 각 지역에서 많은 인구조사가 있었던 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기록에 보면 주후20년부터 258년까지, 14년에 한 번씩 인구조사가 있었다고 명시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정기적인 인구조사는 단지 이집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 전역에서 있었습니다. 2세기 교부인 알렉산더의 글레멘트는 시리아에서 이집트와 유사한 정기적인 인구조사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시리아는 이스라엘 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입니다). 글레멘트는 시리아에서 처음 시행된 인구조사가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인구조사였다고 말합니다.
아구스도가 통치한 기간에 시리아에서 시행되었던 인구조사는 주후 6년에 있었고 14년 전인 주전 8년에도 있었습니다. 과연 언제가 예수님과 관련된 인구조사였을까요? 조금 더 힌트를 얻기 위해 본문 말씀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2). 로마의 기록을 보면 구레뇨는 주후 6-9년에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관련된 인구조사는 주후 6년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설은 문제가 있습니다. 주후 6년이라면 헤롯왕이 죽은지 10년이 지난 후입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에 탄생에 대해 동방박사에게 전해 듣고 2살 아래의 아기들을 죽이라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마 1,2). 그렇다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과 관계된 인구조사는 주전 8년의 인구조사였을 것입니다. 문제는 당시 구례노가 총독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총독’이라는 단어는 권위를 갖는 관료를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이지 총독, 부총독, 황제를 정확하게 가리는 명칭이 아닙니다. 구례뇨는 주전 12년 총독 이전에 시리아 지역에서 집정관으로 일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이는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의 명령에 따라 구례뇨가 관직에 있었을 때 있었던 인구조사, 즉 주전 8년에 있었던 인구조사였습니다.
누가는 지금 데오빌로나 복음서를 받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이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우리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전 8년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시기는 주전 4년인데 왜 이렇게 늦어졌냐는 것에 의문을 갖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오늘날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과 같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이동 통신 수단이 발전되어도 국가적인 정책을 시행하기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당시는 2천 년 전이고 호적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려면 그것이 담긴 편지를 가지고 이동을 해야 합니다. 도시 곳곳, 시골에 명령이 전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고 호적을 하러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행정처리가 어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당시 유대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왕의 상황을 보면, 그가 병이 들어 있었고 왕좌를 놓고 아들들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유언을 바꿔가며 아들 중에 3명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불안정한 시기에 유대인들은 로마의 세금 징수에 반란을 일으키고 그것을 진압하는 일로 혼란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행정업무를 시행하는 것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고대 문서를 가지고 이것이 몇 년인가 하는 것으로 고민하고 한계를 느끼고 있지만, 당시에 이 편지를 받는 데오빌로나 이방인들은 정확히 어떤 시대인지, 어떤 인구조사를 말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데오빌로는 로마의 관료였고, 독자였던 이방인들은 로마의 날짜 개념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3). 당시 유대인들은 인구조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인구조사이기에 더욱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맞는 방법으로 호적을 하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의 역사는 자신을 온 세상의 주인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아구스도의 강력한 손 안에 쥐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그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로마 제국에 평화를 공포하고 자신의 권력 아래 있는 백성들의 수효를 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세계의 중심부에서 일어난 일들과 유대 고을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한 아기의 탄생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2. 어디에서(장소)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4-5).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으므로 호적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올라갔다’ 또는 ‘내려갔다’라고 말하고, 때로는 지형에 따라 그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사렛은 베들레헴(해발 716m)보다 낮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를 우회하면서 150킬로 정도를 갔을 것입니다. 만삭인 아내를 데리고 갔으니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오르막길을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 약혼한 마리아”라는 것은 그들이 아직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베들레헴은 ‘떡집’ ‘빵집’이라는 뜻인데, 비옥한 농경지와 풀로 뒤덮인 구릉들에 둘러 쌓여있는 작은 마을이었고, 주민들은 무화과나무, 올리브 농장, 포도원을 경작했고, 수많은 양 떼와 염소 떼가 주변 골짜기에서 풀을 뜯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호적을 하러 가는데 임신한 마리아는 왜 함께 갔을까요? 시리아에서는 12살 이상의 여자에게도 세금을 물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혼전임신이라는 비방과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마리아 혼자 남겨둘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요셉은 성령으로 태어난 아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구스도의 명령에 따라 다윗의 자손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아기는 나사렛에서 날 수도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정 가운데 태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낳았습니다. 이것은 베들레헴이 다윗의 동네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700년 전에 미가에게 약속하신 예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5:5). 아구스도는 자신이 평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왕,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신 분, 메시아이고 다윗의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나실 분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의해 태어나신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세계 역사에 연결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에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3. 어떻게(사건)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6-7). “첫아들”이라는 표현은 그 둘 사이에 아기를 낳은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후에 이 부부에게 아이들이 생겼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죄가 없고 예수님 이후에는 아기를 낳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어떤 광채가 나거나 천사의 모습이 나타나거나, 주변 사람들과 부모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그저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자세한 상황은 ‘강보’와 ‘구유’ 뿐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강보’는 옷감을 좁고 길게 만들어서 아기를 둘둘 말아 사용했던 오늘날의 포대기입니다. 아기에게 안정감을 주고 장기를 보호해주며 온기를 주는 역할을 하여 아직도 중동국가에서는 이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유’는 짐승들이 음식을 먹는 여물통입니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건초를 넣은 구유에 눕혔을 것입니다. 누가는 왜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이후에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오는데 중요한 표적이 됩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2:11).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7). 누가는 예수님이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당시 가축을 돌보는 곳으로 사용한 곳이 동굴이기에 예수님이 동굴에서 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는 어디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여관이 없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여기서 여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여관이 아닙니다. 당시 여관은 지붕 하나에 여행객들이 쉴 수 있는 공공 휴식소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밖에서 자는 것보다 조금 나은 곳입니다. 초라하고 지저분한 곳이었고 어떤 주석가는 “모텔, 여관이기 보다는 화물차 휴게소에 가까운 장소”라고 했습니다. 그런 곳조차 사람들이 많아서 거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당시 2층으로 지어진 집인 경우에 2층은 숙소이자 생활공간이고, 1층이 부엌으로 사용하다가 밤이 되면 짐승들을 들여놓는 곳이었습니다. 아마도 요셉과 마리아는 1층의 짐승들이 머물던 장소이거나 아니면 따로 떨어진 동굴 같은 마구간에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사람이 초라하게나마 있을 수 있는 곳에도 예수님이 거할 곳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탄생 모습입니다.
우리는 가브리엘을 통해 예언된 메시아의 탄생을 보았습니다. 그는 “큰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리웠고, “다윗의 영원한 왕위를 이어받을 왕”이며, “무궁한 나라를 다스릴 왕”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이 그를 하나님이라 부르고, 태중에서 세례 요한은 온몸으로 뛰며 즐거워했던 메시아입니다. 사가랴의 노래 속에서 아브라함과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러 오신 메시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거하는 모든 곳에 거할 곳이 없어서 다른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이 아이가 하나님이셨다는 예언을 주셨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하나님이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자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6~7).
이분이 곧 영원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깨달았던 솔로몬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로이리까”(대하 6:18). 그 하나님이 구유에 뉘여 계셨습니다. 이 사건으로부터 700여 년 전에 이사야는 성자의 영광을 보고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사 6)고 고백했습니다. 온 땅에 충만한 영광을 가지시던 예수님이 그 보좌를 버리고 땅에 내려와 구유에 뉘이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되셨고 사람들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빌 2:6-8).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겸손의 본입니다.
당시 세상은 아구스도를 신이라고 불렀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명령에 따라 한 젊은 부부가 호적하러 갈 때 하나님께서 아구스도를 사용하셨던 것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역사를 이루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섬기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저는 이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들에게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중심에 여러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세계 정세를 휘두르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한 때 세계를 장악한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는 지금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느브갓네살, 고레스, 알렉산더, 아구스도 역시 잊혀져가는 이름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역사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여러분의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역사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겸손한 모습으로 오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다시 오실 때 그분의 왕권을 들고 오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가 오기 전에 왕의 발에 입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왕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1-12). 그 권세를 오늘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신 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가이사 아구스도라는 왕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분이라면, 당신의 삶에 아무런 역사를 하지 않는 분이라고 의심하거나 오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성자 하나님이 하늘의 보좌에서 내려와 구유에 누이셨던 겸손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일상 속에서 그 사랑을 의심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원망할 이유가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삶의 왕좌에 앉아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당신의 삶 밖에 초라한 곳에 머물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그분께 왕좌를 내어드리십시오. 그분은 그러기에 충분하신 분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 메시야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