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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학으로 세상 읽기" 제 6호에 실린 것을 수정 보완해서 여기 실은 것임.
드라마 “제빵 왕 김탁구”를 보고서
2010 10 15 ‘신학으로 세상읽기’ 제 6호
권호덕 교수(백석대, 교의학)
우리는 얼마 전에 근래에 보기 드물게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드라마 하나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50% 이상의 시청률을 끌어올린 “제빵왕 김탁구”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거성이라는 한 제빵 회사가 등장하고 그 사장 집에서 두 가지 긴장 세력이 생기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사장의 부인이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역술인의 말을 듣고 인위적으로 아들을 낳게 되는 일과 사장과 그 집에서 일하는 간호사 사이에서 한 아들이 태어나면서 드라마의 갈등 구조가 형성된다.
사장의 부인은 서자인 김탁구를 그 집에서 추방하고 나아가 이 두 母子를 없애기 위해 비서실장을 통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본 부인의 아들인 구마중의 실제 아버지인 비서실장은 김탁구가 거성 회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악을 저지른다. 심지어 그는 사장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한다. 반면에 김탁구는 잡초처럼 자라나 수없는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찾아 가는 도중에 우여곡절 끝에 팔봉 빵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빵 기술을 배운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다른 한편 사장의 아들인 구마중은 좋은 환경에서 잘라났어도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생각이 꼬인 채 인생을 살아간다. 그에게는 빵에 관한 한 김탁구에 대해 열등감을 있어서 매 순간 그를 이기려는 욕망을 가득하다. 심지어 독을 사용하여 김탁구에게 危害를 가하여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시도하는가 하면 김탁구에게 속한 좋은 것은 다 빼앗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평안이 없고 항상 쫓기는 듯한 삶을 산다. 그런데 마침내 김탁구를 통해 그의 생각이 바꾸어지고 드라마는 행복한 大尾를 장식한다.
우리의 질문은 냉소적인 사회 속에서 이 드라마가 왜 그렇게 수많은 시청자들을 열광시켰을까 하는 것이다. 열광했다는 것은 공감하는 요소가 있었거나 대리 만족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독인으로서 아니 개혁교회 교인들로서 이 드라마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1. 첫째 두 계층 간의 갈등
이 드라마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경제적으로 부요하여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소위 귀족층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약자들에게 ‘천한 것들’이라고 부르면서 함부로 멸시하는 말투이다. 이것이 과연 민주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드라마 속의 이 가진 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태도는 소위 낮은 계층 사람들의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사장의 부인은 庶子에 속하는 김탁구를 증오하고 멸시하는 눈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자기 아들의 여자 친구, 가난한 집안 출신의 아가씨에게 인격을 모독하는 것 이상으로 그녀를 짓밟는 말을 한다. 이것을 무엇을 뜻할까? 한국 사회는 서구 자유민주주의 문화가 들어온 지 꾀 오래되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양반상놈 계급의식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음을 표출하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에는 권력이나 재물이 있으면 양반 행세를 하고 사회적으로 힘이 없고 돈이 없으면 멸시를 받아도 되는 듯 한 그런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층 간의 갈등이 많이 나타난다.
우리 주위에는 ‘신분 상승’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본인의 신분이 낮기 때문에 더 높은 계층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강남 특구’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한국인의 계급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요령이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나아가 좋은 대학교에 입학시켜 좋은 직장을 가지게 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것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인데 사실은 그 속에 계급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소위 서민 계층의 사람들에게 이런 공감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 권선징악과 사필귀정
이 드라마가 매우 명백하게 보여주는 사상은 선을 권하고 악을 징벌한다는 勸善懲惡 내지 事必歸正 곧 바르고 정의로운 것이 항상 이긴다는 사상이다. 오직 한 가지 목적, 어머니를 찾는 일에 마음을 집중시키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김탁구는 마침내 어머니도 만나고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얻는다. 반면에 오만하던 사장부인과 김탁구 母子를 제거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던 비서실장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다. 이 부인은 남편도 자녀도 잃어버린다. 이 드라마에서 악의 주역인 비서실장은 심지어 親子인 구마준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그가 저지른 악독한 범죄로 인해 감옥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이 드라마는 권선징악 내지 사필귀정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악이 선을 이기는 현실 앞에 좌절하고 실망한 수많은 사람들은 정의가 이기고 불의가 패배한다는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과연 정의가 항상 이기고 악이 항상 실패하는가? 근시안적으로 볼 때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교활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자들이 성공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우리 사회 현상을 有錢無罪나 無錢有罪라는 사성어로 표현하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일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 사회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역사는 악들이 항상 승리하는 일들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성경도 악이 일시적이나마 승리하고 의인들이 억울하게 고난당하는 내용을 보여준다. 기독교신학에서 말하는 神正論은 이런 현실문제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즉 악이 항상 승리하는 인간 역사 속에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하는 질문이 심각하게 제기된 것이다. 하나님이 침묵하시기 때문에 인내심이 약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한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경우처럼 문제가 잘 해결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모순된 현실 속에서 실존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질문을 던지며 대안을 마련하는 지혜가 있어야 될 것이다. 욥기서에 의하면 그 모든 고난이 끝날 즈음에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시며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이런 면에서 비록 현실과 거리가 먼 스토리를 전개하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시청자들의 코드와 들어맞았기 때문에 큰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3. 전문가 존중사상
유교적 계급사회에서는 빵쟁이와 같은 하부구조에 속하는 직업은 상부구조에 속하는 양반들에 의해 천시되었다. 이런 경향은 하이칼라 직종을 더 선호하고 육체적 노동을 멀리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유교사회에서는 천시되었던 그런 직종을 존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말하자면 한 가지 전문성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의 제일 큰 특징은 전문가로서 빵쟁이의 긍지일 것이다. 먹거리를 중심 소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몇 년 전에 방영된 ‘대장금’을 생각나게 한다. 거성의 창업자이며 사장인 구일중은 빵쟁이로서 긍지와 사명감 그리고 전문성을 구비한 인물이다. 이런 사명감과 전문성은 그의 親子인 김탁구를 통해 계승된다. 이 두 父子는 우연히 당시 한국 최고의 빵 전문가인 팔봉 선생의 제자들이 되었다.
팔봉선생은 단순히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도움이 되고 행복하게 만드는 빵을 만드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즉 그의 전문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그리고 전문가로서 인간애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팔봉선생은 빵 만드는 기술을 연마시킴을 통해 문제아들의 인격을 연마한다.
우리는 빵을 만드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이들의 인생관 속에서 칼빈주의 사상이 가르치는 분야주권 내지 영역주권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서구 기독교민주국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 분야주권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 핵심은 인간의 삶에는 여러 가지 분야가 있고 분야의 종류는 인간의 은사 종류만큼이나 많으며 그 모든 분야는 각기 학문과 실천에 대한 원리와 법이 있는데, 다른 어떤 분야도 그 분야를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분야는 그 분야 사람들만이 가장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각 분야의 학자들이 자기 분야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책임지는 마음으로 깊이 있게 연구하고 상호 논의함을 통해 각자의 약점을 보충하는 일이다.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의 경우 스승의 견해를 비판하면 젊은 학자들이 살아남기 힘들다. 이런 경우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그 학파의 대부의 사상이 중심이 되어 객관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모든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비판을 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이런 오류에 빠지기 않기 위해서 선배 노장들은 젊은이들을 격려하여 좋은 연구가 나올 수 있게 해야 하고 젊은이들은 그 동안에 밑거름이 되어 준 노장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자기 학문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학문 연구 결과가 실제의 삶 곧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조치를 잘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문적 연구 결과와 국민들의 실제의 삶의 현장 사이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조화가 이루어질 때 힘 있고 풍성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분야주권 사상은 직업전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직업인들은 자기 일에 대해 전문성을 연마하는 동시에 사회 내지 이웃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하고 다른 분야 사람들은 그 분야 사람을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 빵 전문가인 팔봉선생은 어느 누구의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는 전문가이다. 우리는 그의 삶속에서 그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기 스스로 할 일을 알아서 하는 자유인의 볼 수 있다. 자유인은 전문성과 같이 가는 것이다.
이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정치권이 자기 고유의 분야를 넘어서 다른 분야를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각 분야가 자기 원리에 충실하게 그 임무를 수행하는지를 점거하고 각 분야가 자기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어 지도하면 된다. 그리고 모든 분야가 균형 있고 조화롭게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하며 조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전문가들이 많이 일어나서 일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이들에게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 분야의 다양성은 인류의 다양성과 통한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재능이나 은사를 잘 연마하여 이웃 내지 인간 공동체에 기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살도록 조처했음을 가르친다. 이로써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그 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이 종사하는 모든 직업들이 사탄적인 것이 아닌 한, 즉 마약업이나 매춘업 등 다른 사람의 생명을 희생시켜 이익을 얻는 그런 직업이 아닌 한, 모든 직업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다 소중한 것이며 그 가치는 평등하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희미하게나마 이런 분야주권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회사의 경영권을 가족들 중에 그 분야에 가장 전문가인 큰 누나 구자경에 맡기고 김탁구 자신은 자기 전문인 빵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팔봉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그런 사상을 반영해 준다. 또 구마준이 자기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여행을 떠나는 것에서도 그런 것을 엿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분야주권 사상을 반영하는 이 드라마가 모든 사람들의 상생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생의 원리를 김탁구의 입을 말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탁구가 그를 제거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서실장에게 “우리 모두가 다 잘 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막는가?”라고 한 말은 그것이다. 회사의 권력을 편법적으로 틀어쥐고 자기의 대적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제거하려는 이 비서실장에게는 회사원 각인의 은사 계발에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는 오직 권력에의 의지만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생이 있을 수 없다. 북한이 가난한 이유는 이런 시각으로도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이 무시되는 한 거기에는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4. 말을 맺으며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모두가 다 제각기 받은 은사에 따라 자기 존재의의를 이루도록 조처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고유의 은사를 통해 자기 직업을 전문적인 것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에게는 불평등이 없고 직업에 귀천이 없으며 상호 간에 존중해야 하는 것인 인간의 본래적인 삶이라는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죄 때문에 이 균형은 깨어졌다. 지금 인간사회의 불균형이나 불평등은 이 죄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일반은총을 통해 이것이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셨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우리 사회속에 그런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음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고 남쪽 한국 사회마저도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흑백원리에 사로잡혀 자기편이 아니면 대적이라는 자세는 개인은 물론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드라마 “김탁구”는 이런 편협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회가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분야주권 사상이며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될 수 있기 위해 자기를 연마해야 된다는 지체론일 것이다. 우선 이것을 교회 내에서 먼저 실시하여 본을 보이고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교회의 세상을 위한 큰 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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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보신 영화를 가지고 말씀을 해주시던 기억들이 나네요. 교수님의 가르침으로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기독인으로 느끼며 생각하는 훈련을 쌓았던것 같아요. 어느 수업에서도 느끼지 못한 아름다운 서정적이며 감동적인 수업이었지요. 딱딱한 조직신학을 부드럽게 먹여주신 교수님^^ 진정 감사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건강하세요
그렇게 느꼈다면 난 매우 기쁘지요. 좋은 일 많기를 바랍니다. 샬롬
아~ 저도 즐겨 보았던 '제빵왕 김탁구'에서 분야주권사상을 설명해 주시니....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 드라마가 분야주권 원리 일부분을 반영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상생하는 삶으로 간다면 민심이 어수선한 이 시대에도 섬광은 보이겠지요. 근데 교회가 먼저 이것을 실현해야 되는데, 대부분의 담임목사들이 너무 독재적이고 독선적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