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우린 항상 서양의 기사, 전설, 마법의 세계로 대비되는 환상의 세계만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판타지의 대상은 이런 서양적인 것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동양에도 서양의 판타지와 조금도 뒤지지 않는 동양적 판타지가 존재한다.
바로 무협영화이다. 서양에서는 자신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과 지식들, 그리고 사상들을 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영화역사 동안 꾸준히 무협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물론 초기의 무협영화는 주연배우들의 무술실력을 기반으로 하는 호기심 충족을 위한 관람으로 생각했으나, 와이어 액션과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으로 이젠 훨씬 사실적이고 완성도 높은 판타지영화로서의 면모를 발휘하면서 최고의 흥행카드로 손색없는 소재이자 새로운 장르로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판타지 영화가 득세하는 현대의 영화시류 속에서 무협영화를 통한 판타지 영화의 재발견은 동,서양으로 구분되는 큰 사상적, 문화적 갈래 속에서 우리에게 속하고 익숙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경쟁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동양의 판타지인 무협영화 한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연걸의 영화 ‘무인 곽원갑’이다. 중국적인 무협영화가 우리 한국사람과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다. 한국적인 것을 말하려는 것보다는 동양적인 것을 이야기하려는 의도에서 무협영화를 언급했고 아무래도 유교나 학문적 전통에서 중국적 사고나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은 우리에게 무협영화는 이질적인 것이기 보다는 친숙하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 자체의 것도 소유하고 있기에 서양에 비해 동질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무협영화 속에는 중국인들의 중화사상과 자존심이 번득인다. 서양 세력에 억눌리고 핍박받았던 그들의 정서가 무협이라는 장르를 통해 울분을 토해 놓는다. 하늘을 나는 와이어 액션과 현란한 내공의 대결은 그들 사상과 문화의 자존심을 대변한다.
개인적으로 무인이자 영화인 이연걸의 열렬한 팬이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이연걸은 어떤 사람인가? 변발을 하고 하늘을 나는 중국 무협물의 배우? 11세였던 1974년부터 5년 연속 중국 전국무술대회 성인부 종합우승을 한 무술 천재이자 절대 고수? 그도 아니면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불교 신자? 미안하지만 이건 모두 옳은 답이 아니다. 이연걸의 영화와 현실은 이 모든 것을 합친 어떤 것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이연걸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를 사랑하는 팬들에겐 아쉬움이 남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연걸은 그의 출연 작품들을 통해 영웅 상을 그려왔다. 황비홍, 방세옥, 그리고 곽원갑까지… 그리고 그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영웅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곽원갑을 통해서는 불평등과 사회적 모순에 대한 자각과 분노, 복수보다는 포용하고 그럼으로 승리자가 되는 한층 더 성숙한 영웅의 모습을 선보인다.
영화 스토리상의 큰 매력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지만 이연걸의 마지막 영화로서 그의 완숙된 무예와 무도인으로서의 카리스마와 어우러진 와이어 액션과 특수효과를 통해 동양적 판타지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그의 팬들은 무술에 대한 열정과 욕심 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자연인이자 한없이 해맑은 미소 속에 빛나는 고수로서 이연결의 카리스마를 그리워 할 것이다. 아마도 와이어와 특수효과로 누구나 액션 스타가 될 수 있는 컴퓨터 시대에 끊임없이 수련하는 절대 고수 무술인 이연걸의 존재는 컴퓨터와 마우스만으로 대체될 수 없는 어떤 경지와 완성도에 대한 끊임없는 향수를 느끼게 할 것이다. 이연걸의 영화에 대한 마음이 바뀌길 바라며 아직까지는 최후의 이연걸 영화이자 동양의 판타지물로서 이 영화를 감상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