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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토요산악회 회원가족들이 2007.10.16~17 1박2일의 보길도, 우황리공룡화석박물관, 천불천탑의 화순운주사를 여행한 사진입니다.
보길도(甫吉島)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의 주도(主島)로서 4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노화면에 속하였으나 1982년 보길출장소가 설치되고, 1986년 보길면으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주요 산은 적자봉(赤紫峰:425m)·광대봉(廣大峰:311m)·망월봉(望月峰:350m)이며,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고도 300m
이하의 산지를 이룬다. 간척지를 제외하면 평야가 거의 없고, 동백나무·상록활엽수림이 곳곳에 자생한다. 해안선은 급경사를 이루며,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감자이며, 부근 바다에서는 도미·삼치·멸치 등이 잡힌다. 그 밖에 김·미역·전복 등의 양식업도 이루어진다.
완도~노화도~소안도~땅끝 사이에 정기여객선이 운항되며, 보길면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조선 인조 때 고산 윤선도(尹善道)가 머물렀던 보길도 윤선도 유적(사적 368)과 예송리(禮松里)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
예송리의 감탕나무(천연기념물 338), 황칠목(黃漆木:전남기념물 154) 등이 있다.
완도화흥포항에서 보길도청별항을 운항하는 페리호(노화도와 소안도를 거쳐 약1시간20분소요)
황간도의 아름다운 바위산의 모습이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는 멋진 뱃길 여행입니다.
배 위에서의 여유로운 친구들 모습입니다.
갖가지 포즈도 취해보고...........
정다운 모습도 보여가며.................
예쁘게 갑니다!!!!!!!!!!!!!!!!
세상이야기도 해 가면서.................
바다목장 미역, 다시마, 청각, 전복들의 양식장이 가득 합니다.
노화도 앞의 전복 양식장 모습입니다.
배를 함께탄 현지 할아버지의 설명도 듣고 갑니다.(보길도는 완도군의 면이며, 노화도는 읍이란걸 처음 들어 알았다)
즐거운 여행이 맡는것 갔습니다. 표정을 보니까...............
보길도와 노화도를 잇는 연육교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드디어 보길도의 여객부두 청길항에 도착 했습니다.(노화도와 소안도를 거쳐 오므로 약 1시간20분 가량 소요되었다)
항에 도착하면 바로 이런 보길도 관광 안내도가 있다
여행설명
06:30경주출발-(남해고속도로이용)-순천-완도대교-화흥포항12:00출발-13:20보길도도착-세연정관람-동천석실관람-중리해수욕장-
우암송시열의글씐바위관람-예송리해수욕장-17:30중리해수욕장의 솔밭콘도 도착(감성돔,농어,전복회 해서 저녁먹고 한잔하고 하루 끝)
콘도가격 : 방3개거실1개, 대형방1개----11만원(비수기-16만원)
회 값 : 30만원(감성돔,농어회 --1접시 6만원, 전복 -- 1kg에 6만원)---회3접시,전복2kg)
전복죽----1그릇 만원(8천원에해준다)
전복사는가격--1kg에 상품-6만원,5만원 하품--2만원 (얼음넣어 포장 잘 해줌)
보길도의 윤선도유적
보길도 부항리에 위치하고 있다. 1992년 1월 11일 사적 제368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8만 3532㎡이다. 윤선도가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1637년(인조 13) 이곳에 들어온 뒤 1671년 죽을 때까지 7차례에 걸쳐 드나들면서 13년 동안 산 곳이다.
그가 소요하며 자족을 얻던 세연정(洗然亭)과 곡수당(曲水堂), 세연지(洗然池),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한 낙서재(樂書齋), 사색의 터전인
천동석실(天洞石室) 등의 유적이 있다.
세연정의 회수담 : 세연정 북쪽으로 네모난 인공 못(회수담)을 판 것은 이쪽의 자연석도 연못안에 집어넣고 못의 물을 오래동안 가두기 위한 한 방책이기도
하다. 판석보에 막힌 물길이 세연정 북쪽 배수구(五入三出)를 지나서, 네모난 못(회수담)을 감돈 다음 조그만 인공 도랑으로 빠지게 계획되었다(태극무늬흐름)
세연정(洗然亭) : 세연지 가에 단을 조성하여 1637년 3칸짜리 정자를 짓고 세연정이라 하였다
세연정과 바위 위에 서서 활을 쏘았던 사투암
세연지안의 7개의 큰 바위를 칠암(七巖) 이라한다
세연정을 배경으로.....
혹약암(或躍岩)-혹약암은 칠암(七巖)중의 하나이다. 마치 힘차게 뛰어갈 것 같은 모습, 두꺼비나 개구리가 도약하기 직전 잔뜩 움크리고
금방 뛰어갈 것 같은 형상을 하고있는 바위를 말한다. 이 바위는 역경(易經)의 건(乾)에 나오는 혹약재연(或躍在淵)이란 효사(爻辭)에서 따온 말로
"뛸 듯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이다. 고산은 이 바위가 와룡암(臥龍岩)을 닮았다 하여 촉망되는 인물이 아직 나타나서 활동하지
않고 있음을 비유하였다.
세연정의 여인들!! 고산 선생의 풍류를 알까????
판석보(板石洑·굴뚝다리) : 우리나라 조원 유적중 유일한 석조보로 세연지의 저수위 조절을 위해 만들었다. 평소에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수면이 일정량을 유지하도록 했다 판석보는 진흙으로만 쌓았을 때 흙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판석으로 3면을 둘러쌓는 기법을 말한다.
즉 돌로만 쌓으면 물이 셀 염려가 있고 흙으로만 쌓으면 폭이 너무 커져서 큰 바위돌의 중압감을 상쇄시키는 조형상 나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무희들이 춤을 추었던 무대, 서쪽에 있다고 서대라 한다.
판석보 앞에서.............
동대의 모습이다.
세연정 입구에 있는 조감도
보길도의 고산 윤선도 유적지의 해설판
동천석실(洞天石室)
동천석실은 이름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하늘이 바라다 보이는 돌로 만든 집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을 해 본다.
또한 차바위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곳에서 차를 들면서 시회를 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바로 아래쪽 석담은
바위를 쪼아서 석간수를 석천에 받아서 구멍을 뚫고 석담으로 저장한다.
동천석실 아래에 바위 틈에서 세어나오는 물을 받아둔 석담(石潭)
동천석실과 그 앞의 차바위
동천석실의 정자는 단칸집으로서, 기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관상용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물론 가끔은 이용했겠지만 매양 올라가는 곳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 조원에서는 맞은편 안산이나
조산 중턱에 조그만 정자를 지어 놓는 것은 하나의 기법이다. 그러나 석실터에는 석문이 있고 주위에 차바위와 석담,
석천, 희황교, 석계등이 있어서 단순히 관상용으로만 이용되었던 것은 아니고 자주 사용했던 장소로 봐야한다.
동천석실 오르는 길목의 돌다리(근래에 설치 한 것임)
보길도의 남쪽 벼랑끝의 망끝전망대를 표시하는 비석
보죽산과 그 아래의 공룡알해변을 알리는 표지판
우암 송시열이 귀양 온 자기 심정의 글을 돌에 세겨놓은 글씐바위의 내용을 설명해 놓은 비석
글씐바위(글이 마모되고 훼손되어 잘 보이지 않아 사진에 적어 두었다)
팔십세 늙은 몸이 거치른 만리길을 가노라.
한마디 말이 어찌 큰 죄가 되어 세 번이나 쫓겨나니 신세만 궁하구나.
북녘하늘 해를 바라보며 끝없이 넓은 남쪽바다 믿고 가느니 바람뿐이네.
초구(임금이 하사한 옷)에는 옛은혜 서려 있어 감격하여 외로이 눈물 흘리네
예송리(禮松里)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40)과 몽돌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곳에서 청각을 많이 말려 팔고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예송리 해수욕장과 상록수림
우리가 묵었던 중리해수욕장에 있는 솔밭펜션(식당도 겸하고 있고, 전복양식을 많이 하고 있다)
전복양식장 모습(끄집어 내고 있는 곳에 전복 수백마리가 붙어 있다-1kg(약8마리)에 5~6만원 짜리다)
직접 따서 그 자리에서 몇마리씩 먹기도 했다
전복양식장 체험!!
크레인으로 끄집어 내기도 한다.
이건 1kg에 2만원 짜리다.
해남우황리공룡화석지.천불천탑의 화순운주사를 여행한 사진입니다.
보길도와 노화도를 잇는 연육교(보길도에서 땅끝마을로 가는 장보고호에서 찍은사진)
바다 구경도 조용히...............
곳곳에 전복 양식장이 많이 있다(전국 전복 생산량의 85%가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멀리 멸치를 잡는 선단이 가고있고, 조선소의 배가 배의 일부를 만들어 싣고 가고 있다)
해남의 땅끝마을과 산위의 전망대
해남 우황리공룡화석지 안내도
조각류공룡관 안에 있는 공룡발자국화석과 탄화목 화석
익룡조류관 내에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
대형공룡 발자국화석
공룡관내에는 발자국화석과 공룡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화순 운주사[雲住寺]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창건에 관한 이야기는 도선(道詵)이 세웠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전해지나, 도선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법당과 석불, 석탑이 많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1918년에 박윤동(朴潤東)·김여수(金汝水)를
비롯한 16명의 시주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 종각 등이 있다. 1942년까지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12기와 석불 70기만 남아 있다. 크기는 10m 이상의 거구에서부터 수십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우 투박하고 사실적이며 친숙한 모습이 특징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 좌우의 산등성이에 1,000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80년 6월에는 절 주변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로는 연화탑과 굴미륵석불,
보물 제796호인 9층석탑, 보물 제 797호인 석조불감, 보물 제798호인 원형다층석탑, 부부 와불(臥佛) 등이 있다.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우리 국토의 지형을 배로 파악한 도선이 배의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 호남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기울 것을 염려하고 이곳에 1,000개의 불상과 불탑을 하룻밤 사이에 조성하였다고 한다.
입구에서부터 탑과 불상이 계속되고 있다.
운주사의 대웅전과 탑
조각이 특이한 부처님들(이곳에서 생산되는 사암으로 만들어져 거칠다)
부부와불은 천불천탑 중 마지막 불상으로 길이 12m, 너비 10m의 바위에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의 조각이다.
이 불상을 일으켜 세우면 세상이 바뀌고 1,000년 동안 태평성대가 계속된다고 한다.
칠성바위(동그란 크기가 다른 바위 7개가 북두칠성과 꼭 같이 놓여있다)
첫댓글 드디어 경주 알파인들이 바다로 입수 했네, 파도를 가르는 여개선 뱃머리에선, 인보부부, 정읍장부부, 조도사 부부, 타이타닉 뱃바리에 팔 벌린 젊은 주인공 연인 같네. 가는길, 콘도시세. 회가격을 종류별로 올려 놓아, 전복죽 농어회 땜에,꼭 한번 가야 겠네, 아니면 우리 동기회를 보길도에서 한번 해 볼꺼나.5.6년전 진도에서2박. 땅끝 말을 거쳐 완도에서 식물원 구경후 1일민박하고 이틋날 선착장에 나갔다가 태풍경보로 되 돌아 왔는데, 이젠 자세하고 정확한 여정기를 보고 언제 라도 떠나면 될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