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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베키스탄 개요
중앙아시아는 구 소련에서 독립한 우즈베키스탄(우즈벡), 카자흐스탄(카자흐), 키르기스스탄(키르기즈), 타지키스탄(타직), 투르크메니스탄(투르크멘) 등의 다섯 국가를 말한다.
‘우즈벡' 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 나라의 공식명칭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Республика Узбекистан)'이다.
1개의 자치 공화국과 12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9월 1일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하였으며, 정치는 복수정당제, 양원제, 대통령 중심제이며, 경제는 자유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있다. 순수하고 근면한 국민성과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인해 앞으로 경제개발 잠재력이 매우 크다.
과거 동서양을 잇던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으며, 1991년까지 약 72년간 러시아 통치를 받으면서 기존 이슬람 문화 위에 유럽식 러시아 문화가 융화된 독특한 생활양식 및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위치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즈베키스탄(Узбекистан)은 아시아 대륙의 심장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경 56-76도, 북위 37-46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모두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키질쿰(Кызылкум)사막을 경계로 카자흐스탄(Казахстан)과 접해 있고, 남서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Туркменистан),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Афганистан), 남동쪽으로 타지키스탄(Таджикистан), 동쪽으로 키르기스스탄(Киргизстан)과 접경한다. 국토의 사면이 육지로 바다와 접하는 지역은 없다.
중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풍부한 수자원과 다수의 오아시스가 존재하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과거에는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으며, 현대에는 중앙아시아의 교통의 중심지이자 역사, 문화,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스탄’이라는 말은 ‘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벡 민족이 사는 땅’, 카자흐스탄은 ‘카자흐 민족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 된다.
지형과 토양 CIS 15개 국가 중 다섯번째로 영토가 큰 나라이다. 국토는 동서로 약 1,425km, 남북으로는 약 925km로 총면적이 447,400㎢로 남한(99.394㎢)의 약 4.5배이다. 하지만 전체 영토의 70%가 황무지 및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중앙부는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동부지역에서 시작되는 시르다리야(Сырдарья)강과 아무다리야(Амударья)강은 우즈베키스탄 영토를 가로질러 아랄해까지 흘러들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이들 두 강을 끼고 형성된 오아시스에 건설되어 있으며, 강 주변에는 인구밀도가 높다.
서북부 지역은 내륙호인 아랄해의 남해안에 위치하고 있고 사막 및 건조한 초원지대가 아랄해 주변에 자리잡고 있다. 아랄해는 한때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내륙호였으며,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에게 담수어장과 가축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소련 정부가 목화생산 향상을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관개수로를 개발하여 강물의 아랄해 유입을 막았다. 그 결과 아랄해의 수량은 줄어들고 오염되어 아랄해는 생태계의 파괴, 기후의 변화, 질병 발생들의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중북부 지역은 거대한 사막으로 덮혀 있으며, 남부지역은 그리 높지는 않은 소금광산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장미의 골짜기’, ‘흙 속의 진주’라고 불리는 동부지역의 페르가나 분지만 산과 강, 계곡이 있는 한국적인 자연 분위기가 난다. 페르가나 분지는 구 소련 전체면적의 1%에도 미치지 않지만 이 지역에서 구 소련 면화 총 생산량의 1/3을 생산하였으며 또한 비단의 35%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기후
우즈베키스탄은 사막형 대륙성 기후권에 속하기 때문에 국토의 대부분이 연중 매우 건조하며, 대체로 길게 지속되는 여름은 건기로써 열대공기의 영향으로 매우 뜨겁고 건조하여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여름에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다가 미처 땅에 도달하기 전에 말라버리는 ‘마른비’가 내린다.
반면 겨울에는 우기로 비와 눈이 자주 내려서 비교적 습도가 높고 강수량이 많은 편이지만 바람이 없어 한국과 같은 매서운 추위는 드물고, ‘냉장고식 추위’ 즉 그냥 차가운 날씨라고 보면 된다.
인구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28,184,453명(2005년 통계)이며, 130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전체 인구 중 우즈벡 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80%로 가장 많으며 그밖에 타직인 5%, 러시아인 3.7%, 카자흐인 3.6%, 따따르인 0.61%, 고려인이 0.6%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되어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고려인들도 약 15만 5900명정도 살고 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우즈벡 민족의 이슬람운동과 민족주의 운동으로 러시아인들과 다른 소수민족들의 입지에 대한 불안으로 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89년 통계에서는 러시아인들의 비율이 35%였으나, 2005년에는 3.7%로 대폭 감소했다. 또한 고려인도 1990년대까지 약 22만명이 거주하였으나 대부분 러시아로 이주하여 현재는 약 15만명 정도만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인구는 동부지역 특히 페르가나 분지에 집중되어 있다. 지역별로 보면 사마르칸트주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페르가나주와 타슈켄트시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인구밀도 면에서는 수도 타슈켄트를 제외하면 안디잔주와 페르가나주가 가장 높은 편이다.
언어
공식적으로 우즈벡어를 사용하며, 민족간의 소통언어로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시내지역은 러시아어만 알아도 의사소통 가능하다.
다만 지방으로 가면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 최근에는 우즈벡 정부의 민족주의적 노선에 따라 거리의 대부분의 간판이나 공식서류는 거의 우즈벡어로 되어있으며, 2004년부터는 100% 우즈벡어로만 공식서류가 발행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계와 고려인 등 우즈벡어를 모르는 소수 민족들은 생활의 불편과 함께 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지하자원
우즈벡인들이 자기 나라의 땅속을 본다면 저절로 미소가 생길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은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금 생산은 세계 7위(매장량 4위)이며, 천연가스(세계10위), 석유등은 자급자족을 하고 있으며, 우라늄(세계 4위), 석탄, 구리, 납, 텅스텐, 주석, 동, 몰리브덴, 중석, 아연 등의 다양하고 많은 양의 천연광물이 매장되어있다. 특히 석유·가스전은 총 171개가 발견되었으며, 현재 석유는 51개, 가스는 27개의 유전에서 채굴중이다. 석유와 가스는 자급자족이 가능하며 주변 국가에 수출을 하기도 한다. 전체 국토의 60%에서 석유와 가스가 채굴될 수 있다고 한다.
지하자원은 아니지만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인 생산물은 목화(생산량 세계4위)이다. 목화는 현지인들 사이에 ‘백색 황금’이라고 불릴 정도이며, 총 수출품의 21%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수출 품목은 목화(원면), 에너지, 금, 화학공업 제품, 기계류 등이며, 주요 수입 품목은 기계류, 화학제품, 금속제품 등이다.
2016.6.23일
2015년 6월 23일 15:45분 인천공항 출발 대한항공 KE 941편을 이용하여 와이프와 우즈벡 직원/부산지사장님과 함께 출발,항공기는 A330-300 항공기로 좌석배열은 2-4-2 였으며, 우리 일행은 비상구 자리에 않아서 편하게 올수 있었음..기내식은 3종류 소고기,닭고기,생선 이 제공되고, 중간에 한번 피자등 간식이 제공 됩니다....피자는 맛있습니다...강추... 기내에서 우즈베키스탄 입국에 필요한 세관신고서을 작성 2부 작성, 비행시간은 약 6시50분, 현지시간 19:40분 우즈베스탄 공항에 도착, 입국심사대 4군데 이며,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지금부터 기다림을 배워야하네요...ㅠㅠ.짐을 이동하는 카트는 $1을 내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항공기에서 작성한 세관신고서 2장을 세관원에게 주면, 1장은 다시 확인도장을 찍어서 돌려줍니다... * 참고 : 우즈베키스탄 세관신고서는 정확하게 작성을 하셔야합니다...가지고 있는 돈,,달러, 한화등을 기록하셔야하며, 카메라, 핸드폰등 고가물품도 기록을 꼭하셔야 합니다... 만약하지 않는 경우 잘못하면 출국시 세금을 내야하는 경우도 발생됩니다...
공항 밖으로 나오면 택시 타라고 엄청 많은 사람들이 물어 봅니다(택시를 이용시 흥정을 하고 타셔야 합니다)....우리 일행은 현지파트너가 현대 스타랙스를 가져와 호텔로 이동 체크인 배가 고파서 인근에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간단하게 식사...식사는 도마토 샐러드, 삼각만두처럼 생긴 음식인데, 속에서 야채와 고기가 있음,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주식으로 먹는 란이라는 빵 2개, 꼬치 5개(1인당 1개)까지 시켜서 먹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남겼습니다...ㅠㅠ
6.24일 10시부터 타슈켄트 호텔 체크 타슈켄트 시내 3성~5성급 호텔 체크....
6월 25일 타슈켄트 관광 09:00 시내관광 시작
1. 우즈베키스탄 국립 역사박물관 (Исторический Музей) -솨라프 라쉬도프 거리 3 = 리 메르디안 호텔 옆, 무스따낄릭 광장 앞 우즈베키스탄의 박물관 중 최대 규모이며, 최고의 볼거리를 자랑한다. 중앙아시아 및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역사, 고고학, 인류학에 관한 다양한 자료 약 20만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1876년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는 최초로 만들어진 박물관으로써, 1943년 레닌 박물관으로 처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으며, 이후 1992년부터 우즈베키스탄 역사 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문에 들어서면 계단 양쪽으로 각 지방에서 가져온 기둥들이 전시되어있으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3층과 4층에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석기시대부터 러시아 침공 직전까지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최대의 볼거리는 데르미즈 근교의 화요즈테파 유적에서 출토된 쿠샨왕조(1~3세기)시대의 불상일 것이다. 온화한 얼굴을 한 부처가 인상적이며 크기는 작지만 최고의 간다라불상으로 일컬어진다. 한국의 불교관련 방송에서 이 불상을 보기 위해 우즈베키스탄까지 촬영을 왔던 경우도 있었다. 4층은 러시아 제국과 이후의 역사,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독립이후 현대의 모습까지 전시되어 있어 흥미롭다. 특히 독립이후의 전시물을 보면 현재 통용되는 화폐, 우표, 여권, 각종 공장들의 사진 및 미니어처들이 있어 재미있다.
2.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музей истории Темуридов)
-티무르 거리 1 = 티무르 광장에 위치 “만약 너희들이 우리의 힘을 확인하고 싶거든, 우리의 건축물을 봐라” 아미르 티무르의 이 말은 그의 고향인 샤흐리 삽스의 악사라이 궁전의 정문에 새겨져있다. 박물관은 타슈켄트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색 지붕이 이슬람 사원을 연상케하고 박물관 건물은 은빛 분수와 화려한 꽃들로 둘러싸여 있어, 현대와 고대의 건축술을 융합한 매우 특이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박물관은 아미르 티무르 탄생 660주년을 맞이하여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1996년 9월 개관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서 아름다운 샹들리에가 있는 천장을 올려다보면 그 화려함과 아름다운 문양에 넋이 나간다. 그리고 대리석 기둥, 대리석 계단 등으로 내부는 매우 화려하다. 10미터의 벽에는 ‘탄생’, ‘성장’, ‘영광(업적)’등의 테마로 나뉘어져 있는 이슬람 양식의 그림이 있으며, 1층에는 대리석의 주춧대 위에 거대한 코란이 놓여있다. 이 코란은 7세기 칼리프 오스만 자이트의 개인 비서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커다란 노란색 종이 위의 아랍글자는 보는이로 하여금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2층에는 은과 구리로 만든 13-14세기의 동전, 15세기 히바의 화려하게 조각된 나무 기둥, 19세기 부하라 통치자가 입었던 금으로 수놓은 관복, 갑옷,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 천문대의 모형, 비비하님 모스크의 모형, 타지마할 묘의 모형 등 찬란했던 티무르 제국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3. 바라크 한 메드레세 (Медресе Барак-хана) 철수 바자르 뒷편의 구 시가지에 위치하고 있다. 바라크 한 메드레세를 방문 할 때에는 구 시가지 입구에서 걸어서 들어가도록 하자.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다. 또 다른 타슈켄트의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6세기 샤이바니 왕조의 바라크 한에 의해 건립된 신학교이며, 입구의 아치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모양과 아라비아어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 메드레세는 구 소련시대부터 중앙아시아 이슬람교의 본청이 설치되어져 있었으며, 지금도 실질적인 중앙아시아 이슬람교의 중심지이다. 메드레세 입구에 들어서면 장미의 정원이 나오며, 맞은 편에 보이는 건물은 우즈벡 샤이바니드 왕조의 첫 번째 왕족 슈니좌나의 묘이다. 울루그벡의 손자인 그는 문화와 교육에 조예가 깊은 현왕이었으며, 훌륭한 학자였다.
4. 쿠켈다쉬 메드레세 (Медресе Кукельдаш) 철수 호텔 옆 길가에 쿠켈다쉬 메드레세가 자리잡고 있는데, 16세기 중엽 타슈켄트를 지배하고 있던 샤이바니드 왕조의 고관대신인 쿠켈다쉬가 세운 신학교이다. 구 소련 시절에는 박물관과 창고로 사용되어졌고, 소련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메드레세의 종교적 역할의 중요성 대두와 함께 복원되어 다시 신학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원의 한쪽에 탑이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에는 밝은색의 타일을 볼 수 있다. 이곳은 38개의 교실에 2,000여명의 남녀 학생들을 수용 할 수 있으며 5년 과정으로 이슬람 교리를 배운다. 원래 3층 규모였으나, 대지진때 3층은 무너져서 현재는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러시아제국에 병합되기 이전 이 메드레세 주변은 ‘레기스탄’이라 불리는 타슈켄트의 중심지였다. 드좌미 모스크, 호드좌 아흐라라 메드레세, 그리고 쿠켈다쉬 메드레세 등이 있었으나 전쟁과 지진으로 인해 현재에는 쿠켈다쉬만이 그때의 웅장함을 보여준다. 타 도시의 레기스탄 광장과 같이 죄인이나 부정을 범한 여성들을 자루에 넣고 메드레세의 미나레트(첨탑)로부터 던졌다고 한다. 메드레세 뒷쪽의 언덕 위에는 15세기에 세워진 자미 모스크가 있어, 메드레세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5. 압둘 카심세이흐 메드레세(Медресе Абдул-Касымшейха) 국민친선광장 뒤, 국회의사당 옆에 위치하고 있는 메드레세로 16세기에 건축이 되었으며, 19세기에는 유명한 신학교였었다. 하지만 현재는 신학교의 기능은 사라지고, 정원을 둘러싼 후쥐라(학생용방)는 여러 종류의 우즈벡 민속공예품을 만드는 공방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자리에서 전시 및 판매도 겸하고 있다. 아름다운 세밀화가 그려진 작은 상자와 1장의 판으로 만들어진 복잡한 구조의 책 받침대, 정교한 금속공예의 쟁반, 토기인형, 카펫 등 대부분 품질이 뛰어나서, 선물을 고르기에 적합하다. 나라에서 공인된 작가들의 작품이라 가격은 좀 높은 편이다. 마치 전통 수공예품 박물관 같다.
6. 지진 기념비(Землетрясение Монумент) 그동안 타슈켄트에는 1866년, 1868년, 1886년, 1924년, 1966년 등 총 5차례의 대지진이 발생하였는데, 그중 1966년에 발생한 지진이 가장 큰 지진이었다. 1966년 4월 26일 5시 22분 53초 있었던 대지진의 진원지였던 이곳에 1976년 자연의 재앙으로부터 아이들과 여자들을 우즈벡 남자들이 지켜냈다는 의미로, 우즈벡 민족을 기념하고,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했다. 공식 문서에 따르면 총 8명이 사망자와 1만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35만여명이 집을 잃고 거리에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동상의 제목은 ‘용기’이며, 동상의 앞에는 진원지의 의미로 지진에 의해 갈라진 커다란 정육면체의 대리석에 지진이 일어났던 시간과 날짜 새겨져있으며, 동상의 주위에는 당시 재건 모습의 그림이 양각되어있다. 거대한 동상은 지진의 진원지(갈라진 대리석)에서부터 지진이 아이와 여자쪽으로 다가오자 건장한 우즈벡 남자가 용기있게 손으로 지진을 억누르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타슈켄트는 그때의 지진으로 대대적인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여 지금처럼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7. 타슈켄트 추모의 광장(무명용사의 묘) ‘비애하는 어머니’ 동상 앞에는 항상 꺼지지 않는 불꽃이 밝히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피가 낭자했던 대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은 4년 동안, 1417일의 낮과 밤 동안 계속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엄청난 대가와 함께 사라져갔다. 1999년 5월 9일 우즈벡 대통령의 지령으로 추모의 날이 공포되고, 타슈켄트에 추모의 광장이 축조되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점화되고,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름이 우즈벡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회랑에 금속책자로 새겨져 있다. “당신은 항상 제 가슴속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Ты всегда в моем сердце, родимый)”라는 글귀가 꺼지지 않는 불꽃 주위에 새겨져 있다.
8. 무스따낄릭 광장(Площадь Мустакиллик) ‘무스따낄릭’은 우즈벡어로 ‘독립’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붉은광장’ 혹은 ‘레닌광장’으로 불리던 이 광장은 공산주의의 거대한 퍼레이드용 광장이었다. 구 소련에서 가장 큰 레닌의 거대한 동상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독립을 상징하는 커다란 구체가 세워져있다. 9월 1일은 우즈벡의 독립 기념일로서 구 소련의 힘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대규모의 경축행사와 불꽃놀이가 어우러진다. 광장 앞에는 총 1991개의 물줄기에서 뿜어내는 대형 분수들이 있으며, 광장의 뒷편에는 안호르 운하가 흐르고 있어,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인해 젊은 연인들의 키스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독립기념탑 뒤로 가면 젊은이들의 ‘낙서의 벽’도 있다. 잘 찾아보면 한글도 보인다.
9. 아미르 티무르 광장(Площадь Амир Темур) 신도시의 중심은 티무르광장이다. 현재 이곳에는 신생 우즈베키스탄의 심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미르 티무르상이 세워져 있다. 이전에는 칼 막스의 동상이 서있었고, 그 이전에는 스탈린. 레닌. 장군 카우흐만이 제각각의 위세를 나타냈었다. 까리모프 대통령은 티무르를 통해 우즈벡의 민족정신을 부활시켜 국가재건의 정신적 토대로 이용하고 있다. 바로 13-16세기에 이 지역을 바탕으로 중앙아시아를 장악하고 비단길을 지배했던 티무르제국을 부활시키자는 민족정신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10. 타슈켄트 TV탑(Ташкентская телебашня) 타슈켄트 TV타워는 중앙아시아에서 건물 중에 가장 높은 건물로 높이가 375m이다(세계 9위. 참고로 서울타워=237m). TV타워는 1978년 착공되어 1985년 1월 15일에 준공되었다. TV타워는 다기능으로 방송TV프로그램, 위성 TV, 핸드폰이나 삐삐통신을 조정하는데 사용된다. 가장 높은 측후소가 220m높이에 위치해 있다. 100m지점까지 오르면 시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100~220m높이에는 동시에 120명의 고객을 수용하는 회전식 레스토랑 ‘레드(Red)’와 ‘(Blue)’홀이 있다. 타워 안에는 스위스회사의 승객용 고속 엘리베이터가 3개 있으며, TV타워의 로비는 모자이크로 벽을 장식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타워를 모형 만들어 높이 순으로 전시하고 있다.
11. 나보이 국립공원(Национальный парк им. Алишера Навои) 구 깜싸몰스끼 공원으로 국민친선(드루지븨 나로돕:Дружбы народов)광장 옆에 위치하고 있다. 최초로 우즈벡어로 문학작품을 쓴 작가겸 정치인인 “알리세르 나보이”(1441-1501)을 기념하기 위해 독립 직후인 1992년 설립되었다. 우즈벡 국회의사당 뒷편에 위치한 알리세르 나보이 기념비는 높이가 23.5m, 상층부 돔의 직경은 9m, 알리세르 나보이 동상은 6.5m로, 주로 결혼식 야외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주위의 경관은 타슈켄트 공원 중에 가장 잘 정돈되어 있으며, 주위에 국회의사당이 있어 정부에서도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곳이다. 공원내의 호수에는 여름이면 수영 및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호수는 1939년 레닌주의자들이 단 45일 만에 만들었다고 한다. 공원내에는 ‘어린이 철도청’이라고 해서 학생들이 직접 소형 관람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코스는 나보이 공원 전체를 한바퀴 돌며 관람을 한다. 조금은 엉성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매우 좋아한다.
12. 철수 바자르(Чорсу базар) 한국인들은 주로 ‘철수’라고 주로 발음을 하나, 정확한 발음은 ‘초르수’에 가깝다. 철수라는 이름이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이름이여서 가장 쉽게 그 이름을 기억하는 바자르이다. 타슈켄트의 대표적인 바자르로서 실크로드 시대의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카페트에서 식료품, 일상용품까지 없는 것이 없다. ‘초르수’는 우즈벡어로 네 개의 길이 만나는 교차로라는 뜻이다. 거대한 푸른 돔은 구 소련시대에 지어졌으며, 1층에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2층에는 건과류와 향신료가 쫙 펼쳐져 있다. 돔을 벗어나면 카페트와 이불 등의 일상용품 등이 있으며,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먹거리(샤실릭, 쁠롭 등)도 많다. 바자르의 북쪽 뒤에는 목제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목공소들이 줄지어 있다. 바자르 내에는 작은 이빠드롬으로 불리는 옷감 시장이 따로 있다. 이빠드롬 바자르와는 달리 옷감을 주로 취급한다. 어쨌든 ‘백문이 불여일견’, 그 분위기에 흠뻑 젖어보자.
6월 26일 06:00 체크아웃(체크아웃시 반드시 호텔 숙박 확인서를 받아야합니다) 호텔조식후 공항으로 이동 약 15분, 공항 도착후 입구에서 경찰이 여권과 확인후 입장 공항 1차 검색후 공항청사에서 다시 한번 가방 체크합니다...공항에서 절대 사진 촬영은 하시면 안됩니다....누쿠스행 HY 1001편 보딩후 출발대합실은 보안검색 입구로 가야합니다....출발 대합실 표시가 없음..항공기 탑승은 셔틀버스를 이용 항공기로 이동 합니다... 비행중 기내 서비스는 빵과 음료수가 제공 되며, 누쿠스까지 계속 사막을 비행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누쿠스 공항 도착후 짐은 조그마한 장소에서 찾습니다...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기사(현대스타랙스 12인승) 만나서 호텔로 이동 체크인후 짐을 방에 두고 한식당(소나타)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김치찌게, 소고기 미역국, 비프스테이크, 라면을 골고루 시켜서 먹었는데..김치찌게랑 소고기 미역국 최고.음식값은 상당히 비쌴편입니다...대다수 음식값이 35,000숨, 라면은 17,000숨 ㅠㅠ...아랄해로 이동 약 3시간 소요, 차량은 시내을 벗어나면 사막을 끝없이 달려갑니다....옥쿰사막을 관광하면서....사막 중간지점에 이슬람교 목사를 기리기 위해서 조금마한 모스크가 인상적이였습니다... 아랄해는 세계 4대 해에서 물줄기 변경후 반세기 만에 재앙이라 해야 할만큼 사막으로 변했습니다...배의 무덤.....을 관광하고 누쿠스로 귀환 뷔페식당에서 저녁식사후 호텔에서 휴식
6월 27일 09:40 분 호텔 출발 누쿠스 아트 박물관 방문, 참고 아트박물관은 입장료가 약 $30불 상당히 비싼편입니다...토,일요일은 10시 오픈 평상시는 08:00 오픈입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사진 촬영을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합니다...너무 비싼요금이라서 그냥 관람만하는 것으로 하고 입장, 건물은 3층으로 되어 있어며, 2층과 3층이 전시관입니다... 전시된 작품은 2층은 우즈벡 작가 그림이며, 3층은 러시아 작가 아랄해에서 거주하면서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그림에 관심이 많은 분은 꼭 관람해 보세요... 아트 박물관 관람후 아마스칼로 이동 끝없이 펴쳐진 사막을 따라니다....누쿠스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토프락 칼라성을 방문(일명 진흙성) 다시 키질쿰 사막을 따라서 약 1시간후 도착한 곳이 오늘 숙소인 사막의 유목민 텐트 유르타에 도착,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역시 사막다운 온도...38도 정도의 더위....우즈벡키스탄은 6월중순~8월중순까지 가장 더운 시기입니다...저는 이번 답사는 직원 교육겸 방문한 일정이라서 가장더운 시점에 여행은 어떤지 확인도 할 수 있었습니다...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점은 우리나라 봄,가을이 가장 적기입니다...11월중순이후 추위는 있어나, 영하 3도 정도 그러나 사막바람으로 인해 체감온도 더 내려갑니다...그러나 여름 여행보다는 좋아요... 숙박 유르타 바로 앞이 아이스 칼라성과 짐바스 칼라성입니다.. 한낮에는 사막에서 관광은 불가 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 일행은 18시경 유르타에서 아이스 칼라성을 향해 출발, 약간의 오르막이나 힘이 들지는 않습니다...유르타에서 성벽까지 오르는 시간은 약 15분 정도 상당히 가까운 거리입니다.. 아이스 칼라성은 진흙으로 만들어 졌으며, 3~4세기에 건설후 세월이 지나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그시기에 이런성을 지었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성벽 아래는 2층구조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안은 아무흔적이 없습니다..관광시간은 약 1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유르타에 돌아와서 본 사막의 석양은 감동 그자체입니다...피곤해도 꼭 한번 보세요... 관광후 늦은 저녁 식사을 하고, 유르타 여주인이 유르타 앞 야외(한국 정자 같은곳)에서 별은 보면서 취침을 하겠냐고 하셔서 우리 부부와 직원이 함께 야외에서 취침을 하겠다고 하니, 카펫에 요,이불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이곳의 여주인은 우리에게 캠프파이어를 준비해주겠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준비를 해주셔고, 우즈베키스탄 전통 음악과 러시아 보드카 한병, 약간의 안주를 준비해서 오셔서 손님대접을 하신다고 하네요... 잠시후 보드카를 한잔을 받고, 갑자기 원샷...우즈베키스탄에는 여자가 원샷하며 무조건 함께 원샷을 해야한다고 하네요...하는 수 없이 원샷하고,....그리고 3잔을 꼭 먹어야 한다고....한국 술 문화와 비슷....보드카 3잔을 먹고, 잠시후 여주인이 음악에 맞쳐 춤을 ,,,,나중에 알았는데 옛날에 전통춤을 추신분이라고 한다... 야외에서 비박은 하는데....초저녁은 상현달이라서 별이 많이 보이지 않았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 본 밤하늘은 황홀함 그 자체 였습니다....제가 그동안 몽골에서....아프리카 킬리만자로에서, 네팔에서 본 밤하늘 보다 더 많은 별들이 ...... 은하수와 수많은 별들..가끔 떨어지는 별똥별,,,,와이프랑 1시간 정도는 별감상을 하고 다시 잠시 잠을 청하고 새벽 4시 50분 아이스 칼라성 일출을 찍기 위해서 혼자 아이스칼라성을 올랐습니다...혼자 아이스 칼라성을 가진 기분 이였습니다...마음껏 혼자 일출을 촬영...유르타로 귀환....
6월 28일 오늘은 날씨가 너무 더워 시원한 시간에 관광을 하기 위해서 06:00 유르타 조식후 06:30분 출발, 히바로 이동 약 2시간 30분 소요, 우리 호텔은 이찬칼라 바로 앞에 있는 호텔에 도착후 체크인후 바로 이찬칼라 관광을 하기 위해서 걸어서 입구에 도착,,,,,입구에서 한국 가이들 하겠다고 한다.....요금은 2시간 가이드에 80,000숨(약 30불)을 달라고 한다...우리는 이찬칼라 모든 것을 보고 싶어서 계약하고 관광....여러가지 정보를 받을수 있었습니다....그러나 가이드가 여기 저기 입장료를 따로 구매해야 하는곳을 계속 방문하자고 한다...처음에는 많은 것을 보여 줄려고 하는 모양이다...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였어요.... 이찬칼라 내성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별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방문 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내부 사진을 찍는 경우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이찬칼라 가이드는 개인 관광지 방문때 마다 수수료를 챙기고 있었습니다...점심시간이 되어 자꾸 물고기 음식이 맛있다고, 가자고 해서 우리는 호텔에서 별도로 먹겠다고 하고 헤어 질려고, 우리 우즈벡 직원에게 계산을 하라고 하고 와이프랑 부산지사장과 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가이드랑 직원이 싸우는 것 같더니, 잠시후 우리 직원이 와서 하는 말이 씁쓸하네요.. 가이드가 2시간 20분 설명을 했어니, 추가 요금을 달라고 한다고 해서. 왜 2시간이 되었으면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하니까, 가이드 하는 말...너도 돈을 벌고 나도 돈을 벌자며 우리에게 추가 요금을 받자고 한단다....가이드가 우리 직원을 현지 우즈벡가이드 인줄 알고.....바가지??? 짜고치는 고스톱...!!!! 우리 직원이 나는 한국여행사 직원이고 한국에서 왔고, 이번에 현지답사 차 왔는데 이번에 우리팀 가이드를 해서 다음에 손님 보내면 이찬칼라 가이드 시킬려고 했더니 안돼겠네요. 하니 바로 미안하다고 한단다.... 사람사는 세상은 모두가 같습니다..외국인 바가지...우리나라는 이제 외국인에게 바가지 같은 나쁜 행동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일행은 점심식사를 위해서 인근 실크로드 레스토랑을 방문했는데.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찜통더위에 하는 수 없이 이찬칼라성안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힘없이 걸어서 도착....에어콘 아래가 바로 천국.... 샐러드, 치친 스테이크, 피자, 비프스테이크, 맥주등을 주문 맛있게 먹고 있는데...터키 청년 단체 여행객이 와서 너무 시끄러워 호텔로 귀환....샤워후 오수를 즐기고,....18:40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서 시내로 이동...양고기, 소고기 꼬치집에서 저녁식사....양고기 꼬치는 그동안 중국등에서 먹어본 것중 최고 맛있었습니다....맥주에 양꼬치...최고입니다.. 꼭 한번 드셔 보세요....
6월 29일
새벽 4시 50분 일어나 혼자 호텔 바로앞에 있는 이찬칼라성에서 일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방문하였다.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어며, 청소하는 아저씨만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이시간은 입장료도 받지 않은다. 아무도 없는 성안에서 마음껏 성 전체를 사진에 담아 봅니다.. 새벽이라서 조용하고, 시원해서 사진찍기가 정말 좋았다...나는 어제 본 장소를 다시 찾아보니 더욱더 많은 것을 볼수 있었으며, 4개문을 모두 방문....동문 밖에서 일출을 감상 멋진 풍경도 사진에 담아 봅니다....성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중 일부는 집앞에서 노숙을 하는 가족도 볼수 있어요...약 1시간 10정도 이천칼라성을 모두 사진에 담고, 호텔로 귀환 샤워하고 아침 식사를 하니 더욱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어요...호텔식은 간단한 유럽스타일 이였습니다..그래도 량은 많았어요. 오늘은 히바에서 부하라까지 전용차량을 이용 하루 종일 이동해야 합니다... 키질룸 사막(붉은 사막)을 지나 아랄해로 흐르는 아무다리야 강을 따라 이동 약 3시간 30분후 사막의 오아시스 인지? 차이하나 휴게소가 나온다...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차량에서 내리는데...흑흑 기온이 엄청나게 덥다..약 45도는 되는 것 같았다...이곳 휴게소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온 여행객도 많이 식사중이다...휴게소에는 에어콘이 없이 야외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 메뉴는 다양합니다....우리는 양고기 꼬치, 빵, 기타 우즈벡 음식을 주문...음식맛은 좋은 편이였습니다..더위에 맥주 한잔...한번 꼭 드셔보세요...화장실 문제 생각하고 드세요......이동중 화장실은 없습니다...우리 일행은 시사후 수박을 구매...사막에서 먹는 시원한 수박은 어떤 맛인지 아시겠지요...정말 맛있어요..우리나라 수박보다 당도가 높아요... 부하라 도착까지 소요 시간은 456킬로 미터 약 7시간 40분 소요되었습니다...점심식사 포함 저녁에 도착 호텔체크인후 호텔앞 19시에 우즈베키스탄 전통공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감상...공연은 우즈베키스탄 전통무용과 전통옷 패션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큰기대는 하지 마세요..공연장은 나지라 지반베기 메드레세 안에서 합니다..공연 시작과 동시 문은 닫습니다...늦게 입장하면 공연을 볼 수가 없습니다...비용은 약 25불 정도입니다...음식에 따라 차이는 있습니다...공연이 끝나고 나혼자 밤거리 사진 촬영을 위해서 이곳 저곳을 다니는데, 상인들은 곤니찌와 라고 주로 이야기를 하네요...그런데 장사하는 예쁜 소녀가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정말 받가웠습니다...호텔로 돌아와 와이프랑 직원과 함께 바로앞 연못 옆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맥주한잔하고 호텔로 이동...참고로 부하라의 밤 문화는 가족단위로 레스토랑에서 식사와 술, 음료를 즐기는 편인 것 같아요...밤 11시까지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6월 30일
오늘도 낮에는 날씨가 너무더워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 부하라 명소를 찾아서 이곳 저곳을 사진에 담아 봅니다..새벽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눈에 띠지 않습니다... 부하라의 대표 칼란 미나레트를 중심으로 많은 유적지 일출 사진을 담아서 호텔로 귀환. 7시에 아침 식사후 부하라 관광지를 다시 사진에 담기 위해서 출발....인근 지역은 걸어서 다닐 수 있어나. 먼곳에 있는 것은 더위로 인해서 걸어서 다니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택시를 이용해서 구석구석 관광을 하고자, 택시 기사와 흥정....사진첩에 있는 부하라 시내 지역 관광 돌아보는 조건으로 40,000솜을 주기로 하고 택시를 이용해서 아르크성등 관광 관람..사진 촬영.. 호텔로 돌아와 가방을 챙겨서 체크 아웃하고 어제 저녁에 맥주 먹던 레스토랑(유럽풍의 식당)에서 양고기 갈비, 미트볼 같은 것, 치킨등...메뉴중에서 ..양고기 갈비찜이 가장 맛이 있었습니다... 점심식사후 부하라에서 전용차량으로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로 이동 277킬로 4시간 40분 소요...호텔 체크인후 저녁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한국식당을 방문 김치찌개, 된장찌개, 김밥등 주문, 요금은 주로 27,000솜, 김밥은 17,000솜 이였습니다...타슈켄트 보다는 조금 저렴했습니다...식사후 레기스탄 야경을 촬영하기 위해서 방문을 했는데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나라에 큰행사가 있다고 광장 입장을 금지시키고 있었습니다...이것도 내운명이지 하고 멀리에서 야경사진 몇장을 사진에 담고 호텔로 귀환...호텔 직원이 내일 아침식사는 한식 김밥,라면으로 준비 할까요 한다..히히 우리가 묵는 호텔이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 호텔도 아닌데 우즈베키스탄에도 한류 바람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아요...텔레비젼에도 오래된 드라마가 나오고, 전국에 차량은 대부분 옛날 대우 자동차입니다...티코, 다마스등 대우자동차가 미국 지엠에 넘어가기 전까지 우즈베키스탄에 공장이 있었다고 합니다...지금은 문을 닫았구요...
7월 1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호텔에서 약 40분거리에 있는 레기스탄 광장을 도로옆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걸어서 울루그벡, 쉬리도르, 틸라카라 메드레세 일출을 촬영, 8월달에 행사가 있다고 대대적으로 공사중이라서 아침일찍 광장을 방문하지는 못하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인근에 있는 구르에미르(왕의 묘) 외부에서 촬영 호텔로 귀환(약 1시간 30분 소요)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특별히 준비해준 라면(김치까지), 김밥, 유럽 스타일 뷔페, 3성급으로는 좋은 아침 식사입니다...Ideal 호텔은 조금 외곽에 있어며, 방은 작은편이나, 서비스가 좋은 편입니다..추천합니다.. 8시 체크 아웃후 전용차량을 이용 사마르칸트(Самарканд)의 명소 관광
1. 레기스탄 광장 (Ансамбль Регистан) 2. 울루그벡 메드레세 (Медресе Улугбека) 3. 쉬르도르 메드레세 (Медресе Шир-дор) 4. 틸라카리 메드레세 (Медресе Тилля-кари) 5. 비비하님 모스크 (Мечеть Биби-Ханым) 6. 루하밧 묘 (Мавзолей Рухабад) 7. 구르에미르 (Мавзолей Гур-Эмир) 8. 샤히진다 (Некрополь Шахи-Зинда) 9. 아프라샵 역사박물관 10. 울루그벡 천문대의 터 (Обсерватория Улугбека)
레기스탄 광장은 8월달에 국가행사가 있어서 일부 통제중이 였음. 어제저녁 일몰 촬영시 경비하는 경찰들이 8월 중순까지 출입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실망하고, 정면에서 사진에 담아서 돌아오는데, 광장에 공사 인부가 아닌 여행객처럼 보이는 사람이 보여 경비 경찰에게 방문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라고 한다. 다시 차로 조금이동 쉬르도르 메드레세 뒤편으로 가니 입장권을 팔고, 경찰도 4명정도 경비중 기쁜 마음으로 레기스탄 광장 관광......
1. 레기스탄 광장 (Ансамбль Регистан) 사마르칸트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레기스탄은 ‘모래땅’이란 뜻으로 옛날에 모래로 뒤덮힌 사막이었다고 한다. 공공의 광장으로 왕의 알현식, 공공집회, 죄인의 처형 등이 행해졌다. 티무르 시대에는 노천시장이 있었으며, 그의 후손인 울루그벡 시대에 처음으로 메드레세가 세워졌으며 메드레세의 맞은편에 하나카가 있었다. 광장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가진 것은 그후 샤이바니 왕조의 야한그도슈 바하도르에 의해 다른 2개의 메드레세가 건립된 이후이다. 3개의 메드레세가 건립된 이후 레기스탄 광장은 이슬람 교육의 중심지로써 명성이 자자하였으며, 그후 구소련 시절에는 이슬람 종교의 탄압으로 다시 거대한 노천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이슬람 교육의 장소도 아니고, 노천시장도 아닌 관광지로써 제역할을 하고 있다. 광장은 왼쪽에 위치한 건물이 울루그벡 메드레세, 중간이 틸라카리 메드레세, 오른쪽이 쉬르도르 메드레세이다. 2015.8월 국가행사 준비로 분주하게 공사중이 였습니다...
2. 울루그벡 메드레세 (Медресе Улугбека)
레기스탄 광장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는 울루그벡 메드레세는 1420년 울루그벡에 의해 세워졌으며, 레기스탄 광장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울루그벡은 왕이자 학자로써 이름을 떨쳤는데 직접 이슬람 신학에서 수학, 철학까지 강의했었다. 울루그벡 메드레세는 그 시대 학문의 중심지로써 약 100명의 학생들이 생활을 하며 공부했었다. 처음에는 신학교로 출발했으나 후에는 천문학, 철학, 수학, 과학 등의 연구소로도 이용되었다. 천문학자로써 유명한 울루그벡을 상징하듯 외관의 문양은 하늘의 푸른 별을 형상화하였다. 내부는 물건 판매하는곳 과 울루그벡 사진, 그리고 천문도, 조그마한 박물관을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신발은 벗고 가는 곳이 있습니다...
3. 쉬르도르 메드레세 (Медресе Шир-дор) 광장의 오른쪽에 위치한 메드레세로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200숨짜리 지폐의 모델 문양이 그려져 있는 유명한 메드레세이다. 쉬르도르는 ‘사자가 그려졌다’라는 뜻으로 입구 아치에는 어린 사슴을 쫓는 사자(사자보다는 호랑이에 훨씬 가깝다)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부하라의 나지라 지반베기 메드레세의 것과 같은 사람얼굴 형상의 태양도 그려져 있다. 본래 이슬람교는 우상숭배를 금지하기 때문에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지만, 간혹 그 시대의 왕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금령을 깨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쉬르도르 메드레세를 설계하고 감독한 건축가는 메드레세가 완성되자 무슬림으로서 이슬람 교리를 어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내부에도 한창 공사중이며, 특별히 볼 것은 없다. 가계 몇 군데만 영업 중.
4. 틸라카리 메드레세 (Медресе Тилля-кари)
광장에 정면으로 보이는 메드레세로 1647년 쉬르도르 메드레세를 세운 야한그도슈 바하도르에 의해 급히 세워진 메드레세이다. 쉬르도르 메드레세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문양으로 표현을 했기 때문에 수 많은 무슬림들의 불만을 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양식으로 더욱더 화려하게 이 메드레세를 건축하였다. 틸라카리는 ‘금박으로 된’이라는 뜻으로 메드레세 안으로 들어가 좌측편 푸른돔 아래의 예배당을 보면 그 이름이 어울림을 알 수 있다. 벽면과 천장을 모두 금빛으로 장식을 하여 화려하기 그지없다. 천장의 돔 모양을 보면 둥글게 보이나, 사실은 푸른색 부분부터는 세밀한 표현으로 둥글게 보일 뿐 사실은 하는데 아무리 봐도 둥글다... 내부에는 상점과 일부 전시품을 진열 해 두었다...이곳이 가장 하이라이트입니다...
5. 비비하님 모스크 (Мечеть Биби-Ханым) 타키가 위치한 사거리에서 일명 ‘사마르칸트의 브로드웨이’로 불리는 길로 약 100m쯤 걸어서 내려가면 좌측으로 중앙아시아 최대규모의 모스크인 ‘비비하님 모스크’를 볼 수 있다. 조그마한 주차장에 내려 올라가면 왼편으로 상점이 조금 있으며, 주인 차량으로 보이는 오래된 러시아 차량등을 볼 수 있다. 시저비비하님 모스크‘비비하님’은 8명의 왕비 중 아미르 티무르가 가장 사랑했던 왕비로 그녀의 이름을 딴 모스크이다. 모스크의 넓이는 가로* 세로가 100m가 훨씬 넘어 축구장 이상의 넓이였으며, 예전에는 입구 아치의 옆에 80m높이의 어마어마한 미나레트가 있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푸른 지붕의 큰 모스크와 작은 모스크, 양사방에 미나레트가 있으며, 중앙에는 거대한 코란을 올려놓았던 받침대가 덩그런히 서있다. 이 받침대는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이 몽골에서 직접 가져왔으며, 현재 코란이 없음에도 현지인들 사이에는 인기가 대단하다. 왜냐하면 기도를 하면서 받침대 주위를 돌면, 남자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도를 하면서 받침대 주위를 도는 젊은 남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6. 루하밧 묘 (Мавзолей Рухабад) 아프라샵 호텔과 구르에미르 사이에 위치해 있는 티무르 스승의 묘이다. 맞은편의 구르에미르와 비교하면 너무 초라할 정도로 화려함이 없이 단순하다. 묘의 내부 또한 거의 관리가 되지 않아 허술하다. 지금도 외부와 내부 공사중이다. 어떤이들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에 구르에미르 보다 더 자연스럽고 정감이 간다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무슬림들이 와서 기도를 드리고 가기도 한다.
7. 구르에미르 (Мавзолей Гур-Эмир) ‘구르’는 묘, ‘에미르’는 왕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구르 에미르는 “왕의 묘"라는 뜻으로, 아미르 티무르를 시작으로 그의 아들, 손자 등이 잠들어 있는 티무르 왕족의 묘이다. 푸른 도시라 불리는 사마르칸트에서도 한층 더 푸르름이 돋보이는 장대한 건축물이 아닐까 한다. 원래 이 장소는 티무르의 손자인 무하마드 술탄을 위해 건설된 메드레세와 하나카가 있었는데, 그러나 1405년 오트라르 원정에서 무하마드 술탄이 전사를 하자, 티무르는 그를 기리기 위해 이 장소에 묘를 건설했는데, 불과 10일만에 묘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묘는 1404년에 완성되었지만 1년 후 중국원정 중에 급사한 티무르 자신도 이곳에 묻히고 만다. 티무르는 원래 자신의 고향인 샤흐리샵스에 잠들길 원했고, 그곳에 묘도 조성을 했었다. 그러나 살아서는 세상을 호령했던 왕이었지만 죽어서는 자신의 뜻대로 이루질 못했다. 현재 티무르의 손자가 건립한 메드레세와 하나카는 그 터만 남아있으며, 묘만 화려한 모습으로 서있다. 묘 내부는 1996년 수리가 완료되었고 건설 당시의 아름다움도 돌아왔다. 내부를 둘러싼 문양에는 금 3Kg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티무르의 묘는 흑녹색의 연옥(중국산이라고 한다.)으로 만들어졌고 중앙에 놓여져 있다. 그 북쪽에는 티무르의 선생, 손자 한 명, 동쪽에는 무하마드 술탄, 남쪽에는 울루그벡, 서쪽에는 가까운 쪽부터 아들 샤루흐, 이름모를 손자, 아들 미란샤의 묘석이 나란히 있다. 이것은 모두 묘의 위치를 표시한 묘석으로 진짜 관은 이 지하 3m에 있는 묘실에 같은 순서로 묻혀있다. 그리고 항상 머리는 메카 방향으로 안치되어있다.
8. 샤히진다 (Некрополь Шахи-Зинда) 아프라샵 언덕의 남쪽에 있는 사마르칸트 제일의 성지이다. 이슬람 종교지도자, 순교자를 비롯한여 티무르 왕족 사람들의 영묘가 일직선으로 세워져 있는 특별한 곳으로 지금도 순례를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각 영묘마다 그 장식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이 뛰어나서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 잡으며,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타일의 색채 또한 예술이다. 입구를 지나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보이며, 이 계단을 올라가면 영묘들이 줄지어있다. 골목을 따라 맨끝까지 들어가면 쿠산 이븐 앗바스의 영묘가 있다. 샤히진다는 ‘살아있는 왕’이라는 뜻으로 아랍의 침략 때 생겨난 전설이 근원이 되고 있다. 포교를 위해 사마르칸트를 찾은 예언자 무하마드의 사촌형 쿠산 이븐 앗바스는 이곳에서 예배를 하던 중 조로아스타 교주에게 습격을 당해 목을 잘리고 만다. 그러나 그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예배를 마치고는 자신의 목을 깊은 우물로 가서 넣어버리고는 사라졌다. 무슬림들은 그는 영원의 생명을 얻었으며, 이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을 위해 나타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나오면서 보면 사후 세계도 왕족과 평민의 차이를 느끼게한다...왕족의 무덤은 화려함으로 치장되어 있어나. 바로옆 평민들의 묘는 조그마한 비석하나만 세워져 있다...
9. 아프라샵 역사박물관 아프라샵 언덕 아래 자리잡은 흰색 건물의 작은 박물관이다.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한국 우즈베키스탄 실크로드 우호협력 기념비가 하나 있다. 경북지사를 지낸 박관용씨와 경주시장 (이름이 생각나지 않네요....)이 이곳에 기념비를 세워다고 되어 있다. 알렉산더 대왕시대의 동전을 시작으로 조로아스타교의 제단과 우상 아프라샵 언덕에서의 출토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으며, 발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두고 있다. 전시물 중 최대의 볼거리는 7세기 영주의 궁전에서 발견된 사절도 일 것이다. 7세기 바흐만와의 치세 중 이곳을 방문한 외국 사절단의 모습을 그린 벽화이다. 특히 벽화에는 조우관 을 쓴 삼국시대 신라 사신들의 모습도 있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7세기 대당 전쟁의 절박한 상황에서, 내륙아시아 국가들과 동맹을 추구하던 삼국시대의 조정의 외교 노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물관 정문으로 들어갔을 때 정면의 벽화 오른쪽 하단 끝에 보면 머리에 깃털 장식을 한 두 명의 사신이 보인다. 그들이 신라의 사신이라고 한다. 현재 채색이 많이 벗겨져 그 형태만 겨우 보인다. 현지에서 발행되는 문헌에는 ‘고구려의 사신’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는 한국어로 된 비디오 감상도 할 수있다..꼭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10. 울루그벡 천문대의 터 (Обсерватория Улугбека) 아미르 티무르의 손자로 사마르칸트의 황금기를 지배했던 위대한 왕이자 학자였던 울루그벡의 천문대이다. 아프라샵 언덕에서 북동쪽으로 약 1km정도 가면 울루그벡의 동상이 보인다. 그 뒤 언덕에 천문대의 터와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는 천문대의 기초만 남아있는데, 이전에는 높이가 40m에 이르는 거대한 천문대였다고 한다. 조그마한 박물관에 들어가면 그때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사진과 미니어쳐가 있으며, 그 시대의 천문관측기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의 관측을 바탕으로 울룩벡은 항성시 1년간을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추측했다. 이는 오늘날의 정밀기기로 계산되어진 365일 6시간 9분 9.6초에서 오차는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망원경도 없는 당시의 기술로 어떻게 이렇게도 정확한 수치가 나올 수 있었을까 놀랄 따름이다. 또 1,018개 별의 궤적을 기록했던 그의 천문표는 후에 콘스탄치노프에게 도망친 제자에 의해 출판되어 울루그벡의 이름을 널리 세계에 알려졌다. 그의 명성은 역사 속에서 전설로만 전해져오다가 1908년 러시아의 한 고고학자에 의해 땅에 묻혀있던 천문대의 터가 발굴되면서 그 존재가 확실해졌다고 한다...이곳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규모도 조그마하고 조금은 실망할 수 있다... 관광후 사마르칸트 역으로 이동, 역 입구부터 여권검사와 차표 검사, 짐 엑스레이 체크 까지 한다. 대합실은 넓은데 사람들은 별로 없다...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를 잊는 고속열차를 탑승하는데, 여자 승무원이 “안녕하세요‘ 라고 한다. 더욱더 친근감이 간다...우리나라 첫 도입 KTX처럼 자리가 앞으로 반, 뒤로 반이였다. 출발후 열차에서 기내식을 준다(파이 1/4 1개와 물티슈), 열차 이동용 매장은 비쌴편이다. 오랜지 주스 한병에 6,000솜(약 3불), 맥주 한병에 8,000솜이다. 커피 한잔에 5,000솜. 참고하세요. 2시간후 타슈켄트 역에 도착 호텔로 이동후 휴식, 저녁은 호텔 내부에 있는 한식당 명가에서 식사...김치찌게...짬뽕...냉면...양이 엄청 많아요....맛은 냉면이 맛있고, 나머지는 조금 짠 편입니다...밑 반찬은 12개 정도 나옵니다..
7월 2일 호텔 조식후 전용차량을 이용 침간산으로 이동(약 1시간 50분) 침간산 2인용 스키 리프트를 이용 전망대까지 등정 약 30분(리프트 비용 10,000솜) 전망대에는 말 트레킹을 할 수 있습니다....멋진 말을 골라서 나 혼자 말 트레킹을 즐김...말을 탈 줄 아는 사람은 혼자도 탈수 있다...꼭 한번 경험해 보세요. 리프트로 오르면서 왼편으로 대침간산을 감상 할 수 있어요... 리프트 하산후 차량으로 약 10분 이동하면 약 10분정도 소요되는 리프트 짧은 코스는 8,000솜에 탈 수 있습니다.. 이 리프트를 탑승하면 대침간산, 소침간산, 치르박 호수를 감상 할 수 있음 치르박 호수는 강을 막아 댐을 설치하면서 생긴 인공호수입니다. 타슈켄트의 물과 전력의 주 공급처인 치르박 호수는 타슈켄트 시민들의 여름 휴양지입니다...에메레드 물빛의 아름다운 호수입니다..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종합해보면 우즈베키스탄은 어느 나라보다 깨끗한 나라입니다. 시내거리, 시장거리 모두 깨끗하며 우즈베키스탄 어디를 가나 깨끗한 모습, 깔끔한 나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유적지 또한 옛 모습 그대로 유지 된 곳이 많으며, 우즈베키스탄에서 꼭 가봐야 하는 도시는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의 유적지를 많은 시간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꼭 히바, 부하라 유적지는 일몰, 일출 2회 정도 감상 하는 것은 추천합니다. 우즈베키스칸 여행은 유적지에 대한 정보를 사전 공부를 하고 오시면 더욱더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모스코, 메드레세 비슷한 모습이 많아서 사전 공부를 하고 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그리고 현지에 도착하시면 도시별 사진첩을 활용해서 관광을 하시는 것이 좋아요. 음식은 주로 꼬치, 기름밥, 빵이 주식이며 주로 고기로 음식을 많든 것이 많아요....호텔은 가능한 4성급이상을 추천 합니다.. 한식은 한국 요금과 비슷합니다...상당히 비싼편입니다....가능한 현지 음식을 추천합니다. 현지식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추천하고 싶습니다....사용되는 화폐는 우즈베키스탄 돈으로 환전해서 사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달러 사용시 은행 표준 환율을 적용합니다...실물 환율 변화가 심한편입니다. 환전상을 통한 환전시 유리는 하나, 불법으로 환전 시 발각되면 추방될 수 도 있습니다. 여행시기는 1년내내 가능합니다..단, 가장 좋은 시기는 3중순~5월말/9월~10월까지입니다..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3도 까지 내려갑니다....6월말~8월 중순에 여행 시 오전과 18시 이후 여행을 하는 것이 좋아요...낮에는 너무 더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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