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했으면 올 겨울 네번째 골프약속이 무산될 뻔했다.
올들어 잦은 강설과 혹한으로 세번씩이 골프약속을 취소한 뼈아픈 상처를 가진 터에 네번째 골프약속마저 일주일전부터 예고된 강우로 취소될 위기를 맞았었다.
네번씩이나 취소하는 것은 뭣하다 싶었는지 방송에서 상당한 강수량과 바람을 예고하는 일기예보가 나오는데도 아무도 취소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몇번 예보가 빗나가 운좋게 라운드할 수 있는 행운을 맛본터라 직전까지 기다려보자는 생각이었다.
목요일(2월25일) 낮에 시간이 잡혔는데 전날 저녁까지 비올 기미가 없었고 당일 새벽 4시에 눈을 뜨자마자 밖을 내다보니 역시 비는 흔적도 없었다. 올커니, 드디어 라운드를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한숨 자고 나니 밖에서 빗소리가 들린다. 내다보니 땅은 흠씬 젖었다. 그래도 저 정도는 버텨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혹시 다른 멤버가 미리 취소 전화를 할까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비는 내리고 있지만 그리 강하지는 않다. 구름도 빠르게 흘러가는 모양이라 낮시간은 괜찮을 지도 모르니 일단 출발하자"는 내 전언은 모두에게 전달됐고 일행은 빗속의 고속도로를 날려 소피아그린에 도착했다. 도중에 빗방울이 멎어 올들어 첫 라운드의 행운을 맛보는가보다 싶었는데 산너머에서 검을 구름이 몰려 오더니 금새 굵은 빗줄기가 드리운다.
이미 옷을 다 갈아입고 우산까지 챙긴터라 이 정도 비에 포기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골프장은 한산했다. 미리 취소한 사람도 많고 현장에 도착해서도 라운드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정종으로 목을 데운 뒤 예정된 티오프 시간을 정확히 지켜 빗속에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골프채가 약간 미끄러지는 듯 했으나 용케 볼은 허공을 날았다. '일을 골프하듯 했다면 모두 성공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페어웨이에 물이 많이 고여 있어 케주얼워터지역은 볼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놓기로 했다.
두번째 샷 역시 잘 맞아 나갔으나 방향이 약간 틀어져 에지에 떨어졌다. 9번으로 붙여 가볍게 파 세이브. 일행 세 명은 보기에 더블보기 둘.
두번째 홀에서 날린 티샷은 약간 잡아당겨 위험한 상태. 잠정구를 날리고 가보니 첫번째 볼을 다행히 살아 있었으나 러프속 낙엽에 묻혀 페어웨이로 빼내는 것으로 만족. 세번째 샷은 너무 길었다. 붙이는데 실패해 보기.
이후 다섯홀 연속 파 행진. 두 번의 버디를 놓친 게 아쉬웠으나 우중의 스코어로는 대만족이었다.
빗줄기는 가늘었다 굵었다를 반복하며 쉼없이 내렸다. 골프백 속에 장갑이 두 켤레밖에 없는 것을 확인하곤 큰 실수를 했다 싶었다. 쉴새 없이 수건으로 장갑과 그립의 물기를 닦아냈으나 손바닥은 골프채를 제대로 움켜쥘 수 없었다. 이런데다 물기 없는 페어웨이를 찾을 수 없어 수중골프 양상이 되는 바람에 얼굴에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샷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보기 하나에 더블보기를 더했다.
악천후 속에 40을 친것을 동료들은 축하해주었다. 기분같아서는 악천후만 아니면 이븐이하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정종으로 식은 몸을 덥히고는 후반전 돌입. 핸디캡을 미리 주었는데도 주머니가 두둑해 피 흘린 분에게 추가 핸디캡을 주었다.
그런데 두번째 실수를 했다. 여분의 장갑을 마련하고 마른 수건을 챙겨야 되는데 깜빡했다. 캐디가 마른 수건 정도는 준비해주었으면 한결 좋았을텐데.
올겨울 내내 연습장을 충실히 다닌 탓인지 샷의 내용은 맘에 들었는데 문제는 미끄러운 장갑에다 웅덩이투성이 페어웨이 때문에 작정한 거리를 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잘 버텨 파를 6개 잡아 내고 보기 2개에 더블보기 하나. 후반도 전반과 함께 40을 쳤다.
7자를 그리는데는 실패했지만 우중 라운드 스코어치고는 불만일 수 없었다.
빗물에 녹아가는 호수의 얼음장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정경을 보면서 봄이 와서 산과 들에 녹색이 충만할 때 나의 골프 역시 찬란한 봄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몇년반에 이븐 파, 운 좋으면 언더 파도 기대해야겠다는 욕심이 살금살금 나타나기 시작했다.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모르겠다. 샷의 감각은 좋은데, 욕심이 피어오르는 것은 불길하다.
기다려보면 알겠지. 3월이 대답해 주리라.
첫댓글 언더파를 기원합니다!!!! 동반자가 누구될지 모르지만 많은 출혈이 예상되어 왠지...... 아무튼 베스트 스코아 기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