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첫 번째. 아내의 성공을 위해 하던 일을 접고 육아와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된 남편. 회사를 경영하느라 항상 야근하는 아내. 둘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는 날이 점점 늘어나자 남편은 소외감을 느끼고 결국 외도를 한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정반대다. 집안일을 하는 아내가 결국 소외감을 느껴 외도를 한다, 만약 전자는 이해가 되고(심지어 연민마저 가고) 후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남녀불평등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물론 '외도'는 어떻게 봐도 좋지 않다. 다만, 이 저질 행위를 '이해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한국에 고드릭 골짜기라는 마을이 있고 그 마을에는 제임스와 릴리라는 외국인이 살고 있다고 하자. 잉꼬부부라 불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이 부부에게 (미안하지만) 위의 사례를 접목해보자. 둘 중 한 사람이 외도를 했다는 정보는 확실히 마을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가십거리다. 만약 그 정보가 전자의 상황(첫 번째)일 때, 마을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저 사람도 오죽했을까. 아니, 얼마나 집구석이 심란하고 집안을 돌보지 않았으면 밖으로 나돌겠어?"라는 말들이 나올 것이고 비난의 화살은 외도를 한 제임스가 아닌 일 하느라 바쁜 릴리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번에는 후자의 경우다. 그런데 후자의 상황이 되니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일변한다. "어이고, 바깥양반은 뼈빠지게 돈 버는데 집에 편하게 있는 자기가 뭐라고 바람을 펴, 바람을 피길?" 비난의 화살은 전자와는 다르게 제임스가 아닌, 외도를 한 릴리에게 향한다.
ㅡ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아있다. 그런 민낯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명절이다. 'TV 보는 남편, 전 부치는 아내'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깃거리다. 그야말로 성평등에 진전이 있었다면 남편이랑 함께 준비하거나 'TV 보는 아내, 전 부치는 남편'이라는 내러티브도 흔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의 뼛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관념이 도사리고 있다.
그 관념은 외도를 한 전업 아내 혹은 전업 남편에게도 향한다. 누가 보더라도 일차적인 문제는 외도를 한 당사자에게 있다. 하지만 첫 번째 사례에서는 열심히 회사를 경영하는 릴리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릴리는 야근은 매일 하지만서도 가정과 회사에 모두 충실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상식적으로 제임스가 아닌 릴리가 비난을 받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관념'은 종종 이렇게 상식을 건너뛴다.
영화 <인턴>의 줄리 오스틴 사례를 보자.
잘나가는 쇼핑몰 벤처의 CEO 줄리 오스틴에게는 딸아이를 돌 볼 시간도, 남편과 부부생활을 즐길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녀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다. 그녀 자신은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9개월만에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기 위해 애를 쓴다. 그녀는 그녀가 이룬 모든 것에 자부심을 가질만 한데도 사회의 편향된 시선, 집안 문제로 그런 여유를 빼앗기고 항상 불안을 동반한다. 답답하지만 속 시원히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
그동안 그녀는 남편을 집안살림 시키는 워킹맘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을 기를 써서 이해해야만 했고 회사가 고도 성장하고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면서 외부CEO를 고용하라는 투자자들의 견해도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를 힘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남편이라는 존재였다. 그토록 깐깐한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하는 남편이, 일하느라 힘든 아내에게 눈을 떼고 외도를 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상심에 빠진 그녀가 목도한 것은 그런 남편을 이해하려 하고, 그러고 싶어하는 자신이었다. 남녀는 평등하다고 보는 그녀도 결국 불평등의 관념에 자유롭지 못했다. 남편의 외도에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지만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한 때 잘나가던 남편이 아내의 성공에 가려지다보니 소외감을 느꼈을거야. 집안일 하다보니 한번은 '남자'답고 싶어져서 그런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내가 그동안 회사일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긴 했어. 어쩌면 정말 그 싫은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지도 몰라. 줄리는 외도의 문제를 이렇듯 남편이 아닌 자신에게서 찾으려 했다. 앞서 이야기했던 고드릭골짜기의 마을 사람들처럼.
남편은 여전히 날 사랑해, 사랑할거야. 실수한걸 거야, 그럴거야, 전문경영인을 고용하면...고용하면... 될거야... 'CEO'와 '아내', 서로 다른 두 역할은 물과 기름인걸까. 내가 지금 너무 큰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일까. 갖가지 의문과 갈등에 그녀는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생각도 그녀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그녀에게 이것은 다름 아닌 선택의 문제였다. 바로 회사냐, 남편이냐.
남편이 원망스럽고 책임 질 사람도 남편이지만 결국 자신도 사회의 그것처럼 자신을 탓했다. '사랑'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남편은 영원히 함께하는 동반자, 묘지까지 함께 하는 영혼의 동반자라는 관점에서 그녀에게 '사랑'은 그 이상이었다. 아이디어 하나로 출발해 9개월만에 벤처 신화를 달성한 그녀에게 회사란 그녀 자신이자 인생의 무대였다. 그 무대의 조명을 끈다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래서 사랑도, 일도 어느하나 쉬이 결정을 내릴만한 게 아니었다.
그런 조짐은 CEO의 남편이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하며 그 속살을 드러냈고 여자보다는 남자, 아내보다는 남편 ㅡ 가부장적 사회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을 벤 휘태커는 결심한다. 샌프란시스코의 호텔 안에서 줄리 오스틴에게 그녀가 겪고 있는 남녀 불평등이 깊게 내제된 사회의 실체를 들춰내고 이 문제를 말끔하게 정리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내가 잘나간다고 남편이 외도할 이유 없고 그런 남편을 위해 성공한 회사의 경영을 포기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영화 <인턴>은 매우 세련되고 우아한 방법으로 여전히 뼛속 깊이 자리한 '남녀 불평등'에 대해서 다뤘다. 아무리 성평등이 진전된 사회라고 해도 여전히 뿌리 뽑지 못하는 관념들이 있다. 그 관념은 '워킹맘', '내조', '외조'라는 단어들부터 시작해서 여성 CEO의 능력, 외도를 한 남편과 아내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까지 그 스펙트럼은 폭넓다. 'TV 보는 남편, 전 부치는 아내'가 여전히 사회적 이슈인 오늘날, 영화 <인턴>은 힐링도 힐링이지만 그런 무게감이 있는 영화였다.
아내가 성공한 CEO고 그 남편이 외도를 했다면? 남편이 나쁜 놈이다. 아내가 아니라.
참고로 이 리뷰를 쓴 분도 남자 분이었어 ^^
그런데 이에 대한 다른 보통 남자들의 반응은?
그리고 리뷰 쓰신 분의 블로그 댓글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
인턴 너무 비현실적인 동화같았어.. 뭐 갑자기 해피엔딩ㅋㅋㅋㅋ
한남들 도태해!
나도 이거공감 ! 왜여자가 열심히일해서돈벌어오면 바람피는남편이있는가 차라리 남편이 바람보단 나를 생각안해줘서 이혼하쟙하는게더나앗을꺼같
저 리뷰가 정상 아님?
보통 남자들을 도태시키자..!!!
인턴 나도 재밌게 봤는데 결말 때문에 기분 잡침..
리뷰 종나 맞는 소린데 댓글 왜저러냐
와 우리나라에도 저런 남자가 있긴있구나...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잘 말하시네 나 마지막 블로그글 저장하고싶은데 줄수있나여 글쓴여시ㅠㅠ
쟤넨 한 열줄만 넘어가도 이해 못하고 논리가 없네 쓰레기같네 선동이네 이지랄ㅋㅋㅋㅋㅋ읽기는 싫고 읽어도 이해는 못하고 남자욕하는거같으니 뭐라고 반박하고 싶긴한데 논리는 딸리고ㅋㅋ 애잔한 놈들임
결말 어이없어 성평등의 관점에서 남편 개객기! 하고 존나 뻥차고 남편이 싹싹 빌거나 헤어져놓고 약간의 후회섞인 행동을 하는게 낫지 않나 아 몰라 여튼 용서한 부분 넘나 걸크 아닌 부분..
그나저나 리뷰어 말투도 글고 우아하다 배우신분..!
삭제된 댓글 입니다.
3333 솔직히 애있으면 이혼도 쉬운게 아니지
결말이 존나 씨발이야
한번 바람은 영원한 바랍
아 답도없다..........
인턴이라는 영화를 관통하고 잇는 주제중에 하나가 성차별인데 이걸 신경쓰지말고 영화를 보라니 영화보는 안목이 0
아니 저렇게 생각하는게 그렇게 어려워??????진짜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와...다른 댓글들 너무 댕청해서 할말을 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