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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네트워크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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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게시판 스크랩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 최혁진, 조세훈
산수골 추천 0 조회 34 08.08.12 09:1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장일순 선생의 공동체정신이 원주 협동조합운동의 정신적 토양이라고 말하는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 최혁진(왼쪽) 정책기획위원장과 조세훈 사무국장.

 

 

 

 

원주. 1970년대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을 중심으로 한 '원주캠프'는 암울했던 시대를 비춘 촛불과 같은 존재였다. 원주는 반체제 지식인과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이 스며들던 피정의 집이자 피난처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심신을 추스르고 투쟁정신을 더욱 견고하게 벼리곤 했다. 이런 원주가 이 땅의 생명운동의 발원지로, 민중의 자력갱생을 꿈꾸던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아낌없이 나누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겸손하며 사양하는 삶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또한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기본이 되는 삶의 모습'. 장일순 선생이 설파한 공동체정신이 원주 협동조합운동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 122번지 '밝음의 집'. 원주지역 협동조합운동의 전초기지이다. 지하1층 원주한살림생협 매장에서 시작해 1층 밝음신협, 2층 밝음지역아동센터, 3층 밝음의원 밝음한의원, 4층 무위당기념관 소시모사무실, 5층 우리문화길라잡이 밝음요양사교육센터, 6층 교육문화워커즈'멋살림' 민예총 등 각종 단체와 사업장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602호에 둥지를 튼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의 문을 두드렸다. 최혁진 정책기획위원장과 조세훈 사무국장이 반갑게 악수를 청해 왔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사회의 공적기능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보듯이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예사로 위협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대안으로서 협동조합운동을 이야기한다면.

 

▶협동조합운동은 조합원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협동의 힘을 바탕으로 피지배의 속박을 넘어서 자유로운 삶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무차별 경쟁구조 속에서 파편화된 개인을 지역으로 묶어내 연대하게 하는 협동운동입니다. 또 정치적 자각을 통해 민주적 시민으로 삶의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자치운동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세계화의 광풍에 뿌리째 흔들리는 개인의 삶을 지켜내는 대안으로서 협동조합운동이 새롭게 주목받지 않나 생각합니다.

-원주는 우리나라 협동조합운동의 메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1960년대부터 신용협동조합운동이 펼쳐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주 협동조합운동은 1960년대 중반 신협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민중들의 생활상은 피폐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농민들과 중소상인들은 장리쌀과 고리채, 사채시장에 매달려 허덕였습니다. 장일순 선생은 신협운동 강좌를 개설해 협동조합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지요. 조합을 통해 열심히 땀 흘리고 협동하면 민중들도 대접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지역민들에게 희망을 제안한 것이지요.

-1970년대 초에 발생한 대홍수가 본격적인 협동조합운동의 계기가 되었다면서요.

▶1972년 여름 큰비로 남한강 일대가 엄청난 홍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학순 주교는 독일 등에 구호를 요청해 많은 원조를 받게 됩니다. 천주교 원주교구가 재해대책위원회를 설립하고 복구에 나섭니다. 이때 수재민에게 맹목적인 지원을 한 게 아니라 그들을 복구작업에 참여시켜 품삯을 주었습니다. 수재민들은 스스로 떳떳할 수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자립의지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지요. 나중엔 생산협동체인 작목반을 조직했고, 마을일도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협동적으로 처리했지요. 수재가 농민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당시 내무부가 이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 새마을운동과 새마을금고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원주 협동조합운동의 밑거름이 되었군요.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이하 협의회)의 설립 배경과 구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원주의 협동조합운동은 그 뿌리가 깊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늘 개별 협동조합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공동논의 구조, 협력 관계의 필요성을 절감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 밝음신협 원주한살림생협 원주생협이 협동해 원주의료생협을 설립했습니다. 그때 협동의 힘을 경험한 것이지요. 그게 계기가 되어 이듬해 원주지역 8개 단체가 협의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지금은 13개 협동조합이 회원으로 참여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협의회 소속 회원들로는 어떤 단체가 있는지요.

▶먼저 금융 분야로 밝음신협을 들 수 있습니다. 4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밝음신협은 원주 협동조합운동의 뿌리로 조합원이 1만5000여 명에 이릅니다. 친환경농업.소비 분야는 원주한살림생협(5000여 명) 원주생협(1200여 명) 원주가톨릭농민회(300여 명) 남한강삼도생협(생산자 150여 명) 상지대학생협(1000여 명) 등이 있습니다. 보건의료복지 분야에 원주의료생협(1400여 명) 노인생협(1000여 명) 원주자활지원센터 성공회원주나눔의집 등이 있고 교육 분야에 공동육아소꿉마당, 참꽃어린이학교, 참꽃작은학교 등이 활동합니다.

-회원단체와 상호 협력하는 여러 사업단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빈곤층의 금융문제를 지원하는 두 개의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있고 회원단체의 출판인쇄 및 문화이벤트를 지원하는 교육문화워커즈 '멋살림'이 있습니다. '멋살림'은 회원단체의 출판인쇄 및 문화이벤트를 지원합니다. 최근에는 친환경급식지원센터가 로컬푸드 운동을 위한 사업에 나섰습니다.

-협의회 소속 각급 조합의 조합원 수가 2만 명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원주시 너덧 가구 중 한 가구가 적어도 조합원인데….

▶맞습니다. 타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많은 숫자이지요. 조합원이 중첩되는 부분을 제외해도 2만여 명은 충분히 될 겁니다. 이들이 원주 주민운동의 에너지원입니다. 그러나 다 적극적인 조합원들은 아닙니다. 단순 소비자나 생산자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협의회가 그동안 많은 성과를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주민 조례제정 운동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2005년 주민조례제정 운동을 통해 학교급식지원조례, 친환경농업육성조례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은 그를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근 로컬푸드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친환경급식지원센터가 구체적인 활동에 나섰습니다. 원주시청과 읍면단위 초등학교, 일부 어린이집에 원주에서 생산된 친환경 쌀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사업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친환경급식지원센터는 지난 수년간 협의회의 모든 회원 단체가 함께 이룩한 공동의 결실입니다. 상호연대가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겁니다.

-최근 들어 사회적 경제가 화두가 되며 사회적 기업, 사회적 일자리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운동이 사회적 기업의 모범적인 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요.

▶관제화된 복지 시스템의 폐해가 재정이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안 되는 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속적이지 못하고 소모적입니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적극적 역할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주 협동조합운동의 역량을 가늠하는 실험이기도 합니다. 현재 활동가들이 관여하는 곳이 30% 정도 되는데, 대부분 사회적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운동이 지금까지 축적해온 물적?인적 토대와 경험을 쏟아부을 겁니다.

-원주의료생협이 사회적 서비스를 중심으로 여러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이해는 협동운동 과정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의료생협의 경우 지난해 노동부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되어 보건의료복지 분야에서 새로운 협동운동의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고령자지원팀 재가요양보험팀을 꾸려 일자리를 만듭니다. 다음달부터 실시되는 재가요양보험에 맞춰 재가케어도 준비하고요. 여기에 취약계층을 투입할 때 지역의 빈곤,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원주지역에서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지요.

▶몇해 전 원주자활센터 중심으로 누리협동조합이 만들어져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한 소액대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갈거리협동조합이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운동을 펼쳐 왔습니다. 그에 힘입어 노숙생활을 벗고 전세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삶을 도모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한 예로 노숙인 생활을 벗어난 뒤 대학 공부를 마치고 지역 사회단체의 실무자로 일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동안 대출사고가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신뢰가 쌓였다는 반증이겠죠.

-이제 조합원으로 이야기를 돌려보지요. 조합원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습니까. 단순한 소비자 생산자로서만 아니라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할도 견인해야 하지 않습니까.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조합원 교육을 합니다. 주로 강연회를 통해서 지역 현안,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여론을 환기시킵니다. 최근 쇠고기 국면에서는 그쪽에 정통한 전문가들을 불러 여러 차례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동물사료와 성장?항생제를 쓰는 공장형 축산과 광우병의 우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소비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생산자들도 유기축산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얼마 전에는 의료민영화와 GMO(유전자조작농산물) 문제에 대한 강연회가 열렸고 다음달에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초청강연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그리고 협의회 기관지 '원주에 사는 즐거움'을 월간으로 발행, 조합원과 일반 시민들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49호가 나왔습니다.

-최근 들어 시민운동의 국제연대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의료생협을 준비하면서 선진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의 생협을 찾은 게 첫 국제교류입니다. 그게 2001년이었는데 그 뒤로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해마다 봄 가을 단기연수도 하지만 유기농쌀로 빚는 술제조 등 생산연수를 1년간씩 다녀오기도 합니다. 생협운동의 역사가 깊은 일본과의 교류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일본 활동가들도 원주에 오면 역동성에 자극을 받는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유전자조작을 반대하는 아시아 시민적 운동(GMO FREE ZONE운동)' 등 국제연대운동을 함께 펼칩니다.

-조합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조합원 스스로 자신들의 뜻과 생각을 지역정치에 반영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질 겁니다.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의 정치 참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일본 동경도의회의 경우 200명의 의원 중 50명이 생협 출신 의원입니다. 정치 아마추어리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의정비를 받으면 네트워크에 내고 활동비를 받아씁니다. 공업지역인 한신의료생협은 시장까지 바꾸고 시의원 30%를 장악해 시민의 뜻과 생각을 의정으로 연결시킵니다.

-이제 우리도 그만한 역량을 갖추지 않았습니까. 정치꾼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만은 없잖아요. 2만 가구의 조합원을 가진 원주에서 시민운동의 정치 세력화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전히 정파 싸움과 명망가가 출마하는 풍토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풀뿌리 민주주의로 주민들 스스로 정치인을 키워 내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5개 지역 지자체가 정치권력을 시민 중심으로 교체해 내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원주도 10년 안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왜곡된 정치구조가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요.

▶학벌 인맥 돈이 없어도 시민의 대표가 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주민의 조직화도 매우 중요합니다. 원주 인구의 20%가 협동조합운동의 영향력 안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생활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대부분이 먹을거리 공동구입 정도에 그치는 것을 보면서 주민 조직화운동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같다는 반성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동네, 우리 지역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부터 지역정치가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촛불집회를 조합운동과 연계해 이야기해 주세요.

▶촛불집회는 이념이나 정치보다 생활에서 출발했다고 봅니다. 생활의 문제가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시민들 스스로 거리로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역시 협동조합운동도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릴 때 지역 주민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요. 주민 생활과 밀착한 협동조합운동이 펼쳐질 때 비로소 주민자치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조합 운영도 활동가 중심에서 조합원 중심으로 바뀔 것입니다. 조합원, 바로 주민들이 협동조합 운동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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