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과 나
난 어려서부터 특별한 취미가 없이 살아왔다. 무취미가 취미인 것처럼 살아온 게
사실이다.
학생일때 생활기록부 같은데에 '취미' 난이 있어서 뭐라 할까? 늘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난을 메우긴 해야겠는데,.... 그래서 걸핏하면 독서라는 둥, 음악감상이라는 둥,
영화감상이라는 둥 둘러대고는 양심의 허락을 얻지 못해 쓸데없이 고민하던 추억이
있다. 그토록 삶이 무덤덤 하고 내세울만한 삶의 목표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한때는 바둑을 배워보리라 노력도 했었다. 젊어 팔팔할 때,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서 바둑알 굴리는 게 도대체 내겐 맞지 않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당구라는 걸 배워
보겠다고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던 일도 있었으나 학생신분으로서 게임비가 아까
웠음이 솔직한 고백이리라. 또 한때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낚시를 다닌 적이 있었는
데 세상에 못할 일이 그짓 이리라. 찌를 담궈놓구 그놈만 쳐다보고 밤새도록 쪼그
리고 앉아 지켜봐야 한다니 세상에 그렇게도 할 일이 없더란 말인가? 그것도 가끔
은 물어줘야지 밤을 지새워 붕어새끼 몇 마리 낚자고 그렇게도 바쁜 세월을 허송할
수 있단 말이던가? 싶어 친구 동료들의 강권에 못이겨 몇번 다녀본 후론 '내 다시
는 이짓을 하면 성을 갈리라' 했던 기억이 있다. 하긴 성격이 불같이 급한 내가 낚
싯대를 드리우느니 차라리 투망으로 고기를 훑어버리는게 어울릴 거고 아니면 어항
이나 통발로 후다닥 해치우는게 격에 맞을 법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화투나 윷놀이도 해보지만 어느 하나 내가 쏘옥 빠지도록 흥미를
느끼게 해준 것이 없었다. 최근에는 나이도 나이인지라, 골프를 해보자고 권유가 들
어와 십여년전부터 연습장에 다녀보았지만 도대체 취미가 붙질 않는다. 운동신경이
무딘 것도 아니어서 무슨 운동이든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는 뛰고 달리는데도 유
달리 썩, 끌리질 않는다. 그렇다고 학생 때 돈이 아까워 당구를 멀리 한 것처럼 지
금의 내 처지가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어 골프를 멀리할 정도는 아닌데도 말이다.
하긴 취미랄 건 없지만 한때는 조깅을 꾸준히 십여년 한 적은 있으나 어느땐가 부
터 힘에 부친다 싶어 그것도 잊은 지 오래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턴가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軍에서 지긋지긋하게 산악훈련으로
고생을 했었기에 젊어 한때는 산이 그토록 싫은 적도 있었는데 십수년전부터 시간
날 때마다 혼자 산행을 하던 것이 이제는 부부동반으로 시간만 허락하면 산으로 기
어든다. 뭐, 산이라 해봐야 서울근교 또는 대한민국 안에 있는 산이 고작이지만 주
말마다 一週一山이다. 교회 땜에 주일에는 엄두도 못 내고 토요일 오후에 맘에 맞
는 교우 몇이서 가까운 산에 오르는 게 고작이요, 어쩌다 공휴일이면 누구도 날 건
드리지 못하게 주변을 잘 정리(?)해 놓고 산다. 우리집사람, 몇 년을 데리고 다니며
억지로 훈련을 시켰더니 이젠 산을 나보다도 더 좋아해서 인간다람쥐(?)가 다됐다.
군에서 안마당처럼 이를 갈며 훈련하던 지리산 여러 봉우리들 -천왕봉, 반야봉, 만
복대, 노고단, 토끼봉, 고리봉,..........- 하며, 이른봄 새싹 움트고 들꽃 산꽃 피어오르
는 등선폭포 품어 안고있는 춘천의 삼막산은 높지 않으면서 아기자기한 맛이 중부
지방에서 제일이라,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강촌의 북한강과 경춘선 철길 따라 지나
가는 열차의 모습은 우리 삶의 표상이요, 반대쪽 춘천시내와 의암댐 의암호 그리고
호반 속의 중도와 상중도 섬은 평화롭고 한가롭기가 서양화의 한 폭이라. 녹음 왕
성한 여름 오대산 맑은 계곡물은 더위가 무엇이런가? 의심을 안겨주며, 기암괴석
울긋불긋 가을 설악은 무슨 설명이 필요하고, 눈 덮인 치악산은 스릴 넘치는 삶을
경험케 하는데, 무릅까지 빠져가며 오르는 산길도 좋지만, 온 천지가 눈꽃으로 피어
오른 한라산의 설경은 어찌하라고.........?. 민밑하게 험하지 않으면서 산행하기 편한
소백산의 철쭉이며, 갈 때마다 안개비오던 속리산은 언제쯤이나 조망할꼬? 가도가
도 끝이 없던 월악산도 좋았고, 구름다리 무서웠던 월출산은 어땠는고? 무주구천동
덕유산에, 동학의 얼이 서린 대둔산하며, 무학대사 계룡산에 주왕의 얼이 서렸다는
엉덩이바위같다던 주왕산, 백담계곡의 거울같던 맑은 물과 대청봉에서 내려다보는
운해와 운무, 동해바다 내려다보며 다람쥐와 벗하던 노인봉의 전망하며, 처가동네
수덕사엔 감춰진 추억 속의 덕숭산이 있어좋을씨고.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제일은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등 서울을 에워싸고 있
는 산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제고 우리가 필요할 때 손에 닿을만한 지근거리에,
이만큼 예쁘고 아기자기하며, 오르기 적당한 높이의 산이 있는가 한번 살펴봅시다.
비교적 오르기 쉬운 코-스도 또, 조금은 험난한 코-스도 있으며, 고난도의 산악훈련
코-스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택할 수 있어 좋고, 맘만 먹
으면 한시간 안에 찾을 수 있어 좋으며, 물 좋고 공기 맑아 도시민들이 수시로 찾
아갈 수 있는 이런 산이 세계 어느 나라에 있더란 말입니까? 우리가 살면서 공기
나 물의 중요함을 잊고 살듯이 우리 서울시민들은 이런 좋은 환경의 고마움을 잊고
살고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얼마나 행복한 환경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아니 알고 깨닫기만 하면 무엇합니까? 그 福을 간수하고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 복을 빼앗아 간다는 것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환경을 지키고 자연을 사랑하며 훼손하지 않도록 우리모두 파수꾼이 됩시
다. 그리해서 좋은 환경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고 후손에게 우리가 받은 그대로
물려주도록 노력하며 사십시다.
나의 취미생활, 아마도 내 목숨 다하는 날까지 나는 산을 사랑하며 산과 벗하며 호
흡하고 살아갈 겁니다.
2000.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