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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맹문재 시인詩人과의 특집 대담 ■ 대담: 최규리 시인(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Special conversation with Poet Maeng Moonjae
특집 맹문재 시인과의 특집 대담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2024년 9월호 |
□ 맹문재 시인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기룬 어린 양들』 『사북 골목에서』,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 『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현대시의 가족애』, 엮은 책으로 『박인환 전집』 『김명순 전집』 『김남주 산문 전집』 『김후란 전집』(오세영 공편) 『박인환 깊이 읽기』 『김규동 깊이 읽기』 『이기형 대표시 선집』(임헌영 공편) 『한국 대표 노동시집』(김윤태 외) 『박인환 번역 전집』 『박인환 시 전집』 『박인환 산문 전집』 『박인환 평론 전집』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 대담집으로 『행복한 시인 읽기』 『순명의 시인들』, 번역서로 『포유동물』 『크리스마스 캐럴』 및 『종소리』(여국현 공역) 등이 있다.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고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효봉윤기정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이다.
■ 최규리 시인(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2016년 《시와 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질문은 나를 위반한다』, 『인간 사슬』(천년의시작, 2022)이 있음. 2023년 제14회 <시와세계작품상> 수상.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특집】 맹문재 시인詩人과의 특집 대담ㅣ 우리의 그리움이 먼 길을 움직일 때 ■ 대담: 최규리 시인(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 interviewer: 최규리 시인
□- interviewee: 맹문재 시인
■-질문
□-답변
■ 최규리 : 선생님. 안녕하세요. 말씀 나누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며칠 전 집중 폭우로 인해 취약 지역의 피해를 뉴스로 접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들은 매일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 맹문재 : 여러 가지 책을 출간하고 있네요. 우선 2024년 3월 30일 타계하신 신좌섭 선생님과의 대담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다섯 차례에 걸쳐 신동엽 시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심도 있게 대담한 것을 책으로 묶고 있어요. 대담집을 준비하는 중에 신좌섭 선생님께서 돌아가셔서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워요. 김수영 시인의 부인인 김현경 여사님과 10년 동안 대담한 것도 단행본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시집 간행도 준비하고 있는데, 올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11월 2일 전남대학교에 열리는 김남주 시인 30주기 학술대회에 발표할 논문 준비도 하고 있어요. 올해부터 푸른사상 문화학교에서 <김수영 읽기>도 강의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어서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어요.
■ 최규리 : 저는 최근 무척 남다른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저서들을 면밀히 살펴보며 시대의 아픔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세계를 오롯이 대면하는 것이 저는 참 어렵습니다. 민중의 삶과 애환, 노동 현장에서의 불평등과 희생자들. 바로 이웃의 이야기이며 문학이 해야 할 일이겠지요. 이번 대담은 시에 드러나는 노동에 관하여 말씀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한국 민중시 문학사』(박이정, 2001)를 펴내셨고, 그러한 시인의 길을 걸어오시게 된 결정적 계기나 배경에 대해 궁금합니다.
□ 맹문재 : 저의 『한국 민중시 문학사』는 개화기부터 1990년대의 한국 시문사를 노동시의 관점으로 쓴 것이지요. 노동시 관점으로 쓴 문학사는 이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 같아요. 수정 및 보충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집중적으로 작업하려고 해요. 제가 노동시의 관점에서 한국 시문학사를 기술한 것은 사회적으로 또 학문적으로 소외된 시인들의 작품을 제 나름대로 조명하려는 것이었어요. 다양한 관점으로 시를 조명할 때 한국 시문학사는 좀 더 풍성해지겠지요. 저는 젊은 날에 노동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노동자의 사회적 존재를 남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 한국 시문학사에서 소외되어 왔는데, 저는 그들의 작품 가치를 평가하고 싶었어요.
■ 최규리 : 사북항쟁 4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 『사북 골목에서』(푸른사상, 2020)를 여섯 번째 시집으로 출간하셨는데요.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들이 광부였다. 1980년대 문학권에서 민중문학이나 노동문학 담론이 유행처럼 논의될 때조차, 당시 6만 명 넘게 종사하던 광부의 삶은 문학에서도 소외되었다.”라고 출판사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집의 표제작을 읽어 보겠습니다.
지난날의 항쟁을 지도 삼아
길을 알려주는 토민(土民)을 만나기도 하지만
작업복을 입은 아버지가 없기에
골목은 추상적이다
폭죽처럼 터지는 카지노의 불빛도
골목을 밝혀주지 못한다
폴짝폴짝 탄 먼지를 일으키며 걸어가던 아이들
사택 문을 열고 나오던 해진 옷 같은 아이들
나는 그 골목에서 아버지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입갱하는 광차를
석탄이 달라붙은 도랑물을
“우리는 산업역군 보람에 산다”는 표어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마지막 방문이라고 다짐하고
골목 끝에서 뒤돌아보았을 때
아버지는 개집처럼 서 있었다
―「사북 골목에서」 전문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버지께서 한때 사북에 계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지, 시 세계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고 싶습니다.
□ 맹문재 : 저의 아버지는 농부이셨습니다. 원래 집안은 가난하지 않았는데, 이러저러한 장사에 손을 대셨다가 땅을 팔게 될 정도로 되었습니다. 그것을 만회하려고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다닐 무렵부터 사북으로 가서 광산촌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기술과 경험이 없어 막장에 들어가 탄을 캐지는 않으셨고, 탄을 기차에 싣는 일을 하셨습니다. 사북역 옆에 방을 얻어 생활하셨는데, 제가 집안의 맏이였기 때문에 방학이 되면 아버지를 뵈러 갔습니다. 그때 흘러가는 냇물의 색깔이 새까만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가 오면 탄가루 덮인 길이 질척거려 장화를 신지 않으면 걸을 수 없었고, 더러운 골목길, 남루한 사택 등이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는 주위의 어른들이 말씀하시듯이 법 없이 살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정직하시고, 힘이 세시고,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장사에 손을 대서 집안을 어렵게 하셨지만, 제가 용돈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면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주셨습니다. 음식을 드시다가 기도가 막혀 2013년 12월 25일에 돌아가셨습니다. 가족들에게 한마디 말씀도 못 하신 것이 참으로 안타까워요.
■ 최규리 : 다섯 번째 시집은 『기룬 어린양들』(푸른사상, 2013)입니다.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 이후 노동운동을 하다 세상을 뜬 이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시 65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노동 열사들의 이름으로 시를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맹문재 : 『기룬 어린 양들』은 1970년대 전태일 열사 이후 노동 및 노동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의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담은 시집입니다. 노동 열사 68위(位)를 65편의 시로 모셨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통해 노동 열사의 전기나 평전 형식으로 썼습니다. 저는 기존의 노동시들이 지나치게 설명적이라고 생각해 최대한 집중하면서 서정성을 띠려고 했는데, 다시 읽어 보니 서사를 좀 더 넣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이 시집을 시리즈로 간행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몇 권이 될지 모르지만 계속 간행할 계획이에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역사의 주체이면서도 소외된 삶을 살다 간 노동자들을 최대한 발굴해서 세상에 알리려고 합니다.
■ 최규리 : 첫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에서 “먼 길에서 바라보면/다른 사람의 수술이 아프지 않다” “그러나 길은 먼 데서 시작된다” (「그리움이 먼 길을 움직인다」)……. 그 후 6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물고기에게 배우다』를 펴내셨습니다. “길을 알지 못하던 때는 어머니가 이끄는 대로/장터며 외가를 따라다녔는데/본전을 확실히 챙겨준다는 그를 알고 나서는/나의 길을 맡긴 것이다." (「이자」)……. ‘길’이라는 수많은 전환점에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시인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1시집과 제2시집의 출판 당시에 가장 고민했던 면이나 환경에 대하여 여쭙니다.
□ 맹문재 : 제가 시를 쓰는 데 영향을 주었던 1980년대가 1990년대로 급격히 넘어가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강화, 문민정부 및 정권 교체,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 등 정치, 사회, 문화적 격변은 노동시를 추구하던 저에게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노동문학이며 민중문학을 추구하던 선배들이 발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냉전시대의 종식 이후 밀려든 물질주의, 정보사회, 실업 문제 등을 앞에 두고 어떤 노동시를 추구해야 할지 고민한 것입니다. 결국 시인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을 모색한 것으로 볼 수 있겠지요.
■ 최규리 : 세 번째 시집은 『책이 무거운 이유』 (창비, 2005)인데 시인의 말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자본주의에 대해 특히 고민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추천글을 써 주신 최동호(고려대 국문과 교수) 시인의 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진솔하고 꾸밈없는 언어로 씌어진 그의 시를 읽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려본다. 거짓된 말은 사람을 유혹하나 진실된 말은 사람을 움직인다.” 선생님의 진실된 언어가 길을 움직이게 하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쇳가루를 뒤집어쓴 공장노동자 생활을 경험한 바 있다고 하셨는데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맹문재 :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은 포스코라고 불리는 포항제철에서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열연1부 2후판공장에서 일했지요. 검사를 통과한 판(plate)을 주문처별로 이송하는 일과 평탄도가 고르지 못한 판을 냉간 교정기에서 펴는 작업을 했어요. 근무한 지 몇 년 지나서 한 일이고, 입사 초기에는 주로 주문처별로 판을 쌓는 크레인을 돕는 신호수 일을 했지요. 그리고 판에서 떨어져 쌓인 야드의 쇳가루를 톱밥을 이겨 쓰는 일을 했어요. 먼지가 많고, 소음이 심하고, 엄청난 무게를 지닌 판을 옮기는 작업이기 때문에 위험했지요. 또한 3조 3교대 근무에 한 달에 하루밖에 쉬지 못하는 근무 조건이어서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노동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근무하던 선배님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저의 노동자 생활은 최동호 선생님께서 출간한 『인터넷시대의 시창작론 2』(고려대학교 출판부)에 자세하게 들어 있습니다.
■ 최규리 : 「노동문학과 정치의식」(2022), 「코로나 시대의 노동시」(2022), 「기계 도시의 이방인―네팔 이주노동자 시집」(2021),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자 소외」(2020) 등 다수의 평론을 발표하셨습니다. 인류는 죽음과의 사투 속에서 코로나 시대를 통과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노동시」에 대하여 다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맹문재 : 「코로나 시대의 노동시」는 제1회 노동예술제 기념 시집인 『꽃은 져도 노동은 남네』에 실린 글입니다. 2019년 12월 말 시작된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펜데믹으로 전 세계 인구의 550만 명 이상 사망했고, 한국에서도 6,000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는 보고가 있지요. 사망자가 급증해 장례식장과 화장장의 대란이 일어나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익히 보았지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큰 고통을 겪었는데,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면이었습니다. 대면 접촉과 물적 이동이 제한되면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었어요. 정부에서 긴급 재난지원금을 제공했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는 역부족이었지요. 그와 같은 시대에 시인들이 고민하고 극복하는 자세를 보인 것을 노동시의 관점에서 살펴본 글입니다.
우리 사회의 노동자는 이전 시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노동자는 고용 자체가 어렵고, 고용된 노동자도 해고되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따라서 노동자는 새로운 세계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주도하는 컴퓨터가 작업장에 계속 들어서고 있기에 더욱 맞서야 하지요. 노동자는 정치적 의식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정치 행동은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요구되는 것이지요.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정치 환경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에 무엇보다 연대가 필요합니다.
■ 최규리 : 한국 시문학사에서 노동시 또는 노동문학은 동시대의 중심 과제로 떠오르는 사회적 문제에 적극 참여하며 문학에 반영해 왔습니다. 노동 현장의 실태와 농촌 문제, 도시 소시민들의 문제, 여성 문제 등 사회의 노동 현실은 광범위합니다. 화이트칼라라고 불렸던 회사원, 교사, 사무직,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라는 개념도 확대되었습니다. 육체적 노동을 넘어 감정 노동자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초연결 미디어 시대의 노동자 개념과 노동시의 영역은 어떤 것인가요? 또 한국 노동시의 현재와 전망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가마저 노동의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창작의 결과는 어느 삶의 현장 못지않게 피폐하고 열악합니다. 전업 작가 되는 길은 생존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며 권리를 포기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노동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개선해야 할까요?
□ 맹문재 : 노동문학 및 노동시란 개념이 학계나 문단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입니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 여건이나 사회적 처우가 매우 열악했지요.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 직접 나섰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노동문학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에 따라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확대된 데 큰 영향을 받은 것이지요. 노동문학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고, 투쟁의 목소리도 약해졌어요. 거대한 자본주의에 함몰된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지요.
21세기에 들어 노동문학은 소외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노동시를 추구하는 시인의 수가 급속히 줄어들었기 때문이지요. 노동 문제는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 시인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노동의 영역이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바뀜에 따라 노동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는지 모릅니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전문화되어 많은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노동 문제가 가려지는 면도 있는 것 같네요. 어느덧 노동 환경은 컴퓨터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대로 적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노동자들 간의 유대감이 약해지고 노동조합 활동도 활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한 노동은 필요하고 그에 따라 노동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제 노동시는 인공지능(AI) 같은 자본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하고 전문화되고 급변하고 있어 그 본질을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노동시는 모깃소리밖에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모깃소리라도 내어야겠지요.
■ 최규리 : : 선생님께서는 박인환 시인 탄생 80주년, 타계 50주년 기념 『박인환 깊이 읽기』(서정시학, 2006)를 펴냈습니다. 그 외에 『박인환 번역 전집』 『박인환 시 전집』, 『박인환 산문 전집』, 『박인환 평론 전집』 『박인환 영화평론 전집』, 그리고 박인환의 유일한 시집인 『박인환 선시집』 복각본을 출간하는 등 박인환 시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중에서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관습과
봉건의 터널 특권의 장막을 뚫고
피비린 언덕 너머 곧
광선의 진로를 따른다 (중략)
밤이면 열차가 지나온
커다란 고난과 노동의 불이 빛난다
―「열차」 부분
황갈색 계단을 내려와
모인 사람은
도시의 지평에서 싸우고 왔다
―「지하실」 부분
사진잡지에서 본 향항 야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중일전쟁 때
상해 부두를 슬퍼했다 (중략)
가난한 조선의 프로필을
여실히 표현한 인천 항구에는
상관도 없고
영사관도 없다 (중략)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
―「인천항」 부분
위의 시들에서 보듯이 박인환은 새로운 시 쓰기를 추구했지만, 그의 시세계를 모더니즘을 추구한 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박인환이 시 쓰기에 있어서 모더니티를 추구했다고 할지라도 그의 시가 모더니즘 시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모더니티의 추구가 모더니즘의 시가 될 수는 있지만 모더니티가 곧 모더니즘 시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박인환의 시세계를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도는 박인환의 시가 모더니즘 시이니까 사회 참여 의식이 없다고, 즉 순수시라고 왜곡되고 있는 점을 바로잡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박인환은 1950년대의 그 어떠한 시인보다도 사회 참여 의식이 강했다. 따라서 그의 시는 모더니즘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리얼리즘 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박인환 깊이 읽기』, 서정시학, 2006, 19쪽)
박인환은 그 당시에 미국을 다녀왔고 「19일간의 아메리카」라는 산문과 12편의 여행 시도 썼습니다. 박인환의 시가 리얼리즘 시로 보아야 한다는 내용과 관련하여 좀 더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 맹문재 : 한국 시문학사에서 박인환의 시 세계는 모더니즘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정답처럼 여겨지고 있는 이 평가는 박인환이 실제로 모더니즘 시 운동을 했고, 또 그것을 토대로 작품을 쓴 것이 사실이므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박인환의 시 세계를 모더니즘으로 국한하는 것은 그의 시 본령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현실 참여 인식이 없는 명동의 댄디보이 정도로 평가하는 것이지요. 모더니즘의 발생 배경을 살펴보면 박인환의 작품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구의 모더니즘은 기존의 사회 체제, 종교, 윤리 등에 회의감을 품고 있다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이고, 박인환의 모더니즘 인식 역시 기존의 질서에 대한 회의와 현대 문명에 대한 불안을 표출한 점에서 유사한 것이지요.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모더니즘을 하나의 문예사조로 보지 않고 리얼리즘과 대립적인 관점으로 여기는 면이 강하기 때문에 박인환의 시 세계를 참여의식이 없다고 간주한 것이지요. 박인환의 모더니즘 시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 것입니다. 따라서 박인환을 모더니즘 시인으로 국한하지 않고 리얼리즘 시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시 세계의 영역을 넓힐 수 있지요. 박인환은 해방공간의 시기에는 진정한 민족 해방과 민족국가 건설에 관심을 가졌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전쟁 폭력으로 인한 상실감과 허무감을 노래했습니다. 해방 공간기에 발표한 「인천항」 「남풍」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고리키의 달밤」 등은 물론이고, 한국전쟁 이후에 전쟁의 폭력성을 고발한 작품들이 그 예입니다. 박인환은 『선시집』 후기에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성장해온 그 어떠한 시대보다 혼란하였으며 정신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었다.”라고 토로하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한국전쟁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쟁은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으로 인간의 삶을 위협하지요. 박인환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으로 분리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시 세계를 성취했지요. 전쟁으로 인한 대중들의 상실감과 비애감을 가장 적극적으로 담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최규리 : 선생님의 글과 말씀을 들으니 한국 사회의 역사적 순간과 제도권 안과 밖을 보여주는 문학의 기호에 대하여 더욱 깊이 생각해 봅니다.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The End of Work』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첨단 기술의 정보화 사회에서 ‘지금, 여기’ 새롭게 전개되는 노동 윤리에 대하여, 문학의 갈 길이 무엇인지. 후배 시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요.
□ 맹문재 :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진단했듯이 새로운 컴퓨터의 기술이 인간의 삶과 정신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리프킨은 대다수의 산업 국가에서 75% 이상 단순 반복으로 작업하고 있는 것을 컴퓨터나 로봇이 대체할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컴퓨터의 발전으로 노동자들은 유리한 세계가 도래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해고와 실업을 막기 어렵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대대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지요. 컴퓨터에 해고된 노동자들을 서비스 부문이나 화이트칼라 부문이 흡수할 것이라는 주장은 희망 사항일 뿐이지요. 컴퓨터가 지배할수록 사회적 빈부차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시인들은 노동 윤리나 문학의 길은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시인이라는 책무감을 가지고 좀 더 시대와 사회를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 최규리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어떤 시집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 맹문재 : 앞으로 출간할 책들이 많습니다. 발표한 시집 원고도 7권 정도 분량이 있네요. 우선 내고 싶은 시집은 ‘이자’를 다룬 작품들입니다. 거대한 자본주의의 횡포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지는 노동자들을 이자에 의해 희생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의 이 생각은 첫 시집부터 이어져 왔는데, 한 권의 시집으로 집중해보고 싶습니다.
■ 최규리 : 한국 사회의 노동 현장을 늘 관심 있게 살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민감한 질문에도 진솔하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며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컴퓨터의 발전으로 해고와 실업을 막기 어렵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밀려 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고 일자리를 보존한다면, 그 노동 현장은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이 된다. 노동 환경을 개선하여 기계화시킨다면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보다 실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문학이 목소리를 내는 일은 ‘모기 목소리’이며 그것조차 내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발걸음이 무겁다.
ㅡ끝ㅡ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2024년 9월호(2024, September) ㅡ통호 제185호 ㅡ Vol.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