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 1995
경고합니다. 영화를 보시기 전에 보게 되면 영화의 내용이 반감될 수 있습니다.
1995년도라니, 이 영화가 나온지도 벌써 13년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처음 접한지도 10년이 되어가는 군요. 이 영화는 초등학교때 방학 전에 수업진도는 다 나갔고 할 일 없던 영화오덕 담임선생님이 보여줬던 세 편의 DVD중 하나였습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피는 군요. 그 당시엔 영화를 잘 못보던 시절이라서, 소령의 광학위장복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죠.^^;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이 영화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애니오덕이던 중학교때는 그냥 그 개념이 신기하고 재밌는 만화정도로만 봤는데, 그 안의 철학이나 이런것들이 점점 남일이 아니게 되는 나이가 왔는지도 모르겠군요.
영화의 배경은 '기업의 네트가 별을 뒤덮고, 전자와 빛이 우주를 흘러다니지만, 국가나 민족이 사라질 정도로 정보화 되어 있지는 않은 가까운 미래'입니다. 영화 첫 장면에서 나오는 이 문장부터 영화는 정보화에 의한 국가나 민족의 아이덴티티부정을 합니다. '국가나 민족이 사라질 정도로 정보화 되어 있지는 않은'이라는 문장은 결국 정보화가 많이 진행되면 국가나 민족이 사라질 수도 있다-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큰 의미의 아이덴티티중 하나인 '국가와 민족'이 사라지고, 그 다음엔 뭐가 될까요. 직장? 가족?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영화는 고스트 해킹을 당한 청소부를 통해서 가족을 통한 개인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그 다음의 찌질한 콧수염 악당을 통해 개인의 모든 과거를 부정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령'이 하는 일이란 대단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광학 위장복이라는 것을 통해서 투명인간(없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사람 시신경의 문제로 완전한 의미의 투명인간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는 과학적 오류가 있지만, 영화의 문법적 문제를 파악하는데 그런 부분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 연구를 통해서 사람의 전신을 반쯤 투명하게 만드는 옷이 나와있는 상태입니다. 이 옷의 원리는 옷에 달린 수천개의 카메라로 주변 풍경을 인식, 옷에 프린트해서 사람이 거기 없다는 느낌을 주는 것인데요. 이 프린트 화질이 나빠 현재는 반투명상태입니다^^;;) 소령은 필요에 따라 투명인간으로 변하기도 하면서, 그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 내내 9과의 광학위장복 착용자라곤 소령 뿐입니다. 중간에 인형사에게 해킹당한 허접한 악당도, 클라이막스에서 인형사를 납치한 인물도 광학위장복을 입었는데요. 이 인물들은 열외로 하고, 9과에서 소령만 광학위장복을 입는 것은 바로 소령이 마지막에 원래의 몸을 버리고,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몸을 얻고도 몸이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기존체제(9과)의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더불어, 타인과의 육체적 구분을 거부하는 소령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장치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중반부쯤에 나오는 소령이 배를 타고 가면서 소령과 똑같이 생긴 인물을 보는 장면은, 소령이 육체적 정체성이 더이상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전의 피래미 해커를 잡으면서 이전의 생각이 구체화 되고, 더 확실해 지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소령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부정합니다. -네트는 무한하니까. 라는 말의 의미는 네트에서 탄생한 인형사의 정체성인 동시에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는 것은 자신의 기억과 타인의 기억이라는 소령의 발언-육체적인 구별을 거부하는 듯한-들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공각기동대의 세계는 어차피 똑같은 육체야 얼마든지 만들수도 있는 세계니까요. 그렇다면 소령을 통해서 육체적인 구분을 부정했고, 첫장면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부정하고, 고스트 해킹 피해자들을 통해 가족과 개인의 기억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자아는, 어떤 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걸까요? 소령은 무한한 네트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구분지을까요?
여러가지 의문점을 남기면서,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 저는 그래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개인과 개인을 구분짓는 것은 단순히 국가와 민족, 혹은 타인의 기억처럼 단순히 한두가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이런식의 하나씩 삭제해가는 방법으로는 개인과 개인의 차이점-자아-를 확립할 수 없고, 그저 스스로에 대한 종교적일 정도의 긍정과 새로운 추구를 통해서만 확립할 수 있다고. 제가 보기엔 소령은 불완전한 자신을 확립시키려는 그 무엇입니다.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고 그저 개선해나가는 삶이 아닌, 그저 완전해지려는 청소년 같달까요.
fin.
P.S. 공각기동대의 설정이 낯설고 좀 어렵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런 설정이 매트릭스에서도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공각기동대와 다르게 매트릭스는 그 세계를 살고 있는 세계의 이용자들이 사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고, 그 주변의 세계를 통해서 거짓된 세계를 인식할 뿐이라는 설정이 약간 다를뿐, 기본 모토는 같은 것 같네요. (그래서 검색을 해봤더니 워쇼스키 형제가 공각기동대를 보고 감명을 받아서 만든게 매트릭스라는 이야기가 있네요. 이건 뭐 몇백억짜리 오덕질이군요.)
첫댓글 직장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작품으로는 Max Barry의 [Jennifer Government]라는 SF소설이 있습니다. 성이 '정부'인 것처럼 기업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성(last name)으로 쓰이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죠.(이거 번역 안 되나...)
저번달에 일본에서 개봉한 [공각기동대 2.0]의 흥행성적은 괜찮은 편이라더군요.
ㅎㅎ 외국어가 딸려서 저것까지는 조금 어렵겠군요. 공각기동대 2.0이라니, 이노센트도 나오고 TV판도 꽤 나온걸로 알고 TV판 스페셜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ㅎㅎㅎ 이 시리즈도 꽤 오래가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