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우 루카 신부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코헬렛1,2-11 루카 9,7-9
'되살아 나는 길!'
헤로데, 곧 헤로데 대왕의 아들인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말씀과 치유기적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해 합니다. 헤로데에게 전해진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요한'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엘리야',
셋째는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헤로데는 이 세 가지 소문 중에서도 자기가 죽인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라는 소문을 듣고 더 당황해 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큰 잘못이나 죄를 진 사람은
이 불편과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스스로 경찰서를 찾기도 합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은 고해소를 찾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니 헤로데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하니 말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으면서 그분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이들은 '죄에서 해방되려고 하는 사람들'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 짓고도 사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회개의 길'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주님은 우리가 돌아오기를,
회개하여 다시 되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돌아오는 이들의 죄를 결코 묻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기뻐하시면서
잔치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22-24)
다시 돌아갑시다!
그래서 함께 즐거운 잔치에 참여합시다!
그래서 불편과 불안으로부터 해방됩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렛 1,2)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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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코헬렛1,2-11 루카 9,7-9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예언자이셨나 봅니다.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꽤나 유명하셨나 봅니다.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 소문에 예수님께서는 …….
이천 년 동안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무성하였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의 처지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부하며 내친 결과가 예수님에 관한 무성한 소문으로 전해지고
또 전해졌겠지요. 소문을 다 믿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소문의 가치를 애써 무시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찌 되었거나 소문을 통하여 교회는 지금까지 제 모습을 유지하고 다듬어져 왔으니까요.
문제는 다양한 소문을 듣고 불안해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어
한 것은 다른 뜻, 다른 권력, 다른 유명세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죽인 헤로데가, 새로운 가르침을 얻어 새롭게 거듭나고자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헤로데의 호기심은 권력에 대한 애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소문에 헤로데는 당황하였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잘못이었음이,
그 잘못이 드러날까 불안했을 터이지요. 헤로데의 모습이 저의 일상 모습인 것 같아
헤로데의 마음에 한참이나 머물며 이 묵상 글을 적고 있습니다.
무성한 소문과 그에 따른 다양한 해석들에도 교회는 지금껏 여유로운 의젓함으로
살아왔습니다. 잘못과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잘못과 흠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오로지
예수님의 자비만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소문이 어떻든 예수님을 어떻게 평가하든,
‘나는 예수님 앞에 솔직히 서 있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오늘도 여전히 끝기도 때 저는 하루 동안 저지른 잘못으로 아파하고 용서를 빌겠지요.
다만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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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원 베드로 신부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코헬렛1,2-11 루카 9,7-9
갈릴래아와 페레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기원전 4년-기원후 39년 통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들에 관한 소식을 듣고 몹시 당황합니다. ‘당황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디아포레오’는
신약 성경 전체에서 세 번 더 발견되는데(사도행전 2,12 ; 5,24 ; 10,17 참조),
그때마다 하느님에게서 온 매우 특별하고 기묘한 행적을 목격한 놀라움과 당혹감을 표현합니다.
사실 헤로데를 그토록 당혹스럽게 한 것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인지 엘리야인지 옛 예언자
가운데 하나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죽었던 이가 되살아났다는 바로 그 소문이었습니다.
죽은 이의 부활은 사실 내세의 존재와 의로운 생애에 대한 죽음 뒤의 보상(상선벌악)을
뜻하기에, 헤로데처럼 세상의 재물과 쾌락만을 탐닉하며 오늘만 사는 이는 커다란 두려움과
당혹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 코헬렛의 저자는 노년에 이르러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유한한 본성과 반복되는 세상사는 그저 인생의 권태로움과 무상함을
일깨워 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냉정한 성찰을 기반으로, 오직 하느님께서 모든 것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신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느님의 지혜를 찾으며
그분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삶을 이어 가는 가운데,
비로소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인생은 길어야 8, 90년이며, 세월이 지나고 돌아보면 찰나와도 같겠지요.
감정과 소유의 노예가 되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헤로데 같은 모습이 아니라,
일상의 권태와 무상함, 모순과 한계에도 흔들림 없이 하느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생명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대구대교구 강수원 베드로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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