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하늘에 아직 바알간 이월 보름달도 채지지 않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집결지인 구미에 도착하니 6시 45분. 7시 10분경 37명의 회원들이 모여 출발하니, 조회장님의 안산과 즐산에 대한 인사 한 말~쌈 하시고, 정총무님의 산행안내지도 한 부, 김밥 한 줄씩, 떡 한 모다기..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를 비몽사몽(새벽 한국과 사우디의 축구경기 시청으로 잠 못 이룸)간에 타고 도착하여 빠져나온 곳이 정읍톨게이트. 여기서부터 국도 22번 도로를 달려 고창에 도착, 고창에서 또 다시 달려20㎞ 떨어진 선운산(336m)에 도착하니 10시 20분,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려 등산 준비를 마치고 천마봉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질. 산은 낮지만 갖가지 비경을 보기 위해 일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곳. 봄의 매화와 동백, 여름엔 맑은 물과 꽃무릇, 가을 단풍, 겨울 설경이 절경을 이뤄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운다는 선운산. 천년고찰 선운사가 있는 산. 절 입구에 고창 안내지도를 보았더니, 아 글씨 고창에 선운사만 있는 줄만 알고 갔더니 인물도 많은 겨
동학의 교주 녹두장군 전봉준의 태생지, 광대소리와 판소리 타령의 창작과 집대성한 성자 동리 신재효선생이랑, 판소리의 명창 만정 김소희, 일제 강점기에 언론과 육영사업에 한 몸 받친 인촌 김성수랑, 그 또 있잖여 유명한 시 ‘국화 옆에서’의 저자 미당 서정주선생이 다 이곳 출생이라는 겨. 참 말로 쟁쟁하고 많이 들어본 이름들이 줄줄이 있는 겨. 그 분들이 이 고장 출신이라네. 그런 동리를 이제 사 와 본다니 대한민국이 넓은 겨? 아님 내 견문이 좁은 겨?
ᄒᄒ~ 이만하면 고창군청에서 나한테 개인적으로 연락 줄 겨? 안 그려 님들?
나지막한 산에 비해 골이 깊고 물이 맑으며 수림이 울창하여 절경을 이룬 산. 그 산을 올라가 보더라고 우리 다 함께. 10시 30분에 주차장을 출발하여 우측으로 작설차밭을 지나 노점상들이 줄지어서 지방특산물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눈요기 삼아 절 입구 도착, 돈 내고 들어가야겠죠? 요사이는 월담하는 사람은 없지요? 회장님의 회장다운 간단한 훈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됩니다.
선운사는 등산을 하고 내려 올 때 구경하기로 하고, 맑은 날씨에 바닥을 하얗게 들어내는 계곡 물하며 봄 날씨가 그만인 겨. 산책길 같은 길을 쭈욱 따라 가니 봄의 맑은 정기를 느끼게 하고 길옆으로는 키 큰 나무(이름 모름)가 숲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9-10월에 핀다는 다년생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어 황량한 산길에 파란빛을 틔우고 산객을 마중 나와 있어 눈길을 끈다. 산책 삼아 끼리끼리 올라가는데 長沙松이 우릴 반기고 서 있다. 나무가 반듯한 것이 품위가 있고 멋들어 지구만. 나도 나이가 들어도 저런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잘 될랑강 몰겠지만. 바로 옆에 있는 진흥굴에 들러 불상에 안산이 되게 기원을 드리고 올라가니, 낙조대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도솔암을 지나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드는데 힘들겠구나 생각하니 어느 사이 만월대. 도착하여 잠시 시원한 봄바람과 산천을 내려다보며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번지점프 한번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벽이 가파르다. 일행이 다 올라오자 단체사진 한 컷 후 바로 옆에 보이는 낙조대로, 도착하여 보니 인기 절정을 구가하던 대장금의 촬영지라는 이정표가 자그만 하게 놓여 있다. 최상궁이 자살한 장소라는 안내까지 덧 붙여서 호기심에 바위에 올라서니 최상궁의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뛰어 내리면 정말 죽을까? ᄒᄒ~ 가보면 알지롱
붉게 물들어 태양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드는 황홀한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낙조대를 뒤로하고 능선을 탄다. 능선을 타는 산행은 언제나 즐산의 최고이다. 눈 아래로 펼쳐 보이는 산야! 그 많은 생각들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같이 근무하던 주미씨가 선운사로 삼행시를 지어 보란다. 마음 같아서는 지워보고 싶었는데 선뜻 ‘그러마’라고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 글로 대신한다.
(선) 선운산에 갔더니 선운사가 있는데 (운) 운치있는 절이지만 미당이 말하는 주모의 육자배기는 들을 수 없고 (사) 사찰 뒤안에 동백꽃도 아직 일러 피지는 아니하고 봄기운에 무르익고만 있더라
낙조대를 지나 천마봉 사이에 도착하니 12시 10분. 야호 기다리던 식사시간, 산에서 밥 먹는 재미로 산행을 한다해도 과언이 아닌 짭짭 시간. 일행은 넓은 바위를 중심으로 가지고 온 점심을 삼삼오오 앉아서 맛나게 나누어 먹는다. 이슬이도 곁들여서.....가지고 온 것을 다 먹고 커피까지 한잔하니 포만감으로 몸이 무겁다. 식전과 식후의 산행은 다르다. 그래도 기분은 베스트 업, 낙조대를 멀리 보며 천마봉, 내가 최고의 높은 지위에 있는 양 거만하게 아래를 호령하듯 내려다본다. 자만은 금물인데(속으로...) 그리 힘들지 않는 산행에, 즐거운 마음에 예정된 코스를 지나쳐 청룡산까지, 이크, 애초의 하산 길이 아니다. 다른 일행에게 물어서 쥐바위에서 하산하기로 결정.
하늘과 바다가 한 눈에 잡히는 선운사 정상을 뒤로하고 하산. 퇴직한 김종식선생이 연로한 눈으로도 꽃대를 물고 피어난 蘭을 발견하고 한 포기를 캐니 덩달아 내 눈과 아내의 눈빛도 반짝인다. 아뿔사, 재수 옴 붙은 蘭이 울 여사 눈에 띄어 분가 길에 오른다. 신문지에 돌돌 싸서 조심조심 배낭에 넣고 룰루랄라...
내려오는 길 또한 신난다. 낙엽을 밟으면 내려오는 하산 길 군데군데 파란 선운산 자생난이 눈에 띄고 진달래가 봄 채비를 서두러고 있는 것이 4월에 왔더라면, 4월에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바위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 물, 그 물 맛 참 말로 죽여 주데~~
어느새 다 내려와 장사송이 안산을 축하하며 우린 맞이해 준다. 평탄한 길을 아내의 손을 잡고 내려오니 아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주위의 여자들이 부러운 듯 한마디 거든다. '보기 좋네요.' 눈앞에 선운사가 보이며 우린 경내로 접어든다. 춘백으로도 불리는 선운사 동백이 뒤뜰에서 내려다보며 우릴 기다린다. 하동의 매화가 지고 난 4월부터 꽃봉오리를 터뜨린다는 동백. 선운산 동백은 4월초부터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여 5월 초순까지 피어나 꽃 병풍을 두른 듯 장관을 연출한단다.
미당 서정주의 시가 생각난다.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라고 늦은 동백을 노래하고 있다. 주차장으로 오는 길에 복분자 한 병을 사서 의미심장하게 배낭에 넣고, 또 룰루랄라~ 선운산 입구 바위 절벽에는 올라갈 때 보지 못한 내륙에서는 제일 큰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길가에 두꺼비 암컷이 수컷을 업고 있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 디카로 한 컷, 그리고 한 마디(옆 눈치 힐끔 한번 보며) “나도 한 평생 마누라 등에 업혀 살았으면 좋겠네”~ᄒᄒ
이렇게 해서 선운산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쭈꾸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격포항으로 출발하여 바다 바람을 맞으며 시멘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게걸스럽게 쇄주와 뚝딱해 치우고, 돌아오는 길에 '불멸의 이순신' 촬영장까지 덤으로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 열한시가 가까웠다.
이불 속에서 산행의 맛과 멋을 감회하며 오늘도 나의 존재를, 삶을 더욱 가치 있게 해준 금오산악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회장님, 총무님 그리고 함께 한 일행 여러분 감사해요~~~.
선운사 뒤뜰에 "동백꽃"이 피어난 것을 보지 못한 것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그래서 한편의 시로 위무하고자 한다.
고창에 가면
고창에 가면 선운산이 있고
선운산에는 선운사가 있는데
선운사 뒤안에는
오백년 묵은 동백꽃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봄이면 흐드러지게 고운 자태 뽐낸다는데
아 글씨, 기다리는 님이 찾아들지 않았는지
아직 어여쁜 자태는 보여주지 아니하고
얇은 망사로 뾰족이 가리옵고 애만 태우고 있는데
그래도 어디가나 성급한 놈이 있어
여기에도 고로코롬 핀 꽃이 있어
노란 적삼에 새빨간 치마차려 입고
더러 님 마중 나온 것을 보고 있으니
흐뭇한 맴이 들지 않겠어
어메 어여뿐 것,
어메 거시기 한 것
선운사 복분자는 또 어떻고
동백꽃에 뒤질세라
유난스레 새빨간 때깔이 곱기도 하거니와
그 효능이 거시기에도 좋다는데,
인천강 하류에서 잡아 올린 풍천장어는
옛날에 임금님 진상품으로 올려져
양기를 북 돋았다는데,
아 글씨, 우리도 복분자 한잔에
풍천장어 한 사라 곁들여
거시기 힘 좀 길러 보면 어떨까
오늘 밤 마나님 까무라 치는 것 좀 보게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도 무척 품위있는 분일거란 생각이....작년 가을에 선운사에 다녀왔어요. 붉게 물든 단풍과 풍천장어,서정주님의 국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