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잠언 21,1-6.10-13 루카 8,19-21
이른바 예수님의 새 가족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그렇다고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그 형제들을 외면하시는 예수님의 차가운 태도로
오늘 복음을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마치 거사를 앞두고 가족과 친지를 버리고 떠나는 영웅으로 여기지는 말아야지요.
요컨대 예수님의 새 가족은, 혈연이라는 굳건한 장벽을 뛰어넘어 세상 모든 이를 형제요
자매라 부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루카 복음에서 성모님 또한 말씀을 듣고 간직하실 줄 아는 이로 제시되십니다
(루카 복음 1장 45절 / 11장 28절 참조).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말씀하시는 분께 집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말씀하시는 분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중요한 것은 들은 말씀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분과의 인격적 관계입니다.
누군가의 말에 마음이 상하여 잠 못 이룬 적도 있고, 스치듯 지나간 누군가의 말에 감동받아
평생을 두고 곱씹으면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말 자체의 무게감만이 아니라 말하는 이와의 관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은 서로의 관계를 위한 도구입니다. 말을 통하여 우리는 서로를 향하고 있는지,
나 자신 안으로 파고들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서로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상대를 참 피곤하게 합니다.
실컷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아 예수님과 갈라서는 일은 없어야겠지요.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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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잠언 21,1-6.10-13 루카 8,19-21
예수님의 가족들이 그분을 찾아왔던 일은 공관 복음서 모두에 실려 있습니다.
다만 루카 복음사가는, 그들이 사람을 보내어 군중을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님을 밖으로
불러내려 하였다는 내용이나(마르 3,31 참조)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마르 3,33)라고 하신
조금은 냉정해 보이는 예수님의 반문은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의 가족들은 군중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께 그저 방해가 되는 존재,
또는 그분에게서 외면당한 이들로 여겨지는 오해를 벗고, 독자의 관심은 오롯이
예수님과 그분께 귀 기울이는 군중에게 향하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서민들은 하루 품삯으로 온 식구가 끼니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생활이
빠듯하였습니다. 작고 가난한 이 사람들이 당신 곁에 모여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에 관한 복음을
듣고 새 삶을 결심하는 그 자리가 매우 소중하였기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미루어 둔 채 이들에게만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씨 뿌리는 사람’과 ‘등불’의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삶 안에서 열매로
맺어 내라는 가르침(루카 8,4-15.16-18 참조)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것은, 겉치레뿐인 예배가 아니라 정의와 공정을
실현하고, 악인의 행실을 멀리하며,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삶입니다(제1독서 참조).
막연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주 읽으며 삶의 방향을 잡고,
깨달은 바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주님의 어머니요 형제’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합시다.
대구대교구 강수원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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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잠언 21,1-6.10-13 루카 8,19-21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 21)
익어가고 영글어 가는 가을 소리를 가을 풍경과 함께 듣습니다.
먼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지를 묻게 됩니다.
먼저 듣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말씀에 마음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먼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말씀에 집중할수록 삶은 달라집니다.
말씀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말씀과 함께하는 여정이 신앙의 참된 여정이 됩니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생활 신앙이 참으로 중요한 신앙입니다.
생활 신앙은 먼저 말씀을 듣기에 새로워질 수 있는 이들입니다.
새로운 변화는 우리가 제대로 듣는 변화입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하는 그 시작은 이와 같이 경청입니다.
사람의 성장은 경청의 성장입니다.
먼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오늘이길 기도드립니다.
변화는 말씀이며 실행은 경청입니다.
기도도 소통도 관계 맺음도
모두가 제대로 듣는 경청임을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오늘을 말씀을 듣는 마음과 함께 시작합니다.
익어간다는 것은 말씀을 듣는 마음이 익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씀을 들어야 아름다울 수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자아에 갇혀 있기에 우리 모두를힘들게 합니다.
이기적인 자아를 치유하는 그 시작은
먼저 말씀을 듣는 실행임을 기억하는 기쁜 오늘 되십시오.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