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도키 뉴욕을 꽤 흥미있게 보아서인지 리플로만 얘기하기엔 하고싶은 말이 많아서 글을 남깁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찰리 카우프만을 독창적인 작가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어떤 독창적인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예전에 시네도키 뉴욕을 몹시 흥분한 상태로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비록 그 흥분은 약 1시간이 지나서 실망감과 함께 가라앉았지만, 그 1시간 동안, 반연극, 반소설, 반철학에 이어, 만약 가까운 미래에 '반영화'라는 용어가 생긴다면, 당시에 제가 보고 있던 영화 시네도키 뉴욕은 그것의 탄생을 위한 커다란 첫 걸음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찰리 카우프만은 이미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부터 자신이 도널드 바셀미, 로버트 쿠버, 존 바스와 같은 6-70년대 이후의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은 워낙에 미셀 공드리 특유의 이미지가 강한 영화이기 때문에 찰리 카우프만 고유의 스타일이 두드러졌다고는 이야기 하기는 힘들지만, '어뎁테이션'에서 보여준 '메타픽션'적 전개를 보면 그가 관심 있는 것이 무었인지, 혹은 그가 얼마나 영리하게 다른 작품들을 차용하는지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어뎁테이션에 보면 니콜라스 케이지가 시나리오 쓰기에 관한 강의를 듣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의 강사로 헐리우드의 유명한 시나리오 이론가인 '로버트 맥기'가 나옵니다. 맥기는 자신의 이론에서 영화 시나리오를 3가지로 나누어 그것을 '아크플롯', '미니플롯', '안티플롯(반플롯)'이라 지칭하였습니다. 아크플롯은 주인공 중심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반적인 시나리오를 말하고, 미니플롯은 아크플롯의 축소나 열린결말 등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안티플롯은 아크플롯의 축소가 아니라 뒤집기, 즉 누보로망이나 그 이후 문학의 반소설, 연극의 부조리극과 같은 시나리오를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맥기의 이론에 의하면 시네도키 뉴욕은 '안티플롯(반플롯)'의 범주에 들어가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안티플롯을 사용해 만든 영화를 '반영화'라고 부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네도키 뉴욕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저는 '반영화'라고 불릴만한 늬앙스를 발견했었는데(비록 그것이 이미지에 관한 발걸음은 아니지만), 그것은 '인과관계의 결여'를 통한 '연속성의 단절'이었습니다. 비록 영화의 앞부분 1시간에만 해당되지만, 플롯은 하나의 이야기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여러가지 결론이 존재하며, 시간성이 파괴되었습니다. 찰리 카우프만을 독창적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최소한 영리하다고는 말하고 싶은데, 저는 이 영화가 인터넷의 등장 이후 로버트 쿠버와 같은 작가가 사용한 '하이퍼 텍스트'라는 소설기법을 영화에 응용한 첫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예가 두드러진 장면으로 주인공이 치과에 가는 장면을 꼽을 수 있겠는데, 차과의사는 충치가 5개라고 말했다가, 다음 똑같은 장면에서 6개라고 말하며, 그 다음 장면은 충치나 그것의 갯수와 전혀 상관 없는 치과시술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시네도키 뉴욕은 어느 연극 연출가의 삶에 일종의 균열이 보이며 시작 됩니다. 그 균열은 실제는 아니지만, 환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실제에 가까우며, 그렇다고 현실도 아닐뿐더러, 꿈도 환상도 아닌 그러한 지점을 연속해서 보여줍니다. 이러한 환상을 통한 외상들, 꿈, 공포, 욕망, 현실 속의 얼룩이나, 목소리의 현존, 강림 등과 같은 것은 이미 데이빗 린치와 같은 영화를 통하여 볼 만큼 보았고, 라캉, 지젝 등을 통하여 많이 이야기 되었으며, 까사레스나 보르헤스와 같은 환상 자체의 구체적인 응용 사례들도 많지만, 그래도 이러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제게 흥미롭습니다.
첫 장면에 나오는 라디오에서 진행자가 말하길, 한 해가 삶이라면 가을의 시작인 10월은 장미와 같은 꽃이 죽기 시작되기 때문에 우울한 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말하며 릴케의 시를 암송합니다. 이 앞장면은 많은 것을 암시하는데, 우리는 이 영화에서 많은 여성들이 꽃무늬 옷을 입고 나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스트립 댄싱을 하는 딸의 몸은 온통 장미의 문신으로 덥혀 있고, 그녀가 죽을 때 문신 속의 꽃도 시들어 버립니다. 인문학자 지젝은 꽃을 버자이너 덴타타라 명하며 무척 외설적인 것으로 취급했는데, 영화에서 꽃은 이러한 열린 유혹이나 혹은 리비도에 관한 은유로 작용되기도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균열속에서 여성에게 실현되지 않는 섹스를 제의받습니다.
이 영화의 첫 균열은 딸의 배설물을 녹색으로 보여주며 시작 됩니다. 이후로도 주인공의 배설물에 관한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이러한 균열의 의미를 가진 배설물, 그러니까 상징적 동일시와 그것을 회피하는 잔여로서의 잔존물에 관한 영화의 장면이 데이빗 린치의 특허품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이를테면 '멀홀란드 드라이브'에서 나오는 고급 빌라의 길에서 발견되는 개똥). 그리고 징징대는 아이를 위해 티비를 틀자 만화영화 속 양 캐릭터가 말합니다. '땅 아래엔 안보이는 바이러스가 있는데 그것이 눈에 안보이는 생각의 바이러스처럼 성장한다. 당신은 그 뭔가에 의해 변화하는 중이다' 그리고 마치 주인공의 외상이 가정에 내제된 욕망의 분출에서 기인됨을 설명하는 듯, 집 안의 파이프가 갑자기 터져서 주인공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상징적으로 아버지의 권위가 붕괴되었음을 말하는 이 장면은 데이빗 린치의 '블루 벨벳'과 민망할 정도로 너무도 흡사합니다. 블루 벨벳의 앞 장면에 보면, 정원(꽃)에 물을 주던 아버지(연출가 주인공)가 갑자기 쓰러지는데, 이때 호스(파이프)에서 물이 세차게 나오고, 카메라는 잔디(땅)에 극도로 가까이 접근하여 그 땅 위의 수많은 개미(바이러스)들을 보여줍니다.
목소리의 현존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첫 장면에서 잠에서 일어난 주인공이 편지함을 뒤질 때 그를 지켜보는 '담지자의 시선'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후로는 거의 비중이 없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주인공이 읽는 글이나 딸의 일기 등등 여러 형식을 통해 주인공의 삶을 지배하고 더럽히는 허깨비같은 무엇입니다. 딸의 일기는 목소리로도 기능하지만 특히 이 영화의 파괴된 시간성에 관한 가장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헤어진 딸의 일기를 갖고 있지만, 그 일기에는 성인이 된 딸의 생활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만들기가 결국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라면 중반 이후는 찰리 카우프만이 얼마나 나쁜 선택만을 골라서 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나쁜 선택은 목소리의 정체를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찰리 카우프만은 자신이 만들고 있던 그 영화에서 목소리라는 것이 얼마나 외설스러운지 너무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영화가 너무도 큰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머리 아픈 장면만 계속되는 영화이다보니 차마 결말까지 열린 결말로 끝내 버릴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조정 당하는 인형과 같은 삶을 사는 주인공을 지켜보던 관객에게 복화술사의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복잡했던 이야기에 당위성을 주기로 결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린 선택에 의해 결국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처럼 평범한 길을 걷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환상, 꿈은 결국 인생의 허망함, 덧없음에 관한 은유라도 되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모호성은 논리와 당위, 일관성을 지닌 결론으로 향하더니 영화는 끝납니다.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맥베스의 대사가 생각날 정도로 보고 있는 저도 허망했습니다.
세익스피어를 한 번 더 인용하자면, 정확히 400년 전에 공연된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는 '우리는 꿈이 만들어낸 존재'라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삼백년 후 스트린드베리히는 '꿈연극'을 선보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시네도키 뉴욕도 꿈에 관한 재미있고 멋진 영화입니다. 위대한 영화가 되기 위한 큰 걸음을 걷기 위해 힘차게 발을 들기도 했고,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뻔 했다고 생각되지만, 결국 지금으로부터 사백년 전인 17세기 깔데론의 희곡 '인생은 꿈'에서 단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은 너무도 아쉽습니다.
시네도키 뉴욕은 찰리 카우프만의 첫 번째 연출입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그의 영리함에 용기가 더해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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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은 그게 뭔지도 잘 모르고, 왜 필요한지도 모르기 때문에.....그냥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가끔 애정 표현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직은 애정 표현이 서툴다 보니......^^ㅋ 안티플롯이던 어떤 플롯이던, 잘 된 시나리오는 플롯이 치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존 말코비치 되기랑 이터널 선샤인이 좋지만, 어뎁테이션이 좀 더 좋았고, 그 보다는 이 영화가 제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워낙에 취향이 갑작스레 휙~변하는 체질이라 언제 순위가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
이렇게 영화를 읽어주니 비로소 이 영화를 제대로 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보기만 해서는 부족한 영화였는데 님 덕분에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과 갈피갈피의 의도를 좀 알 듯하군요. 감사합니다.
누가 인류의 역사는 오역의 역사라던데...미-----루 님께서 이 영화를 보시며 얻으신 감성적 이미지 위에 제가 '맥락'으로 꾸민 '오역'이라는 우매한 돌을 던진것 같아 죄송합니다. ^^;;;
와우 대단하십니다~무슨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영화를 보면서 우쩌면 그냥 스쳐가는 것도 하나도 안 놓이고 치과에서 갯수까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