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10. 6.27)
말씀/ 고후 12:7-10
약한 자로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어제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과 우루가와 축구경기가 있었습니다. fifa 순위는 우르가이가 30 위, 한국이 51 위입니다. 외신들은 한국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도박사들의 배당률은 한국이 3.5배였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을 볼 때 한국이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긴 졌지만 막상막하 잘 싸웠습니다. 외신들은 한국이 더 잘 싸웠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기본 원칙은 강자가 약자를 이깁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 세계 1위인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가나는 100위이며, 1인당 GDP를 보면 미국(4만6천8백59불)이 가나(1천5백20불 2008년 기준)보다 30배나 많습니다. 미국은 돈이 없어 응원단조차 철수시켜야 했던 가난한 나라 가나에 졌습니다.
더 큰 하나님의 우주적인 세계 속에서 보면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가난한 자가 부요를 누리며 베풀며 살고, 적게 가지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잠언서에 보면 땅에 작고도 가장 지혜로운 것 넷을 소개하였습니다. “곧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개미와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 사반과 임군이 없으되 다 떼를 지어 나아가는 메뚜기와 손에 잡힐만 하여도 왕궁에 있는 도마뱀이니라.” 개미와 사반과 메뚜기와 도매뱀입니다. 모두가 보잘 것없은 생물들입니다. 잡혀먹히기 시운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잡혀먹히게만 하시지 않습니다. 개미는 땅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아주 지혜로웁니다.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해두었다가 겨우내내 살아갑니다. 사반은 팔레스타인에 사는 바위너구리를 말합니다. 겁이 많고 약한 동물입니다. 누구던지 보면 바위에 숨습니다. 그러나 바위로 자신을 안전히 보호합니다. 메뚜기는 특별히 그 떼를 이끌 임금이 없지만 정연하게 떼를 지어 나릅니다. 떼를 지어 나르면 그 위세가 대단합니다. 퍽벅의 대지에도 나오지만 메뚜기 떼가 지나가면 초토화 되어버립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도 메뚜기를 이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메뚜기가 내려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려 우박을 피한 식물들을 먹어버렸습니다. 그 강한 바로도 메뚜기를 당하지 못해서 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마뱀은 작은 생물입니다. 스스로 멋진 집을 짓지 못합니다. 그러나 왕국에 살면서 그 왕의 부요를 누립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약한 자도 강한 자가 될 수 있으며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살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약한 자가 강한 자가 되어 큰 자를 이기고 승리할 예를 많이 보여줍니다. 사무엘 상을 보면 대표적인 예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당시 형들은 전쟁에 나가 불레셋과 싸우고 있었고 다윗은 어린 소년으로 형들의 양떼를 몰고 있는 목동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새가 다윗으로 하여금 전쟁터에 나가있는 형들의 소식을 듣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거기서 그는 불레셋의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마음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사울에 기서 자신이 골리앗을 상대하겠다고 자원하여 물매 돌 하나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골리앗은 보통 사람이 들 수 없는 창과 방패를 앞세워 나왔습니다. 애당초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 군대가 벌벌 떨고 있는 골리앗 앞에 나아가서 이렇게 당당히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다윗은 자신이 얼마나 약한 소년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약함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골리앗의 강함을 보지도 않았습니다. 더 강하신 만군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이름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향해 물래 돌을 던졌고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를 정확히 맞췄습니다. 골리앗은 거대한 기둥이 쓰러지듯이 쓰러졌고 이스라엘은 사기가 충천하여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다윗이 스스로 강한 자라는 자부심을 가졌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는 겸손하였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평상시 쓰던 물래돌과 막대기 하나 였지만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며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강력한 힘이요 능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약한 자로 이기는 비결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요엘서 2:3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약할 때 힘이 없을 때 사람들은 비굴하거나 다른 사람을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해야 합니다. 역대하 14장에 보면 아사와 왕 때 구스 군대가 백반대군을 끌고 이스라엘을 치러왔습니다. 그 때 아사 왕이 기도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 14:11).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는 상황에 아사가 지혜로웠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강자와 약한 자 사이에 도우실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구수 군대는 아사와 유대 사람들 앞에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약할 때는 절망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겸손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할 때입니다. 그것이 약한 자로 강한 자를 이기는 비결이며 은혜를 입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늘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세요. 우리 인생을 진토와 같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고 합니다(시103:14). 안개와 같이 잠시 있다가 사라질 존재라고 합니다(약 4:14). 예수님은 자신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며 큰 소리치는 베드로에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은 영적으로 우리 보다 강한 존재이지만 아주 간교합니다. 신자들을 넘어트리려 할 때 핍박하거나 힘들게 하는 방법만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영광을 얻게 하고, 부요하게 하고, 유명하게 하고, 출세하게 하여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씁니다. 하나님 의지 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멸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왜 강한 골리앗이 넘어졌습니까? 왜 백만대군 구수 군대가 넘어졌습니까?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만 사도 바울은 본래 이름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큰 자라는 뜻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큰 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 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말리엘 문하에서 사사를 받았고, 율법으로는 바리새파였으면 태어날 때부터 로마시민권자 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자랑하려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은 자였습니다(고후 11:18). 그러나 그의 영적인 삶은 반대였습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그는 죄에 팔리는 삶을 살았고, 죄인 중에 괴수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였지만 선한 일은 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만 행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얼마나 약한 자인가를 깨닫게 되었고 겸손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이름을 바울로 바꾸었습니다. ‘바울’ 지극히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서신 서를 보면 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주님의 종이 되어 겸손히 의존하는 약한 자가 된 것입니다. 정확히는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바울은 질병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이 질병이 가시처럼 찔렀고 그를 위해 하나님께 떠나게 해달라고 세 번 기도 하였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고후 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그 후에 그는 약한 자가 누리는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약한 것이 얼마나 좋은가, 약한 것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머물게 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고 이제는 자신의 약한 것들만을 자랑하는 자가되었습니다. 능욕, 궁핍, 핍박 곤란... 여러분 실제로 능욕을 받아보셨나요? 멸시와 천대로 조롱과 무시를 받아보면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합니까? 또 돈 한 푼 없어서 궁핍해보셨나요? 먹을 것 없어서 돈을 빌리려 할 때 자존심 상함을 느껴보셨나요? 학교 다닐 때 저도 돈이 없어서 시계를 풀어 전당포에 여러 번 맡긴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카드가 있어서 미리 쓰고 나중에 갚으면 되었지만 옛날에는 돈을 충당하는 유일한 수단이 전당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심정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것들을 오히려 기뻐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것들로 약할 때 곧 강한 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하고 가난한 것이 운명이거나 불행이 결코 아닙니다. 믿음에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길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 수 있는 비결입니다. 롬 8:26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약한 자가 되어야 성령이 도우시지 잘 나가면 어떻게 도우시겠습니까? 성령도 우리가 연약함을 인정할 때 도우십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잘 되기를 바라고 부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출세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막상 세상적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어보세요. 정말 부자 되고 잘 나가 보세요. 기도 잘 안 합니다. 믿음 지키기 더 힘듭니다. 바라는 일들이 잘되기는 하지만 주께 간절함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점점 주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멀어집니다. 세상적으로는 잘 잘 되는 것 같은데 영적으로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늘 아프고 약하고 죄인이고 당장에 내일 먹을 것이 없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생겨보세요. 기도밖에 더 하겠습니까? 천국소망밖에 더 있겠습니까? 바리새인은 인간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니 하나님께 감사를 잘 하며 자신의 의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세리는 자신이 부족한 죄인 이라는 것을 알기에 겸손히 가슴을 치는 기도를 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들으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자가 강한 자입니까? 어떤 자가 부요한 자입니까?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는 자가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는 가장 강한 자이며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자입니다. 소 아시아 일곱교회 중에서 칭찬받은 교회는 두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 적은 능력을 가지고 충성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빌라델비아교회에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또 서머나 교회는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을 지킨 이 교회를 실상은 부자라 하셨습니다. 작고 가난했지만 주님의 은혜와 생명이 있는 교회 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하던 라오디아교회를 향하여는 눈 멀고 곤고하고 가난하고 가련한 것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토하여 내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지금 주 안에서 약하고, 가난하고 부족하다면 오히려 감사할 때입니다. 주 안에 강한 자가 되고 부요한 자가 될 수 있는 때입니다. 더욱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고 약한 나로 강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다 해
약한 나로 강하게 - ccm 복음성가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