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5.주일. 창7:1-5. 한 사람의 위대한 믿음. 533. 500
하나님이 행하신 수많은 일들 가운데 기적 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성경에는 많이 나옵니다.
不可思議 란 말이 좋은데 어원이 불교나 도교사상에서 나왔다고 하여 이 말은 피하고 기적(miracle. 펠레)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불신세계에서도 흔히 통용되는 많은 성경용어 중 ‘노아 홍수사건’은 단연 톱클래스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이어 제2의 천지창조 라 할 수 있는 노아홍수는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신비함을 느끼게 됩니다.
당시 죄악이 난무한 시대에 노의 의로움과 절대순종을 보시고 홍수이전에 해야 될 모든 준비를 마치신 하나님은 드디어 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말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으며 의미 없이 쓰여진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깨달으면 그 깊이가 큼을 알게 됩니다.
단어가 쓰인 것도 저자의 편집이나 우연히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더 정확이 전달하고자 하시는 그 분의 섬세한 개입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의인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파급되는 영향이 얼마나 무궁한지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연구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아우르시고 돌보시지만 하나하나에 세심한 관찰과 돌보심에 매우 많은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개인의 위대한 신앙에 대해서
강조하고자 합니다.
본장 7장에서는 하나님과 노아가 동등하게 주 인물로 나옵니다.
그 만큼 노아의 비중과 영향이 엄청나다는 증거이겠죠.
1절 -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온 세상을 멸절 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액션은 대홍수심판에서도 구원의 역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나님은 세상에 대한 당신의 심판의 때가 임박해지자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이러한 하나님의 초청에 겸손하게 순종함으로써 결국 온 인류가 멸망하는 홍수심판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초청에 겸손히 응하는 자만이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최후 심판을 앞에 두고 죄인들을 끊임없이 구원의 길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사55:3 -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사55:7 -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으로의 초대에 겸손히 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으로부터 안전하게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서 혹은 세상 바쁜 일 때문에 혹은 하나님을 멸시함으로 이 구원의 초대를 거절함으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22:2-8)
실로 인류가 심판을 받아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나 자비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완악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멸시함으로 그의 구원의 초청에 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아당시 사람들이 왜 멸망당했습니까?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으로서의 초대가 없었기 때문입니까?
벧후2:5 에서는 노아와 가족들이 ‘의’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구원의 메시지 인거죠.
그러나 노아당시의 사람들은 완고한 마음으로 이 구원의 메시지를 거부하고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멸망에 이른 것입니다.
현재는 어떨까요?
노아당시보다 더 죄악이 관영된 시대입니다.
교회강단까지 죄의 물결로 뒤덮어져 가고 있잖아요?
마찬가지죠. 노아시대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곧 다가올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열어놓고 계십니다.
구원의 초청장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시고 있습니다.
이에 겸손이 응한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통로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반드시 나아가 구원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문명이 발전하고 먹고살기 좋은 세상인데 무슨 심판 같은 정신나간 소리냐고? 비아냥 거리겠죠?
노아 당시와 흡사합니다. 어떻든 간에 구원의 방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축복만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심판도 약속하신 것이죠.
우리는 노아당시 사람들이 장가, 시집가고 하다가 홀연히 홍수가 임하여 멸망한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45:22
땅 끝의 모든 백성들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요3:17.18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절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보십시오.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206회 등장하는 이 단어는 ‘공의롭다. 의롭다’를 뜻하는 ‘차데크’에서 파생된 것으로 기본 뜻은 ‘곧다’입니다.
여기서 의미가 발전하여 기준에 조금의 어긋남도 없다는 뜻으로 ‘합법적인’ 또는 윤리적 도덕적 표준에 부합한‘ ’공의로운‘ 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노아가 의롭다는 것은 단지 인간이 보기에 윤리적으로 선한 삶을 살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기준에 부합된 삶을 살았다는 말이죠.
사람이 생각하는 ‘의’와 하나님이 정하신 ‘의’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의의 절대기준은 절대공의를 그 속성으로 지니신 하나님께 있으므로 하나님이 정하신 죄(핫타트)에서 떠난 삶을 살 때 비로소 의로운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바로 이런 삶을 산 것입니다.
‘ 내가 보았음이니라 ’
구원의 모든 기준은 바로 하나님이 되십니다.
대충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죠.
보다(라이티) - 주목하다, 조사하단 뜻으로 세밀히 살펴 보는 것을 가리키는 ‘라아’의 완료형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세히 조사하신 결과 노아가 의롭다는 것이 이미 인정 되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조건이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순간 하나님으로 의롭다고 인정 받았기 때문에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짧은 성경구절만 똑바로 알아도 예수그리스도외에 그 어떤 누구의 말도 들을 필요가 없는데 어떻게 말씀을 알았기에 신천지이만희, 안상홍(장길자), 정명석, 이재록, 박옥수 같은 이단괴수 들에게 넘어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한 사람의 의가 많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합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의는 많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한 집안의 가장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온 가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들도 구원받게 되는 사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의롭게 살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끼쳐야 하겠습니다.
특히 한 집안의 가장된 자는 항상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통해 모든 가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 한 한 사람의 의가 많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한 사실 가운데 최대의 사건은 예표 되는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됩니다.
1절 -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또 이전에 6:18절을 보면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에서 보듯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도록 지시를 받은 사람은 의인 노아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방주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노아 자신을 비롯하여 모두8명이었습니다.
하지만 방주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모두 의로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본절 말씀과 6:8절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은 오직 노아 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경건하고 의로웠던 노아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노아가 당시의 타락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로 인정받았듯이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에서 유일하게 죄가 없이 의로우신 자였습니다.
현대의 큰 배(선) 한자 표기유래
船(큰배 선) = 舟(배- 주) + 八(팔) + 口(구)
배 에 여덟 명의 식구가 탔다 -
오는 본문을 함께 생각하면서 무엇들을 느끼십니까?
당대의 의인 노아는 물론이고 나머지 7식구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의인 노아가 온전한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았으므로 그 외 가족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친것이죠.
만일 노아의 믿음이나 가족들만 아는 노아의 약점들이 있었다면 그렇게 모두 일괄적으로 순종하였겠습니까?
당시 모습이 죄악이 난무하고 남녀 들이 타락할 대로 타락한 세상에서 살았던 노아의 젊은 세 자녀 부부들도 물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답답한 배 안으로 들어가서 살라하면 분명히 거부하는 식구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가족 모두 일치된 마음으로 노아의 말에 순종하였죠.
가장 중심으로 하나가 된 가족들의 참 모습을 느껴봅니다.
또한 이러한 노아의 가족 모습과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정들과도 비교가 되겠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롯의 사위들은 롯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말을 듣지 않았으며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된 사건과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당시 남녀 질서가 무너진 세상에 노아는 단 한 명의 아내만을 두고 세 아들을 낳은 신실한 가장인 것을 보면 과연 제2의 조상이 될 만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들이여 이 말씀의 경종에 귀를 반드시 기울여야 합니다.
한 가정 한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가 안정되고 국가가 안정되는 것입니다.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각 가정별로 가족들이 모여 지내게 될 것입니다.
명절을 맞이할 때 마다 우상 섬김의 죄를 범하는 모습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각 가정들이 올바른 믿음으로 굳게 서서 예수님의 은혜로 가정을 지켜 될 텐데 말입니다.
내가 가장으로서 가정의 믿음을 책임지고 살게 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재산 모으고 사회적으로 잘 살았을지라도 지금까지 잘 살 수 있었겠나? 생각이 떠오릅니다.
지난번에 부모님 과 조부모인 묘소에 다녀왔습니다만
할아버지나 아버지 40대에 모두 일찍 돌아가신 우리집안입니다.
할머니나 어머님은 비교적 오래 살으셨는데 가장들이 일찍 세상을 뜨셨으니 가정들의 삶이 오죽하였겠습니까?
그렇다고 예수를 믿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웬 은혜인지 축복인지 28세에 예수를 영접하고 40여 년간 믿음생활 꾸준히 잘 하고 목사까지 되어 건강하게 살고 있고 우리가정도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놓았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 가문의 단명의 저주가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끊어졌고 영생의 소망을 갖고 믿음, 효도, 사랑의 가훈의 가정을 세워주신 것을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건강관리를 성실하게 하고 영육간의 강건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단 숙제가 있으니
동생가정들의 구원을 위해서 지금까지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는데 속히 모두 구원받아 심판받지 않고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도록 바랄 뿐입니다.
아직 두 자녀가 미혼인 상태나 믿음의 신실한 배우자들을 만나서 축복된 가정을 잘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미신골수가정에서 태어난 모친이 예수님 믿고 권사의 직분을 받은 후 하늘나라에 가신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한 예수께서는 노아가 순종하여 방주를 지음으로써 그 안에 있는 온 가족을 구원하였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 몸을 드려 구원의 방주인 교회를 세움으로써 그 안에 거하며 그의 우리를 힘입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5:18-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그렇습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그 안에 있는 우리 모두를 멸망의 심판에서 구원하였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며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는 마땅히 그에게 모든 영광과 찬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본 받아 의로운 삶을 살아서 세상의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입었느니라.