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과 다이아몬드
Dr. Yvette Alt Miller April 27, 2023
아랫글은 Dr. Yvette Alt Miller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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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새 드라마 “다이아몬드 原石(Rough Diamonds)”은 현재 상위 10개 시리즈 중 하나이다. 드라마는 오랜 세월 다이아몬드 무역에 종사했던 벨기에 유대인 가족을 그리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그들은 공직에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장사나 무역이나 전당포, 대출업에 종사했다. 특히 전당포나 대출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돈을 빌려줄 때 담보물로 보석류를 선호했으며 그중 가장 인기 있는 담보물은 다이아몬드였다. 크기가 작아 숨겨두기가 용이했고 또 짐을 싸서 이동할 때도 편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보석 가공과 거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베니스와 벨기에의 브뤼헤(Bruges)에는 대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으며 중세 다이아몬드 가공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돌로 가공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나 1400년대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 활동하던 로데비크 반 베르켄이라는 유대인(다이아몬드 상인)이 다이아몬드 가루에 올리브유를 섞어 코팅한 연마 휠을 발명했는데 이 연마 휠은 과거의 다이아몬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눈부시고 반짝”이는 보석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로써 앤트워프는 당시 다이아몬드 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1867년 남아프리카 Kaapvaal Craton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보어인 농부(샬크 니케르크)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희끄무레한 예쁜 돌을 보았다. 그 돌은 훗날 유레카로 명명된 21.25캐럿 다이아몬드로 밝혀졌으며 이로 인해 남아프리카에 다이아몬드 러시를 불러왔다. 이후 수천 명의 다이아몬드 탐사자들이 모여들었으며 이후 다이아몬드 광산업과 무역업은 열기를 뿜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 원석은 먼저 런던으로 보내졌으며, 이후 절삭·연마를 위해 앤트워프나 암스테르담으로 보내졌다. 이 당시 다이아몬드 무역은 대부분 유대인들이 통제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독일 나치에 의해 앤트워프의 유대인 50,000명 중 28,000명이 살해됐으며 이들 중 생존자들은 스페인, 스위스, 미국 등지로 도피했다. 특히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보석상들은 뉴욕 47번가에 자리를 잡고 미국 다이아몬드 시장의 90%를 장악했다.
오늘날에는 인건비가 싼 인도에서 가공 다이아몬드를 가장 많이 수출하며, 그다음에는 이스라엘, 러시아, 벨기에, 미국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