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 사도 요한 신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에페소 4,1-7.11-13 마태오 9,9-13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부르심이 응답에 앞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는 관계의 주도권이 우리가 아닌 하느님께 있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불러 주시지 않는데, 우리가 어떻게 응답하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부르심은 그 자체로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특별히 죄인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시대에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고,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시며 식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불편하게 여기는
바리사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는 자칫 예수님께서 의인들을 부르시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오해될 수 있으나,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기에 부르심에서 제외되는 이는
사실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사를 찾지 않듯이,
자기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사람은 예수님을 찾지 않고 그분의 부르심에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죄인인 우리가 은총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삶으로 그 본보기가 되어 주셨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스승께서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분이셨듯이(11,29 참조), 우리도 겸손과 온유를 다하여야 하고,
스승께서 당신 사랑으로 끝까지 제자들을 인내하시고 참아 주셨듯이(17,17 참조),
우리도 형제들의 부족함을 인내하고 참아 주어야 하며,
스승께서 아버지와 하나이셨듯이, 우리도 성령 안에서 서로 일치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요한 17,11.20-24 참조).
마태오 사도는 비록 세리였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도가 되어 죽기까지 스승을 닮고자
노력하였던 참된 제자였습니다. 오늘 축일을 기리는 성 마태오 사도를 본받아
우리도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인천교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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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에페소 4,1-7.11-13 마태오 9,9-13
마태오는 세리였기에 일반 민중으로부터 미움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살아가는 데 어떤 지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권력과 재산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마태오에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영적 갈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라라.” 예수님의 이 말씀에 마태오는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그럼으로써 마태오는 안정된 직업을 잃었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않았습니까?
영적인 생명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는 바리사이들이 비난합니다.
부정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비난에 예수님께서 명쾌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 말씀은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그런 만큼 하느님을 더 절실히 찾는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의미지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으려면 자신을 영적인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육신이 아프면 곧바로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이 병든 것을 느끼기는
쉽지 않지요. 의외로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늘 남의 티끌만 바라보며 다른 이들 탓만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여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거나 오히려 불편함과 불만마저 품게 되지요.
따라서 자기 자신을 올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나의 삶이 확연히 달라질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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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영 베드로 신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에페소 4,1-7.11-13 마태오 9,9-13
예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마태 9,9 참조).
‘그곳’은 마태오 복음 9장 1절에 따라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가신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 마을’이며
‘예수님께서 사시는 마을’ 카파르나움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태오 사도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전합니다(마르 2,14).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하느님의 선물’인 마태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증오의 대상인 세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고,
부정한 사람인 죄인들과 어울려서 레위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왜 예수님께서 품위 없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지
제자들에게 따졌습니다.
그들의 비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영적 의사’이며
‘죄인을 구원하는 구세주’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부정한 로마의 돈을 만진 마태오의 손은 정화되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뚜렷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태오 사도는 산상 설교, 선교사들에 대한 가르침, 하늘 나라의 비유들,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위한 권고들이 메시아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그 가르침들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였고, 일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마태오 사도의 열정은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청주교구 류한영 베드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