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제일고 제8회
졸업 60주년, 팔순 기념회 축사
저녁노을을 즐기는 사람들
팔순의 인생 여정에 오른 여러분, 붉게 물든 저녁노을은 황금색 붓질로 찬란한 세상을 그려 놓았습니다. 어떤 화공이 그렸을까요? 바로 여러분이 그린 그림입니다. 날마다 아름답게 빛나는 저녁노을, 여러분은 행복을 창출한 주인입니다.
우리는 10년 전 70세 고희 축하연에서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졸업 60주년, 팔순 축하연을 열어 오순도순 정을 속삭입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보내고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네요. 얼굴엔 화기가 돌고 눈빛은 형형합니다. 마음에 조바심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에서 발전 한국의 어제, 오늘, 내일을 봅니다. 가르치며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길에서 정으로 엮인 젊은 시절이 떠오릅니다. 가슴이 설렙니다.
여러분의 입학은 일고의 전환점이었습니다. 개교 8년 만에 인가학급을 채우는 성과를 얻었으니까요. 입학원서 접수 마감하던 날, 일고 교사들이 칠성로 건사한 식당에서 축하 파티가 열렸습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축배를 들었지요. 노래도 신나게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아 동문 다리 옆 숫 불갈비 집을 찾아 2차로 판을 벌입니다. 풍로에 벌건 불이 타오르고 고기가 지글거리고, 술잔엔 술이 가득 채워집니다. 교감 선생님은 술잔을 높이 들어 건배를 외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벌겋게 타오르는 풍로 위로 교감 선생님이 썩은 고목처럼 쓰러집니다. 얼마나 놀랐는지요. 너무 기쁜 나머지 과음한 탓입니다. 부리나케 위기를 수습한 뒤 선생님들은 스크럼을 짜고 군가를 소리 높이 부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원정로를 가득 메워 행진합니다. 시내가 떠들썩해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경찰 사이드카가 출동하고, 행진은 끝났지만, 뒷날 교장 선생님은 경찰서를 찾아 용서를 구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그 기세 그 용기가 이어져 예비고사 전국 수석의 수재를 배출하고, 정치계, 법조계, 경제계, 학계, 교육계 등에서 지도자를 내는 제일고를 창출했습니다. 그 선봉장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 10대 강국, 국방 5대 강국, 선진국 대열에 당당하게 섰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넘쳐납니다. 그뿐인가요. K컬처가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세계의 언어와 문자가 없어진다 해도 한국어와 한글은 독야청청 살아남는다는 세계 석학들의 연구물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선망의 대상이 된 한국엔 세계인들이 물밀듯 찾아듭니다. 동방에 등불이 환하게 켜진 것입니다. 정치만 바로 선다면 세계 일등국이 코 앞입니다.
미국의 유명 과학자 레이 커즈웨일은 “환상적 여행, 영원히 오래 살기”란 책에서 20년 후면 인간 불멸의 시대가 온다고 예언했습니다. 나노봇이 곧 발명될 것이고, 이를 활용하면 모든 질병이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오래 살아 삶이 지겨우면 인간을 포맷해 초기화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생살여탈권을 쥔 신의 경지에 오른 인간의 탄생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오늘 여러분은 사랑하는 모교를 생각하고 팔순을 자축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팔순은 도를 생각하는 시절입니다. 선, 악, 호, 오를 구분 없이 끌어안는 나이, 해불양수海不讓水란 말 떠오릅니다. 깨끗한 물, 더러운 물, 어느 나라 물이건 가리지 않고, 두루 받아들여 바닷물이 되는 것, 그런 마음이면 영원한 삶,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서천에 펼쳐진 환상적인 저녁노을, 그것은 천당이요, 극락입니다. 그것은 아무나 볼 수 없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만 봅니다. 여러분은 그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축복을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2025년 4월 26일
은석 조 명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