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나들이
世嵐 박성규
열차 여행을 해본 것이 얼마만 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으로는 칠십년대 친구 진영이와 남원에서 여수까지 간 것이 어렴풋하게 떠 오른다.
아침 일찍 서둘러 전주역에 갔다. 같이 갈 일행들이 많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안내원을 만나 설명을 듣고 일정표를 받아 대기하였다. 일행들은 연령대가 어린애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 그래도 젊은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탑승이 시작되었다. 전주역에는 역사를 새로 지은 후 처음 들어와 본다. 일이 있을 때마다 고속버스나 일반 버스를 이용했다. 그 외에는 자가용으로 다닌 것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더 새롭고 기대가 되었다. 무궁화호 테마 열차 5호 차에 자리를 잡고 06시 20분에 출발하였다. 익산을 지나자 멀리 보이는 산 등에 눈 부신 햇살이 오늘의 여행을 예견해 주었다. 여행객들은 새벽잠을 설치고 나와서 그런지 꾸벅꾸벅 졸거나, 창가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창밖 경치를 보니 벼가 샛노란 몸으로 무겁게 고개를 숙이고 가을이 깊어감을 말해주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지나간 태풍에 여기저기 쓰러져있었다. 다 지은 농사를 바라보고 얼마나 속이 쓰렸을지 내 마음도 아프다. 열차는 서대전, 조치원, 영등포, 청량리역에서 잠시 정차를 하더니 계속 느린 걸음으로 달렸다. 서울을 지나칠 때는 시내의 풍광에 옛날 6, 70년대 일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다. 대한민국에 수도이며 가장 화려한 서울 그것은 보이는 곳이다. 보이지 않은 곳은 아직도 헐벗은 그대로 누더기가 된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가장 소박한 곳에, 가장 화려한 곳이 있으니 세상은 다채롭기만 하다. 우리 삶에 명암明暗이 없으면 어떨까? 행복과 불행을 느끼지도 못할까. 여전히 한 구석의 마음이 시려 온다.
청량리를 벗어나니 다시 농촌이다. 짠했던 마음도 차분해지고 여행길도 실감이 난다. 이래서 열차 여행을 하는 것일까?
양평역에는 11시도 못 되어 도착했다. 양평 시장을 구경삼아 들어갔다. 각자 주어진 자유 시간이며 점심을 해결하고 모이기로 했다. 시대의 변천으로 어딜 가나 같은 유형의 시장 모습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 마음을 자극할 무엇인가가 띠이질 않았다. 우선 우리 부부는 마음에 드는 식당을 찾았다. 양평에서 유명하다는 음식을 찾은 것이다. “양평 해장국”이다. 담백한 해장국은 우리 고장이나 비슷했다. 다른 점은 주재료가 양이었다. 지역 막걸리도 맛을 보고 시장 상인들의 삶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 일정은 버스로 이동했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만나 한강이 시작된다는 “두물머리”에 갔다. 주변을 산으로 장식한 두 물줄기 맑은 공기와 깨끗한 푸른 강물이 마음을 신선하게 했다. 강에는 연꽃이 많았다. 세미원이라는 공원 이름을 가지고 자연정화 시설로 유명한 곳이다. 많은 종류의 연꽃이 있는데 수련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정화작용이 특별하단다. 그래서 이곳에서 자연정화를 시켜 한강으로 간다는 것이다. 이곳을 공원화하여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여 관광객이 꼬리를 문다. 기발한 생각이다. 한 바퀴 돌면서 땀을 흘리며 두물머리 맑은 물을 배부르게 마셨다.
두물머리 세미원에서 용문사로 갔다. 처음으로 가본 사찰이다. 생각보다 깊은 계곡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웅전 앞에 거장 새파랗게 젊은 은행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나이가 1,100년 되었다는데 아직 젊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동양 최대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되었다 한다.
사찰은 크다는 느낌은 없고 여느 사찰이나 비슷했다. 비교적 인파에 비해 조용했고 깨끗한 시설들로 정신수양 하는 데는 적격이라 생각되었다. 뭐니 뭐니해도 오랜 세월을 은행나무가 지켜주지 않았나 싶었다.
일정 시간이 다 되어 가는지 산사를 그리는 햇빛이 점점 붉어진다. 서둘러 사찰을 내려와 양평 막걸리를 용문산에서 자란 안주로 입가심을 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용문역에서는 테마 열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6시 20분에 출발하여 어두운 밤이라 까맣게 달렸다. 전주에는 11시경 도착했다. 아직도 오늘이 다 가진 않았다.
양평 여행은 계획엔 없었지만 뜻하지 않은 곳을 새롭게 구경했다. 뭐니 뭐니 해도 열차 여행을 했다는 것이 내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 주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코레일 관광 개발에서 가을 여행주간에 “만 원의 행복”이란 테마를 가지고 실시한 여행이었다. 여행에 참가자는 1,600여 명 중에 250여 명에 해당 추첨 되었다니, 복권 당첨된 것이다. 모두가 코레일 관광개발(주)의 덕택이라 감사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항상 바쁘게만 생활하는 일상에 이런 이벤트 아니었다면 언제 열차 여행을 해보겠는가?
첫댓글 '아직도 오늘은 다 가지 않았다'. 는 표현이 참으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