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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의 두가지 뜻:세종대왕의 英陵과 효종대왕의 零陵을 합친 능호이다.
멀리 보이는 홍살문: 신성한곳을 알리는 붉은색의 문 화살모양의 살대는 바르고 곧음 , 나라의 위엄을 뜻한다, 홍살문 앞에서는 왕이나 제관이 새바를 하고 들어가고 나와서도 사배를 한다. 참관자는 망배를 하는곳이다
사적 제195호.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다. 원래 영릉은 소헌왕후가 죽은 1446년(세종 28) 광주(廣州) 헌릉 서쪽에 조성하여 그 우실(右室)을 왕의 수릉(壽陵)으로 삼았다가 1450년 왕이 죽자 합장했다. 이 능은 〈국조오례의 國祖五禮儀〉 치장조(治葬條)를 따른 조선 전기 능제의 기본을 이루었다. 능의 석물(石物)은 병석(屛石)에서 영저(靈杵)·영탁(靈鐸)·지초문양(芝草紋樣)을 배제하고 구름문양과 12지신상만 조각해 조선병석문(朝鮮屛石紋)의 기본을 확정했으며, 혼유석(魂遊石)의 고석(鼓石)을 5개에서 4개로 줄이는 등 제도상 고친 것이 약간 있었다. (자료 출처:다음백과사전)
오랜 세월 동안 문인석과 무인석이 릉을 지키고 서 있다.
간의 : 간의는고도와 방위, 낮과 밤의 시각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천문관측기구이다.
혼상 : 오늘날의 천구의와 같이 하늘의 별자리의 위치를 살펴볼수 있도록 한 천문기관이다
효종대완릉 : 효종대왕릉은 효종비 인선왕후를모신 쌍릉으로 따로 모셔져있다. 효종대왕은 병자호란을 씻기위한 북벌을 준비한 왕이기도하다. 비록 실현시키지못했지만......,
전시장 안의 유물들 : 훈민정음 해례본과 그외 언해본이 있다. 훈민정음의 판본에는 크게 해례본(한문본), 언해본이 있고, 그밖에 예의본이 있다. 실록본이 있 는데, 이는 예의본에 속한다. 이 가운데 완전한 책의 형태를 지닌 것은 해례본이다.(참고)
편경: 조선의 경우, 나라의 기틀을 잡아가던 세종대왕이 그 기준을 제정하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세종은 어느 음악인 못지않은 감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다. (자료출처:글 KBS 흥겨운한마당 작가 남화정 ) |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