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샤 중국어 학원 장가계 여행 수기
우리 화샤중국어학원 강사들과 수강생 13명은 백두여행사를 통해 중국 장가계로 5월 5일부터 5월 10일까지 어학연수 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번 연수에 참가한 강사님들로는 메이쑤, 진잉, 차이산, 스위, 링란, 자이허 6명과 직원 석종배 실장님 그리고 수강생 곽형기(프리토킹 아침 7시50분반), 김문수(프리토킹 오전 9시반), 조정호(프리토킹 오전 9시반), 최도운(프리토킹 주말 오전 10시반), 나운순(중급HSK 주말 오후 2시 30분반)선생님들. 그 외 진잉성생님의 친구인 강영분여사님이다. 우리가 백두여행사를 선택한 이유는 우리 학원 강사이신 링란선생님의 남편이 백두 여행사의 사장님이기에 여러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4월말까지 봄 기운을 느끼지 못했던 날씨는 5월에 들어서자 갑자기 초여름 날씨를 보이면서 연속 서울의 최고 기온이 28℃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하늘이 우리를 돕기라도 한 듯 5일, 그날따라 최고 기온이 24℃로 내려가면서 시원한 바람까지 불었다. 공기도 맑아 기분도 한결 상쾌해졌다.
우리 일행 13명중 장가계를 가본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우리 강사 전원이 중국 원어민이기는 하지만 장가계는 누구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저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장가계는 중국인들에게도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가계에 대한 지식이라야 중국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10곳 중에 한곳이다. 산의 절경이 대단하다. 그저 그 정도일 뿐이었다.
첫째 날 5월 5일(토):
그날따라 어린이날이어서 차가 막힐 줄 알았는데 오후라서 그런지 전혀 막히지 않고 교통이 원활하여 우리는 아주 순조롭게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은 백두여행사의 요구에 따라 오후 6시 30분에 인천 공항 5번 출구 앞에 집결하였다. 우리가 도착하니 백두여행사 김세광사장님이 미리 공항에 나와 대기하고 계셨다. 모두들 시간도 참 잘 지켜주어서 진잉선생님과 진잉 친구분이 10분, 차이산선생님이 15분 늦은 것 외에는 모두 지정된 시간에 맞춰 도착하였다. 이만하면 양호한 편이 아닐까?
우리 일행이 다 모이자 백두여행사 김세광사장님이 여행 주의 사항에 대하여 아주 상세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또박또박 설명해 주셨다. 백두여행사에서는 이번에 여행일정과 투숙, 식사 등 면에서 많은 신경을 써 주셨다. 그것도 그럴것이 사장님의 부인이 우리 화샤중국어학원에 몸 담고 있으니 왜 그렇지 않을까? 여행사에서는 사람들마다 여행용 미니 가방을 선물해 주었다. 우리 학원에서도 남성들에게는 티셔츠, 여성분들에게는 원피스를 선물해 드렸다.
김세광사장님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안전과 여권을 꼭 잘 챙기라는 것이었다. 그가 직접 공항에 나와 배웅까지 해 주니 너무나 고마웠다. 이번 여행팀은 우리 학원에서 짧아서 3년 길게는 8년이나 우리 학원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내가 평소에 제일 아끼는 강사님들과 우리 학원에서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으시고 공부하시던 수강생 분들이었다. 그야말로 저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분들이었다. 저로서는 어차피 학원이 주최측이 된 이상 이번 여행이 즐겁고도 안전한 여행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가 탑승할 비행기는 인천국제공항으로부터 중국 호남성 장사황화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중국 동방항공 MU2024편이다. 장가계는 아직 국제공항이 없어서 장사시(长沙市)에 내려서 다시 버스나 기차로 이동해야 한다.
출국 수속을 밟고 모두들 나와 있는데 진잉선생님과 나운순선생님이 나오지 않았다. 후에 알고 보니 진잉선생님이 핸드백에다 맥가이버칼을 넣고 나오다가 걸렸다고 한다. 나운순선생님은 진잉선생님을 도와주느라고 늦어졌다고 한다. 출국 전에 김세광사장님이 그렇게 라이타, 세제, 물, 칼 등을 소지하지 말라고 강조했것만. 아마 진잉선생님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인 것 같았다. 순간 나는 지난번 우리 강사들이 제주도로 여행 갔을 때도 진잉선생님이 맥가이버칼을 소지하여 걸린 적이 있었던 일이 주마등마냥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몇 분간 늦게 나왔지만 그저 웃고 지나가 버렸다.
후에 알고 보내 진잉 선생님이 나올 때 자기 때문에 신경을 써 주신 분들에게 공항 음식점에서 식사 대접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의리 하나만 끝내 주네요! 별거 아닌데 뭐.
우리가 타야 할 탑승구는 지하로 내려가 다시 공항 지하철을 타고 약 1분간의 운행을 걸쳐 내린 후 다시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올라야했다. 우리 일행은 탑승하기 전 면세점을 돌았다.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 21시 50분보다 약 40분 늦은 22시 30여분에 이륙하였다. 비행기는 규모가 꽤 큰 기종이지만 만석이었다. 중국 비행기라고는 하지만 중국인은 별로 없고 거의 장가계로 가는 한국인 여행자들이었다. 젊은이들은 얼마 없고 대부분 50~60대의 중 장년 들이었다. 아마 지금은 휴가철도 아니어서 젊은 층은 시간을 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분들이 줄곧 자식 키우느라, 돈을 벌랴 고생에 고생만 하시고 즐거움을 얼마 만끽하지 못했던 분들이 이제 남은여생을 좀 즐겨보자는 분들인 것 같았다.
비행기는 별로 흔들리지도 않고 조용히 밤하늘을 날았다. 한 밤중이라서 그런지 탑승전의 그 흥분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모두들 두 눈을 살며시 감고 잠을 청했다. 얼마 지나자 기내식이 나왔다. 기내식 도시락은 그래도 먹을 만 했다. 식사하고 쪽잠을 좀 자고 깨어났더니 비행기는 2시간 50분간의 비행을 걸쳐 어느덧 6일 2시 경에 장사황화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출국 수속과 짐을 찾는데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고 비교적 빠르고도 순조로웠다.
둘째 날 5월 6일(일):
우리 일행이 공항 출구에 나오니 현지 가이드 최미화양이 반갑게 일행을 맞아 주었다. 간단한 점검을 마치고 최미화양의 안내에 따라 현지에서 제공한 버스에 올랐다. 우리가 탄 버스는 정원 13명에 불과 하지만 45인승 호화 버스였다. 약 20분을 달리더니 우리가 투숙할 호텔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머문 호텔은 5성급 호텔인 개원흠성호텔(开源鑫城酒店)이었다. 도착해보니 한 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금방 도착한 한국인들로 붐비었다. 나는 시간이 너무 늦었음으로 일찍이 주무시자고 여러분들에 제안하고는 금방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옆방에 계시는 김문수선생님이 저와 저희 룸메이트인 최도운선생님을 불렀다. 김문수선생님과 조정호선생님이 룸메이트다. 방에 가보니 우리 일행 중 남자분들은 다 와 있었다. 내가 샤워를 하느라 늦게 가보니 한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문수선생님이 글쎄 한 밤중에 밖에 나가서 장가계술(张家界酒) 2병과 절인 오리발과 절인 꼬치 몇 점을 사오셨다. 우리 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워서 현지 중국인과는 처음으로 대화를 하면서 물건을 사보셨다고 한다. 그것도 한 밤중에. 김문수선생님은 한국말을 한마디도 모르는 현지 중국인과 의사소통이 될 수 있었다는 그 자부심에 흥분까지 하시면서 자못 들뜬 분위기시었다. 김문수선생님, 그는 우리 학원의 분위기맨이시다. 그이가 있는 곳이면 언제나 활기가 넘치고 떠들고 웃음꽃이 핀다. 그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내 노라는 금융계의 베테랑이시란다. 그는 삼국지를 30번이나 통독 하셨단다. 이번 여행에도 중국어 단어장을 몇 권 들고 오셨다. 끈기가 있으시고 박식한분이시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다. 그는 우리 학원 등산 팀 팀장이시기도 하다.
먼 길에 지치고 너무 늦어 그런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더니 비몽사몽중에 모닝콜 소리에 깨어났다. 현지 시간 6시, 한국 시간으로 7시였다. 5성급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표준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엘리베이터는 여행객들이 너무 밀려 약 15분간 기다려서야 겨우 탈 수 있었다. 아침 식사는 뷔페식이나 음식은 그나마 괜찮았다. 그러나 수박이 좀 있는 것 외에는 다른 과일은 없었다. 떠나야 할 길이 급함으로 가이드는 30분가량의 식사시간을 주었다. 빨리 서둘렀지만 우리는 현지시간으로 7시 40분에 장사시를 떠나 장가계로 출발하였다.
장사시(长沙市)는 호남성 성소재지로서 6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대 도시이다.
조식 후 우리는 전날 저녁에 마중 왔던 여행 전용 버스를 타고 장가계로 이동하였다. 13명이 45인승 버스를 타니 매우 널직하고도 편안하게 탈 수 있었다. 운전기사는 장가계 현지 토가족(土家族)청년이 었는데 당(唐)씨었다. 최미화양은 우리더러 그를 탕따거(唐大哥)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우리 나이로는 그 호칭이 걸맞지 않지만 그저 그냥 그렇게 불러 주었다. 버스는 얼마 달리지 않아 장사시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고속도로는 차량들이 많지 않아 아주 무난히 달렸다. 장가계로 이동거리는 400여km가 조금 안 되는 거리였다. 무한히 펼쳐진 평원 도로 양 옆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농촌 풍경인 논과 마을 모습만 보일 뿐이다. 가끔 소도시도 보였다. 집들은 거의 3~4층 빌라처럼 지은 집들이었다. 이곳은 기후가 습하여 1층은 사람들이 거실로 사용 할 수 없다고 한다.
약 4시간을 달려 드디어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장가계 람천호텔(蓝天大酒店)에 도착하였다. 4성급이지만 방은 좋았다. 장사에 있는 5성급 호텔보다 더 깔끔하다. 짐을 호텔에 풀고 약 10분간 버스로 삼천리음식점으로 이동하여 한 중국 조선족이 운영하는 음식점에 가서 식사하였다. 이는 아마도 여행사 지정 음식점인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하니 한국 여행객들로 붐비어 밖에서 좀 기다려서야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다. 음식은 현지식으로 한국인들의 맛에 잘 맞게 만들어져 모두들 매우 맛있게 먹었다. 물론 끼니마다 중국 술은 빼 놓을 수는 없겠지요? 나는 이미 여러분들에게 공표하였다. 끼니마다 술은 우리 학원 측에서 부담하겠다고, 그리고 가이드와 운전기사에 주는 팁도 내가 부담하겠다고. 모두 그렇게 해 드릴만한 분들이니깐.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곧바로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천문산입구로 향했다. 천문산 입구에 이르러보니 입구가 산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가계 시내에 있었다. 산 정상을 시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고 한다. 머리 들어 올려다보니 울긋불긋 웅장한 산 모습들이 한눈에 안겨 왔다. 그러나 산에는 안개가 끼어 확실하게는 보이지 않았다. 케이블카 하나에 8명씩 탑승하게 되어 있었다. 케이블카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장장 7,455m 길이에 해발 1518m의 천문산 꼭대기 까지 이어져 있는데 중간쯤에 역이 있었다. 이는 세계에서 제일 긴 케이블카라고 하며 이미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37도의 경사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무섭고 위험해 보였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입찰을 부쳐 프랑스의 전문 기술자들이 와서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잔뜩 낀 구름 때문에 한치 앞이 안보여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어느 순간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며 무릉도원에 온 듯 한 환희를 맛보게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보는 순간 8명이 함께 탑승한 케이블카 안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 때로는 허공에 둥둥, 때로는 구름위에 둥둥, 때로는 안개 속을 누비는 수리개 마냥, 때로는 케이블카가 금방이라도 절벽에 부딪치기라도 할 듯 하다. 나 역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우와!) 순간 조물주가 정말 위대하구나! 어떻게 이렇듯 아름다음 산세를 만들어 주셨을까? 이 지구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경관이 또 있을까? 이 장관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후회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인생을 이어 나갈 것이 아닌가? 순간 내 삶이 위대해졌고 아름다워졌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졌다. 내 인생이 실로 헛되지 않구나! 오! 산이여! 아름다운 산!
정상에 도착하니 산 아래에는 온통 구름이고, 그 구름사이로 높은 산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경치에 감동되어 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오, 눈물! 이 눈물은 사랑하는 나의 아내에게도 부모님들에게 보여 주지 못 했던 아름답고 격동의 눈물이 아닐까? 과거 나는 시인, 문학가가 꿈이었다. 그러나 과거 정치에 몸 담았고, 한국에 와서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니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도,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서도 그렇게 눈물을 흘려보지 못했다. 엄혹한 현실이 나를 너무나 메마르게 하였도다! 어차피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니 여한이 없도록 치열하게 살려고 삶의 의욕을 고취시키지 않았던가? 1년 365일 그저 앞만 보고 달렸지 언제 이렇게 감정에 북받쳐 보았던가? 순간 사랑과 용서, 행복과 포용, 열정과 여유, 감사 등 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오, 오늘 이 아름다운 산들이 나의 이 메마른 가슴을 다시 한번 설레이게 하고 있구나! 그 어디엔가 깊숙이 맺혀 있던 감정의 샘물이 다시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천문산 정상은 평지는 아니지만 넓은 평지처럼 되어있어서 구경하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기에 연세가 있으신 분이나 여성분들도 별 무리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 유난히도 고소공포증이 심한 진잉선생님이 케이블카가 너무 무서워 “와, 와” 소리치면서 “엉, 엉” 울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한 차에 있지 못하였기에 그 광경을 묘사 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바지가랭이가 젖었는지는 확인 못했지만 온 얼굴에 눈물 범벅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아니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그와 함께 탔었다면 나의 흥을 다 깼을지도 모르니깐. 또 스위선생님도 진잉선생님보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와, 와” 소리쳤다고도 한다. 무서워인지 아니면 감동되어 그런것인지는 확인할 길 없다. 진잉선생님, 그는 우리 화샤중국어학원의 창업 멤버다. 우리 학원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아 한다. 강의도 잘하고 예쁘고 영리하다. 머리도 너무나 잘 돌아 임기응변이 대단하다. 우리 학원의 홈페이지는 사실 그의 작품이다. 사진, 동영상을 모두 그가 관리한다. 사진도 참 잘 찍는다. 몸매도 날씬하고 웃는 모습이 유난히도 아름답다. 유머도 넘쳐난다. 오늘 케이블카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저 지경이 되었을까? 평상시 강직하고 도도하더니 어딘가 여리고 여성적인 미가 있구나! 순간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천문산 정상까지 30분이라고 하는데 실제 그보다는 훨씬 짧은 느낌이었다. 좀 아쉬운 감도 들었다. 아마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였겠지.
좀 걷고 나니 귀곡잔도(鬼谷棧道)가 눈앞에 펼쳐졌다. 귀곡잔도(鬼谷棧道)는 새들도 날아오지 못한다는 험준한 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십 길 낭떠러지 절벽 길을 걷게 되었다. 걷다보면 묘한 스릴도 맛 볼 수 있고, 또 어떤 곳은 밑이 훤히 보이는 유리판으로 만들어진 곳도 있지만 이것이 무서운 사람은 옆길로 돌아 걸었다. 뭇 사람들의 신발에 너무 긁혀 밑이 희미하게 보인다. 오금이 저리다 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언젠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절벽 길을 만드는 장면을 본적이 있는데 오늘 친히 이 길을 걷게 되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깎아지른 듯 한 절벽 중턱에 어떻게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그 창의성이 정말 감탄스럽다. 그들이 무모스럽다는 느낌까지 든다. 이 길의 개척자들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 그리고 목숨을 받쳤을까? 듣는 말에 의하면 이 절벽 길을 만들다가 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목숨을 잃은 사람 대부분이 죄수들이라고 한다. 이건 이 세상에서 중국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순간 나는 삼국연의에서 제갈량이 죽기 전에 세워놓은 전략에 따라 사마의 군영을 절벽산을 건너가 소멸시킨 그 장면이 생각났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이 광경은 장강 협곡에 있는 삼국시대의 그 절벽길보다 훨씬 험난하다. 나는 20년 전에 삼국지에 묘사된 그 절벽을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적이 있다.
우리가 거닐고 있는 잔도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이고 그 위에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아 하늘에 둥둥 떠서 하늘을 걷는 느낌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여행객한테는 무서움 그 자체다. 걱정되는 사람은 바로 진잉선생님이었는데 그나마 케이블카보다는 괜찮은지 남들에게 사진도 찍어주는 여유를 보였다.
그 무섭고 아찔한 길을 40~50분 정도 걸어서 천문산사(天门山寺)에 도착했다. 천문산 꼭대기의 "천문산사"는 4,000년 된 절이란다. 하지만 모두다 수리를 너무 완벽하게 다시 칠해 놓아 오래된 절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불교신자인 스위 선생님은 공손히 향을 피우고 있었다.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비는 그 모습, 무엇을 그렇게 간절히 비는지... ... 늘씬하게 빠진 아름다운 체격에 약간 흘러 내린 머리카락 사이에 안경 밑에서 빛나는 눈망울, 두 손을 모아 공손히도 빌었다. 순간 어느 역사 드라마에서 나오는 황궁의 예쁜 공주가 무엇인가 열심히 불공드리는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얼마 전 그는 중국에 계시는 아버님이 위독하다 하시여 중국에 다녀 온 적이 있다. 아버님의 평안을 빌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앞날이 더욱 행복해지고 가족의 평안을 기도하는 것일까? 아무튼 그 자태는 더 없이 아름다웠다. 그는 강의도 참 차분하게 잘 한다. 항상 여성스럽고 조용하다. 천성이 온화하고 언제나 합리적이다. 기억력도 좋고 생활 지식도 풍부하다.
절경이 아름다워서 일까? 식사를 잘 하셔서 일까? 모두들 피곤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모두들 깔~깔. 즐겁고 경쾌한 웃음 뿐이었다. 그것도그럴것이 평상시 우리들의 속세의 삶은 얼마나 긴장했던가 매일매일 빨리빨리 이 근심 저 근심 속에서 고달픈 나날을 보내다가 이렇게 서로 가까운 분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 우수개도 내키는 대로, 중국현지인들과 중국어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그 즐거움이야 말로 형언하기 어렵도다. 그렇다! 인생이란 지나온 길이 아무리 위대했고 또한 아무리 험악했던들 땅에 버려진 물과 같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직 찬란한 내일의 경지에서 오늘에 최선을 다해 만끽하면서 충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 오늘은 위대하다. 내일은 더더욱 휘황찬란하리라!
우리는 잠깐 쉬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산 정상에서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은 별미였다.
점심 메뉴 역시 현지 식이었는데 또 다른 별미의 음식이었다. 나는 유명한 주귀(酒鬼)술을 한병 대접했다. 사실 나는 중국에서 모타이주(茅台酒), 우량예주(五粮液酒) 등의 명주보다 더 좋아했던 술이 바로 주귀(酒鬼)술이다. 모두들 제가 늘 외우던 말대로 명실상부 맛있다고 하여 매우 흐뭇했다.
천문산사를 구경한 후 리프트를 타고 다시 케이블카로 바꿔타서 중간에 내려 “천문동”으로 향했다. 케이블카 중간에 내린 이유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꼬불꼬불한 산길,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흰 비단띠를 꼬불꼬불 펼쳐 놓은 것 같기도 하고 뱀장어가 기어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우리가 곧 저 길을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한단 말인가? 좀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직접 버스를 타보니 그야말로 미시령, 한계령 길은 저리 가라였다. 다시 99개의 고개를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천문동은 천문산의 중상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천연 종유굴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슬아슬한 꼬부랑길을 30분 올라가서 “천문동”에 도착했다.
우리는 정문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 바쁘게 빠른 속도로 999계단을 올라 “천문동”에 올랐다. 최미화양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기에 중간에 가파른 계단 길을 쉴 겨를도 없이 바삐 올랐다. 숨이 턱에 차올랐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지라 열심히 뛰어 올라갔다. 천문동은 999개 계단인데 마지막 계단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한다. 해발 1400m에 높이가 131m, 너비 57m이며, 깊이는 60m에 이른다. 천문동이라는 이 대자연이 만들어낸 걸작은, 천 미터 높이의 절벽위에 걸려있어, 마치 밝은 거울이 높은 곳에 걸려있는 듯, 하늘의 문이 열린 듯, 구름과 안개를 빨아들여 천궁 궁궐의 신비감이 충만하다.
정상에 오른 분들로는 곽형기교수님, 김문수선생님, 석종배실장님, 최도운선생님, 나운순선생님, 자이허 저와 여성은 유일하게 메이쑤선생님이다. 차이산선생님은 사진을 찍느라 중턱까지 오르다가 시간 관계로 발걸음을 돌리는 아쉬움을 남겨 두었다. 우리는 그 가파른 계단을 30분도 안되어 오르내렸다. 메이쑤선생님은 참으로 대단하다. 여성호걸이라는 호칭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는 과감할 때에는 남자보다 더 화끈하다가도 온화 할 때에는 간이 녹아 날 정도로 여성스럽다. 메이쑤선생님은 정이 깊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다. 그는 한 방울의 은혜를 입었으면 한 말(一斗)의 은혜로 보답(滴水之恩,涌泉相报)하는 스타일이다. 강자 앞에서는 더 강하고 약자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스타일이다. 원칙 앞에서는 얼음처럼 냉철하다. 아무리 큰 인물이라도 아부란 전혀 없다. 참, 그는 여성으로서 나무릴데가 없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가수 심수봉이를 닯았다 고 한다. 사실 그는 심수봉보다 훨씬 더 예쁘다. 심수봉이 메이쑤를 닮았다면 모를까, 메이쑤가 심수봉이를 닮았다니, 에익 , 자존심 상하게! 아무튼 대단한 여성이다. 중국어 강의 또한 대한민국의 최정상급이다. 저렇게 예쁘고 당찬 여성이 우리 화샤중국어학원에서 대표강사로 열심히 뛰고 있으니 우리 학원의 미래는 밝고도 밝다. 오! 아름다운 그대가 있기에 우리 화샤 학원은 영원하리라! 순간 그녀가 너무나 아름답고 의젓해 보였다.
얼핏 보기엔 힘든 여정인 것 같지만 모두들 여전히 피곤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이 오직 감탄과 웃음만이 가득하였다. 우리는 다시 리프트를 타고 산에서 내려왔다.
저녁 식사는 가이드가 우리더러 메뉴를 정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우리가 중국에 왔으면 되도록 현지인들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모아져 전통 토가족 음식으로 맛있게 먹었다. 여전히 중국술은 빠질 수 없었다. 술은 여성분들은 강영분선생님 이외엔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근래에 저를 포함한 모든 분들이 조식 이외 끼니마다 술을 마셔보기는 처음이다. 나는 되도록이면 여러분들에게 여러 가지 중국술을 맛 보이려고 신경을 썼다. 모두들 토가족 음식이 의외로 한국인의 맛에 맞는다고 하면서 잘도 드셨다.
가이드가 저녁에 옵션으로 천문산쇼를 추천하였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100%의 만장일치로 쇼 관람에 동의하였다.
천문호선(天文狐仙 : 천문산의 백년된 여우가 선녀로 변해 사랑한다는 내용)를 보러 야외 극장으로 이동했다.
노천 무대는 굉장히 크고 웅장했다. 산속 먼 곳까지 조명장치가 되어 있었다. 극은 야외 장가계를 배경으로 한 엄청난 셋트장으로 등장인물이 합창단 까지 합해서7-8백 명은 넘을 듯 하다. 저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메이쑤선생님은 공연 내내 눈물을 흘린다. 아름다운 멜로디에 매료된 감동의 눈물일까? 아니면 한많은 인생 세월과 더불어 오늘의 이 아름다운 선율과 연관되면서 터져 나온 성스러운 눈물일까? 아, 눈물! 그것은 분명 꽃보다도 향기로운 눈물이며 꿀보다도 달콤한 눈물이다. 공연 스토리도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 아름다운 선율은 공연 내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공연 내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펼쳐진다. 장가계 여행을 가면 천문산쇼를 꼭 보라던 누군가의 말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진다. 내 생애에 지금까지 이런 공연은 본적이 없다.
이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장가계 여행을 가시면 천문산쇼를 꼭 보세요. 꼭 추천하고 싶다!
호텔에 돌아와 우리들 일부는 가이드의 안내하에 3층에 있는 서비스룸에 가서 발마사지를 받았다. 이번 발마사지는 영 별로였다. 아마 내가 중국 각지를 많이 다니면서 받아 왔던 최악의 맛사지시로 기록 될 것이다. 너무나도 엉터리었다. 책임감이 없고 성의가 없다. 열정이 없는 민족, 책임감이 없는 민족은 이 세상에서 뒤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이 지구상의 모든 생존의 이치다. 그것이 자연환경이 아무리 좋을 지라도.후회는 되지만 할 수없이 시간을 때웠다.
호텔방에 돌아오니 또 김문수선생님과 조정호선생님의 방에 불려갔다. 또 중국술이다. 한 두어 번 돌고나니 술이 거의 바닥이 났다. 이 때 곽형기교수님께서 오셨다. 술과 안주가 모자랐다. 교수님, 저희 존경하는 곽교수님이 오셨는데 술이 없어서야 어이된 말인고. 곽교수님은 내가 평소에 매우 존경하고 흠모하는 분이시다. 사실 나는 한국에 나이가 좀 들어서 오고 보니 친구가 얼마 없다. 곽교수님은 내가 한국에 와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시다. 그이는 한국 명문대 교수이시다. 대학교 교무처장도 하시던 분이다. 현재 중국인들과의 기본 회화는 거의 아무런 문제없으시다. 곽교수님의 노래 실력 또한 대단하시다. 대만 민요 “啊里山的姑娘”은 웬만한 중국인들보다 훨씬 잘 부르신다. 과거 우리 학원에서 외지로 연수를 갈 때면 곽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박식하시지만 언제나 겸손하시고 진실하시고 본인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시는 스타일이시다. 우리 일행 중에서 우리 학원에 제일 오래 몸을 담으신 분이시다. 이번 일행 중 연세도 제일 많으신 분이다. 나는 앞으로 평생 모셔도 되고도 남을 분이시다. 다음 달 그의 장남 결혼식이 있다. 이번 결혼식은 분명 우리 학원의 잔치가 될 것이며 우리 학원의 큰 경사로 될 것이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있으므로 나라가 발전하고 희망이 있다.
내가 나서니 나운순선생님이 안심되지 않으셨던지 따라 나왔다. 또 술 두병에 마른안주를 사다놓고 두병을 다 비우고서야 끝냈다. 술이 좋긴 좋다. 술술 잘 넘어간다고 술이랬다나 말이 술술 잘 나온다고 술이랬다나 아무튼 술은 참 좋다. 이 세상에서 술도 안 마시는 사람은 무슨 재미로 살까? 옛날 이태백은 “금준청주는 두십천이요. 옥반진수는 직만전(金樽清酒斗十千,玉盘珍羞直万钱)”이라 하였고 이몽룡은 “금춘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요는 만성고라(金樽美酒千人血,玉盘佳尧万姓骨”고 하였도다. “장가계의 술을 마시지 않고서야, 어찌 장가계에 다녀왔다고 할 소냐?(不喝张家界酒,枉到张家界走)”. 이야기 저이야기 모두들 생각나는 대로 아무런 주제도 없이 인생사, 인생 경험담, 세상 지식 등등 시작도 끝도 없는, 격식도 상하도 없는 이야기 이 얼마도 좋은 한담인가? 대통령도 빌게이츠같은 부자들도 맛볼 수 없는 이 즐거움이여! 아마 이런 것을 두고 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다! 지화자 좋다! 아닐까?
셋째 날 5월 7일(월):
역시 규정된 시간에 모닝콜이 울렸다. 나는 워낙 일찍이 일어나는 습관이 있기에 별로 피곤 한 줄 모르겠는데 나의 룸메이트 최도운 선생님은 매우 피곤한 모양이다. 얼마나 힘 들었으면 몇 번이나 흔들어도 일어나시지 못하실까? 나는 내가 내려 가지 않으면 모두들 걱정 할 것 같아 그만 내려가서 식사하고 올라왔더니 최도운선생님은 한결 개운해 졌다고 하시면서 식사도 안 하시고 버스에 올랐다. 최도운선생님, 그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금융회사의 임원이시다. 이번에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이다. 목소리가 참 우렁차다. 상대방에게 믿음과 단호함을 주는 구성진 목소리다. 짙은 눈썹, 그 속엔 깊은 연륜과 지혜 그리고 강직함이 담겨져있다. 그의 사진 실력은 가히 프로 수준이다. 그는 여행 내내 차이산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에게 사진 찍는 기술을 전수 하셨다. 그는 현직에서 이번 여행 시간을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해주시니 정말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친구여, 앞으로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리라!
우리는 또 버스로 한 50분을 달려야 한다.
오전에는 바로 십리화랑(十里画廊) 으로 향했다. 걸어가도 되지만 우리는 꼬마전동기를 타고 경치를 구경하였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장난이 아니다. 10여분 이상 기다려 꼬마 모노레일을 타고 10여분 남짓 가서 내린 후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옆으로는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도보로 오르내린다. 완전히 나체 상체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더워서일까? 아니면 산림욕을 하느라고 그럴까? 아무튼 자유다. 십리에 걸쳐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5.5Km의 폭이 좁고 긴 협곡 십리화랑(十里画廊) 을 보기 위해 모노레일을 타고 가면서. 손가락바위, 할아버지 바위, 할매바위, 선녀바위, 세자매봉이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기이한 봉우리와 암석이 각양각색의 형상을 띠며 마치 정말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등 감탄사가 절로 나옴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십리화랑인가 했더니 그 이름의 뜻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십리길이 말 그대로 마치 산수화를 연상하게 한다.
십리화랑(十里画廊)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먼저 나오신 분들은 커다란 나무그늘 아래에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우리 일행 몇 사람은 한 중국인 관리인원의 훈계를 받고 있는 듯 하였다. 알고 보았더니 김문수선생님이 금연 구역인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리셨다고 한다. 아무리 사정해 보아야 전혀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한화 4만원을 벌금을 물고야 말았다. 우수개로 놀려 주는 사람, 위안을 해주는 사람 담배 벌금 화제는 온 하루 이어졌다.
점심식사는 삼겹살이었다. 이는 중국에서 먹은 유일한 한국 음식이다. 고기는 무한 리필이라고 한다. 삼겹살이라고는 하지만 돼지의 각 부위가 다 있었다. 말 그대로 무한 리필이었다. 나는 끼니마다 술을 마시니 배가 더부룩하였다. 김문수선생님은 장이 안 좋으시다 고 하면서 술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으셨다. 나도 이번 끼니만은 슬그머니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술을 피했다. 그런데 이것이 될 말인고. 조정호선생님이 슬그머니 일어서시더니 술 두병을 들고 오셨다. 이번에는 조선생님이 발동을 거셨다. 거기에 여성분들이 적극적으로 호응 하면서 분위기는 자못 흥성했다. 여기저기서 “건베이” 소리가 즐겁게 들려 왔다. 나도 처음엔 술이 잘 받아 지지 않다가 몇 잔 마셨더니 위가 참 편해 졌다. 내가 아마 술에 중독 되었나보다. 금방 기분도 좋아졌다. 여기서 하나의 신조어가 탄생하였다. 조정호선생님이 창조하셨다. “빼갈 무한리필”이다. 누가 더 마시려면 얼마든지 마시라고 하신다. 모두들 무한 리필 돼지고기에 무한 리필 술에 얼마나 좋은 음식분위기인가?
식사가 끝나고 차에 올라서는 그 여흥을 몰아 분위기가 더욱 뜨거웠다. 조정호선생님이 가이드의 마이크를 잡으시더니 노래 파티를 주최하셨다. 그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언어는 가히 TV에나 오는 아나운서는 저리 가라였다. 조정호선생님, 그는 대 그룹회사에서 임원을 지내시던 분이시다. 등려군의 노래는 거의 다 부를 수 있다. 중국어로 중국인과의 소통도 별 문제 없다. 영어는 거의 프로 수준급이시고 영어로 비즈니스담판도 문제없이 하시는 분이다. 얼마 전에 중국어 최고급인 HSK6급을 획득하셨다. 조선생님의 끈기는 알아준다. 작년에 나와 함께 춘천마라톤 풀코스를 뛰시었는데 내가 겨우겨우 힘들게 종점에 도달해 보니 그는 이미 나와 계셨다. 그는 조용하시면서 강직한 분이시다. 다시 말해 내공이 대단한 분이시다. 감사합니다. 조선생님! 그대와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대한민국의 미래, 우리 학원의 미래는 밝고 또 밝으리라!
오후에는 보봉호(宝峰湖) 댐 을 걸쳐 금편계곡 관광이다. 보봉호수로 올라가는 입구부터 일정 간격을 두고 가마꾼들의 호객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웬 가마일꾼들이 그리도 많은지. 여기 저기에서 “가마 2만원”, “가마 2만원”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 온다. 가끔가다 가마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던데 가마를 메는 사람들의 체구가 유난히도 왜소하였다. 맨 몸으로 올라가기도 힘든 산비탈을 사람을 메고 올라가다니 이 세상이 참으로 불공평하구나!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공평하게도 하루 24시간, 만약 어느 기자가 가마를 탄 사람과 가마를 멘 사람의 행복 지수를 조사해보면 누가 높을지 모를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마를 멘 사람이 행복 지수가 더 높을 수 도 있지 않을까? 밥도 더 맛갈스러울 것이고 아마 밤일도 훨씬 잘할 것이다. “흐, 흐”. 오,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 저렇게 사는 사람. 그렇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일까? 나의 행복 지수는 얼마나 될까? 사람은 그저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제일 행복하고, 제일 슬프다고 느낄 때 제일 슬프지 않을까? 보봉호(宝峰湖) 댐은 무릉원 변두리에 있는데 유일하게 높은 곳에 위치해있고, 인공호수이다.
우리는 장가계(张家界)의 비취, 보봉호(宝峰湖) 입구에서 25분정도 여기 저기 계단을 따라 조금 걷다보니 어느새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장가계 보봉호는 호남성 장가계 내 해발 550m 정도에 위치한 호수로서 댐을 쌓아 물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로 길이는 2.5Km, 수심은 75m∼120m 정도로 높은 산 위에 호수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로 가는 중간지점 좌우측에 관광객의 박수소리에 맞춰 토가족 원주민 남자와 처녀의 맑은 노래 소리가 들리고, 호수 주변에는 공작새 모양의 바위, 두꺼비 모양의 바위, 선녀 모양의 바위, 촛대 바위 등 기암괴석들을 바라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가이드 최미화양의 안내를 들으며 30분 정도 관광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가이드의 요청에 의하여 나는 등려군의 “小城故事多”라는 노래를 한 곡조 불렀다. 반주도 없고 잘 모르는 관광객들이 모인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배 안이라 노래가 구성지지 않았다.
나가는 입구엔 토가족 원주민 처녀가 관광객과 사진 한 번 찍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한번 찍는데 한화 천원을 요구하였다. 이곳을 지나 대 협곡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반 자연 반 인공으로 만들어진 보봉폭포가 우리를 맞이했다. 계곡을 따라 내려 가느라니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예전에 울산 바위를 오른 적이 있었다. 그 보다 훨씬 가파롭고 엄숙했다. 그러나 건축일꾼들이 참 잘 다듬고 가꿔서 참 아름다웠다. 계곡의 경치는 참으로 웅장하고도 아름다웠다. 자연적으로 어떻게 이런 모양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금편계곡은 인터넷 사진으로만 보아왔는데, 정말 중국 사람들의 건설기술은 놀랍기만 하다. 가이드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다그치지만 모두들 그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되어 좀처럼 발이 떨어 지지 않는 모양이다. 차이산선생님은 항상 늦어진다. 그는 어디가나 “찰깍, 찰깍”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김문수선생님은 항상 “차이산선생님에게 잡히면 국물도 없다.” 고 하신다. 그만큼 차이산선생님이 끈질기단 좋은 평가다. 그의 사진 찍는 모습에서 얼마나 진지하고 착실한지 알 수 있다. 아무리 바빠도 자신이 만족 할 때까지 바로 잡아 찍고야 만다. 자신의 무릎이 깨지는 줄도 모르고. 매번 사진 찍을 때의 미소, 마치 천진난만한 소녀 같았다. 해 맑은 미소, 가끔 어색할 정도로 행동하는 그의 자태 그는 분명히 초겨울에 내리는 눈같이 맑고 깨끗하리라, 그의 아름다운 가슴 속 한편에는 분명히 이 세상의 아름다운 꿈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정직하고 진지하다. 내가 한국에 와서 제일 오래 함께 근무한 동료다. 나는 항상 그와 말한다. 우리 화샤 학원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함께 간다고. 오, 그의 앞날은 더욱 찬란하고 빛나리라!
대협곡을 내려오면서 우리는 썰매장에 들어섰다. 영상 30℃가 넘는 날씨에 왼 썰매이냐구요? 그것도 가파른 협곡을! 어른이나 여성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썰매 바지와 자갑을 착용하고 반들반들한 콩크리트 바닥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 썰매를 타다보면 저마다 몇 십 년 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여기서 어느 누가 웃음꽃을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다. 모두 천진난만해 진다. 아, 세월이여! 인생은 세월 속에서 흘러가나니, 세월은 사내들의 턱에 수염을 더 달아주고 아낙네들의 이마에 주름살을 더 해주고 있구나! 우리 모두 지나온 행로는 서로 다를 지라도 누구나 다 똑 같은 어린 시절을 겪어 오지 않았던가? 그 시절, 그 세월을 천금을 주고라도 돌려 세울 수만 있다면... ...
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다. 이번에는 진잉선생님이 여러 사람들에게 일일이 아이스크림을 사서 나눠주고 계셨다. 산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 왜 이렇게 맛이 있을까?
넷째 날 5월 8일(화):
오늘도 예외 없이 모닝콜 소리에 깨어나 아침 식사를 하였다. 가이드가 오늘엔 특별 코스를 지나가는데 먹는 밤을 파는 아낙네들이 바가지를 쒸을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면서 절 때 돈을 먼저 주지 말고 밤을 받고 돈을 주라고 신심 당부하였다. 우리 일행은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랐다. 우리가 케이블카 출구로 나오는데 하나의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어디선가 개구리 소리 같기도 하고 새무리 소리도 같기도 한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려왔다. 점점 가까워 질수록 점점 “청량한 소리”가 그야 말로 가관이었다. “천원, 천원, 천원... ...~” 몇 십명의 아줌마, 아가씨들이 구운 밤을 팔고 있었는데 그 속을 빠져 나오고 보니 귀가 멍 해졌다. 우리는 너도 나도 웃으면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때 우리 일행 중 한명이 토가족 점원과 실강이를 벌이고 있지 않는가? 가까이 가보니 중국어를 한마디도 모르시는 강영분선생님 이었다. “천원, 천원 두 번 불렀으면 2천원을 줘야 하는데 왜 천원을 줬냐?” “천원에 한 봉 다리로 들었다. 이건 바가지다!” 너무나 웃기는 이야기다. 서로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한다. 그야말로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나서서 완벽한 중국어로 그 점원에게 이건 분명 바가지라고 하자 그 토가족은 슬그머니 줄행랑을 놓았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껴졌을지는 몰라도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지가 안았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토가족 문화였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생계수단이지만 분명이 그것은 수 천년 역사를 이어온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의 일부분이 아닐까? 나는 한화 2천 원을 주고 2봉다리를 샀다. 밤은 너무나 건조하다. 단 맛도 그리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관광코스에서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 이야기 거리가 아닌가?
오늘은 하룡공원으로 이동한다. 하룡이란 중국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익숙한 인물이다.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개국 공신이다. 호남성은 중국 현대사에서 유명 인사들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창시자인 모택동, 이인자인 류소기 등이 모두 이 호남성의 출신이다. 하룡도 그들과 함께 창시자의 한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 무산계급문화대혁명 기간에 반혁명분자로 몰려 투쟁을 받다가 사망한 인물이다. 후에 모택동이 후회하고 그의 명예를 회복해 주었지만 그것은 그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었다. 중국 사람들은 그를 아주 강직하고 충성스러운 인물로 간직하고 있다. 하룡공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사진 몇 장 찍고는 곧바로 내려 왔다.
우리는 계속 선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세상에 꽃을 뿌리는 형상의 바위인 선녀헌화와 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황제가 쓰던 붓을 던졌다고 해서 붙여진 어필봉을 눈으로 감상하고 사진으로 남긴 후 곧바로 오매에도 그리던 원가계(猿家界)로 향했다. 원가계(猿家界)는 장가계(张家界)에서도 가장 절경으로 꼽히는 곳 가운데 하나이며 천자산 정상을 중심으로 수백개의 봉우리가 불쑥 불쑥 솟아 있는 웅장한 모습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름다운 곳이다.
원가계(猿家界) 입구에 내려 그곳부터는 <아바타> 영화에 등장했던 무대인 원가계(猿家界) 풍경구를 도보로 이동하면서 감상했다. 요즈음에는 영화<아바타>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졌다.
우리가 자욱한 구름 속을 뚫고 한참 걷다보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였다. 구름 속에 휩싸여 위용을 자랑하는 산들은 경치가 너무나 멋있었다. 그 정경이 아름다워 아바타영화를 연상하면서 솜 털 같고 양탄자 같은 구름위에서 마냥 뛰어다니며 놀고 싶어진다. 비록 사람마다 비옷을 걸쳤지만 여기저기에서 “와,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처음에는 잔뜩 낀 구름 때문에 한치 앞이 안보여서 내심 걱정을 했다. 그러나 깎아지를 듯 한 절경이 정말 멋지다. 아바타에 나왔던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여기다! 여기!
기이함과 수려함. 야성의 미가 넘치는 이곳이 바로 이 원가계이며 이곳은 시야가 넓고 기세가 웅장한 맛을 지니고 있다.
그중 “천하제일교”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1982년에야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천하제일교”는 자연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걸작품으로 실제 처음 발견 했을 당시에는 수(隋)나라 때 만들어진 석교로 알려졌을 정도로 정교하다. 1400여년의 긴 세월 동안 여러 차례의 지각 변동과 기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이 천연 석교는 300미터 높이의 바위에 너비 2미터, 길이 20미터의 돌판이 있다. 깍아지른 듯 한 절벽에 놓여있기에 다리 위를 거닐다 보면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원가계(猿家界)는 오염되지 않은 생태계 그대로 보전되어 있으며, 아직 외국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곳을 방문하고 간 사람들은 원가계(猿家界)의 웅대하면서도 아름답고 기이한 산세에 넋을 잃는다. 이 때문에 수많은 학자, 전문가들은 무릉원을 “대자연의 미궁”과 “지구기념물”이라 부른다.
비록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주르륵 주르륵 내리지만 이곳저곳에서 “와, 와”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그 중에서 또 하나 인상 깊은 곳은 아마도 미혼대가 아닐까?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미혼대 (迷魂台), 미혼대는 천자산에 있는 곳으로 정신(혼)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하여 미혼(迷魂)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미혼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한 부분이 2미터 정도 더 높으며 면적은 100제곱미터 정도로 열댓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이다.
비는 계속 쏟아 내리건만 안개는 조금 가셨다. 불규칙적으로 뾰족하게 솟아있는 석봉들이 안개에 싸여 있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과 같고 그 아름다움에 빠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광대한 자연 속에 그대로 동화되어 버리고 만다.
오, 아름다운 산이여! “절승 경개는 험한 봉우리에 있어라!(无限风光在险峰)”, 내가 만약 아바타에 나오는 그 커다란 봉황새에 올라타고 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이 장엄한 경치를 마음껏 즐겨 감상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경의로운 대 자연이여!
한창 몸과, 마음, 자연과 삼위일체가 되여 음미하노라니 비가 내리는 줄도,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이때 누군가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이 대오를 이탈했다고 한다. “뭐라!? 누가 도대체 누가?” 순간 아찔해진다. “김문수선생님이 안보여요?”. “이거 큰 일이구먼!” 우리가 출발 할 때 설사를 하셔서 화장실에 들리시느라 우리 대오가 몇 분 딜레이 된 적이 있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주위는 온통 괴암절벽이라 혹시나 설사를 참지 못 하시고 뒤처리를 하시다가... 혹시, 혹시~ 호, 어떻게 하지? 전화도 안 되지. 옥죄이는 마음... ... 나운순선생님은 앞뒤로 뛰어다니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운순선생님은 키도 훤칠하게 잘 생긴(帅) 사나이다. 우리 모임에서 항상 긍정적이고 유머 넘치는 분이다. 그는 거의 매일과 같이 우리 강사들에게 유머 문자 메세지를 보내주시는 분이다. 이는 진짜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지간한 책임감과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분명 우리 화샤중국어학원의 보배 덩어리다. 여기서 나는 그의 인간성을 읽을 수 있었고 그의 휘양 찬란한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두 저희 불찰입니다. 룸메이트인 제가 대신 사과 할 께요.” 조정호 선생님이 여러사람들을 행해 대신 사과 하신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지나가는 여행객이 “왜 저한테 사과 해요?” “하, 하” 아무튼 조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여러분들이 긴장이 좀 풀렸다. 가이드 최미양도 매우 긴장된 기색이다.
나는 혹시나 하여 일행에게 앞에 나가보겠다고 하고는 한참 앞질러 달려가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김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멈춰서서 산 신령께 조용히 기도 드렸다. 제발, 제발 무탈 하시기를. 만약, 만약에 변이라도 당하시면 나는 어떡하지? 우리 일행의 흥미는 이미 다 날아가 버리고 식어져 버렸다. 순간 누군가 저기 계신다! 아이구 고맙수다. 고마워. 산신령이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셨나! 나는 이젠 살았구나! 학원도 문을 닫지 않아도 되겠구나! 문제로다. 참으로 문제로다. 흡연으로 벌금을 받으시더니 이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그래도 다행이야. 그이도 속인들 얼마나 타섰으랴! 그러면 그렇겠지 그분이 어떤 분이신데 기억력도 뛰어 나시고 체력도 실제 연령보다 10년을 젊게 사시는 분이 아니시던가? 그는 어느새 중국 당나라 유명한 시인 왕지환(王之焕)의 시 “登上鹳雀楼(관작루에 올라서) ”를 한자도 빼 놓지 않으시고 줄 줄 외우시는 분이 아니시던가?.그는 산에 오르시면서 내내 “白日依山尽, 黄河入海流, 欲穷千里目, 更上一层楼(밝은 해는 산 따라 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드네. 천리먼곳 풍경까지 바라보려고 다시 한 층의 누대를 올라갔네..)”를 외우셨다. 이번 여행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시구다. 나는 산신령님이 고마웠고 하늘이 고마웠다. 김선생님이 무탈 하시여 고마웠다. 자. 인젠 어서들 내려들 갑시다.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났다. 금강산(장가계) 구경도 식후경이라! 빨리 다그쳐 내려오는 길.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 천하의 제일로 불리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것이 바로 백룡엘리베이터이다.
백룡엘리베이터, 장가계 국립 산림 공원 내 수요사문에 위치하는 이 엘리베이터는 높이만도 335미터나 되는 세계에서 제일의 관광전용 엘리베이터라 한다. 이 엘리베이터 역시 국제 입찰로 이루워 졌는데 독일 기술자들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 운행 높이는 313미터로 밑으로 150미터는 산속 수직 동굴이며 그 위 170m는 산에 수직 철강구조로 설치하여 만들었다. 멀리서 보면 깍아지른 절벽에 철강구조물이 불가사의한 기이한 물체 같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참 세상에 살다가 참으로 신기한 엘리베이터를 다 타본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 엘리베이터를 다 타보았다. 인도네시아의 트윈타워, 대만의 101빌딩 모두다 여기에 비하면 너무나 싱겁다. 그것도 깍아지른 듯 한 산에서 말이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모두들 엘리베이터 산 앞 뒤를 배경으로 “찰칵, 찰칵”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흥이 전혀 가라 앉을 줄 모른다.
저녁 메뉴는 백두 여행사에서 우리 일행을 위해 마련한 특별 메뉴였다. 궁중요리는 장가계 최고급 호텔에서 최고의 음식을 서비스로 초대 받았다. 이 모든 것이 다 링란선생님의 덕을 본 것이 아닌가? 링란선생님, 그는 항상 모든 분들에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참 즐겁게 잘 웃는다. 웃을 때면 “은방울이 굴리는가, 냇물이 흐르는가”, 그의 교실에서는 항상 웃음소리 흘러나온다. 강의를 얼마나 재미있게 할까? 참으로 명랑하다. 항상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다. 그리고 참 열심히도 산다. 영리하고 기억력도 좋다. 예의도 바르고 사리도 바르다. 앞으로 그의 생활은 분명히 탄탄대로이다. 그와 같이 있노라면 항상 즐겁다. 생기가 넘치고 언어도 참 부드럽게 한다. 그는 분명히 우리 학원의 희망이다.
저녁에 식사하고 돌아와 너무나 피곤하여 샤워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한참이나 지났을까 최도운선생님과 메이쑤선생님이 이번 아메이(啊妹)가 발맛사지를 잘 하니 한번 받아 보라고 추천한다. 나는 전번에 받은 것이 별로여서 안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메이쑤선생님이 그렇게 강하게 추천함으로 받아 보았더니 참 잘했다. 그네들도 같은 토가족이다. 그렇게 다를 수가, 역시 단면만 봐서는 안 되겠구나. 편견은 금물. 역시 사람마다 다르구나!
넷째 날 5월 9일(수):
우리 여행 일정의 마감 날이다. 오전에 우리는 황룡동굴을 관람하였다. 황룡동굴의 관람 시간은 1시간 30분이고 동굴 내에서 배도 타고 들어간다.
황룡동굴, 장가계 관광지에 있는 동굴이다. 동굴의 길이가 15km, 수직높이 160m, 동굴내부에는 폭포와 호수가 있으며 세계 두 번 째로 큰 용암 동굴이다. 이 동굴은 1983년도에 토가족 젊은이가 우연히 발견한 동굴이란다.
동굴내부에 들어서면 배를 타고 이동한 후 걸어서 다양한 석순과 광장 등을 구경할 수 있다. 특히 동굴안 내부에 눈에 뛰는 석순은 19미터로서 중국 평안 보험공사에 1억위안(한화 160억원) 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을 정도이며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아쉬운 점은 동굴 안이 어두워서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이때 “자, 자 시원하게 드십시오.” 조정호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여러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어, 시원해.” 너무나 달고 맛있다. 순간 언제나 남을 배려하시는 조선생님이 너무나 고마웠다.
동굴을 관람하고 우리는 곧바로 점심식사 하러 갔다. 최미화양은 어떤 음식을 드시겠는가고 우리들의 의견을 물었다. 역시 모두들 중식을 들자고 하였다. 참 이번 여행은 자유스러웠다. 음식도 자유 선택이고 너무나 들복지도 않았고 술도 마음대로, 소리도 마음대로, 노래도 마음대로 전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식사 후 우리는 버스로 4시간을 달려 장사 시내로 와서 장사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관람하였다.
남의 나라에다 전쟁시대라고는 하지만 한 나라의 정부라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였다. 비디오 관람을 마친 석종배실장님의 한마디가 참 가슴에 닫는다. “참 불쌍하구나!” 그 옛날 인인지사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으며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가! 현실은 그들의 흘린 피와 땀이 결국 헛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그대들의 정신이 대에 대를 이어 영원하리라!
석종배실장님, 그는 내가 대한민국에 와서 제일 오래되고 제일 도움을 많이 받은 친구이다. 그는 현재 한 공기업의 엔지니어이다. 사실 나의 한글 컴퓨터 실력은 그에게서 배운것이다. 우리 학원에서 전기선을 늘이거나 컴퓨터를 설치하거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는 천성이 어지고 남을 많이 배려한다. 그는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그는 자신은 사진을 얼마 찍지 않으면서 내내 남을 찍어만 준다. 물론 아직 사진 기술 실력은 검증되지 않았지만 그 정성이야 말로 참으로 지극하다. 앞으로도 우리는 함께 가야 할 친구다.
저녁 식사는 자연 동물원에서 간단히 하고 밤에 자연 동물원“사파리”관광을 하였다.
맺는 글:
중국 최고의 절경 장가계(张家界) 원가계(遠家界)는 태산의 웅장함과 황산의 기묘함과 화산의 험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장가계(张家界)는 좀 남성스럽고 원가계(遠家界)는 좀 여성스럽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북한산에도 설악산도 한라산에도 내장산에도 한국의 이름이 있는 산은 거의 다 다녀보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느낌이 많기는 처음이다. “人生不到张家界, 百岁岂能称老翁”(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장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신기한 것은 중국 관광지 중에서 한국 돈이 100% 통용되다는 것이다. 아니 현지인들은 한국 돈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지금 붓을 달리는 이 시각에도 “천원, 천원” 하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원화가 통용될 만큼 장가계는 대한민국 여행객의 천국이다. 중국 사람을 빼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행객이 한국인이다. 간판, 안내문 모두 한자와 한글이다. 영어도 얼마 없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인들이 몰려 올 것 같은데...일반적으로 중국 요리에는 한국인들이 잘 먹지 못하는 샹차이(香菜)가 있는데 여기에는 거의 없다.
이 자리를 빌어 이번 여행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신 여러 수강생님들과 강사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신 백두여행사 김세광사장님을 비롯한 여러 임직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장가계 현지 가이드 최미화양에게도 감사드린다.
붓을 달리는 이 시각, 하늘엔 뭇별이 총총하고 생각은 저 뭇별처럼 수없이 떠오른다!
할 말은 수 없이 많고도 많다. 여행을 다녀온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심정일 것이다. 제가 올리는 이 글 이외도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닮을 수는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나머지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시라!
이번 여행은 끝이 아니다.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여행 여정, 인생의 여정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강의도 더 열심히 하고 남을 철저히 섬기는 봉사 정신으로 여러분의 앞으로 더욱 다가가겠다. 어차피 단 한 번뿐인 인생, 더 정열적으로 살아 보겠다. 아등바등 말고 여유를 가지고 살겠다. 이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 권력은 더더욱 전부가 아니다.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을 더욱 배려하고 섬기겠다. 즐길 때는 확실히 즐기겠다. 오늘에 충실하면서 내일을 내다보고 내일의 높이에서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성격이다. 위대한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휘황한 미래는 곧 도래할 것이다.
화샤 중국어 학원 원장 자이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