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3>
‘삶의 원형질’ 재래시장을 살려야 한다
김선기 논설실장
여행길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꼭 들르는 데가 있다. 그곳은 도시의 번화가도, 명승고적도 아닌 재래시장(전통시장)이다. 액센트 강한 토종 언어와 버무려진 시장통 분위기는 삶 속에 밴 지역문화의 원형질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래시장은 단순한 시장의 기능만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 속에 녹아 들어가 살아 움직이는 생활공간이자 삶의 현장이다. 그리고 상거래 외에도 집안간의 대소사를 나누고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공간으로 만남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중장년층들은 누구나 재래시장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추억이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을 터이다.
그런데 그런 재래시장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어 안타깝다. 조상의 순박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재래시장이 현대 문명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정신문화도 함께 쇄락해감을 의미한다.
재래시장의 침체 요인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유통환경 변화가 가장 크다.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의 진출이 늘면서 재래시장 고객을 이들이 흡수한 탓에 영세시장의 경영수지는 당연히 악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재래시장에서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한숨소리만 가득하자 급기야 정부와 각 지자체가 나서 재래시장 살리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상인들의 갈증을 풀어주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200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7년간 709개 시장에 9천675억 원을 투입해 아케이드 개량(511개), 주차장 개선(286개), 건물개량(519개), 진입로 개설(82개) 등의 시설개선과 상인교육 등의 지원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수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었으나 성과는 보잘 것 없다.
정부 정책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정부의 지원이 비가림 시설 등 공동기반시설을 지원한 것은 좋았으나, 시장별 유형 및 특성에 따른 근본적인 활성화 지원은 미흡했다는 점이다. 유형별 투자 우선순위를 고려한 선택과 집중보다는 기반시설에 대한 양적 지원에 치중한데다, 재래시장이 가진 강점을 극대화하고 지역문화와 관광자원을 연계한 특성화된 지원전략이 부족했다는 얘기다.
이와함께 대도시 상권이 재래시장과 인근상가, 상업지역으로 확장됨에 따라 개별상권 단위의 지원으로는 상권회복에 한계가 있고, 지방도시의 구도심 상권의 침체로 도심공동화가 가속화되는데도 이에대한 지원책은 없었다. 또 여기에 상인의 고령화에 따른 주먹구구식 영업방식과 낮은 서비스 수준으로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데다, 상인 스스로 자생력을 키우기보다는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된 것도 또 다른 원인을 불러왔다.
물론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상인들의 자구책 마련이다. 상인 스스로 다양한 유통정보와 소비현상을 취합해 현실 영업에 접목해야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또한 상인이 변해야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는 기본적인 틀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듣자하니 광주 남구가 지난달 28일 20억원 규모의 ‘효사랑 재래시장 상품권’을 발행해 히트를 치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재래시장 상품권 발행을 계기로 지난 추석명절에는 무등·봉선시장의 매출액이 평균 20%가량 늘었다는 희소식도 들린다. 재래시장 상품권은 다른 상품권과 달리 사용처가 분명하고 제한적이라는 측면에서 ‘선택과 집중’ 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네 삶의 원형질이라 할 수 있는 재래시장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문화적 가치가 높다. 때문에 문화사적인 측면에서도 재래시장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각 지자체의 역할과 단체장의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 재래시장을 살리는 것은 뿌리째 흔들리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되살려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