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 결론을 알고 전도서를 묵상하니
제게 있는 허무한 생각과 행함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실감합니다.
새 날을 주셨으니
생명의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6.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7.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22.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
(본문 주해)
16~17절 : “나는 세상에서 또 다른 것을 보았다.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가 있어야 할 곳에 악이 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의인도 악인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모든 행위는 심판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새번역)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가 있어야 할 곳에 악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악인의 형통에 대해 심히 고민하였던 시편 기자와 같은 심정이다. 그러나 그는 이 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된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시73:16~19)
하박국 선지자의 고민도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이었다. 악인이 형통하니 의롭게 살 필요가 있는 것인가...그래서 율법이 해이해진다고.... 하나님께 항의하고 대답 좀 해 보시라고 따졌던 것이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정한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묵시는 정한 때가 있는데 그 종말이 속히 이루어지겠고 결코 거짓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믿지 못하는 자가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자요, 하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한다.(합1:12~2:4)
‘반복’은 해 아래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이다. 깨달으라고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부조리한 삶도 여전히 반복된다. 그런 부조리한 세상, 재판하는 곳에도 악이 존재하고 정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전도서 기자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3:1~8절 말씀과 연결이 된다.
18~21절 :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하여 그가 짐승보다 나은 것이 없음을 알게 하신다. 즉 사람이나 짐승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피조된 존재’임을 인간으로 알게 하신다.
그것은 짐승이 당하는 일-죽음-을 인생도 당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호흡이 있는 것들은 모두 그 호흡이 그치는 날 죽게 되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간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전도자는 이런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정말로 사람의 혼이 위로 올라갈지, 짐승의 혼이 땅으로 내려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21절)
즉 사람이나 짐승이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죽어서 똑같이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들이니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22절 : 그런데 사람이나 짐승이 살아있을 때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그 인간을 생각하셨다. 그에게 영을 부어주시고, 그가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서 살도록 하신 것이다.
이러한 존재가 되었으니 인간은 살아있을 때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가장 복된 것이라고 전도자는 말한다.
“그리하여 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곧 그가 받은 몫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에게 일어날 일들을 누가 그를 데리고 다니며 보여 주겠는가?”(새번역)
(나의 묵상)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전도자의 말처럼 세상의 부조리함도 여전히 반복된다.
죄로 물든 타락한 인생들이 사는 세상이니 부조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 하나님을 믿는 의인들의 고민은 끝이 없고, 그들이 악인의 형통을 바라볼 때 그 부조리함으로 한숨이 깊어진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을 괴롭히는 그 문제에 대해 ‘속히 심판하신다’는 것으로 답해 주신다.(시73편, 합2장) 이 역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시험이며, 이 시험을 통하여 인간은 짐승과 같이 흙으로 돌아갈 뿐인 유한한 자신의 한계를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다. 자신의 유한함과 비참함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결코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피조물인 인간과 짐승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인간은 결코 짐승과 같지는 않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짐승처럼 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짐승에게 주시지 않은 영을 부어주시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한 인간들이 그 헛헛해진 마음을 죄악으로 채우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그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셨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죄악을 벗어나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을 찾는 인간들이 되게 해 주신 것이다.
오늘 전도자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곧 그가 받은 몫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나 ‘그가 받은 몫을 즐거워하며 누릴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님을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의 죄악 된 본성을 알고 그것을 탄식하는 자, 타고난 탐심을 미워할 줄 아는 자, 그래서 예수님 아니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다.
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였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교회에 발을 디디고 산 30여 년의 세월 동안에도 그 탐심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불렀다는 사실이다.
창세전의 하나님의 뜻도, 그것을 이루시고자 하신 언약도, 복음도 모르고 오직 이 땅에서의 형통을 위해 종교생활을 열심히 했던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으나 나의 탐심은 끝이 없고, 만족이 없었던 것이다.
성령께서 복음을 알게 하시고, 탐심을 향해 치닫던 마음을 돌이켜 말씀 앞에 머무르게 해 주셨다. 거의 교회 안에 살다시피 했지만 말씀에 비친 내 모습은, 주님과는 멀어도 너무 먼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라고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달리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매일 말씀 앞으로만 나아갔다.
십자가를 붙잡고 회개할 일이 끝도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회개로 시작한 말씀 묵상을 언제나 기쁨과 평강으로 마치게 하셨다. 울어도 기쁨이요, 탄식을 해도 평강을 주셨다.
이 은혜를 맛보니 이것이 세상 제일의 복임을 말하고 또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오늘 전도자가 말한 복이다.
나의 일을 즐거워하며 내게 주신 몫을 누리게 된 복이다. 즉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는 일이 나의 일이요, 내게 주신 몫인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 누구나 죽는 것, 그 후에 있을 심판......
이것을 알기에 오늘도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니 영원을 사모하는 내 마음을 주님의 은혜로 꽉꽉 채워주신다.
(묵상 기도)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사1:3)
주님,
짐승과도 같은 삶에 자존심 상할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을 몰랐으니
어쩌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제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부어주시고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찾는 길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것,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심입니다.
이제 말씀 속에 살아가니
이 나의 일을 즐거워하고 나의 몫을 누립니다.
내 평생 아버지 품속에 거하며 사는 일입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