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함의 나라
자극적인 제목이다. 제목만 봐서 작가의 성향이 짐작은 가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니, 서핑한다. 포철고등학교, 서강대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그의 흔적을 몇 개 뒤져보니 짐작대로 인, 성향인듯하다.
나라도 없고 백성도 아닌 자가 있을 수는 없지만 그런 대목으로 시작을 한다. 여말의 왜구들은 도적이라기보다는 조선이란 보급창고에 군량미를 가지러 와 거치적거리는 놈들을 베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해가는 무리라 보는 것이 타당했다. 저자가 주인공으로 그린 김종연은 실존 인물이다. 그가 흠모하여 충무공 이순신만큼이나 존경하는 인물인 듯싶다. 그는 강릉에 정6품 낭장으로 부임하여 첫 만난 왜구와의 싸움에서, 강릉 고을에 왜구의 진입을 차단하라는 강릉부사 명을 받고 출전하나 적에 주눅이 든 패잔병으로, 관군의 사기를 올리고 싸워야 하니 망설이고, 눈앞의 적을 토벌치 못하고 있다.
놀랍게도 활을 메고 적에 단기필마로 말을 달리는 장사가 있었다. 강릉 부의 관노 이옥이다. 화살통을 여러 개를 메고 숲에 들어가 여기저기 숨겼다. 그리고는 득실대는 왜구에게 곧장 달려든다. 활을 쏘다 살이 떨어진 척, 숲으로 도망을 치자 왜구들이 벌떼처럼 뒤를 쫓았다. 나무 사이를 누비며 연살아 살을 쏘니, 당기면 백발백중 왜구는 어느새 시체가 즐비했다. 포구로 도망친 왜구는 배에 올라 서둘러서 떠났다. 노비 이옥은 사실은 전 고려시중 이충부의 아들로 신돈이 처형될 때 연좌되어 이충부는 죽고, 아들은 강릉 관노로 전락한 무사였다.
화척은 여기저기 떠돌며 천한 일에 종사하는 유민 집단이다. 후백제가 망한 뒤 고려에 투항하길 거부하는 저항자, 거란족과 여진족 출신으로 이 땅에 흘러든 귀화인, 반란에 참여하여 국경 밖으로 쫓겨났다 돌아온 추방자들이 禾尺을 이룬다. 이들은 호구책으로 버드나무, 대나무, 갈대 등으로 그릇을 만들어 팔고, 남자들은 재주를 팔고 여자들은 웃음을 팔았다. (백정, 갖바치, 광대, 기녀 등은 모두 화척에서 나왔다) 그들에게는 호적이 없었다.
임금을 죽이고 혁명을 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 순자 왕제에 나오는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로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라는 구절이다. 결국 이 경전을 굳게 믿고 자재 위 홍륜과, 환관 최만생 등이 공민왕을 죽이고 혁명을 하고, 우왕, 창왕을 죽이고 정도전과 이방원이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하는 역사를 우리는 맞이했다. 공민왕 시해는 어처구니가 없다. 후사가 없는 공민왕은 왕비 익비와 자제위 젊은이들과 통음을 시켜 왕비가 임신을 하자 아비가 홍륜이란 비밀을 최만생이 알고 왕에 귀띔했다. 왕은 제를 올리고 주정하는 체하면서 자제위 홍륜 무리를 모두 도륙하여 입막음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선수를 쳐 왕을 죽인 것이다.
우왕의 출생 비밀은 이렇다. 아명은 ‘모니노’로 석가모니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는 공민왕의 서자로 알려졌다. 어머니는 한 씨였는데 먼저 세상을 뜬다. 모니노는 태후 궁에서 유모가 키운다. 공민왕은 후견인으로 수문하시중 이인임을 삼아 서자의 불안한 입지를 보완했다. 공민왕이 갑자기 살해되자 명덕태후가 ‘모니노’ 우를 왕으로 추대되어 열 살에 임금이 된다. 그러자 반야라는 여인이 자기가 친모라고 태후 궁에 들어와 울부짖는다. 우왕의 후견인 이인임은 즉시 반야를 잡아들여 왕실을 모욕하고 나라를 어지럽힌 죄인이니 꽁꽁 묶여 임진강 푸른 물에 던져 버린다. 실은 반야가 낳은 것이 맞다. 반야는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실의에 빠져 상심에 신돈의 집에 드나들었다. 신돈의 비첩 반야가 왕의 시중을 들어 그 해 말에 반야가 아들 모니노를 낳았다. 공민왕은 자주 신돈의 집에 와 모니노를 무척 귀여워하고 좋아했다.
그러는 사이 1376년 7월 왜구 3,000명이 부여를 노략질하고 공주를 함락한다. 유서 깊은 절 연산의 개태사가 약탈의 표적이 된다. 최영이 출전하여 부여 홍산의 고지에서 왜구를 기다리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여 승리한다. 이것이 왜구의 홍산대첩이다. 일본 서남부 구주 ‘규슈’는 왜구의 본거지다. 쓰시마, 이키노시마, 마쓰라의 반도와 섬들이다. 이들의 무사단으로 개편한 해상 세력이 ‘마쓰라당’이다. 여몽의 1,2,3차 원정으로 마쓰라당은 고려에 원한이 깊다. 그들은 그 후 150년이나 바다에서 짓는 농사인 해적질을 해, 풍년가를 울리고 배에 가득 실은 곡식은 고려 백성의 고혈이다.
1380년 7월 금강 하구 ‘진포’ 지금의 서천에 왜선 500척이 나타났다. 왜구 1만5천 명과 말 1,600필을 대동한다. 삼지창에 검은 말을 탄 소년 장수 ‘아지발도’가 등장한다. 공주, 부여, 홍산, 유성, 청양, 완주 등지를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불살랐다. 부녀자와 아이들이 계룡산으로 피신하자 잡아 죽여, 울음과 비명이 온 산을 뒤덮었다. 고려 백성들은 새끼 줄로 엮어 포구까지 끌고 갔다. 약탈한 곡식은 서천으로 운반했다. 왜구는 타고 온 배를 밧줄로 묶어 놓고 작은 수비병을 배치하고, 기고만장하게 옥천으로 진군했다. 경상도 상주로 넘어갈 심산이었다. 고려는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가 있었다. 나는 불, 화약통을 단 긴 화살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150보 이상의 떨어진 거리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왜적은 속수무책이었다. 왜적은 백병전은 선수지만 공중전은 젬병이었다. 500척의 배가 차례로 불타오른다. 경비병은 불타거나 수장됐다. 악에 받친 왜적은 잡아 온 조선인을 마구 베었다. 살아 남은 경비병은 옥천을 찾아가 주력부대와 합류한다.
9월이 되자 왜구는 남원에 모여 있었다. 개경에서 토벌군이 남진했다. 총사령관은 이성계다. 고려군은 운봉을 지나 황산 정산봉에 이르자 군사들 배치한다. 왜적은 저 길을 나와 우리의 배후를 칠 것이니, 오솔길에 병력을 이지란에게 배치하라 시킨다. 전날 내린 비로 길은 진흙탕이다. 이성계가 쏜화살은 모두 적군에 명중한다. 소년 장수는 기선 제압을 위해 배후를 치도록 명령한다. 아지발도의 창술에 고려군은 추풍낙엽이다. 갑옷으로 전신을 감고, 투구가 얼굴을 덮고 있어, 화살이 들어갈 틈이 없다. 이성계가 살을 날려 투구 꼭지를 마쳤다. 소년 장수는 급히 투구를 바로 썼다. 이성계가 다시 살을 날려 투구 꼭지를 마쳤다. 투구가 떨어지고 아지발도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 찰나 이지란의 화살이 연살로 순간을 기다렸다 날아갔다. 여지없이 적장의 얼굴이 꿰뚫어지고 귀티 나는 소년의 얼굴이 피범벅이 된다. 고려군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남조 왜구의 종말이다.
살아남은 자는 말이고 무기고 버리고 울면서 달아났다. 골짜기에서 목 베지는 소리가 마치 수만 마리의 소가 울부짖는 것 같았다. 인원역에서 지리산을 넘어 달아난 적병은 고작 70여 명에 불과했다.
주원장은 “황제의 명으로 철령 이북 땅을 중국 요동에 귀속시킨다. 고려 군민은 고려인, 여진인, 몽골인, 漢人을 막론하고 모두 요동에서 관할한다.”라는 억지를 부리는 방을 고려에 붙였다. 아무리 중국이라도 고려 땅을 내놓으라는 데 가만히 내어줄 고려가 아니다, 이런 억지를 부린 이유는 북방의 북원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어, 고려가 조력을 할까 봐, 원나라 나태추와 연결을 못 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고려 조정과 최영은 의론을 모았다. 철령 이북을 내놓으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데 의론이 모인다. 그리고 요동 정벌을 이성계에 명한 것이다, 여기서 위화도 회군이 발생한 것이다. 역사의 가설은 없다. 그때 정벌을 해야 했는지? 회군이 잘된 일인지?는 각자 알아서 생각할 일이다. 그러나 저자는 회군하여 역성혁명을 하려는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잠입하는 구도를 세웠다. 그러나 끝내 붙잡혀 김종연은 역사의 패자로 남는다. 승자가 붓을 쥔 역사에서 패자의 진실은 묘비도 없이 세월에 묻힌다. 또 승자가 뜻을 이뤄 왕이 되었다고 해도 회군의 항명죄와 역성혁명의 반역죄는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승자의 역사는 찬란한 기록으로 남지만. 패자의 역사는 사무쳐 가슴을 울린단다. 저자는 실존 인물을 많이 등장시켰다. 모함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역사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2022.08.22.
모함의 나라
권경률 지음
빨간소금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