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hidhamma in daily life> 제3장 마음의 다양성 중에서
서로 다른 업의 축적은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 조건이 된다. 이것이 과보의 법칙 또는 인과의 법칙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인생에서 좋은 경험을 하는가 하면 나쁜 환경에서 태어나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다른 아이들은 필요한 것을 모두 충족시키면서 사는데 왜 어떤 아이들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붓다는 누구나 자기 행위의 결과를 받는다고 가르치셨다. 악업과 선업은 축적되기 때문에 과거의 행위나 업은 나중에 그에 대한 결과를 낳는다.
조건이 맞으면 과보의 형태로 그 결과가 나타난다. 결과라고 하면 대개 다른 사람에 대한 행위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보’라는 말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보심은 불쾌한 대상이나 즐거운 대상을 경험하는 마음이며, 이 마음은 자신이 한 행위가 만들어 낸 결과다. 불쾌하거나 즐거운 일을 경험하는 것은 보통 자아라고 생각하나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여러 대상을 경험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어떤 마음은 원인이 된다. 이 원인이 되는 마음은 선행과 악행의 동기가 되어 그에 상응한 결과를 가져온다. 어떤 마음은 결과 또는 과보다. 무언가 불쾌한 것을 볼 때, 보는 주체는 자아가 아니고 마음, 즉 안식(眼識)이다. 이 마음은 현생이나 전생의 불선업으로 인한 결과인 과보다. 이 마음이 과보심, 즉 불선 과보심이다. 즐거운 것을 볼 때 이것은 선업의 결과인 선과보심이다. 오관의 하나를 통해 불쾌한 대상을 경험할 때마다 불선과보가 있고 즐거운 대상을 경험할 때마다 선과보가 있다.
만약 남에게 폭행을 당한다고 해도 이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폭행을 한 사람의 행위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폭행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한 악행의 결과를 받고 있다. 그 사람에게는 육체감각을 통한 불선과보가 있기 때문이다. 폭행을 한 사람의 행위는 폭행으로 인한 고통의 직접 원인일 뿐이다. 폭행이라는 악업을 한 사람의 쪽에서 보면 그러한 행위를 유발한 것은 그 사람의 불선심이다. 언젠가 행위로 인한 결과를 받을 것이다. 업과 과보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면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