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우리의 일정은 매우 단출했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즈와 히포드롬-블루 모스크-고고학 박물관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래서 이스탄불을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가 보는
아야소피아 박물관 견학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가 속했던 2진은 터키-그리스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아야소피아와 갈라타 타워를 추가로 관람해서
어느 정도 아쉬움을 덜 수 있었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오전 한 나절만 머물게 된 것은
우리 여행의 목적이 성서 배경지 답사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하타이(안티오키아)로 직행하는 노선이 있었다면
이스탄불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새벽에 이스탄불에 도착한 우리는
그날 오후 하타이로 가는 비행기 시간 전까지
최소한의 일정으로 이스탄불 답사를 했는데
그 첫번째 일정이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즈였습니다.
크루즈...멋진 말이죠?
세상에 수많은 해협이 있겠지만
보스포루스 해협 만큼 대단한 해협이 또 있을까요?
아시아와 유럽을 나눌 뿐 아니라
동서양을 나누는 해협이기 때문입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위쪽은 흑해(Black sea)
아랫쪽은 마르마라해(Marmara sea) 인데
에게해(Agean sea)와 지중해(Mediterranean sea)로 이어집니다.
길이 30km, 너비 550∼3,000m, 수심 60∼125m인 보스포르수해협은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군사적, 경제적 가치 때문에 오랫 동안 분쟁의 불씨가 되었으나
현재는 국제해협으로 분류되어
각국의 선박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터키의 12해리 영해 안에 있으나 마음대로 봉쇄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자, 가보실까요?
보스포루스 크루즈는 금각만(金角灣)에 있는 선착장에서 시작합니다.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금각만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 드리기로 하죠.
선착장 입구에서 찍은 사진인데 건너편이 이스탄불 신시가지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탑이 이스탄불의 랜드마크 중의 하나인 갈라타 타워입니다.
이스탄불을 360도 조망할 수 있는 명물이죠.
갈라타 타워에 대해서도 나중에...아주 나중에 설명드릴 기회가 있을겁니다.
오른쪽 건물을 덮고 있는 담쟁이가 예뻐서 찍었는데 무슨 건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침 햇살에 매우 싱그럽게 보이더군요.
눈을 돌리면 어디에서든지 모스크 미나레(Minaret:첨탑)가 보이는 도시가 이스탄불입니다.
세계에서 유명한 모스크도 많고요.
하지만 터키는 국민의 98%가 이슬람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국가가 아닙니다.
무슨 말이가 하면...이슬람이 국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터키는 국교가 없고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이 서구 국가 이상으로 활발하고
히잡을 쓴 여인들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가 터키라는 국가를 디자인하면서
종교의 힘을 최소화 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술탄 제도를 폐지했을 뿐 아니라
수도를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옮긴 것도
종교의 영향력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사진의 위쪽에 보이는 모스크(터키어로 자미)는
쉘레이마니예 자미입니다.
오스만 제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대의 군주 쉴레이만 대제가
금각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운 사원으로
155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기술을 구사해서 59mX58m의 바닥에
지름 26.5m의 원형 지붕을 얹고
높이 53m의 대형 돔을 세웠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어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멀리서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금각만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어서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를 연결해 줍니다.
하나는 갈라타 타워 가까이에 있는 갈라타 다리이고,
다른 하나가 저기 보이는 다리인데 아타튀르크 다리입니다.
아타튀르크...누군지 기억하시죠? 터키 공화국의 아버지, 초대 대통령.
저같은 촌놈이 이스탄불을 구경하고 있다니 출세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금각만을 떠나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갈라타 다리 밑을 지나고 있습니다. 낙서는 세계 어디에서나 국민들의 취미생활입니다.
멀리 보이는 갈라타 타워와 함께 이스탄불의 상징 중의 하나인 갈라타 다리입니다.
1845년에 목재 다리가 처음 세워졌고, 1912년에 두 번째 다리를 2층 적교로 만들었는데
그 아름다움이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다리가 1992년에 화재로 수명을 다해 현재의 다리가 건설되었는데
다리 아래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고
언제든지 다리 난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리 근처에 이집션 마켓이 있다고 하는데...가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저의 관심은 갈라타 타워였습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이스탄불 편의 시작이 갈라타 타워라 인상에 깊이 박혔거든요.
하지만 그날은 빠듯한 일정상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올라 갔다 왔습니다만...^^
배가 금각만(金角灣)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금각은 Golden horn의 한자 표현입니다.
Golden horn이 금으로 된 뿔이니까요...
이스탄불의 구 시가지, 그러니까 토프카프 궁전과 아야소피아가 있는 일대를 멀리서 보면
마르마라 해를 향해 솟아 있는 불처럼 보입니다.
그곳에 황제의 궁전이 있었고, 난공불락의 요새였으니
금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듯 합니다.
그러니까 금각만은 금각 안쪽에 있는 만(灣)입니다.
이 사진이 터키-그리스 일정을 마치고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 찍은
금각(Golden horn)과 금각만입니다. 이름 한 번 잘 붙였습니다.
정말 아름답더군요. 파도가 많이 치는 우리나라 바닷가에서는 볼 수 없는 평온함이 있었습니다.
보스포루스 대교를 향해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매우 아름다운 건물이 있는데
도르마바흐체 궁전입니다.
31대 술탄인 압뒬메지드가 그 때까지 목조 궁전이었던 것을 1843년부터 10년 넘는 세월 동안
현재의 대리석 건물로 바꾸어 놓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전입니다.
궁전의 총 면적이 15,000평방미터이고, 285개의 방에 43개의 거실이 있다고 합니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도 이 궁전을 관저로 사용했는데
그가 1938년 11월 10일에 사망한 곳도 이곳입니다.
현재 이 궁전 안에 있는 모든 시계는 아홉시 오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 시각에 아타튀르크가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눈요기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흑해를 향해 올라가는, 그 날 본 가장 큰 배입니다.
무엇을 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보스포루스 대교 아래를 지나고 있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는 두 개의 현수교가 있어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해 줍니다.
사진에 보이는 포스포루스 대교와 그 위쪽에 있는 술탄 메흐메트 대교가 그것입니다.
보스포루스대교는 1973년에 완공되었는데 총 길이가 1,510m, 다리 폭은 39m입니다.
현수교를 지탱하는 두 개의 탑 사이의 거리는 1,074m이고, 탑의 높이는 105m라고 하는군요.
다리 건설 계획은 1957년 당시 터키 내무장관이 제안했고,
1968년에 영국의 프리드만 폭스&파드너스 사의 설계를 선정한 후
1970년 2월에 터키, 영국, 독일의 3개 건설회사가 협력하여 공사를 시작해서
터키 공화국 수립 50주년 기념일인 1973년 10월 30일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8개의 차선과 1개의 보도가 있으며, 하루 약 18만대의 차량이 통과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 중의 하나입니다.
건너 보이는 곳이 아시아 지역입니다.
뒤에 보이는 두 개탑이 그 엄청난 무게의 현수교를 지탱한다고 하니
기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것 같습니다.
저런 호화 요트도 간간이 보이더군요.
보스포루스 대교 위로 차량이 통행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대륙을 이어 주고, 문명을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망원 줌으로 당겨본 두 번째 다리인 술탄 메흐메트 대교입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21세의 나이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서 이스탄불이라고 명명한
그 메흐메트를 말하는 것인것 같습니다.
크루즈 선은 유럽쪽 해안을 끼고 올라갔다가 아시아쪽 해안에 접근해서 내려옵니다.
아시아쪽 해안에 있는 건물인데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시아쪽은 유럽쪽에 비해 개발이 덜 되었습니다. 그만큼 한적하고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마르마라 해 가까이에 있는 크즈(Kiz) 탑입니다.
조그마한 돌섬 위에 만들어진 성채인데
비잔틴 황제가 한 점술사의 뱀에 물려 죽는다는 저주로부터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공주가 성년이 되는 날 황제가 보낸 음식 바구니에서 뱀이 나와
결국 공주가 죽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