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관한 얘기좀 찾아 보려 인터넷 여행중에 문득 알게된 얘기라 살짝 발췌 해봅니다~!^^
로마인의 종교 생활
고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는 다신교였다. 양자는 유사성이 많지만, 전체적으로 그리스의
다신교가 나무가지들처럼 위로 번성하여 꽃처럼 나타났다면, 로마의 다신교는 뿌리처럼 번져가 열매를
맺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고대 로마 종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지역적이며 가정적이라는 것인데, 각
신들은 특정 지역, 활동과 연결되어 있었다. 신들의 숫자는 무한하였으며. 각 신의 역할은 분담되어
있었는데, 예컨대 Aius Locutius(일어나 말하라) 신은 갈리아인의 접근을 알리는 경고를 발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활동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신들은 일종의 '활동'이었다. 모든 행동은 특정신의 권위하에 있었고,
의식은 그 신에 합당한 장소에서 행해져야 하였는데, 그것을 어기는 것은 불경이었다. 예컨대 은밀한
침실이 사랑의 여신 베누스의 영역이었으므로, 야외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불경한 행위에 속하였고,
마찬가지로 군신인 마르스는 싸움터가 아닌 도시 내에서는 별 볼일이 없었다.
특히 이러한 영역의 개념과 관계한 재미있는 신으로서는 테르미누스신과 야누스 신이 있었다. 경계의
신이라고 볼 수 있는 테르미누스신을 섬기는 매년 2월 25일 테르미날리아 축제일에는 각 경계에서
경계석에 화관을 걸고 과자를 바치는 등의 행사를 가졌는데, 이는 자신의 영토를 지키고 이웃간의 영토
분쟁을 막는 의미도 지녔다. 문의 신 야누스는 다른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신이라고 믿어졌는데, 시골에서
도시로, 자기 집에서 거리로, 혹은 전쟁에서 평화로의 전환에서도 로마인들은 야누스의 문을 지닌다고
생각하였다. 12월을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1월달 (Ianuarius, 영어로 January)이 이 신의 이름으로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야누스는 오랜 옛날에 야만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질서를 가져다준 신 혹은 왕이라고 한다. 야누스신의 얼굴이 둘인 이유는 사람들의 생활을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옮게 주었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로마에 있는 야누스의 신전은 문이 둘이며, 이 신전을
전쟁의 문이라 불렀다. 전쟁을 새로운 문을 여는 것이라고 생각한 로마인들은, 이 야누스 신전의 문을
전쟁시에는 열어놓고, 평화시에는 닫았는데, 전쟁을 계속한 로마인들에게 이 문은 거의 항상 열려 있었다.
또한 경계나 문을 넘는 것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첫 행동, 첫 말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데, 만약 문간에서 비틀거리든가 문지방에 왼발을 먼저 들여놓는 것은 재수없음을
의미하였다.
로마인들의 종교 행위는 그것을 관장하는 신들에 대한 숭배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더들리에 의하면,
로마인들의 종교는 로마인들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는 것으로, 초기 단계의 로마의 종교는 관념의
원시성과 의식의 법적 제도화라는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인들에게 종교 행위의 목적은 신을
불러내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동을 하게하는 것으로, "do ut des", 즉 '...하니까 ... 해달라' 혹은 '
... 해주면 ..(보답)하겠다' 는 일종의 거래와도 같았다. 로마의 '종교'는 오늘 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개념과는 달랐다고 볼 수 있는데, 일종의 복잡한 희생 의식이고, 도덕률을 내포하지는 않았다. 즉 신을
달래고 신에게 희생의식을 바칠 필요는 있었으나, 믿음이 로마인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
다. 예컨대 키케로는 "쥬피터는 가장 위대한 최고의 신인데, 그 이유는 그가 우리를 정의롭거나 진실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건강과 부와 번영을 주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당시 신의 뜻을 묻는 방법은 대체로 세가지였는데, 첫째, 새의 움직임, 천둥, 번개 등을 보고 징조를
구하는 "augures"로서, 복점관들(augurs)에 의해 행해졌다. 특히 그들은 새들을 보고 점을 쳤다. 이 때문에
로마 병사들은 행군시에도 반드시 이들 '신성한 닭'같은 새들을 새장에 넣어 가지고 다녀야 하는 둥
번거로웠으므로, 후일 이런 관습은 서서히 쇠퇴하게 되었다. 두 번째, "haruspices"라고 하여 희생 의식에
쓰인 동물 내장을 보고 신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런 관행은 계속 번성하여 로마제국 멸망시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세 번째는 "quindecimviri"라는 시빌린 신탁의 보유자들이 국가적 예언서인 시빌린에
따라 충고와 조언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탁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예컨대
카에사르파들은 당시 파르티아 원정을 앞두고 있던 카에사르를 부각시키면서, 왕이 아니면
파르티아원정에 성공할 수 없다는 시빌린 신탁의 예언을 유포시키면서 카에사르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부심했다는 것이다.
로마인들에게 "경건"하다는 것은 국가의 신들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따라서 엄격한 절차에 따라
준수되는 종교 의식이 믿음보다 더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많은 로마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무신론자"로
매도한 이유도, 그들의 열열한 신앙심에 상관없이,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국가신들을 거부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신관들은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 공무원과도 같았는데, 사제단 (Pontifices)이
있었으며, 그 수장은 "Pontifex Maximus"였다. 카에사르와 옥타비아누스 이래 그들의 선례에 따라,
로마의 황제들이 "Pontifex Maximus"를 겸임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에서 흥미있는 종교 현상 중
하나는 바로 "황제 숭배"이다. 그 기원은 옥타비아누스 때부터이다. 당시 이집트까지 손에 넣은 로마
제국은 아주 다양한 언어, 민족, 문화, 습관의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는데,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제국민을
하나로 묶어주는 결합점을 종교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리하여, 정치적 통합과 종교의 개념이 융합되어
"황제 숭배 사상"으로 나타나고, 황제와 제국은 하나로 인식되게 되었다. 이런 발상은 아시아의 전통적인
통치자 숭배 의식에다 로마 전통의 조상 숭배 관습이 합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죽은 옥타비아누스의
양부인 카에사르는 신격화되었으며. 옥타비아누스는 신의 아들(Divus Filius)로 인식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밝혀둘 것은 로마의 다신교에서 보이는 신의 개념은 기독교의 엄격한 하나님의
개념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신'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데, 일종의 위대한
인간이라는 개념도 함축하였다. 신의 기원도 인간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였는데, 위대한 인간이 죽은 후
그의 공적에 의해 신이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황제도, 그가 몹쓸 황제만 아니었다면, 죽은 후 신이 된다.
이러한 황제 숭배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 현상으로, 도시 로마를 의인화한 '로마' 여신의 숭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신들은 황제의 보호자(conservator) 혹은 동료(comes)가 된다. 특히
디오클레티아누스의 4두정(Tetrarchy)하에서 황제는 제우스, 부제(副祭)는 헤라클레스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로마의 신들은 로마 고유의 신들과, 외래신으로 이루어진다. 외래신들은 영토 확장으로 인한
외부와의 접촉으로 들어온 신들을 말한다. 우선 라틴 고유의 신들로서 재미있는 것을 들면 세이아(땅
속에서 옥수수를 지키는 신), 세게티아(곡식의 성장을 관장), 플로라(꽃의 신, 특히 옥수수 꽃의),
포모나(과수 재배의 신), 룬키나(땅 위에서 옥수수 수확을 관장하는 신), 투틸리나(창고에서 옥수수를
돌보는 신) 등이 있었다. 이들 신들이 실생활 특히 농작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외
앞에서도 살펴본 야누스신(문의 신으로 두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신)과 테르미누스 신(농장의 경계
관장), 페나테스(찬장의 신), 라레스(페나테스와 더불어 가정의 신), 팔레스(가축과 목장의 신),
제니우스(집안 정령), 벨로나(전쟁의 여신) 등의 신들이 로마인들의 가정과 일상생활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후 에트루리아인들의 종교가 유입되기 시작하였는데,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 마르스,
사투르누스, 특히 베스타의 불 숭배가 그러하다. 그 후 제2차 포에니 전쟁을 기점으로 아폴론신 등
그리스의 제신들이 공식적으로 로마에 영입되기에 이른다. 이는 한니발의 침공에 의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조처로 이루어졌는데, 시빌린 신탁집의 예언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로마의 12신이 공식적으로 성립되었다. 쥬피터(제우스), 쥬노(헤라),
넵튠(포세이돈), 플루토(하데스), 베스타(헤스티아), 세레스(데메테르), 아폴론, 베누스(아프로디테),
불카누스(헤파이스토스), 디아나(아르테미스), 미네르바(아테네), 마르스(아레스), 메르쿠리(헤르메스)
등이 그것이다. 특히 쥬피터, 쥬노, 미네르바의 세 신이 가장 존경을 받아, 카피톨리노 언덕에는 세 신의
조상이 세워져 로마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외 박쿠스(디오니소스 혹은 리베르), 헤라클레스, 큐피드 등의
신들도 인기가 있었다. 또한 로마에는 오리엔트 지역의 여러 종교들도 전래되어 종교의 박람회장이
되기도 하였는데, 오리엔트에서 들어온 종교로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먼저 소아시아 출신의 키벨레 여신
숭배를 들 수 있다. 이 역시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인들이 한니발을 물리치고자 영입한 것이며, 로마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최초의 오리엔트 종교가 되었다. 이후 이시스, 오시리스, 호루스, 세라피스 등의
이집트 신들, 페르시아와 시리아의 태양신(미쓰라 및 헬리오가발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크리스트교가
전래되고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참고 문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누마.
도널드 R.더들리, {로마문명사}, 김덕수역, 1997.
F.A. Altheim, A History of Roman Religion, London, 1938.
J.H.V.G. Liebeschuetz, Continuity and Change in Roman Religion, Oxford, 1976.
G. Dum zil, Archaic Roman Religion, Chicago, 1966.
A. Grenier, The Roman Spirit in Religion, Thought, and Art, London, 1926.
E.T. Salmon, A History of the Roman World, 30 B.C. to A.D. 138, London, 1968.
첫댓글 아.. HTML을 쓸줄을 몰라서,..여러번 수정끝에 결국 이런모습을 올립니다..다소 눈이 아프시더라두.. 양해좀 부탁드립니다..아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