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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여러분! 감사 합니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마련 하신분들, 봉사를 열심히 하신분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문성우 회장을 비롯하여 前 정 회장 및 박 회장께서는 피치 못 할 사정으로 못 오시게 되었지만 님들의 빈자리는 허전 하더이다.
그러나 그 공백을 박 총무께서 잘 인도하시어 즐겁고 무탈하게 잘 다녀 왔습니다.
버스 대절 및 전반적 준비책 순희씨 수고하셨습니다. 명랑한 차내 분위기 메이커 영애씨, 종배씨도 수고하셨습니다.
점심시간은 오후 4시가 넘었는데도 이것 저것 먹은게 많아 배부르다고 거른 여성 친구들도 많았는데 반야교 다리건너 음식점에서
산채 정식은 모처럼의 별미였습니다.(한형호 교수님 고마워유!)
아직 완쾌하지도 않은 불편한 몸으로 참여해 주신 남철석 친구 참으로 고맙습니다. 동참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배도 부르고 시간도 없고 해서 뒤풀이는 그만 생략되었는데 다음 기회가 있겠지요!
► 삼성재에서 노고단까지
모처럼의 장거리 버스투어를 겸한 명산 지리산 산행과 오랫만에 보고픈 친구들과 만날 기대의 설레임으로 좀더 이르게 집에서
나서니 아직 찬바람도 따스하게 느껴진다. 사당역에 도착하니 벌써 변, 박 양총무가 마중나와 있다. 서울에서는 비교적 멀다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 일산의 영순씨, 김포의 순희씨, 김포부근으로 이사간 명재씨 등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을 보니 더욱
반갑다. 공자께서는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와 준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약속된 시간보다 10분늦게 7시 40분경 출발, 버스가 열심히 달리는 가운데 김밥, 떡, 오렌지, 처음본 심층수 등을 각 개인별로 공급 받아 오손도손 맛있게 아침식사를 하였다. 아담한 탁자가 놓여있는 버스 후미쪽에서는 홍어와 돼지고기 안주에 소주를 들이키면서
동양철학의 대가 명리학 박사 남촌 선생으로부터 사주팔자에서 시작하여 성명학,부부 애정론, 인생론 등 동양 철학을 달관한 구수
한 입담으로 강의가 장시간 동안 계속된다. 남촌은 어느새 도사가 다 되어 있다 ! 아무튼 인생을 향기롭고 슬기롭게 사는 지혜의
한 수를 무보수로 배울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구례 뱀사골 입구도 지나고 계곡길도 지나고 머리가 아프도록 뱅뱅 돌면서 산으로 오르기를 한참이더니 자가용 관광버스 빼곡한 삼
성재 주차장에 안착, 삼성재(1,100m)주차장에 도착하여 2시간여의 등산과 여유 시간, 남철석 등 계곡파 친구들을 남겨두고 잘 닦은 노고단 등산로로 직행, 간헐적으로 가랑비도 맞아 가면서(아마도 운무) 싸목 싸목 오르던 우리 친구들과 각지의 많은 등산객들......
약간 가파른 곳도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나이든 어르신들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도록 잘 완비된 등산로, 50분쯤 걸어 노고단 대피
소를 통과하여 바로 위의 노고단에 도착, 운해로 앞을 가려 노고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것은 온통 茫茫 大海 같았으니.... 그야말로 五
里霧中속이다. 지리산이라는 대자연은 쉽사리 멋진 장면을 허락하지 않는가 보다.
박 총무로부터 운무속에서 간신히 사진찍고 대피소에 다시 내려와 잘 삭힌 홍어와 삶은 돼지고기 안주에 복분자와 탱자주로 또다시
판을 벌려 잠시 목을 축이고 있을 때 구름이 확 벗어지는 것이 아닌가! 운무로 잘 보이지 않던 눈앞의 노고단 정상이 이내 시야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다시 올라갈수도 없고..... 아쉬운 하산 시작! 삼성재로 내려오는중 '100미터 우측 전망대'가 있다는 안내 표지가
나타난다. 호기심에 전망대로 가보니 구례마을 모습이 잘 보이는 것이 아닌가 ! 산수유 축제 현장이 제대로 보이고 멀리 화엄사 전경
까지도 내려다 볼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여흥시간, 나송주 이영애 부부의 깜짝 리사이틀 ! 금슬이 부쩍 좋아 보인다 . 꽃미남 신사 정해룡 친구의 ' 낙엽따라 가
버린 사랑' 열창, 감미로운 목소리는 아주 죽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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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소개
▲ 지리산
높이 1,915m, 동서길이 50㎞, 남북길이 32㎞, 둘레 약 320㎞. 방장산(方丈山)·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지리산(智異山)이라고도 한다. 남한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이다.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군, 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하동군 등 3개도 5개군에 걸쳐 있다. 1967년 12월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공원 총면적은 440.485㎢로 설악산국립공원의 1.2배, 한라산국립공원의 3배, 속리산국립공원의 1.5배, 가야산국립공원의 7.5배로 규모가 가장 크다.
방장산은 봉래산(蓬萊山:금강산)·영주산(瀛洲山: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 이들 3산을 삼신산(三神山)·삼선산(三仙山)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하여 4대신산, 다시 구월산을 더하면 5대신산 또는 5악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리산은 또한 정감록 신앙에 연유된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대한제국 말기에는 농민운동에 실패한 동학교도들이 피난하여 살았으며, 이들 일부가 신흥종교를 개창하여 오늘날 각종 민족종교의 집산지를 이루고 있다.
특히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도인촌은 갱정유도(更正儒道)의 신자들로 구성되어 지금도 댕기머리와 상투에 바지 저고리를 입으며, 전통문화관습을 유지하고 있다. 1948년에는 여순반란사건으로 패주한 좌익세력의 일부가 이곳에 들어왔으며, 1950년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패잔병 일부가 노고단과 반야봉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1,915m)을 주봉으로 반야봉(盤若峰:1,732m)·노고단(老姑壇:1,507m)이 대표적인 3대고봉이다. 주능선은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하봉(下峰:1,781m)·중봉(中峰:1,875m)·제석봉(1,806m)·촛대봉(1,704m)·칠선봉(七仙峰:1,576m)·형제봉(兄弟峰:1,433m)·명선봉(明善峰:1,586m)·토끼봉(1,534m) 등이 있고, 주능선과 거의 수직을 이루면서 남북방향으로 가지능선인 종석대(鐘石臺:1,356m)·고리봉(1,248m)·만복대(萬福臺:1,433m)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1,500m 이상의 큰 봉우리가 10여 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 개, 그밖에 85개 정도의 대·소봉이 있는 한국 최대의 산악군이다.
또한 천왕봉과 덕평봉(德坪峰: 1,522m) 사이에는 10여 대의 헬리콥터가 앉을 수 있는 넓은 세석평전(細石平田)이 있으며, 고산준봉이 많아 계곡 또한 20여 개나 된다. 그 가운데에서 피아골·뱀사골·칠선계곡·한신계곡 등이 지리산의 4대계곡이다. 피아골은 활엽수의 원시림이 광활하게 덮여 있으며, 칠선계곡은 험악하기로 유명하다. 그밖에 청학동과 불일폭포로 유명한 화개골짜기, 맑은 물과 작설차로 알려진 천은사골짜기 등이 있다.
산의 남동쪽은 저기압의 통과가 빈번하여 여름철 고온다습한 바람이 남동사면에 부딪칠 때 비가 많이 내리는 지형성 강우지역이다. 겨울에는 산지의 북서쪽에 한랭건조한 북서계절풍이 불어 기온이 더욱 낮아지는 반면, 남동쪽은 산지에 의해 계절풍이 막히고 남해를 흐르는 동한난류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도 비교적 온난하다. 연평균강수량은 1,200~1,600㎜이며, 6~8월에 강수의 50~60%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겨울에는 강설량이 많다. 지형이 복잡하고 구름과 안개가 많아 일조시간이 짧다. 첫서리는 보통 10월 하순경에 내리는데, 높이 600~700m에서는 10월 1일경에 내려 평지보다 13일 정도 빠르고, 1,500m의 높이에서는 6월초까지도 얼음을 볼 수 있다.
지리산은 불교문화의 요람지로서 곳곳에 국보급·보물급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계곡 입구에 있는 화엄사는 544년(신라 진흥왕 5) 연기(緣起)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불탄 것을 인조 때 벽암(碧巖)이 재건한 것이다. 입구에는 수령 300년, 밑둘레 5m가 넘는 화엄사의 올벚나무(천연기념물 제38호)가 있고, 경내에는 화엄사각황전(華嚴寺覺皇殿:국보 제67호)을 비롯해 화엄사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호)·화엄사4사자3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국보 제35호)·화엄사동5층석탑(보물 제132호)·화엄사서5층석탑(보물 제133호)·화엄사대웅전(보물 제299호) 등이 있다.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피아골 입구에 있는 연곡사(鷰谷寺)는 화엄사와 같은 해에 연기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현재는 일부만 중건되어 남아 있다. 경내에는 고려 초기의 석조예술을 대표하는 연곡사동부도(鷰谷寺東浮屠:국보 제53호)·연곡사북부도(鷰谷寺北浮屠:국보 제54호)·연곡사서부도(鷰谷寺西浮屠:보물 제154호)·연곡사현각선사탑비(鷰谷寺玄覺禪師塔碑:보물 제152호)·연곡사3층석탑(鷰谷寺三層石塔:보물 제151호) 등이 있다.
또한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에 있는 천은사(泉隱寺)는 828년(신라 흥덕왕 3) 덕운(德雲)이 창건했고, 경내에 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나옹화상원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호) 등이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의 쌍계사(雙磎寺)는 723년(신라 성덕왕 22) 진감국사 삼법이 창건했고, 경내에 최치원의 친필 비문으로 된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국보 제47호)와 쌍계사부도(雙磎寺浮屠:보물 제380호)·쌍계사대웅전(雙磎寺大雄殿:보물 제500호) 등이 있다. 그밖에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의 실상사(實相寺)를 비롯해 영원사·벽송사 등 사찰과 유물·유적이 많다.
계곡마다 많은 폭포와 소(沼)·담(潭)들이 산재해 있고, 기암괴석 사이를 흘러내리는 계곡의 경관들은 지리10경(智異十景)을 이룬다. 지리10경은 노고단의 구름바다, 피아골 단풍, 반야봉의 해지는 경관, 세석 철쭉, 불일폭포, 벽소령의 밝은 달, 연하봉 선경(仙景), 천왕봉 일출, 섬진강 청류(淸流), 칠선계곡이다.
제1경인 노고단은 구례 화엄사에서 올라가며, 10㎞의 산길은 중간 정도에서 가파르기 시작하여 정상부에서는 경사가 60~70°나 된다. 산저에는 광활한 초원대지가 펼쳐져 있고, 여기에 흐르는 물은 몹시 차가워 입 안에 넣으면 얼음을 먹는 듯하다. 특히 구름과 안개가 파도처럼 밀려올 때 발 아래 펼쳐진 대지는 산허리를 휘감은 구름바다로 변하여 산 정상부에 서 있는 이로 하여금 구름 위의 하늘에 올라와 있는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제2경인 피아골은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에 있는 골짜기로, 밭을 일구어 농산물로 피를 많이 가꾸었다는 '피밭골'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직전계곡(稷田溪谷)이라고도 부른다. 활엽수의 원시림이 울창하며, 특히 가을단풍이 유명하고 식물이 능선별로 구분되어 분포한다. 산홍(山紅)·수홍(水紅)·인홍(人紅), 즉 산·물·사람 모두가 빨갛다는 삼홍소(三紅沼)가 있으며, 홍류동(紅流洞) 3홍의 명소이다.
제3경인 반야봉은 노고단에서 능선을 따라 전진하다가 임걸령을 지나 우뚝 솟아 있다. 사방이 온통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산식물이 많다. 여름날 저녁 이곳에서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 해가 지는 장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제4경은 세석평전의 철쭉꽃이다. 산청군 시천면에 속하는 이 고원 들판은 자갈이 많다 하여 세석이라 부르며, 둘레가 12㎞나 된다. 들판 아래쪽은 원시림이 울창하고, 고산초원지대에는 5월초와 6월말에 걸쳐 키가 약 2m 되는 들철쭉이 분홍과 빨강으로 무리지어 들판을 가득 메운다.
제5경인 불일폭포는 쌍계사에서 산길을 약 4㎞ 올라간 곳에 있으며, 폭포 밑에는 넓은 자갈밭이 있다. 제6경인 벽소령은 반야봉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도중 토끼봉과 삼각고지·형제봉을 지나 약 6㎞를 내려가야 한다. 예로부터 지리산 남쪽의 하동군 화개면과 북쪽의 함양군 마천면을 연결하는 고개였다. 심산유곡의 고사목과 밀림이 우거진 곳에서 허공 중에 걸린 달이 장관이며, 높은 능선에 샘이 있어 야영하기 좋은 곳이다.
제7경은 연하봉의 고사목, 즉 말라죽은 나무의 숲이다. 세석평전에서 촛대봉을 거쳐 6㎞쯤 오르면 연하봉에 닿는다. 이 봉우리 일대는 원시림지대로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이 넓은 들판을 이루고 있다. 위로는 곳곳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클대로 큰 나무들이 나이가 다해 죽어 넘어져 있거나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태고를 느끼게 한다. 아래로는 수백 년을 지나도 푸르름을 간직하는 원시림이 수해(樹海)를 이루고 있다.
제8경은 천왕봉에서 보는 해돋이로, 끝없는 구름 위로 치솟아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 이곳 사람들은 3대를 두고 공덕을 쌓아야만 구름 위의 일출을 볼 수 있다며 극찬한다.
제9경인 섬진강의 맑은 물은 강가의 희고 고운모래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데, 이곳의 은어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제10경은 천왕봉에서부터 북쪽의 함양군 쪽으로 16㎞쯤 뻗어내린 옛날 일곱 선녀가 놀았다는 칠선계곡이다. 이 골짜기에는 삼층폭포·대륙폭포·칠선폭포·용소폭포 등 작은 폭포가 줄지어 있고, 선녀탕·옥녀탕·비선담 등의 못이 여름에도 차고 맑은 물을 가득 담고 있다. 그밖에도 쌍계사 입구의 벚꽃 터널과 남원 쪽의 뱀사골 단풍이 유명하다.
등산 코스로는 화엄사-노고단-임걸령-반야봉-뱀사골산장-연하천-벽소령-덕평봉-세석평전-장터목-천왕봉-법계사-중산리에 이르는 총 67㎞의 종주 코스가 있으며, 백무동-칠선계곡-하동바위-장터목-천왕봉에 이르는 5시간 코스, 신흥-대성동-세석평전-천왕봉에 이르는 1일 코스, 중산리-법계사-천왕봉에 이르는 4시간 30분의 단기 코스가 있다. 또한 매년 민속축제로 곡우절을 전후하여 열리는 지리산약수제와 지리산철쭉제가 널리 알려져 있다. 주위에는 관광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야영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위락·편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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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문학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시인 이원규는 10년 동안의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달랑 가방 하나만 들고 지리산에 들어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에서 8년째 잘 살고 있다. 지리산은 10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국 낭인(浪人)들의 해방구이자 자연주의자들의 메카였다. 그리고 그것은 현대 디지털사회에서도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현상의 남부군 등이 그토록 몸부림쳤던 이념의 해방구는 물거품이 됐지만, 낭인들의 해방구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3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에도 변함이 없는 것이 지리산의 낭인들이다. 지리산의 낭인은 거의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경찰은 추산하고 있다. 무슨 도를 닦는다, 기공을 한다, 무속신앙을 한다, 그림을 그린다, 녹차를 만든다, 사진을 찍는다, 자연염색을 한다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떠돌이 중노릇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들의 그 누구도 밥을 굶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리산에 와서 굶어 죽은 사람은 없다. 뿐만 아니라 자살한 사람도 없다. 기아와 자살이 없는 곳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에 지천으로 있는 약초만 뜯어도 먹고 산다. 그 마저도 하기 싫으면 얻어먹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 이원규 시인의 말이다. 지리산에서 자살한 사람이 없다는 말은 아마도 자연과 일체가 되면 무슨 절박한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 이 시인은 모든 물욕을 떨쳐내고 바람처럼 가볍고 자유롭게 살면서 고무줄 같은 지리산의 시간을 즐긴다고 한다.
지리산의 문학도 이제는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지리산>, <남부군>을 뛰어넘어야 한다. 어둡고 칙칙한 이념의 갈등, 해방구를 확보하고자 벌인 무력투쟁의 상처들은 벌써부터 치유가 됐어야 했다. 지리산이라고 하여 언제까지나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쓰고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지리산 문학도 이제는 밝고 환한 모습으로 다가와야 한다. 지리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이 이제는 분명하게 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둠의 사슬부터 끊어야 할 것이다.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고 노래했다. 오늘의 지리산 문학이 지향해야 할 좌표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등산은 말고 입산하러 오시라"는 이 시인의 말에 모든 해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제는 무엇을 정복하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합일이 되는 것이다. 정복해야 할 것은 마음속의 욕망의 화산이지 몸 밖의 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오늘의 지리산 문학이 나아갈 방향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에서 발원한 `생명 탁발 순례'가 전국으로 번져나고 있다. 지리산 실상사 도법, 수경 스님, 그리고 이원규 시인이 한 조를 이루어 순례에 나섰다. 밥을 주면 밥을 먹고, 술을 주면 술을 먹고, 돈을 주면 돈도 받는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열과 갈등을 봉합하고 평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 위한 탁발 순례인 것이다. 지리산은 그 혼자 돌아서 앉거나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장을 열고자 하는 것이다.
지리산은 이제 더 이상 어둠 속에 묻혀 있지 않으려 한다. 아니, 이미 햇살이 눈부신 들판으로 걸어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무엇을 감추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지난 세월은 지난 역사로 하나의 매듭을 짓고, 오늘은 오늘의 걸음을 밝고 힘차게 내딛는 것이다. 지리산 문학도 지리산처럼 새로운 걸음,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으로 기대된다. 지리산 생명 평화 탁발 순례, 그 조용하면서도 치열한 외침이 귓가에 여운으로 맴도는 오늘이다.
천왕봉 산신님을 모시옵고 / 반야봉 산신님을 모시옵고 / 노고단 산신님을 모시옵고 / 천하명산 산신님네 / 불쌍한 백성들을 / 지켜주고 살려주고 / 받아주고 도와주세 / 두류산이 여기로구나 / 천왕봉 성모신을 모시옵고 / 반야봉 대왕신을 모시옵고 / 노고단 할매신을 모시옵고...
위의 사설은 지리산 무당들이 곧잘 읊조리는 것이다.
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은 지리산의 3대 영봉인데, 예부터 신(神)이 정주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천왕봉은 어머니신(여신), 반야봉은 아버지신(남신), 노고단은 할머니신(여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온 것이다. 천왕봉은 무당 어머니가 8명(또는 100명)의 딸을 낳아 8도에 보냈다는 무조설(巫祖說)의 시원지이자, 고려 태조가 어머니 위숙왕후를 기리기 위해 성모사(聖母祠)를 지어 성모석상을 모신 곳이다.
노고단은 마고(麻姑) 할미가 정주한다고 하여 제단을 만들어 신라 때부터 나라에서 중사의 예를 갖추고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노고단은 선도성모, 곧 어머니 산이면서 마고 곧 할미신이 정주하는 곳으로 인식해 왔다. 천왕봉과 노고단에 정주하는 신은 똑같이 어머니신이자 할머니신으로 크게 보면 어머니신이다. 이는 곧 지리산이 모성의 산임을 뜻하는 것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으로 온갖 아픔과 고난을 겪고 있던 수많은 민중들을 품어안았다. 지리산 개산(開山)의 역사인 달궁의 `마한 피란도성'도 멸망의 길을 걷는 한 왕조의 한과 유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준 것이다. 지리산에 숨어들어 피란도성을 이룬 것은 마한뿐만 아니었다.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일명 양왕)도 왕산 기슭에 `수정궁'을 열고 망국의 한을 달래고는 했다. 구형왕은 한국식 피라미드라는 돌무덤을 지리산 기슭에 수수께끼처럼 남겨놓고 있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이제는 동식물의 낙원이자 우리들에게도 지상의 낙원이 되고 있다. 지리산에 사는 이원규 시인은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오시라"고 말한다. 입산은 자연과 한몸이 되는 상생의 길이기 때문이란다.
[출처] 한국문학지리지-지리산과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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