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를 파서 성령의 거름을(루카 13,8)
에페 2,19-22; 루카 6,12-19 /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 / 2023.10.28.
연중 제29주간 토요일의 독서 및 복음과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의 독서 및 복음을 모두 아울러서 묵상한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총체적인 난국에서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법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그러했고,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 편지를 써서 보낼 당시 로마 제국이 또한 그러했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내세운 로마의 철권 통치로 말미암아 조상 대대로 하느님을 믿어온 이스라엘 사회의 최고선은 형식적으로 봉행되던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에도 불구하고 무너져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았으며, 불의한 폭력에 짓눌려 언제라도 백성의 봉기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로마 제국 안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로마 시민들밖에 없었으며, 나머지는 자유의 제약을 받고 있었고 노예들은 그 제약 정도가 더 심했습니다. 로마의 평화라는 ‘Pax Romana’는 로마 군대에 의해 간신히 지탱되던 거짓 평화였습니다.
시리아와 팔레스티나를 관장하던 로마 총독 빌라도는 갈릴래아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세례자 요한을 위해 제사를 드리려고 하자 그냥 죽여버렸습니다(루카 13,1). 갈릴래아를 다스리던 헤로데 영주가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세례자 요한을 참수한 데 대해 복수를 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헤로데는 갈릴래아 지역의 통치 관할권을 부여받았지만, 갈릴래아를 포함한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전 지역의 사형집행권은 어디까지나 총독인 자신의 고유 권한이었는데, 헤로데가 허락도 없이 세례자 요한을 참수해 죽이는 월권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관할하던 사두가이들은 성전 경내 관리를 소홀히 해서 실로암 탑이 무너지는 안전사고를 자초했습니다(루카 13,4). 그들은 성전을 순례하러 오던 유다인들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성전세 수입과 제사 때 바쳐지는 십일조 수입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너지는 탑에 깔려서 열여덟 사람이나 참변을 당했지만, 사두가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빌라도를 탓하고 사두가이들을 원망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빌라도가 저지르던 막무가내식의 수직 폭력뿐만 아니라 그의 권세에 빌붙어 백성을 억누르던 사두가이들의 폭력은 표면상으로 드러난 죄악상일 뿐이었습니다. 훨씬 더 광범위한 수평 폭력이 백성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총체적인 난국에서는 백성이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회개하여 성령의 이끄심을 받지 않고서는 도무지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성령만이, 그래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백성의 회개만이 근본적인 대책이었습니다.
본시 초대교회 이래로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는 메시아적 백성이 근본적으로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회개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었고,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워진 하느님의 대책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새로운 초대교회 본산지가 된 에페소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오로는 우상숭배자들 가운데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소수의 교우들에게 이렇게 써서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에페 2,19-20). ‘교회’를 설명하는 이 말은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분의 몸이요(에페 1,23), 또한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하고 사도들을 주춧돌로 하여 세워진 그분의 집입니다(에페 2,20).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 대책인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제자들을 불러 사도로 양성하셨습니다. 사도들이 주춧돌이 되어야 주님의 집인 교회가 비로소 세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두 사도, 시몬과 유다는 카나 출신으로 혁명당원에 가담해 있다가 세례자 요한을 거쳐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는데, 중요한 것은 이들도 예수님의 친척 형제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알패오의 아들로 불리우는 또 다른 친척 형제 야고보와 함께 이들은 나머지 친척 형제들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가 사도로서 페르시아 지방과 유대아 지방에서 순교하기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선교활동에 투신한 사도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 사도들의 대표로서 베드로와 바오로의 행적만이 영웅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나머지 사도들의 행적이 뭉뚱그려 담겨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근거가 이들이 제자 시절 두 번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했을 때에도, 병자를 고쳐주고(루카 9,6)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일으켰었기 때문입니다(루카 10,17-19). 그들은 사도직 실습을 나가기 전에 예수님으로부터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루카 10,19)을 부여받았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견진성사를 받으셨습니까? 그때 여러분이 이마에 받은 성유는 여러분을 사도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은총의 표시로 받은 것입니다. 교활하게 교회를 유혹하는 온갖 뱀들을 밟고, 교회의 온갖 허약한 치부를 물으려고 달려드는 전갈도 밟으며,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각종 원수들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받았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냉담자가 전체 영세자의 90%에 육박하는 이 비상한 시기에 여러분의 사도직 소명의식이야말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도 같은 이 교회에 둘레를 파서 성령의 거름을 주는 대책이 될 것이며(루카 13,8) 또한 무너져가는 주님의 집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총체적 회개 대책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